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천혼검법의 기억

도환의 손가락이 떨렸다. 현목의 얼굴이 떠올랐다가 금세 사라졌다. 누구였더라? 검을 쥔 손이 점점 약해졌다. 뭔가 중요한 것을 잃어가고 있다는 느낌만 남았다.

서운이 나타났을 때 도환은 그 얼굴을 알아볼 수 없었다. 20년이라는 시간이 무너졌다. 젊은 제자의 눈에는 회한이 깊게 패여 있었고, 그것을 보는 순간 도환은 자신이 얼마나 오랫동안 거짓으로 살아왔는지를 깨달았다.

"스승님."

서운이 무릎을 꿇었다. 검은 승려복 아래로 그의 어깨가 떨렸다.

"제 편지가 스승님을 강호로 불러냈습니다. 죄송합니다."

말을 마치지 못한 채 서운의 목이 메었다. 도환은 서운을 일으켜 세웠다. 손가락이 제자의 팔을 감쌀 때, 도환 자신도 떨리고 있었다.

"일어나거라. 너는 죄가 없다."

도환이 서운을 끌어안았다. 암자의 돌 벽 앞에서 혼자 중얼거렸던 그 모든 기도가 이 한 순간을 위한 것이었을 수도 있다. 현목은 멀찍이 서서 이 장면을 바라보았고, 명진은 검을 내려놓은 채 고개를 돌렸다. 백운만이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스승님."

서운이 도환의 품을 벗어나며 말했다.

"20년 전 사건 이후 강호에는 거대한 비밀이 있습니다."

도환이 제자의 얼굴을 들어올렸다. 서운의 눈빛이 변했다. 그 눈에는 더 이상 죄책감만 있지 않았다. 진실을 마주한 자의 비통함이 있었다.

"누군가가 스승님을 역적으로 만들었습니다. 스승님의 검을 도구로 삼아."

"누구인가."

도환의 질문이 공기 중에 맺혔을 때, 모든 것이 달라졌다. 현목이 한 발 앞으로 나섰다. 백운이 손에 검을 쥐었다. 명진은 여전히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도 다 알지는 못합니다."

서운이 목소리를 낮췄다.

"하지만 적월은 거짓말을 했습니다. 귀영이 스승님을 조종했다면, 그것도 또 다른 거짓일 수 있습니다. 더 큰 손이 있습니다."

서운이 말을 멈췄다. 그 순간, 밤하늘을 가르는 검음이 내려왔다.

칼날이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났을 때, 도환은 이미 검을 빼들고 있었다. 검은 옷의 인영이 나타났다. 정체불명의 인물. 20년 전부터 도환의 검을 움직였던 그 손.

귀영이었다.

"도환."

목소리가 얼음처럼 차가웠다.

"당신의 검이 얼마나 많은 비극을 만들었는지 아는가?"

귀영은 정지된 상태로 공중에 매달려 있었다. 그의 검은 이미 도환의 검과 맞부딪혀 있었고, 두 검 사이에서 기묘한 음파가 울렸다. 하지만 도환은 귀영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어둠이 너무 짙었거나, 자신의 눈이 흐려져 있었을지도 모른다.

"내 검은 누구의 손으로 움직였는가?"

도환이 물었다. 천혼검법이 깨어나고 있었다.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검이 울음을 내기 시작했다.

"당신의 검은 당신이 움직였다. 하지만 당신은 누군가의 손 안에 있었다."

귀영이 한 발 물러섰다. 그의 검이 재빨리 도환의 검을 스쳐 지나갔다. 도환은 그 움직임을 따라가려 했지만 몸이 반응하지 않았다. 기억의 조각들이 산산조각이 났다.

현목의 얼굴이 흐릿해졌다. 이름이 아니라 형상부터 사라지고 있었다. 마치 손가락 사이로 모래가 빠져나가듯.

귀영의 검이 도환의 옆구리를 향했다. 그 순간, 현목이 나타났다. 하지만 현목의 검은 도환의 앞에서 멈추지 않았다. 도환의 뒤에서 현목의 검이 도환의 등을 향해 내려왔다.

"현목?"

도환이 뒤를 돌아봤다. 현목의 얼굴이 보였다.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검을 든 손은 떨렸고, 어깨는 경직되어 있었다. 내려오던 검이 잠시 멈췄다.

"스승님, 죄송합니다."

현목의 목소리는 떨렸다. 검의 무게가 그의 팔을 누르고 있었다.

"귀영이 천검문의 모든 것을 빼앗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저는..."

말을 잇지 못한 현목. 그의 눈에는 갈등이 아니라 절망만 남아 있었다.

"하지만 저는 제 지위를 잃을 수 없습니다. 저는 천검문의 맹주입니다."

손가락이 경직되었다. 검이 다시 내려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움직임은 느렸다. 마치 누군가 다른 사람의 팔을 움직이는 것처럼.

도환은 현목을 바라봤다. 제자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그 고통이 자신을 향한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도환은 움직일 수 없었다. 기억이 흩어지면서 감정도 함께 사라지고 있었다. 절망감, 배신감, 그 모든 것이 안개 속으로 사라져가고 있었다.

"현목..."

도환이 한 글자를 뱉어냈다. 그것이 전부였다. 그의 입에서는 더 이상 말이 나오지 않았다. 대신 검이 울음을 냈다. 천혼검법이 각성했다.

도환의 검이 360도 회전했다. 현목의 검을 튕겨내고 동시에 귀영의 검을 막아냈다. 그 순간, 세 검이 한 점에서 만났다. 그리고 그 접점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현목과 귀영 둘 다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그들의 몸 위에는 무언가가 겹쳐졌다. 환상이 아니라 실체. 20년 전의 그들의 모습이, 그들의 업이 현현했다.

현목의 위에는 시체들이 떠올랐다. 천검문의 권력을 얻기 위해 죽여야 했던 자들. 그의 손에 죽은 형제들, 그의 검에 베인 동료들. 그 모든 죽음이 검은 그림자가 되어 현목을 짓누르고 있었다. 피로 물든 손가락들이 떨렸다.

귀영의 위에는 도구들이 떠올랐다. 수천 개의 도구. 도환의 검이 된 도구들. 그리고 그 도구들 아래 깔린 무고한 사람들의 얼굴들. 귀영은 그 모든 것을 조종했다. 하지만 조종자 자신도 누군가의 손 안에 있었다. 그 누군가는 누구인가? 귀영의 눈빛이 흔들렸다. 자신도 알지 못하는 그 누군가의 손.

"너희는 누구를 위해 죽으려 했는가?"

도환의 검에서 울음이 나왔다. 그것은 도환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검 자체가 내는 울음이었다. 천혼검법이 드러내는 진실의 울음.

현목과 귀영이 동시에 무릎을 꿇었다. 그들은 더 이상 싸울 수 없었다. 자신들의 업이 너무나 명확하게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도환이 검을 내렸다. 하지만 내려가는 검 속에서 도환은 또 다른 것을 느꼈다. 자신의 기억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

현목이라는 이름이 입에서 떨어져 나갔다. 마치 손가락 사이로 모래가 빠져나가듯. 하지만 이름만이 아니었다. 현목의 얼굴도 흐릿해졌다. 방금 전까지 눈 앞에 있던 그 얼굴이 점차 낯선 것이 되어가고 있었다. 도환은 그 얼굴을 본 것 같은데, 그것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다. 친숙함과 낯설음이 뒤섞여 있었다.

귀영도 마찬가지였다. 방금 전의 전투가 흐릿해지고 있었다. 누가 자신을 공격했는지, 왜 자신이 검을 들었는지. 그 모든 것이 안개 속으로 사라져가고 있었다.

"도환..."

자신이 중얼거렸다.

"나는... 도환이다..."

하지만 그 이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자신의 이름을 반복하는 것만으로 자신이 누구인지를 확인하려 했지만, 그 반복은 더욱 그 이름을 공허하게 만들었다.

세상이 흔들렸다. 아니, 자신이 흔들리고 있었다. 땅이 가까워졌다. 누군가가 자신을 잡으려 했다. 그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스승님! 제발 깨어나세요!"

서운이었다. 도환은 그 목소리를 알고 있었다. 그 목소리는 자신의 기억 속에 깊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다.

눈을 떴다. 밤하늘이 보였다. 별이 떨리고 있었다. 또는 자신의 눈이 떨리고 있었다. 한 얼굴이 자신 위에 있었다. 그 얼굴은 누군가를 알려고 하는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도환이 입을 열었다.

"너는... 누구인가?"

서운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 얼굴 위에 비통함이 떠올랐다가 금세 사라졌다. 서운은 도환의 손을 잡았다. 손가락이 떨렸다.

"저... 저는 서운입니다. 스승님의 제자입니다."

도환은 그 말을 들었지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었다. 제자? 스승? 낯설었다. 마치 누군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았다. 도환은 자신의 손을 들어 바라봤다. 손에는 검이 들려 있었다. 검에는 피가 묻어 있었다. 그 피가 누구의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스승님, 저를 봐주세요."

서운이 도환의 얼굴을 양손으로 감싸 자신을 바라보게 했다. 서운의 눈 속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저는 서운입니다. 당신의 제자입니다. 20년 전에 편지를 보낸 사람입니다."

20년 전? 편지? 도환의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흐릿하게 떠올랐다 사라졌다. 마치 꿈속의 장면처럼. 그것이 자신의 기억인지, 다른 누군가의 기억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뒤에서 현목의 신음이 들렸다. 도환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현목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의 옷은 피로 물들어 있었다. 천혼검법의 대가. 그의 업이 육체를 짓누르고 있었다. 현목의 입에서는 계속해서 눈물이 흘렀다.

"스승님... 죄송합니다..."

현목의 목소리는 더 이상 천검문의 맹주가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의 죄를 마주한 한 명의 제자의 목소리였다.

귀영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그 자리에는 피만 남아 있었다. 도환은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천혼검법이 드러낸 업의 무게 속에서 귀영이 도망쳤을 수도, 죽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도환은 그것을 알 수 없었다.

"스승님."

명진이 다가왔다. 그의 검은 이미 내려져 있었다. 그의 얼굴은 복잡한 감정으로 뒤틀려 있었다. 명진은 오래전부터 도환을 원수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 눈에는 복수의 의지가 남아 있지 않았다. 대신 그곳에는 혼란만 있었다.

"당신이... 누구십니까?"

명진이 물었다. 이상한 질문이었다. 그는 이미 도환을 알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그 질문 속에는 다른 의미가 있었다. 당신이 정말로 그 도환입니까, 하는 의미. 당신이 정말로 나의 원수입니까, 하는 의미.

도환은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데, 어떻게 대답할 수 있겠는가.

백운이 나타났다. 그녀의 얼굴은 창백했다. 아마도 도환이 현목과 귀영을 제압하는 장면을 모두 봤을 것이었다. 천혼검법의 위력. 그것이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 그 눈으로 직접 본 것이었다. 그녀의 순수함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도환님..."

백운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그녀는 도환의 손에서 검을 빼앗으려 했다. 하지만 도환의 손은 검을 놓지 않았다. 자신의 이름을 모르는 도환에게도 검만은 놓을 수 없는 것이 있었다. 검. 그것만은 자신의 것이었다.

"이 검이... 누구의 것입니까?"

도환이 검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것은 당신의 검입니다."

서운이 대답했다.

"당신의 천혼검입니다."

천혼검. 그 이름도 낯설었다. 하지만 손에 쥔 검은 자신을 알고 있었다. 검의 무게가 말해주고 있었다. 이것은 수천 명을 베어낸 검이다. 이것은 진실을 드러내는 검이다. 이것은... 도환의 검이다.

소림파의 불빛이 멀리서 보였다. 현목이 천천히 일어났다. 그의 다리는 흔들렸다. 천혼검법의 업이 아직도 그를 짓누르고 있었다.

"스승님. 저를 용서해주실 수 없겠지만, 저는 당신을 지켜야 합니다."

현목이 도환의 옆에 섰다.

"당신이 누구이든, 저는 당신의 제자입니다."

도환은 현목을 바라봤다. 그 얼굴은 누군가를 알려고 했지만, 알 수 없었다. 그저 눈 앞에 있는 한 명의 무인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 무인의 말 속에는 무언가가 있었다. 책임. 속죄. 그리고... 사랑.

"소림파로 가야 합니다."

서운이 말했다. 기억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담긴 말이었다. 하지만 도환은 그것을 믿지 않았다. 소림파에 가면 무엇을 찾을 수 있을까? 자신의 기억? 아니면 자신을 아는 누군가?

그 누군가는 누구일까? 도환은 흐릿한 기억 속에서 한 가지를 느꼈다. 소림파에는 자신을 아는 자가 있다는 것. 그 자가 누구인지, 자신과 어떤 관계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존재만은 분명했다.

그 순간, 멀리서 말굽 소리가 들렸다. 많은 말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귀검단의 추격이었다.

"가야 합니다!"

명진이 외쳤다.

도환은 검을 들었다.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지만, 검은 알고 있었다. 검은 자신을 인도했다. 그들은 소림파를 향해 달렸다. 밤의 숲길이 그들을 삼켰다.

뒤에서 화살이 날아왔다. 현목이 그것을 튕겨냈다. 백운이 도환의 팔을 잡고 달렸다. 서운이 앞을 인도했다. 명진이 뒤를 막았다.

도환은 달리면서도 자신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도환... 나는... 도환..."

하지만 그 이름은 자신과 아무런 연결고리가 없었다. 마치 남의 이름을 부르는 것 같았다. 자신은 누구인가? 자신은 왜 검을 들고 있는가? 자신은 누구를 베려 하는가?

질문만 남았다. 대답은 없었다.

그리고 그 질문 속에서 강호 전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귀검단, 적월교, 천검문, 소림파, 패해파. 모든 세력이 도환을 향해 움직였다. 도환이 누구인지 모르는 그 순간, 강호의 모든 것이 도환을 향해 칼을 들고 있었다.

소림파의 산문이 가까워졌다. 그곳에서 무언가가 도환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었다. 기억인지, 죽음인지, 또 다른 진실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소림파에는 도환을 아는 누군가가 있을 것이었다. 그 누군가가 누구인지, 도환을 어떻게 알고 있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였다. 도환은 그 존재를 느낄 수 있었지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도환은 달렸다. 검을 들고. 자신의 이름을 중얼거리면서.

"도환... 나는 도환이다..."

하지만 그것도 곧 잊혀질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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