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다섯 번째 기억이 돌아올 때, 신경통은 그 어느 때보다 가혹했다.

머리를 쥔다. 양손으로 관자놀이를 누르고 이를 악물어 침대의 고무 난간을 움켜쥔다. 손가락이 하얀색으로 변할 정도로. 기억은 물처럼 흘러들어왔다—밤 11시 56분, 강남역 인근의 어두운 술집. 노래방 기계에서 나오는 소음. 테이블 위의 맥주잔과 소주잔.

그리고 자신.

자신이 한 남자의 목깃을 움켜쥔다. 남자는 50대쯤. 얼굴이 창백하다. 공포에 젖어 있다.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목소리가 들린다. 낮고, 차갑고, 확신에 찬 음성.

"이 달이 끝나기 전에 3천만 원을 가져와. 아니면 너한테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손가락이 남자의 목을 더 조인다. 남자의 얼굴이 빨개진다. 숨을 쉬지 못한다. 자신의 다른 손이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낸다. 칼의 손잡이. 칼날이 남자의 뺨 옆에서 반짝인다. 아주 천천히, 의도적으로, 칼날이 피부를 스친다. 한 줄기 선혈이 흐른다.

"혹시 내 말을 안 들으면 어떻게 될지 궁금해?"

신경통이 정점에 이른다.

이준호는 비명을 질렀다. 입에서 피가 흐른다. 혀를 깨물었을 것이다. 천장이 회전한다. 침대의 시트가 땀으로 흠뻑 젖어 있다. 몸을 일으키려다 다시 누워 버린다. 심박 모니터가 울부짖는다. 간호사의 발걸음 소리. 의사의 목소리. 주사바늘.

"이상하네요. 회복 속도가..."

"약을 주세요. 더 강한 약을."

검은 천이 눈을 덮는다.

---

의식이 돌아온 것은 오후 2시 47분.

병실의 시계를 본 것은 무의식적 행동이었다. 지난 기억들처럼, 이 기억도 정확한 시간을 남겼다. 6시간 51분. 다섯 번째 기억이 온 것은 첫 번째 기억 이후 정확히 48시간이 아니라 36시간이었다.

이준호는 서준영 의사를 찾았다. 회복 주기가 변한 이유를 물었다. 의사의 얼굴은 진지했다.

"신경학적으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만... 뇌의 신경가소성이 예상보다 빠르게 작동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기억 복원의 주기가 단축되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전엔 48시간 간격이었는데, 이제는 36시간으로 줄어들었습니다."

이준호의 손가락이 떨렸다. 기억 속의 손은 칼을 쥐고 있었고, 그 손은 피를 본 손이었다. 36시간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다음 기억은 언제 올 것인가. 그 기억 속에는 무엇이 있을 것인가. 박민지의 죽음인가. 아니면 자신의 죄인가.

"다음 기억은?"

"현재 추세라면 24시간 내에 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공포가 이준호의 목을 조였다. 24시간. 하루. 그 안에 모든 것이 명확해질 것이다. 기억이 돌아오면 자신이 한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은 무엇인가. 자수인가. 죽음인가. 아니면 계속된 거짓인가.

"혹시 기억이 더 돌아오면 기록해두세요. 더 자세하게. 시간, 장소, 사람, 감정까지."

의사의 말이 들렸지만 이준호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손가락을 펼쳤다 쥐었다. 손은 떨리고 있었다.

퇴원 수속은 신속했다. 의료진도 이제 이준호를 더 이상 붙잡을 이유가 없었다. 기억 복원 현상은 의학으로 설명 불가능했고, 신경통은 약물로도 조절 불가능했다. 남은 것은 관찰뿐이었다.

도곡동 집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4시 15분이었다.

수진이 거실에 앉아 있었다. 짐이 반쯤 싸여 있었다. 검은색 캐리어 두 개. 여행용 가방 하나. 화장품과 옷이 흩어져 있었다. 그녀는 이준호를 보고도 일어나지 않았다. 앉은 채로 그를 바라봤다. 그 눈빛이 5화의 끝과 같았다. 결단의 눈빛.

"이 사람이 누구야?"

이준호가 먼저 물었다. 기억 속에서 본 남자. 50대, 술집, 협박, 피. 그 남자가 누구인지 알아야 했다.

수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20초. 30초. 1분. 침묵이 거실을 채웠다. 에어컨의 바람음만 들렸다. 이것은 거실이 아니라 심문실이었다. 이준호 자신이 30년 동안 만들어온 그런 심문실. 침묵의 무게를 이용해 상대방을 옭아매는 기술. 하지만 지금 침묵을 만드는 것은 이준호가 아니었다.

"박민지의 아버지야."

수진이 갑자기 말했다. 마치 침묵을 더 이상 견딜 수 없다는 듯이.

단어들이 공중에서 멈췄다. 마치 얼음처럼 굳어버렸다. 박민지의 아버지. 미해결 사건의 피해자의 아버지. 그런데 자신의 기억 속에서 그 남자는 살아 있었다. 5년 전의 기억이 아니라, 최근의 기억. 기억 속의 남자는 나이가 들어 있었다. 살아 있었다.

"박민지가 5년 전에 사라졌어. 그리고 3개월 전에 발견됐어."

수진이 신문 기사와 경찰 기록을 펼쳤다. 사진 속의 여자. 젊은 여자. 20대 중반.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여자가 박민지였다.

"그 사이에 어디 있었어?"

"아무도 몰라. 하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계속 당신을 찾고 있었어. 당신이 그녀를 죽였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이준호의 손이 차가워졌다. 기억 속의 손은 칼을 쥐고 있었고, 그 손은 피를 본 손이었다. 그런데 지금 자신의 손은 깨끗했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기억이 거짓이라는 뜻인가. 아니면 기억이 조작되었다는 뜻인가.

"당신과 박민지는 대학 친구였어."

수진이 말을 이었다. 마치 이준호의 질문을 미리 알고 있었던 듯이.

"미술 전공. 나랑 같은 과였어. 우리는 정말 가까웠어. 그 애가 경찰청 비리를 봤어. 고문, 증거 조작, 돈... 모든 것. 그 애가 신고하려고 했어. 나한테 물었어. '이걸 신고해야 할까?'라고. 두렵다고."

수진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 때 당신은 아무것도 하지 말았어. 당신은 침묵했어. 그리고 그 침묵이... 그 침묵이 그 애를 죽였어."

이준호는 소파에 무너졌다. 수진이 계속 말했다.

"당신이 그 일을 했다면, 나도 책임이 있어. 내가 당신을 말렸어야 했는데, 나는 침묵했어. 내 침묵이 그녀를 죽였어."

이준호는 무언가가 부러지는 소리를 들었다. 그것이 자신의 마음이었는지, 아니면 자신의 정체성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분명히 무언가가 부러지고 있었다.

침묵이 다시 거실을 채웠다. 이번엔 다른 침묵이었다. 심문실의 침묵이 아니라, 공범자들 사이의 침묵이었다.

"당신이 그 사람에게 돈을 요구했어?"

"응."

"왜?"

"모르겠어. 기억이 없으니까."

수진이 고개를 돌렸다. 이제 그녀가 이준호를 바라봤다. 그 눈빛은 5화에서의 눈빛과 같았다. 아니, 더 깊어졌다. 관찰의 눈빛이 아니라, 절망의 눈빛이었다.

"당신과 나는 더 이상 남편과 아내가 아닐 수도 있어.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함께 있어."

이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말이 없었다. 알겠다고 말해야 하나. 미안하다고 말해야 하나. 그 어떤 말도 이 순간을 채울 수 없었다.

수진이 천천히 일어났다. 캐리어를 들었다. 짐을 정리했다. 침실로 들어갔다.

휴대폰이 울렸다.

이준호의 휴대폰이 아니라 수진의 휴대폰이었다. 화면에 번호가 떴다. 경찰청 번호. 서울중앙경찰청. 수진이 전화를 받지 않았다. 벨소리가 계속 울렸다. 이준호가 일어나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화면을 봤다. 그리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형사님. 정현택 형사입니다."

정현택의 목소리가 거친 숨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뛰고 있었을 것이다.

"조금 전에 검찰에 추가 고발장을 제출했습니다. 당신과 이수영 상관, 그리고 경찰청 내 비리 조직에 대한 겁니다."

이준호의 귀가 곤두섰다. 수진이 침실 문을 열고 나왔다. 그들의 눈이 마주쳤다.

"더 이상 당신만 고발할 수는 없었습니다. 당신도 피해자일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조직의 피해자.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신의 죄가 없어지는 건 아닙니다. 죄와 피해는 별개입니다."

이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검찰이 당신을 소환할 겁니다. 아마 내일 아침. 당신이 해야 할 일은 모든 기억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입니다. 거짓 기억이든 진짜 기억이든. 그 기억들이 당신을 변호할 유일한 증거가 될 거니까요."

전화가 끊겼다.

이준호는 수진을 바라봤다. 수진은 여전히 짐을 들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공포가 아니라 어떤 다른 감정이 떠 있었다.

"우리 아이를 낳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어."

수진이 중얼거렸다. 문장이 완성되었다. 그 말은 자신을 향한 것이었다.

"당신 같은 사람의 아이가 이 세상에 태어나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 우리는 15년을 함께했는데, 나는 그동안 당신이 누구인지 몰랐어. 아니, 알고 싶지 않았어. 모르는 게 편했어."

수진의 목소리가 떨렸다. 하지만 눈물은 흐르지 않았다.

"이제는 다 알았어. 당신이 뭐하는 사람인지. 당신이 누구인지. 그리고 나도 당신과 같은 사람이라는 걸."

이준호는 움직였다. 수진의 손에서 짐을 들었다. 천천히. 의도적으로. 침실로 옮겼다. 그것은 떠남의 짐이 아니었다. 남음의 짐이었다.

돌아온 이준호는 수진을 바라봤다. 손을 내밀지 않았다. 손을 잡지 않아도, 그들은 이미 같은 죄 아래에 있었다. 같은 침묵 아래에 있었다.

"내일 아침이면 검찰에 간다."

이준호가 말했다.

"알아."

수진이 대답했다.

"기억을 기록해야 한다. 모든 기억을."

이준호는 침실로 들어갔다. 책상에 앉았다. 노트북을 켰다. 문서를 열었다. 손가락을 키보드 위에 올렸다. 기억 속의 그 남자. 50대, 술집, 협박, 피. 그 남자의 이름이 무엇인지 이제 알아야 했다. 그 남자를 협박한 이유가 무엇인지 알아야 했다.

손가락이 움직였다. 글자가 화면에 나타났다.

다섯 번째 기억. 밤 11시 56분. 강남역 인근의 술집...

기억이 흐릿해진다. 화면에 타이핑한 글자와 뇌 속의 기억이 맞지 않는다. 기억 속에서 자신이 말한 대사가 다르게 들린다. 협박의 이유가 모호해진다. 그 남자의 얼굴이 자꾸만 변한다.

이준호는 손을 멈췄다. 화면을 바라봤다. 무엇이 진실인가. 기억인가. 아니면 기록인가.

그 순간, 신경통이 다시 찾아온다. 약한 신경통. 마치 경고처럼. 다음 기억이 준비되고 있다는 신호처럼. 이준호는 손을 다시 키보드 위에 올렸다. 시간이 없었다. 24시간 이내에 모든 것이 명확해질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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