릴로

# 적월교 본부

소림파의 법당을 떠난 지 사흘. 도환과 그의 일행은 강호의 중심부인 중원의 적월교 본부 앞에 도착했다.

검은 돌로 지어진 거대한 건축물이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었다. 적월교의 본부는 요새라는 표현이 더 어울렸다. 높은 벽에는 붉은 글씨로 '적월(赤月)'이라 새겨져 있었고, 그 아래 수십 명의 제자들이 창과 검을 들고 서 있었다. 그들의 눈빛은 모두 도환을 향했다.

도환은 말 위에서 내렸다. 서운이 급히 그의 팔을 잡았다.

"스승님, 위험합니다."

도환이 고개를 천천히 돌렸다. 입술이 무언가를 반복해 움직였지만 소리는 나지 않았다. 자신의 이름을 중얼거리던 습관. 서운은 그 모습을 보며 눈을 감았다.

현목이 말에서 내렸다. 천검문의 맹주답게 당당한 발걸음이었지만, 그 등은 굽어 있었다. 명진과 백운도 뒤따랐다.

건축물의 정문이 천천히 열렸다. 그곳에서 나타난 인물은 적월이었다. 붉은 옷을 입은 그녀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 있었다. 그 미소는 따뜻했지만, 동시에 차갑기도 했다.

"20년이 걸렸군요. 당신이 우리 앞에 나타나기까지."

적월이 천천히 계단을 내려왔다. 그녀의 발걸음마다 붉은 기운이 흔들렸다.

"당신은 20년을 산골에서 보냈고, 우리는 20년을 강호에서 보냈습니다. 당신은 명예 회복을 원했고, 우리는 강호의 질서를 원했다. 그것이 우리의 차이입니다."

도환이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낮고 갈라져 있었다.

"진범은 누구인가."

적월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은 건물 전체에 울려 퍼졌고, 적월교의 제자들도 함께 웃음을 따라갔다.

"진범? 도환 선배, 당신이 그 말씀을 하시다니."

적월이 한 발 더 내려왔다. 이제 도환과의 거리는 십 장 남짓이었다.

"당신은 이미 우리의 칼이었습니다. 20년 전, 무림맹 괴멸 사건에서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적월의 목소리가 차갑게 떨어졌다.

"우리가 당신의 기억을 지웠습니다. 천혼검법의 본질을 역이용해 당신의 정신을 짓누르고, 당신의 손을 우리의 손으로 만들었습니다. 당신의 검이 베어낸 153명. 그들은 모두 무림맹의 고위층이었습니다. 당신은 우리의 명령에 따라 그들을 죽였고, 그 죽음 위에 적월교가 강호의 맹주가 되었습니다."

건축물의 그림자 속에서 또 다른 인물이 나타났다. 귀영이었다. 그의 얼굴은 여전히 어두웠다.

"무림맹의 지배 체계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질서를 세우기 위해서는 그들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필요했습니다. 당신의 검, 당신의 신념, 당신의 죄책감. 모든 것이 우리의 계획에 완벽하게 들어맞았습니다."

귀영이 한 걸음 더 나섰다.

"당신은 도구였고, 당신은 여전히 도구입니다. 그것이 현실입니다."

도환의 손이 검의 자루를 향했다. 그 순간, 천혼검법이 깨어나려는 기운이 흘렀다. 도환의 눈빛이 변했다. 차갑고, 예리했다.

그러나 그 눈빛은 곧 흐려졌다.

도환이 무릎을 꿇었다.

"스승님!"

서운이 도환을 붙잡으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도환의 몸은 마치 인형처럼 흔들렸다. 천혼검법의 기운이 소용돌이를 치며 도환의 주위를 맴돌았다.

검을 휘두를 때마다 도환의 것들이 사라졌다. 첫 번째 검. 가장 오래된 기억이 흩어졌다. 어린 날의 얼굴들이 안개처럼 흐려졌다. 두 번째 검. 이름이 사라졌다. 도환이 누구인지를 묻는 자신의 목소리만 남았다. 세 번째 검. 감정이 벗겨졌다. 기쁨도, 슬픔도, 사랑도 모두 얼음처럼 딱딱해졌다.

"나는... 누구인가?"

도환의 중얼거림이 커졌다.

"내 이름은... 나는 누구인가?"

명진이 앞으로 나섰다. 그의 발걸음은 결연했다.

"스승님."

명진이 무릎을 꿇었다. 도환을 향해 절을 했다.

"제 아버지의 죽음은 스승님 때문이 아닙니다."

명진의 목소리가 떨렸다.

"하지만 스승님이 진범을 벌하신다면, 제 아버지의 죽음도 의미를 가질 것입니다."

명진이 손을 들었다. 그것은 칼이 아니었다. 한 장의 종이였다.

"이것은 제 아버지의 유언입니다. 20년을 찾아다니며 확인한 것입니다."

명진이 종이를 펼쳤다. 그 위에는 글씨가 적혀 있었다.

"누군가가 나를 배신했다. 그 누군가는 무림맹의 최고층이면서 동시에 적월교와 손을 잡은 자다. 그 누군가는 나를 죽게 할 것이다."

도환은 명진을 바라봤다. 그의 눈에는 절망이 가득했다.

현목의 몸이 흔들렸다.

"명진, 그것은..."

"스승님의 제자 중 한 명입니다."

명진이 현목을 바라봤다.

"현목 맹주는 20년 전 무림맹 괴멸 사건의 당사자였습니다. 스승님의 검에 죽어야 했던 자입니다. 하지만 그는 살아남았고, 적월교와 귀영의 손에 의해 기억을 조작당했습니다. 그리고 천검문의 맹주가 되었습니다."

현목이 천천히 말했다.

"맞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부서질 듯했다.

"20년 전, 저는 무림맹의 부정을 척결하려 했습니다. 당신을 따르며 그렇게 믿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베어낸 153명의 죽음은 무림맹의 정화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적월교의 권력 장악이었습니다. 저는 그 도구였고, 당신도 그 도구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것을 알면서도 천검문의 맹주가 되기를 선택했습니다."

현목이 무릎을 꿇었다.

"죄송합니다."

적월이 웃음을 터뜨렸다.

"완벽합니다. 이제 모든 것이 명확합니다. 당신들의 칼이 누구를 베어야 하는지."

귀영이 손을 들었다. 그의 손가락이 움직였다. 순간, 건축물의 사방에서 귀검단의 자객들이 나타났다. 검은 옷을 입은 자들. 그들의 수는 수십 명이었다.

"이제 끝이다."

적월의 목소리가 차갑게 떨어졌다.

"당신의 강호 귀환은 이것으로 끝난다. 당신의 검은 이것으로 부러진다. 그리고 당신은 이것으로 죽는다."

도환이 검을 들었다. 천혼검법의 기운이 다시 소용돌이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기운이 흔들렸다. 도환의 손이 떨렸다.

백운이 비명을 질렀다.

"도환님!"

그녀가 앞으로 나왔다. 그녀의 순수한 신념은 이미 부서져 있었지만, 그녀의 몸은 여전히 움직였다.

서운이 그녀를 잡아 뒤로 물러났다.

"백운, 이제 우리는 할 수 없다."

서운의 얼굴도 창백했다. 20년을 매일 써온 편지 속의 스승. 그 스승이 이제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있었다.

현목이 검을 들었다. 천검십삼식의 최종 형태. 그것은 죽음의 검이었다.

현목은 한 걸음 내딛었다. 그의 눈빛에는 죄책감과 결연함이 섞여 있었다.

"스승님, 죄송합니다."

현목이 검을 휘둘렀다.

도환의 검이 그것을 맞이했다.

천혼검법과 천검십삼식이 만나는 순간, 대기가 갈라졌다. 음파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건축물의 벽이 균열이 갔다. 귀검단의 자객들이 뒤로 밀려났다.

현목은 밀려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죄를 알고 있었다. 153명의 죽음이 자신의 신념 때문에 빚어진 것임을. 스승을 따르기로 한 자신의 선택이 그 모든 죽음의 밑바탕임을.

"스승님, 저는 당신을 따랐습니다. 20년 전, 당신의 검을 믿었습니다. 당신이 무림맹의 부정을 척결할 것이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도구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도구를 따른 자입니다."

현목이 다시 검을 들었다. 그의 목소리는 가늘어졌다.

"당신의 검이 베어낸 153명의 죽음. 그 모든 것이 저의 죄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당신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도환이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넌... 누구인가?"

"저는 현목입니다."

"현목..."

도환이 그 이름을 반복했다. 그 이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이름 속에는 20년의 시간이 담겨 있었다. 20년의 배신과 죄책감이.

현목의 검과 도환의 검이 다시 만났다.

이번에는 도환이 밀려났다.

도환의 발이 뒤로 물러났다. 한 발, 두 발, 세 발.

현목이 검을 몰아붙였다.

"스승님, 이제 끝입니다."

현목의 목소리가 울렸다.

"저도 끝이고, 당신도 끝입니다. 모든 것이 끝납니다."

도환이 무릎을 꿇었다.

그것은 항복이 아니었다.

그것은 기도였다.

도환의 검이 땅에 닿았다. 그 순간, 검에서 빛이 분출했다. 붉은 빛. 그 빛은 20년의 산골 암자에서 나온 것처럼 보였다. 그 빛은 153명의 죽음으로부터 나온 것처럼 보였다.

현목의 검이 도환의 검과 만났다.

두 검이 만나는 순간, 시간이 멈춘 듯했다.

그리고 도환은 깨달았다.

현목 앞에 또 다른 현목이 있다는 것을. 현목 뒤에 또 다른 현목이 있다는 것을. 모든 현목이 자신의 검 앞에서 죽었다는 것을.

천혼검법의 환각이 시작되었다. 죽음의 이미지가 반복되고 겹쳐졌다. 한 명의 현목이 백 명의 현목이 되고, 백 명이 천 명이 되었다. 그들의 얼굴이 겹쳐졌다. 처음 만난 날의 현목. 무림맹 괴멸 사건 직전의 현목. 천검문의 맹주가 된 현목. 모든 시간의 현목이 한 점에 응축되어 죽음의 이미지로 변했다.

그리고 그 죽음들 뒤로 또 다른 얼굴들이 떠올랐다. 153명의 죽음. 그들 각각의 얼굴. 그들의 이름. 그들의 죽음의 방식.

첫 번째 죽음. 무림맹의 장로, 이름은 도공. 도환의 검에 가슴을 관통당했다. 그의 눈빛은 배신감으로 가득했다.

두 번째 죽음. 무림맹의 부맹주, 이름은 현혜. 도환의 검에 목이 잘렸다. 그녀는 마지막 순간까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153명이 모두 도환 앞에서 죽었다. 그들은 모두 무고했다. 그들은 모두 적월교의 음모의 피해자였다. 그리고 도환은 그들을 죽인 자였다.

도환의 입에서 소리가 나왔다.

"나는... 누구인가?"

그 질문은 현목에게 향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에게, 강호에게, 그리고 모든 죽은 자들에게 향한 것이었다.

현목이 검을 들었다.

"당신은 도환입니다."

현목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리고 도환은 이제 죽어야 합니다."

현목의 검이 내려왔다.

도환의 검이 그것을 맞이했다.

그 순간, 적월과 귀영의 얼굴에 공포가 스쳤다.

왜냐하면 그들은 알았기 때문이다.

도환이 깨어나고 있다는 것을.

도환의 검에서 울음이 터져 나왔다. 붉은 기운이 하늘로 치솟으며 적월교 본부를 뒤덮었다. 마치 20년간 억눌렀던 모든 죄와 분노가 한 점에 응축되어 터지는 듯했다. 그 기운 속에서 도환의 눈빛이 변했다. 더 이상 흐릿하지 않았다. 명확했다. 냉정했다.

도환이 다시 일어섰다.

백운이 다시 목소리를 냈다.

"당신은 누구신가요?"

그 물음은 질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고별(告別)이었다. 20년을 기다린 여인이 마지막으로 던지는 이별의 말.

도환이 백운을 바라봤다. 그 여인의 얼굴을 보며 도환의 가슴이 철렁했다. 백운의 눈에는 희망이 없었다. 이미 모든 것을 포기한 듯한 표정. 그리고 도환은 깨달았다. 자신이 그 희망을 죽였다는 것을. 20년을 기다린 사람을 버리고 있다는 것을.

도환의 손이 떨렸다. 검의 무게가 느껴졌다. 그것은 이전의 무게가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의 죄의 무게였다. 153명의 죽음. 20년의 은거. 모든 배신과 절망이 검 위에 내려앉았다.

그리고 백운. 20년을 기다린 그 여인도.

도환은 두 가지 선택 앞에 섰다.

하나는 자신의 죄를 베는 것. 천혼검법의 진정한 대가로서 자신의 영혼을 스스로 베어내는 것. 그렇게 되면 모든 것이 끝날 것이었다. 153명의 죽음도 의미를 가질 것이었다. 도환이 죽으면 그들도 죽음이 완성될 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백운을 구하는 것. 자신의 죄를 짊어지고 살아가는 것. 그렇게 되면 백운은 살 것이었다. 하지만 도환은 여전히 죄인으로 남을 것이었다. 더 이상 도환이 아닌 것으로.

"나는..."

도환이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더 이상 갈라져 있지 않았다. 명확했다.

"나는 도환이다."

그 말이 나오는 순간, 도환의 몸이 반응했다. 검이 울음을 냈다. 붉은 기운이 하늘로 치솟았다. 마치 20년간 묻혔던 모든 죄가 한 번에 분출하는 듯했다. 그리고 그 기운 속에서 도환은 자신의 이름을 되찾았다.

도환은 검을 들고 일어섰다. 현목의 공격을 피하지 않고 받아내며. 자신의 검을 더욱 높이 들며.

"그리고 나의 칼은..."

도환의 검이 현목의 검을 밀어냈다. 현목의 몸이 뒤로 밀려났다. 천검십삼식의 최종 형태도 천혼검법의 각성 앞에서는 무력했다.

도환의 눈이 백운을 향했다 돌아왔다. 그 눈빛 속에는 결연함이 있었다. 자신의 죄를 짊어지고 살아가겠다는 결연함.

"이제 나 자신을 베려 한다."

그 말이 나오는 순간, 도환의 검이 현목을 향해 내려왔다. 하지만 그것은 죽음의 검이 아니었다. 그것은 깨달음의 검이었다.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그 죄 속에서 살아가겠다는 깨달음의 검.

현목은 그 검을 받아냈다. 그의 얼굴에는 안도감이 떠 있었다. 마침내 끝이 왔다. 마침내 자신의 죄가 끝난다.

두 검이 만났다.

현목의 몸이 한 발 물러섰다. 그의 입에서 핏물이 흘렀다.

적월과 귀영의 얼굴에서 모든 색이 빠져나갔다. 그들이 계획한 모든 것이 무너지고 있었다. 도환이 더 이상 자신을 죽이는 칼이 아니라, 자신을 베는 칼이 되어버렸다.

강호의 모든 것이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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