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네 번째 기억이 돌아올 때, 이준호는 침대에서 떨어질 뻔했다.

신경통이 척추를 타고 내려오면서 몸이 경직되었다. 심박 모니터가 울었다. 간호사들이 들어왔다 나갔다. 주사가 들어갔다. 그리고 어둠.

형사실. 오후 3시쯤이었다. 창밖으로 강남역 일대가 내려다보인다. 상관 이수영이 책상 위에 파일을 펼쳐 놓고 있었다. 그 파일들 위에는 얼굴 사진들이 붙어 있었다. 시체 사진들도 있었다.

"이 사건은 빨리 종결되어야 한다."

이수영의 목소리가 차갑다. 기억 속 이준호는 상관의 얼굴을 봤다. 50대 중반, 회색 수염, 진회색 정장. 그의 눈빛은 온기가 없었다.

"너도 이해하겠지."

이수영이 파일을 앞으로 밀어 넘겼다. 기억 속 이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입을 열지 않았다. 그냥 끄덕였다.

"좋아. 그럼 이 쪽은 자네가 마무리하고."

이수영이 손가락으로 하나의 파일을 집었다. 그 파일의 표지에는 '박민지 사건'이라고 적혀 있었다.

기억은 그곳에서 끝났다.

이준호가 눈을 떴을 때 병실의 천장이 보였다. 오전 10시 40분. 신경통은 이미 물러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손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그날 오후, 정현택이 병실에 들어왔다. 정장 차림이 아니라 사복을 입고 있었다. 공식 방문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는 문을 꼼꼼히 닫고, 커튼을 쳤다. 그리고 침대 옆 의자에 앉았다.

"기억이 더 돌아왔습니까?"

이준호가 끄덕였다.

"형사실에서 이수영과의 대화다. 박민지 사건 파일. '빨리 종결되어야 한다'는 말."

정현택의 얼굴이 굳었다.

"그 기억이 맞습니다. 정확히 2년 전 3월 15일입니다."

"박민지가 죽은 게 3개월 전이라고 했는데?"

"죽은 건 3개월 전입니다. 하지만 그 사건을 이준호 형사가 담당하기 시작한 건 2년 전부터입니다."

이준호가 몸을 일으켜 앉았다. 정현택이 계속했다.

"박민지 실종 신고는 2년 전 3월 10일. 그리고 5일 뒤인 3월 15일에 이수영 팀장이 당신을 형사실로 불렀습니다. 그것이 당신의 기억 속 장면입니다."

"그럼 박민지는 살아 있었다는 건가?"

"5년 동안 살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3개월 전, 당신이 그 사건을 다시 담당하게 되었을 때 죽었습니다."

정현택의 말이 차갑게 떨어졌다. 이준호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정현택이 침대 옆 테이블 위에 작은 수첩을 펼쳤다. 손글씨로 빼곡히 적혀 있었다.

"지하 3층. 공식 기록에는 없습니다. 하지만 존재합니다."

정현택이 수첩의 페이지를 넘겼다.

"2007년. 강간 살인 사건. 용의자는 지하 3층에서 고문당했습니다. 그 뒤 자살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같은 해 8월, 강도 사건. 용의자는 맞지만, 증거는 조작되었습니다."

이준호의 손이 떨렸다.

"이건 내가 한 일인가?"

"당신의 기억에 따르면, 네. 당신의 손이 한 일입니다."

정현택이 수첩을 내려놨다.

"하지만 당신의 선택이 아닙니다. 조직의 선택입니다."

이준호가 정현택을 바라봤다.

"2015년 12월. 재정 비리 사건이 터졌습니다. 경찰청 고위 간부들이 연루되어 있었습니다. 그 사건을 담당하는 형사는 이준호였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수영 팀장이 그 사건을 당신에게서 빼앗았습니다. 대신 당신에게는 다른 사건들을 주었습니다. 해결하기 쉬운 사건들. 당신의 해결률을 높이기 위한 사건들."

이준호가 침대에 누웠다.

"넌 왜 이걸 내게 말하는가?"

"당신이 깨어났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기억이 돌아오고 있습니다.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정현택이 수첩을 닫았다.

"누군가 당신의 뇌에 무언가를 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하지만 진실은 다릅니다. 당신의 뇌가 자신을 복원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도구인 것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뭐가?"

"당신의 뇌가 자신을 복원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도구인 것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정현택이 침대에서 일어섰다.

"당신은 도구였습니다. 하지만 도구가 자신의 정체를 의심하기 시작하면, 그것은 더 이상 도구가 아닙니다."

그 말이 이준호의 가슴을 쳤다. 척추 아래쪽에서 전기가 흐르는 듯한 감각이 번쩍 내려왔다.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기 시작했다. 이것은 신경통의 전조가 아니었다. 이것은 공포였다.

"우리가 협력해야 합니다."

정현택이 말했다.

"당신의 모든 기억을 기록하십시오. 시간, 장소, 행동. 그리고 그 행동 속의 감정. 당신이 정말 그것을 하고 싶었는지, 아니면 누군가 시킨 것인지. 그것을 모두 기록하면, 우리는 조직을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이준호가 침대 옆 테이블을 바라봤다. 거기에는 펜과 종이가 있었다. 간호사가 놓아둔 것이었다. 그는 펜을 들었다. 손이 여전히 떨렸다.

손가락에 주사 자국이 있었다. 엄지손가락. 약 주입의 흔적. 그는 그 자국을 바라봤다. 이 손이 정말 자신의 손인가. 이 손이 한 일들이 정말 자신이 한 일인가.

"기억이 돌아올 때마다 기록하세요."

정현택이 문을 향해 걸어갔다.

"당신은 48시간마다 새로운 기억을 얻게 될 것입니다."

정현택이 문을 열었다. 복도의 밝은 빛이 들어왔다.

"다음 기억은 언제쯤 돌아올 예정입니까?"

"18시간 뒤쯤이다. 오전 4시쯤."

"좋습니다. 그때 기록하십시오. 그리고 내일 밤 10시에 다시 만납시다."

정현택이 나갔다. 이준호는 펜을 들었다. 종이 위에 글씨를 썼다.

**2015년 12월 15일, 오후 3시, 형사실** **이수영: "빨리 종결되어야 한다. 너도 이해하겠지."** **나: 고개를 끄덕였다.** **감정: 두려움. 그리고 그 두려움을 누르는 무언가.**

한 줄 한 줄 써 내려갔다. 하지만 쓰면 쓸수록 의심이 밀려왔다. 이것이 정말 자신의 기억인가. 손가락이 움직이는 것이 자신의 의지인가. 이 손이 정말 자신의 손인가. 펜 끝이 종이를 긁는 소리가 낯설게 들렸다.

오후 5시쯤, 수진이 들어왔다. 호텔에서 돌아온 것 같았다. 얼굴이 창백했다. 그녀는 남편의 옆에 앉지 않고 창가에 서 있었다.

"기억이 또 돌아왔어?"

"응."

"뭐였어?"

"일."

그 한 마디가 모든 것을 말해 줬다. 수진의 어깨가 긴장했다. 그녀는 손가락을 꼬았다 펼쳤다를 반복했다.

"당신이 정말 그걸 했어?"

"모르겠다."

"뭐가 모르겠어?"

이준호가 수진을 바라봤다. 그녀의 눈이 흔들리고 있었다.

"내가 도구인지, 아니면 괴물인지."

수진이 입을 다물었다. 그 순간 그녀의 얼굴이 변했다. 창밖을 통해 들어오는 석양이 그녀의 옆모습을 비추고 있었다. 그 빛 속에서 이준호는 그녀의 표정을 읽을 수 없었다. 하지만 느낄 수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리다가 멈추는 순간. 그녀의 어깨가 내려앉는 순간. 그것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순간이라는 것을.

그날 밤, 이준호는 수진이 침대 아래 짐을 끌어내는 소리를 들었다. 옷을 챙기는 소리. 세면도구를 챙기는 소리. 조용하지만 확실한 소리들. 그 소리들은 단순한 짐 꾸리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결별의 음향이었다.

오전 1시, 수진이 침대 옆에 왔다.

"당신이 자고 있는 줄 알았어."

이준호가 눈을 떴다.

"떠나갈 준비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척추 아래쪽에서 전기가 흐르는 듯한 감각이 왔다. 신경통의 전조였다. 하지만 그것만은 아니었다. 공포였다. 아내를 잃을 수도 있다는 공포. 아내를 죽일 수도 있다는 공포. 그리고 그 둘 사이에서 어느 것이 더 큰 공포인지 알 수 없다는 공포.

"오전 4시쯤 기억이 돌아올 거다."

이준호가 말했다.

"그 사이에 떠나야겠니?"

수진이 한 번 깜빡였다. 그 순간 이준호는 확신했다. 그녀도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고 있다는 것을. 그녀는 남편을 사랑하는 아내가 아니었다. 그녀는 살인자의 아내였다. 아니, 살인자인지 도구인지도 모르는 남편의 아내였다. 그리고 그것이 가장 무서웠다. 자신의 정체를 모르는 것보다, 아내도 자신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

침대에 누운 남편과 짐을 든 아내 사이에는 다리를 건널 수 없는 강이 흐르고 있었다.

오전 3시 50분, 이준호의 몸이 침대 위에서 경직되기 시작했다. 신경통이 올라오고 있었다. 척추를 타고. 뇌로. 그의 손가락이 떨렸다.

다섯 번째 기억이 올 차례였다.

강남역 인근의 술집. 야간 조명이 어두웠다. 맞은편에 앉은 남자의 얼굴은 명확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눈빛만은 선명했다. 검은색이었다. 검은 눈동자에 반사되는 것은 공포였다.

기억 속 이준호의 입이 열렸다.

"돈을 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음엔 네 가족을 찾을 거야."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손이 떨렸다. 탁자 아래로 봉투가 미끄러져 나왔다. 현금. 많은 양의. 기억 속 이준호는 그 돈을 집어 들었다.

그 순간, 현실이 흔들렸다.

병실의 천장이 술집의 천장과 겹쳤다. 기억 속 이준호의 손과 현실의 이준호의 손이 같은 동작을 했다. 돈을 세는 손. 그리고 그 손가락이 느끼는 것은 죄책감이 아니었다. 지폐의 질감. 그것만.

"네 가족을 찾을 거야."

그 말이 울려 퍼졌을 때, 현관문이 닫혔다.

기억 속과 현실이 분리되었다. 이준호가 눈을 떴다. 오전 4시 15분. 병실의 천장이 보였다.

침대 옆 의자는 비어 있었다. 수진의 짐은 사라져 있었다. 현관문이 닫혀 있었다.

그 위로 기억 속 음성이 계속 울려 퍼졌다.

"다음엔 네 가족을 찾을 거야."

오전 7시, 의사 서준영이 들어왔다. 그의 표정은 공식적이었다.

"퇴원 허가를 받으셨습니다."

"왜?"

"더 이상 입원할 의료적 이유가 없습니다. 뇌파는 정상입니다. 신경통은 약물로 관리 가능합니다."

서준영이 퇴원 서류를 제시했다. 그 뒤에는 경찰청 직인이 찍혀 있었다.

"경찰청에서 요청했습니까?"

"네."

이준호가 서류를 받지 않았다.

"감시하기 위해서군요."

서준영이 입술을 다물었다. 그의 손이 서류를 들었다 놨다를 반복했다. 눈은 이준호의 얼굴을 마주치지 않았다. 그 손의 떨림이 모든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이준호는 그 말을 받아들였다. 조직이 자신을 놓칠 리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오후 3시, 이준호가 퇴원했다. 수진이 차를 몰고 와 있었다. 그녀의 짐은 여전히 반쯤 싸여 있었다. 차의 뒷좌석에.

그들은 도곡동의 집으로 돌아왔다.

집의 현관을 열었을 때, 이준호는 느꼈다. 그 공간이 더 이상 집이 아니라는 것을. 그저 감시당하는 공간이라는 것을.

수진이 주방에서 물을 마시고 있었다. 그녀의 손이 떨렸다.

"다음 기억은 언제 돌아올 거야?"

"48시간 뒤. 오전 4시쯤."

"그럼 우리는 48시간을 가지고 있는 거네."

"뭘?"

"당신이 다음 기억을 받기 전에 떠날 시간을. 아니면 당신이 나를 죽이기 전에."

그 말이 공기 속으로 떨어졌다. 무게처럼. 수진은 짐을 들고 현관으로 향했다.

침대에 누운 남편은 움직일 수 없었다. 척추 아래쪽에서 전기 같은 통증이 번쩍 내려왔다. 신경통의 시작이었다. 손가락이 떨렸다.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현관문이 닫혔다.

그리고 침묵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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