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명진의 선택

명진의 검이 떨어졌다.

손가락이 펴지면서 검은 자신의 발치에서 금속음을 내며 구르다 멈췄다. 20년을 그 한 자루를 들고 살았던 손이, 결국 내려놓는 순간이었다. 명진은 무릎을 꿇었다. 그 자세로 도환을 바라봤다. 눈물이 흘렀다.

"스승님이 죄인이 아니라면."

목이 메었다. 다시 한 번 숨을 쉬었다.

"내 가족의 죽음은 누구 때문입니까?"

말이 끝나자마자 명진의 몸이 흔들렸다. 20년 동안 붙들고 있던 것이 떨어져 나가는 감각이었다. 그 속에 자신의 모든 것이 들어 있었다. 아버지의 죽음. 어머니의 비명. 누이의 차가운 손. 그것이 전부였다. 그 죽음이 무고한 것이라면, 자신은 무엇인가. 20년을 복수로 살아온 자신의 인생은 무엇인가.

도환이 한 발자국 나아갔다.

"나는 죄인이 맞다."

목소리가 낮았다. 암자에서 20년을 침묵으로 지낸 자의 말투였다. 한 마디 한 마디가 무게를 지니고 떨어졌다.

"그러나 진범은 다른 누군가일 수도 있다."

명진의 머리가 올라갔다. 도환은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함께 진실을 추적하자. 너의 가족을 죽인 자가 정말 나인지, 아니면 나를 도구로 삼은 자인지."

손이 흔들렸다. 도환의 손이었다. 20년을 검을 묻고 살았던 손이, 지금 명진을 끌어올리려 하고 있었다. 명진은 그 손을 잡았다. 일어섰다.

"알겠습니다."

목소리가 다시 나왔다. 이번에는 다른 톤이었다.

"제 아버지는 무림맹의 장로였습니다."

도환의 눈이 움직였다. 현목이 뒤에서 숨을 죽였다.

"20년 전 그날, 아버지는 제 앞에서 쓰러졌습니다. 스승님의 천혼검법이 아버지를 베었습니다."

명진의 목소리는 담담해졌다. 하지만 그 담담함 속에는 깊은 상처가 숨어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죽기 직전, 마지막 말씀이 있었습니다."

명진의 눈이 멀어졌다. 20년 전 그 밤으로 돌아가는 듯했다.

---

*아버지의 얼굴이 창백해지고 있었다. 명진은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따뜻하던 손이 차가워지고 있었다.*

*"아버지..."*

*명진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 목소리를 들은 아버지가 눈을 떴다. 아들의 얼굴을 바라봤다. 입술이 움직였다.*

*"누군가가... 나를 배신했다."*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진은 몰랐다. 아버지의 손이 명진의 팔을 잡았다. 마지막 힘을 모아서.*

*"진범을... 찾아라. 도환만이... 아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아버지의 손이 떨어졌다.*

---

백운이 한 걸음 다가섰다. 도환은 움직이지 않았다. 명진의 눈을 바라봤다.

"'누군가가 나를 배신했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적막이 흘렀다. 밤바람이 적월교의 탑 주변을 스쳤다. 그 탑에서 나오던 붉은 불빛이 아직도 타오르고 있었다.

"아버지가 누구를 말씀하셨는지 저는 몰랐습니다. 20년을 복수만 생각했으니까요. 스승님을 죽이는 것만 생각했으니까요."

명진의 목소리가 떨렸다. 자신이 20년을 잘못 살아왔다는 깨달음이 그 떨림 속에 담겨 있었다.

"하지만 지금... 아버지의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것 같습니다."

명진이 도환을 향해 천천히 말했다.

"스승님의 손이 제 아버지를 베었습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손을 움직인 것이 당신이었는지, 누군가 다른 자였는지... 저는 알고 싶습니다."

도환의 얼굴이 흔들렸다. 명진이 계속했다.

"제 아버지의 마지막 말씀을 생각해봤습니다. '누군가가 나를 배신했다.' 그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요."

현목이 한 발 물러섰다. 명진의 말이 현목을 향했다. 현목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의 입술이 움직였지만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혹시... 당신이 아시나요?"

명진의 목소리가 더 낮아졌다.

"무림맹에서 무엇이 일어났는지. 스승님이 왜 검을 들었는지."

현목은 입을 열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침묵이 대답이었다. 그리고 그 침묵 속에는 무언가 더 있었다. 현목의 눈빛이 흔들렸다. 마치 자신이 알고 있는 무언가가 도환을 구원할 것인지, 아니면 더 깊은 절망으로 밀어 넣을 것인지 모르는 자의 눈빛처럼.

"제 복수는 끝났습니다."

명진이 무릎을 꿇었다. 다시 한 번. 이번엔 도환 앞에서.

"스승님, 저를 용서해 주시겠습니까?"

도환이 명진을 일으켜 세웠다. 손을 잡고 끌어올렸다. 명진의 눈이 도환의 얼굴을 바라봤다.

"나는 용서받을 자가 아니다."

도환의 목소리가 나왔다. 그 목소리 속에 있는 것은 무엇인가. 명진은 그것을 들었다. 자기기만이 아닌, 진정한 절망. 그리고 그 절망 속에 숨겨진 죄책감이 아닌 다른 무언가. 의심. 자신이 정말 죄인인지에 대한 의심.

"너의 가족을 죽인 것은 이 손이다."

도환이 자신의 손을 펼쳤다. 그 손은 떨리고 있었다.

"이 손이 베어낸 검이 너의 아버지를 죽였다. 그것은 사실이다."

현목이 움직였다. 도환에게 뭔가 말을 하려는 듯했다. 하지만 도환은 손을 들어 그를 제지했다.

"하지만 누가 이 손을 움직이게 했는가. 그것이 문제다."

밤이 깊었다. 적월교의 탑에서 나오던 불빛이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다. 그 불빛 아래서 도환은 명진을 바라봤다.

"함께 가자. 소림파로. 서운을 찾자. 그곳에서 진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명진이 대답했다. 그 대답 속에는 단순한 동의 이상의 무언가가 있었다. 20년의 증오를 내려놓고, 자신의 스승을 따르기로 한 결단이 담겨 있었다.

---

적월교를 떠나는 길이었다. 네 사람이 말을 타고 중원으로 향하고 있었다. 도환, 현목, 백운, 그리고 명진. 밤하늘이 그들 위에 펼쳐져 있었다.

도환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다시 한 번. 천혼검법을 사용한 후로 계속 떨렸다. 자신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도환."

혼잣말이었다.

"나는 도환이다."

백운이 도환을 바라봤다. 현목도 마찬가지였다. 명진은 그 말을 듣고 눈을 감았다.

"도환."

또 한 번.

"나는 도환이다."

그 목소리는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다. 마치 자신에게 묻는 것처럼. 자신에게 확인하려는 것처럼.

백운이 말했다.

"스승님이 누구신지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도환은 백운을 바라봤다. 그 눈이 초점이 맞지 않아 보였다.

"당신은 도환입니다. 천혼검법을 쓰는 최고의 검객입니다."

"그런가."

도환의 대답이 나왔다. 하지만 그 대답 속에 확신이 없었다. 현목과 명진이 마주봤다. 같은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중원으로 향하는 길은 길었다. 밤은 깊었다. 그리고 그 밤 속에서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었다.

"도환을 죽여라!"

외침이 들렸다. 검은 옷을 입은 자들이 갑자기 나타났다. 귀영의 부하들이었다. 적어도 열 명 이상. 그들의 동작은 조직적이었다. 적월교에서 즉시 추격을 나온 것이 분명했다. 귀영은 도환을 놓칠 생각이 없었다.

말에서 뛰어내린 도환이 검을 들었다. 현목과 명진도 검을 빼냈다.

첫 번째 교전이 시작되었다. 도환의 검이 날았다. 기억이 흔들렸다.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근육이 기억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하지만 정신은 공백이었다. 누가 자신의 손을 움직이고 있는가. 누가 자신의 검을 휘두르고 있는가. 도환은 알 수 없었다.

명진이 옆에서 도환을 지켰다. 현목도 마찬가지였다. 도환의 검이 휘두르는 궤적 안으로 들어오는 적들을 막았다. 백운은 몸을 날려 귀영의 부하 중 한 명을 제압했다.

그 순간이었다.

하늘에서 검이 날아왔다.

붉은 빛을 내며 떨어지는 검. 그것은 도환이 천혼검법으로 베어낸 것처럼 보였다. 정확한 궤적, 날카로운 칼날. 귀영의 부하들이 일제히 쓰러졌다. 그들의 몸을 꿰뚫고 지나가는 검. 절단신공. 한 검으로 여러 명을 동시에 베어내는 기법. 그것은 도환이 알던 검이었다.

"나는 서운이다."

목소리가 들렸다. 밤하늘 위에서. 중원 소림파의 승려복을 입은 인물이 나타났다. 그 손에는 검이 있었다.

"스승님을 지키겠습니다."

서운이 말했다. 도환을 향해. 20년 전 자신의 제자가 밤하늘 아래에서 나타났다.

그 순간, 도환의 눈이 흔들렸다. 서운. 그 이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얼굴이 무엇을 상징하는지. 도환은 알 수 없었다. 기억의 조각이 산산조각나고 있었다.

"나는 누구인가."

중얼거림이 흘렀다.

서운의 검이 다시 날았다. 밤하늘을 가르는 붉은 궤적. 귀영의 부하 셋이 동시에 몸을 날렸다. 절단신공이 또 한 번 발동했다. 검은 옷 자들의 대형이 흐트러졌다. 그들은 더 이상 조직적인 공격을 유지할 수 없었다. 서운 혼자의 검이 열 명을 압도했다.

"후퇴하라!"

귀영의 부하 중 가장 나이 많은 자가 외쳤다. 남은 자들이 서로를 돕고 일어나 밤의 숲으로 사라졌다. 그들의 발소리가 멀어졌다. 적월교 탑의 불빛도 이제 보이지 않았다.

침묵이 내려앉았다.

서운이 천천히 내려왔다. 검을 집어들고. 그 손가락이 떨리고 있었다. 20년 만에 강호에서 검을 사용한 손이었다.

도환은 서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 눈이 초점을 맞추지 못했다. 서운이 누구인지 알아야 했다. 알아야 했는데, 그 얼굴이 자꾸만 흐릿해졌다. 마치 물 위에 떠 있는 그림자처럼. 손을 뻗으면 사라질 그림자처럼.

"스승님."

서운이 한 발 더 가까워졌다.

"저를 아시나요?"

도환이 입을 열었다. 그 입에서 나오는 목소리는 자신의 것이 아닌 것처럼 들렸다.

"너는... 누구인가."

"저는 서운입니다. 당신의 제자입니다."

서운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그것을 들은 현목이 한 발 물러섰다. 명진은 도환을 바라봤다. 백운은 도환의 손을 잡으려 했다.

도환이 그 손을 피했다.

"제자... 라는 말이 무엇인가."

"스승님의 제자입니다. 당신이 산골에서 나를 가르쳤습니다."

도환의 입술이 움직였다. 마치 그 말을 따라 하려는 것처럼.

"산골?"

도환의 목소리가 더 작아졌다. 마치 자신에게 묻는 것처럼. 마치 자신의 목소리가 아닌 것처럼.

"나는 산골에 있었나."

서운이 한 걸음 더 가까워졌다. 이번엔 아무도 막지 않았다.

"네. 암자에서. 20년 동안."

도환의 몸이 흔들렸다. 암자. 그 단어가 무언가를 건드렸다. 깊은 기억의 층에 있는 무언가를.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마치 안개 속에서 무언가를 보려고 하는 것처럼. 안개가 걷혀도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는 것처럼.

"20년... 암자..."

도환의 입술이 움직였다. 그 입술이 소리를 내려 했으나, 나오는 것은 음절 없는 숨소리뿐이었다.

명진이 현목을 바라봤다. 현목의 얼굴이 창백했다. 백운은 도환의 곁에 더 가까이 섰다. 마치 도환이 무너지기라도 할까 봐.

서운이 도환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스승님. 저입니다. 서운입니다."

도환이 서운을 바라봤다. 그 눈이 서서히 초점을 맺었다. 무엇인가 떠오르는 것처럼. 깊은 물 속에서 떠오르는 무언가처럼. 하지만 수면에 도달하기 전에 다시 가라앉았다.

"나는... 누구인가."

또 그 말이었다. 서운의 손이 도환의 어깨를 더 깊게 눌렀다. 마치 도환을 물 위로 끌어올리려는 것처럼. 하지만 도환은 계속 가라앉고 있었다.

"당신은 도환입니다."

서운의 목소리가 간절했다.

"천혼검법의 사용자 도환입니다. 강호에서 가장 날카로운 검객입니다."

"그런... 가."

도환의 손이 떨렸다. 검을 들고 있던 손이 떨렸다. 마치 처음 검을 들어본 어린 아이의 손처럼. 도환의 검이 흙 위에 떨어졌다. 손가락이 펼쳐졌다. 마치 자신의 정체를 놓아주는 것처럼.

현목이 움직였다. 도환의 팔을 잡았다.

"도환. 나다. 현목이다. 당신의 제자 현목이다."

도환이 현목을 바라봤다. 현목의 얼굴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도환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얼굴에 있는 두려움은 읽을 수 있었다. 그것만은 분명했다. 현목이 도환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아니, 도환을 잃어가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나를... 두려워하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현목이 거짓말을 했다. 그 거짓말 속에는 진실이 담겨 있었다. 현목이 두려워하는 것은 도환이 아니었다. 도환을 잃어가는 것이었다. 자신의 스승이 자신의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것이었다.

명진이 앞으로 나섰다. 도환의 눈을 맞췄다.

"스승님. 저는 명진입니다. 당신이 아버지를 죽인 사람의 아들입니다."

도환이 명진을 바라봤다. 그 눈에 인식이 없었다.

"너를... 죽여야 하나."

"그렇지 않습니다."

명진이 대답했다.

"당신은 저를 죽이지 않으셨습니다. 저를 살려주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살려주고 있습니다."

"살려주었나... 나는."

도환이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그 손을 들었다. 떨리는 손이 자신의 것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 손이 무엇을 했는지도 알 수 없었다. 무엇을 베어낼 것인지도 모르는 손. 도환은 그 손을 천천히 내렸다.

백운이 도환의 곁에 섰다.

"스승님. 우리가 있습니다. 우리가 당신을 기억합니다."

도환이 백운을 바라봤다.

"넌... 누구인가."

"저는 백운입니다. 당신이 산에서 만난 사람입니다."

"산에서... 만났나."

도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누군가 말해주는 것을 따라 하는 것처럼. 자신의 기억을 누군가에게 빌려주는 것처럼.

서운이 도환의 손을 다시 잡았다. 그 손이 떨리고 있었다. 도환의 손도 떨리고 있었다. 두 손이 함께 떨렸다.

"스승님. 저를 따라오세요. 소림파로 가면 당신이 기억할 것입니다."

"소림파... 라는 것이... 무엇인가."

"중원의 파입니다. 그곳에 당신의 기억이 있습니다. 그곳에 당신이 반드시 만나야 할 사람이 있습니다."

서운의 말에 현목이 몸을 굳혔다. 명진도 서운을 바라봤다. 그 말이 단순한 위로가 아니었다. 서운은 소림파에서 무언가를 알고 있었다. 도환이 기억해야 할 무언가. 그것이 도환을 구원할 것인지, 아니면 더 깊은 절망으로 밀어 넣을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도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운의 손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마치 어린 아이처럼. 자신의 손가락을 어른의 손에 맡기는 어린 아이처럼.

현목이 명진을 바라봤다. 명진도 현목을 바라봤다. 두 사람의 눈이 만났을 때, 같은 공포가 그들을 지배했다.

도환이 자신을 잃고 있었다.

검을 휘두를 때마다 자신의 정체가 흩어지고 있었다. 천혼검법의 대가는 이것이었다. 검이 베어낼 때마다 사용자의 기억도 함께 베어져 나가는 것. 그리고 그 기억들이 다시 돌아올 때는 이미 자신이 누구인지도 알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

그렇다면 소림파에서 무엇이 그를 깨워줄 것인가. 누가 그를 기억하게 해줄 것인가.

현목은 알고 있었다. 그 답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입을 열지 않았다. 그것이 도환을 구원할 것인지 절망으로 밀어 넣을 것인지 모르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을 말하는 순간, 도환이 완전히 자신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에.

백운이 따라 걸었다. 서운이 도환의 손을 잡고 가는 뒤를 따라. 길은 어둠 속으로 계속되었다.

도환이 중얼거렸다. 자신의 이름을 반복했다.

"도환... 나는 도환이다... 도환..."

그 목소리는 점점 희미해졌다. 마치 자신에게 확인하려는 것처럼. 마치 자신을 잃어가면서도 자신의 이름만은 붙잡으려는 것처럼.

서운의 손이 도환의 손을 더 깊게 잡았다. 하지만 그 손도 떨리고 있었다. 자신의 스승을 잃어가는 것을 보면서 떨리고 있었다.

"네. 스승님은 도환입니다."

서운의 목소리도 흔들렸다.

"당신은 도환입니다. 반드시."

숲을 빠져나갔다. 길이 나타났다. 중원으로 향하는 길. 소림파로 향하는 길. 도환이 걸었다.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걸었다. 자신의 이름을 중얼거리면서 걸었다.

"도환... 나는 도환이다... 도환..."

그리고 그 뒤를 따라 네 사람이 걸었다. 한 사람의 정체성을 지키려고. 한 사람의 기억을 붙잡으려고. 하지만 이미 그들의 손가락 사이로 그 기억들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밤이 깊어지면서 도환의 목소리는 더 작아졌다.

"도환... 도환..."

그 이름마저도 반복해야만 존재할 수 있게 되었다.

---

소림파까지는 아직 이틀의 거리가 있었다. 그 이틀 동안 도환이 완전히 자신을 잃을 수도 있었다. 아니면, 소림파에서 무언가가 그를 기억하게 해줄 수도 있었다.

현목은 무언가를 알고 있었다. 소림파에서 도환을 기억하게 해줄 무언가를. 그것은 한 사람이었을 수도 있었고, 한 사건이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도환을 구원할 것인지, 아니면 더 깊은 절망으로 밀어 넣을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것을 말할 수 없었다.

현목이 명진에게 물었다.

"너는 왜 그를 도우려 하는가."

"당신도 도우려 하고 있지 않습니까."

"다르다. 나는 죄책감 때문이다."

명진이 대답했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 때문인가요."

현목이 대답하지 않았다. 명진의 말이 맞았다. 하지만 그것도 전부가 아니었다. 명진은 자신의 복수를 버렸다. 20년의 증오를 내려놓았다. 그것은 단순한 동정이나 의무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명진이 도환을 따르기로 한 것은, 자신이 찾던 진실이 도환과 함께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아니면 그보다 더 깊은 무언가. 현목은 그것을 알고 싶었지만, 물을 수 없었다.

길 위에서 도환이 다시 멈췄다.

"나는... 누구인가."

서운이 도환의 손을 더 깊게 잡았다.

"스승님은 도환입니다."

"그런가... 도환... 나는... 도환이다..."

도환의 목소리가 희미해졌다. 마치 자신의 이름이 자신을 붙잡는 유일한 줄인 것처럼.

그들은 걸었다. 밤이 깊어질수록, 도환이라는 이름이 자꾸만 흐릿해지는 밤을 통과해서. 도환의 발걸음은 점점 더뎌졌다. 마치 자신의 정체를 찾으러 가는 길이 아니라, 자신을 완전히 버리러 가는 길인 것처럼.

소림파까지 이틀.

그 이틀 동안 무엇이 일어날 것인가.

도환이 완전히 자신을 잃을 것인가. 아니면 소림파에서 무언가가 그를 다시 깨워줄 것인가.

현목이 알고 있는 그것은 무엇인가. 도환의 정체인가. 소림파의 비밀인가. 아니면 또 다른 진범인가.

밤하늘이 그들 위에 펼쳐져 있었다. 별들이 떨어지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하늘을 붙잡고 있었다.

마치 도환이 자신을 붙잡으려 하는 것처럼.

"도환... 나는 도환이다..."

그 중얼거림은 계속되었다. 더 작아지면서도 계속되었다. 마치 자신의 이름을 외칠 때마다 자신이 한 뼘씩 멀어지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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