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4화

비가 그쳤다. 하지만 습기는 남아 있었다.

도환은 천검문 객사의 방 안에서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성 위의 기와들이 빛을 반사했다. 20년 전 기억이 흐릿해졌지만, 이 성의 형태는 변하지 않았다. 현목이 맹주가 되었을 때도, 이 성은 같은 모습으로 서 있었을 것이다.

문이 열렸다. 현목이었다.

제자는 스승을 보자마자 무릎을 꿇으려 했다. 도환이 손을 들어 막았다.

"앉아."

현목은 앉았다. 하지만 몸을 굽혔다. 이십 년이 흘렀는데도, 그 자세는 여전했다. 스승 앞에서의 제자의 자세. 그런데 그 굽은 등 위에는 천검문 맹주의 무게가 올려져 있었다.

"내 검을 쓰지 않고도 그 자리에 앉을 수 있었는가, 현목아."

침묵이 내려앉았다. 객사의 방 안에 두 사람, 그리고 그 사이의 침묵. 도환은 창밖을 보고 있었고, 현목은 바닥을 보고 있었다.

한참 뒤, 현목이 고개를 들었다. 눈이 젖어 있었다. 눈물이 아니었다. 아직은. 하지만 눈물이 될 준비가 되어 있는 눈이었다.

"저는 스승님이 진짜 역적이라고 믿고 싶었습니다."

목소리가 떨렸다.

"그렇게 믿으면 제 배신이 정당화될 테니까요. 하지만 스승님이 돌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제 그 거짓이 무너질 것을 압니다."

도환이 천천히 움직였다. 현목 앞에 앉았다. 두 사람의 눈이 만났다.

"네가 죄인이 아니라면, 나는 누구인가."

현목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도환의 손이 현목의 손을 잡았다. 그 순간, 제자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첫 방울이 볼을 적시고, 그 다음이 뒤따랐다. 현목은 울지 않았다. 울음도 없이, 침묵 속에서 눈물만 흘렀다.

도환은 손을 놓지 않았다.

"스승님, 제발. 진실을 캐내지 마세요."

"왜."

"왜냐하면 진실이 나오면, 우리 모두가 죽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도환이 현목의 손을 더 강하게 잡았다. 하지만 그것은 위협이 아니었다. 그것은 확인이었다. 스승이 제자의 손을 통해 강호의 무게를 느끼려는 것이었다.

"누구의 명령을 받았는가."

현목이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그리고 다시 열었다. 하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도환이 한 발 더 가까이 섰다.

"20년 전, 누군가 내 죄를 뒤집어썼다는 말인가."

"스승님, 제발..."

"그 사람의 이름이 무엇인가."

도환의 목소리는 변하지 않았다. 담담했다. 하지만 그 담담함 속에는 모든 것을 태워버릴 불이 숨어 있었다.

현목이 무릎을 꿇었다. 갑작스러운 움직임이었다.

"저는 모릅니다."

"거짓이다."

"아닙니다. 스승님, 저는 정말 모릅니다. 그것이 누구인지, 왜 그곳에 있었는지, 모든 것이 저에게는 비밀이었습니다."

현목이 고개를 들었다. 그 눈에는 절망이 있었다.

"저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누군가로부터. 스승님이 그곳에 가지 않도록. 그 유골을 보지 않도록. 그것이 누구인지 알지 않도록."

도환의 눈이 좁혀졌다. 유골. 그 단어가 공기를 가르고 지나갔다.

"암자로 돌아간다."

"스승님?"

"내가 검을 묻은 자리 옆에 무엇이 있는가."

현목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스승님, 그것은..."

"누구의 뼈인가."

현목이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그 입술은 파르르 떨렸다. 도환이 제자의 양어깨를 잡았다.

"누구의 명령인가."

"저는..."

그 순간, 화살이 날아왔다.

도환의 손이 움직였다. 검을 들 여유도 없이, 맨손으로 화살을 집었다. 화살의 속도를 감지해 손가락 사이로 끼워 멈춘 것이었다. 화살촉이 손가락 사이에서 떨렸다.

다섯 개의 화살이 더 날아왔다.

도환이 현목을 밀었다. 백운도 함께 피했다. 세 번째 화살이 도환의 어깨를 스쳤다. 피가 흘렀다.

그 순간, 말 위의 인물이 나타났다.

검은 옷을 입은 인물. 검을 들고 있었다. 그 검은 도환을 향했다.

"도환!"

그 목소리는 낮고 어두웠다.

"나는 너의 검이 부쉈던 가정의 후손이다!"

그 인물이 말을 몰아 도환에게 달려왔다. 검은 호를 그으며 내려쳤다.

도환이 손을 들어 칼날을 받았다.

"명진인가."

"그 이름으로 부르지 마!"

명진의 검이 더 빠르게 내려쳤다. 도환은 그것을 맞받았다. 그리고 느꼈다.

검의 떨림.

기운의 불안정성. 칼날이 도환의 손 위에서 미세하게 흔들렸다. 20년의 복수심이 담겼어야 할 그 검 안에는 확실함이 없었다. 마치 누군가가 명진의 팔을 조종하고 있는 것처럼. 진정한 복수자의 눈빛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쫓기고 조종당하는 자의 눈빛이었다.

"나는 진짜 역적이 아니다."

"거짓이다!"

명진의 검이 더 거세졌다. 하지만 그 기운 속의 불안정함은 더 짙어졌다. 도환은 그 떨림 속에서 망설임을 읽었다. 이 자도 피해자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 순간, 또 다른 검이 날아왔다. 현목의 천검이었다. 명진의 등 뒤로 뻗어 나갔다. 명진이 몸을 날려 피했다.

"명진, 스승님의 말을 들어라!"

"제자라고 부르지 마! 나는 이미 죽었다. 내 가족과 함께!"

명진이 말을 돌려 도망쳤다. 그 도망침은 죽음이 아니라 도피였다. 누군가에게서 도피하는 것처럼 보였다.

도환의 눈이 하늘을 향했다.

산 위에, 또 다른 인물이 서 있었다. 검은 옷. 정체불명의 얼굴. 그 인물은 도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천천히 손을 들었다.

도환의 몸이 경직되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신호였다. 이 모든 것이 처음부터 계획되었다는 뜻이었다.

도환의 머리 속에서 기억이 폭발했다. 20년 전의 그 목소리. 그 인물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들렸다. 어제 일인 것처럼.

"도환이여, 검을 들어라. 정의를 위해."

그 목소리. 그 말. 자신을 검으로 만든 그 목소리의 주인이 저 산 위에 있었다.

도환의 손이 떨렸다. 두려움이 아니었다.

분노였다.

자신의 검이 누군가의 도구로 쓰였다는 것을 깨닫는 분노. 자신이 도구였다는 확신. 그 분노가 손을 통해 흘러나왔다. 손가락이 경직되고, 손바닥이 열렸다가 다시 움켜졌다. 호흡이 가빠졌다.

"현목, 저것이 누구인가."

현목이 검을 내렸다. 그 순간, 현목의 얼굴이 더 창백해졌다.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귀검단입니다."

도환이 산을 올려다봤다. 하지만 그 인물은 이미 사라지고 있었다. 검은 옷자락만 바람에 흔들렸다.

도환이 무릎을 꿇었다. 현목이 스승을 붙잡으려 했지만, 도환은 이미 무릎을 꿇은 상태였다.

"내 검이 무엇을 베어냈는가."

그 물음은 더 이상 질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절규였다.

백운이 도환의 옆에 앉았다. 그 여인의 눈에는 두려움이 있었다. 도환의 분노를 목격한 두려움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의 손을 잡았다. 말없이. 그 손길은 흔들리지 않았다.

도환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 눈에는 이제 확실함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희망의 확실함이 아니었다. 복수의 확실함이었다.

"남방으로 간다."

"스승님..."

"적월을 만난다."

도환이 일어났다. 그의 검은 이미 손에 있었다. 언제 들었는지도 알 수 없이. 그 검은 햇빛을 반사했다.

자신이 도구였다는 깨달음. 귀검단이 진범이라는 확신. 그 순간, 검이 울음을 내기 시작했다. 낮고 긴 울음. 20년을 기다린 검의 울음이었다.

도환은 검을 들고 남방으로 향했다. 현목과 백운이 뒤따랐다.

그들을 뒤따르는 것들이 있었다. 검은 옷의 인물들. 귀검단의 암살자들. 그리고 멀리서 도망치는 명진의 뒷모습.

암자의 유골. 현목이 받은 명령. 귀검단의 추격.

모든 것이 한 점으로 수렴했다.

도환의 검이 남방을 향해 울음을 내고 있었다.

다음 화 계속 보기 →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