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적월교 본부의 석조 광장은 이미 전쟁터였다.

도환의 검이 공중에서 멈췄을 때, 현목의 천검십삼식 최종형이 그것을 갈아내려 했다. 검이 부딪히는 순간, 파동이 광장의 돌판을 갈라놓았다. 도환은 무릎을 꿇었다. 천혼검법의 기운이 몸을 관통했고, 현목의 검 끝이 도환의 목을 스쳤다.

그런데 도환은 일어났다.

"나는 도환이다. 그리고 나의 칼은 이제 나 자신을 베려 한다."

그 말이 끝나는 순간, 도환의 검이 빛났다. 천혼검법이 깨어났다. 현목의 몸이 떨렸다. 검의 빛이 현목을 관통했을 때, 그는 비명을 질렀다. 그것은 죽음의 비명이 아니었다. 자신의 죄를 마주하는 자의 울음이었다. 현목은 무릎을 꿇고, 천검십삼식의 검을 내려놓았다.

"스승님..."

그 말 하나로 모든 것이 끝났다.

도환은 검을 들고 일어섰다. 기억이 흔들렸다. 자신이 누구인지 묻는 질문이 뇌 속에서 울렸다. 하지만 검은 여전히 도환의 손에 들려 있었다. 검이 움직이는 곳에 진실이 있었다. 적월교 본부의 깊은 곳에서 적월의 목소리가 울려 나왔다.

"도환이여, 그대가 오다니."

적월이 나타났다. 남방 적월교의 교주, 20년 전 무림맹 괴멸의 주역이자 도환을 조종한 자. 그의 몸에는 붉은 기운이 감돌았다. 적월신공. 상대의 마음을 조종하는 무술.

"당신은 나를 칼로 만들었다."

도환의 말이 단순했다. 감정 없이, 사실처럼.

"그렇다. 그리고 그대는 완벽한 칼이었다."

적월의 웃음이 광장을 흔들었다. 하지만 그 웃음은 떨리고 있었다. 도환의 검을 본 순간, 적월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는 도환이 검을 드는 것을 이미 경험했다. 20년 전 자신의 라이벌들이 그 검에 베어질 때를.

도환이 검을 들었다.

천혼검법이 발동했을 때, 적월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도환의 검은 적월을 죽이지 않았다. 검이 적월의 몸을 스쳤고, 적월은 바닥에 무너졌다. 적월신공의 붉은 기운이 흩어졌다.

"아... 아니다. 이럴 수 없다..."

적월이 비명을 질렀다. 그것은 고통의 비명이 아니었다. 자신의 죄를 마주하는 자의 울음이었다. 도환의 검이 그에게 보여준 것은 자신이 만든 괴물들의 얼굴이었다. 무림맹 153명의 얼굴. 그들 중 누가 죄인이고 누가 무고한지도 모르면서, 자신이 그들을 죽음으로 내몬 그 순간들. 적월은 그 모든 얼굴을 한 번에 봤다. 자신이 만든 괴물이, 자신의 명령으로 죽인 사람들이, 그 모든 것이.

"내가... 내가 무엇을 한 것인가..."

적월의 목소리는 이제 교주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단순한 인간의 절망이었다.

도환은 검을 내렸다. 기억이 또 흔들렸다. 자신이 누구인지 묻는 질문이 다시 울렸다. 도환은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검을 들 때마다 자신이 조각조각 산산조각나고 있었다.

그때 그림자가 움직였다.

귀영이 나타났다. 서방 귀검단의 실질적 지도자. 20년 전 도환을 조종한 또 다른 자. 그의 몸은 검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귀검술. 상대의 생명력을 빼앗는 무술.

"도환이 기억을 잃고 있군."

귀영의 목소리는 차갑고 이성적이었다.

"당신도 나를 조종했다."

도환이 말했다. 그 말이 끝나고, 도환의 검이 들렸다. 천혼검법이 다시 깨어났다. 도환의 검이 귀영을 향해 날아갔다. 귀영의 몸이 피했다. 하지만 검은 명중했다.

그런데 귀영의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칼날이 관통했는데도, 그 몸은 계속 서 있었다. 마치 이미 죽은 것처럼. 도환의 검이 귀영을 꿰뚫었을 때, 그 몸 속에서 뭔가 흘러나왔다. 피가 아니었다. 검은 기운. 적월신공의 붉은 기운과는 다른, 죽음의 기운.

서운이 외쳤다.

"스승님! 그건 귀영이 아닙니다!"

도환의 검이 멈췄다. 귀영의 몸에서 무언가가 떨어져 나갔다. 흙. 먼지. 그리고 뼈. 그 몸은 이미 죽은 지 오래된 시체였다. 누군가 그 죽은 몸을 조종하고 있었던 것이다. 적월신공으로.

적월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것은 미친 자의 웃음이었다.

"그렇다! 귀영은 이미 죽었다! 내가 그의 시체를 움직이고 있었다! 20년 동안! 귀영을 죽인 것도 나다! 도환이 되기를 원하던 그 자도 결국 내 손에 죽었다!"

명진이 검을 그었다. 하지만 도환이 손을 들어 명진을 막았다. 도환의 눈이 적월을 바라봤다. 그 눈에는 이미 도환이 없었다.

"나는..."

도환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나는 칼입니다."

백운이 물었다.

"칼이 누구인가요?"

도환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입이 열렸지만,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도환은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손가락이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도환은 그것이 자신의 손인지 알 수 없었다.

기억이 산산조각났다.

도환은 자신의 검을 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가슴에 그것을 겨눴다.

"나는 도환입니다. 그리고 나는 죄인입니다."

도환이 말했다. 그 말이 끝나는 순간, 도환은 자신의 검을 자신의 가슴으로 내려꽂았다.

천혼검법이 발동했다.

도환의 몸이 빛났다. 도환의 모든 기억이 검에 담겼다. 20년 전 암자로 들어가던 그날. 폭우 속에서 편지를 주운 그날. 산길을 내려오던 그날. 천검문에서 현목을 만난 그날. 모든 날들. 모든 순간들. 모든 죄들.

도환의 검이 울음을 냈다.

그것은 죄인의 울음이었다. 도환의 모든 죄악이 검에 담겨 울음을 냈다. 광장 전체가 그 울음으로 흔들렸다. 적월이 비명을 질렀다. 현목이 무릎을 꿇었다. 명진이 눈을 감았다. 백운이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리고 도환이 사라졌다.

도환이라는 이름이 검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도환의 모든 기억이 검 속으로 사라졌다. 도환의 정체성이 검 속에만 남겨졌다. 광장에 남겨진 것은 한 명의 방랑자일 뿐이었다. 그 방랑자는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자신의 이름이 무엇인지도 알 수 없었다. 자신이 왜 여기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방랑자는 검을 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내려놨다.

서운이 검을 집어들었다. 그 검에서 울음이 울려 나왔다. 그것은 도환의 모든 죄와 진실이 담긴 울음이었다. 서운은 그 울음을 들으며 깨달았다.

스승님의 속죄는 이제 시작되었다.

강호는 여전히 돌아갈 것이다. 도환이라는 이름 없이도. 그 방랑자는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른 채 어딘가를 향해 걸어갈 것이다.

방랑자는 산골로 향했다. 또 다른 산골. 또 다른 암자. 그곳에 도착한 방랑자는 다시 한 번 검을 묻으려 했다. 이번에는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채로.

흙을 파는 손이 떨렸다. 20년 전 암자에서 자신이 했던 그 동작을 반복했다. 같은 자세로. 같은 절망으로. 하지만 이번에는 자신이 무엇을 묻고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검이 흙 속으로 들어갔다.

흙이 검을 덮었다.

방랑자는 일어섰다.

강호는 더 이상 도환을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검은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도환의 모든 죄를. 도환의 모든 진실을. 도환이라는 이름 속에 담긴 모든 것을.

방랑자는 산을 내려갔다. 자신의 이름도 모른 채로. 자신이 누구였는지도 알 수 없는 그 방랑자는 어디론가 사라져갔다.

뒤에 남겨진 것은 검뿐이었다. 검과 그 검에 담긴 모든 울음.

# 10화 마지막 검과 속죄

광장이 울음으로 무너져 내렸다.

천혼검법의 기운이 사방으로 흩어지며 돌 위에 금이 가고, 기와가 부서지고, 먼지가 소용돌이쳤다. 그 중심에 도환은 더 이상 도환이 아니었다. 검에서 나온 빛이 그의 몸을 감싸 안았고, 그 빛 속에서 한 명의 인간이 천천히 사라져 가고 있었다.

적월이 비명을 질렀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더 이상 말이 아니었다. 천혼검법의 업이 그의 목을 짓누르고 있었다. 20년 전 무림맹 괴멸의 날, 자신의 손으로 죽인 153명의 얼굴들이 그의 눈앞에 떠올랐다. 그들의 울음이 들렸다. 그들의 원한이 그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적월은 무릎을 꿇었다. 자신이 저지른 죄가 이토록 무거운 것임을 이제야 깨달은 것처럼.

현목은 여전히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의 검이 도환을 공격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그것이 배신이었다. 그것이 죄였다. 그것이 자신이 20년을 견뎌내야 했던 이유였다. 현목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스승을 배신하고 얻은 천검문의 맹주 자리, 그 모든 것이 한 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귀영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천혼검법의 범위를 벗어나기 위해 몸을 날렸던 그는 적월교 담장 너머로 떨어져 있었다. 하지만 그도 도망칠 수 없었다. 도환의 검에서 나오는 울음이 그를 따라갔다. 귀영의 귀에는 자신이 저지른 암살 3천 건의 비명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명진의 손이 떨렸다. 그의 아버지가 남긴 유언, 그 유언이 현목의 죄를 드러냈지만, 이제 도환이 진범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누가 아버지를 죽인 것인가. 누가 가족을 죽인 것인가. 그 답이 자신의 앞에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적월이었다. 귀영이었다. 그리고 도환이었다. 하지만 도환은 죽임을 당한 도구였다. 명진의 복수심이 산산조각났다. 누구에게 복수해야 하는가. 이미 죄를 깨달은 자들을 죽일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원한을 영원히 안고 살아갈 것인가.

백운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녀의 순수한 신념이 강호의 어두운 현실 앞에서 무너져 내렸다. 정의라는 말이 무엇인가. 죄라는 것이 무엇인가. 도환이 죄인이 맞는가. 아니면 강호 전체가 죄인인가. 백운의 입술이 떨렸다. 그녀가 찾던 아버지의 죽음도, 이 모든 비극의 한 조각일 뿐이라는 깨달음 앞에서.

검이 내려갔다.

도환의 손이 천천히 낮아졌다. 그 검은 더 이상 누군가를 베기 위한 칼이 아니었다. 그것은 도환 자신을 베기 위한 칼이었다. 도환의 팔이 가슴에 닿았다.

"나는..."

그의 목소리가 다시 나왔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도환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죄인의 목소리였다. 모든 죄를 짊어진 자의 목소리였다.

"나는 도환입니다. 그리고 나는 죄인입니다."

검이 들어갔다.

천혼검법이 발동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대상이 도환 자신이었다. 도환의 몸에서 빛이 터져 나왔다. 20년 전 암자로 들어가던 그날부터 이 순간까지, 모든 기억이 검으로 빨려 들어갔다. 폭우 속에서 편지를 주운 순간. 산길을 내려오던 순간. 천검문에서 현목을 만난 순간. 명진과 대면하던 순간. 서운과 재회하던 순간. 귀영과 싸우던 순간. 소림파에서 깨어나던 순간.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모든 것이 검에 담겼다.

도환의 정체성이 검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도환이라는 이름이 검에 담겼다. 도환의 모든 죄악이 검에 담겼다. 도환이 저질렀던 것들, 도환이 당했던 것들, 도환이 깨달았던 것들. 모두가 검 속에만 남겨졌다.

광장에 남겨진 것은 한 명의 방랑자였다.

그 방랑자는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손이 누구의 손인지 알 수 없었다. 자신의 얼굴이 무엇인지도 알 수 없었다. 자신의 이름이 무엇인지도 알 수 없었다. 자신이 누구인지도 알 수 없었다.

방랑자는 검을 내려놨다.

서운이 그 검을 집어들었다. 검에서 울음이 울려 나왔다. 그것은 도환의 모든 죄가 담긴 울음이었다. 모든 진실이 담긴 울음이었다. 도환이라는 이름이 울음으로 변해 검에서 나왔다. 서운의 귀에는 그 울음이 스승의 목소리로 들렸다.

"스승님..."

서운이 중얼거렸다. 하지만 스승은 더 이상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스승이라는 존재 자체가 검 속으로 사라졌으니까.

명진이 무릎을 꿇었다. 복수의 대상이 사라졌다. 자신의 20년이 무엇이었는가. 아버지의 죽음이 무엇이었는가. 그 모든 것이 강호의 암투 속에서 한 명의 도구를 만들기 위한 대가였다는 것을 이제 알았다. 명진의 울음이 나왔다. 그것은 분노가 아니라 절망이었다.

현목이 일어섰다. 그의 얼굴은 창백했다. 자신의 죄가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천혼검법을 통해 직면했다. 그는 스승을 배신했다. 스승이 자신의 모든 정체성을 잃고 방랑자가 되도록 만들었다. 현목은 자신의 검을 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부러뜨렸다. 천검십삼식의 최종형으로 만든 검을. 자신의 죄를 짊어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죽음이라면, 자신은 죽지 않기로 결심했다. 죽음은 도피다. 도환처럼 자신도 살아가며 죄를 짊어져야 한다.

백운은 그 방랑자를 바라봤다. 그 방랑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그 방랑자가 어디로 가는지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방랑자의 뒷모습에서 백운은 무언가를 느꼈다. 고독함. 절망함. 그리고 어딘가 모르게 고귀한 무엇.

방랑자는 걸어갔다.

적월교 광장을 떠나 산길을 향했다.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른 채,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단지 발이 가는 대로 걸어갔다. 방랑자의 발이 흙을 밟았다. 나뭇잎을 밟았다. 돌을 밟았다. 그 모든 감각이 낯설었다. 마치 처음 태어난 것처럼.

며칠이 지났는지 모른다. 방랑자는 산골에 도착했다. 또 다른 산골. 또 다른 암자. 이곳이 어딘지는 몰랐지만, 뭔가 끌려오는 기분이 들었다.

방랑자는 흙을 파기 시작했다. 손에는 힘이 있었다. 마치 이 일을 몇 번이나 반복한 것처럼. 흙이 파져 나갔다. 깊어졌다. 어느 정도 깊이가 되자 방랑자는 멈추고 선 채 그것을 바라봤다.

그 구멍 속에는 무엇이 들어가야 할까.

방랑자는 모른다. 하지만 손가락이 움직였다. 자동으로. 마치 누군가 다른 존재가 이 몸을 움직이는 것처럼.

방랑자의 손이 허공을 향했다.

그리고 방랑자의 손에는 검이 있었다.

어디서 났는지도 모르는 검. 하지만 그 검에서 울음이 나왔다. 도환의 울음이. 모든 죄와 진실이 담긴 울음이.

방랑자는 그 검을 구멍 속으로 내려놨다.

흙이 검을 덮었다.

방랑자는 일어섰다.

강호는 이제 도환을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도환이라는 이름은 강호의 역사에서 지워질 것이다. 그 대신 남겨진 것은 한 명의 방랑자뿐.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그 방랑자는 어디론가 사라져갈 것이다.

하지만 검은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산골 어딘가에 묻힌 검. 그 검 속에는 도환의 모든 기억이. 모든 죄가. 모든 진실이 담겨 있을 것이다. 누군가 그 검을 들 때까지.

방랑자는 산을 내려갔다.

뒤에 남겨진 것은 검뿐이었다. 검과 그 검에 담긴 모든 울음.

이전화목차마지막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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