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통이 두개골을 깨물었다.
뇌 전체가 타는 듯한 고통 속에서 이준호는 눈을 떴다. 천장의 불빛이 일렁였다. 침대 난간을 움켜쥔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박민지.'
그 이름이 먼저 들어왔다. 얼굴이 뒤따랐다. 수진의 친구. 5년을 알아왔다. 대학 미술 강사였다. 웃음이 크고 술을 잘 마시는 여자였다.
주차장이었다.
밤 11시. 강남역 인근의 지하 주차장. 2층. 조명이 희미한 모서리. 이준호의 기억 속에서 박민지는 은색 K5 옆에 서 있었다. 손에 휴대폰을 들고 있었다. 그녀가 뒤를 돌아봤을 때 이준호의 손에는 칼이 들려 있었다.
'뭐—'
박민지의 입이 벌어졌다. 그 입이 감정을 형성하기도 전에, 칼이 그녀의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이준호는 자신의 손을 봤다. 기억 속에서. 손가락이 칼의 손잡이를 움켜쥔 그대로. 손목이 기계적인 각도로 회전하는 그대로. 옆구리에서 나오는 피가 손등을 적시는 그대로. 그 모든 것이 명확했다. 선명했다. 의도적이었다.
호흡이 끊겼다.
이준호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몸이 흔들렸다. 신경통이 여전히 두개골을 깨물고 있었지만, 그것은 배경음이 되었다. 그의 손을 들여다봤다.
손가락에 흉터가 있었다. 엄지손가락의 밑부분. 약 1센티미터 정도의 옅은 자국. 언제 생겼는지 알 수 없었다. 기억이 없었다.
손을 돌려봤다. 손등의 혈관이 파란색으로 도드라졌다. 손가락을 굽혔다 펼쳤다. 손가락을 굽혔다 펼쳤다. 그 손이 정말 자신의 손인가 하는 의문이 떠올랐다.
병실의 문이 열렸다.
수진이 들어왔다. 아침 6시쯤이었을 것이다. 어둑한 복도 조명이 그녀의 뒷모습을 검게 칠했다. 그녀는 이준호를 본 순간 멈췄다. 그의 얼굴을 읽으려 했다. 아니, 읽고 있었다. 미술 강사의 관찰력. 색채와 형태를 분석하는 눈이 이제는 남편의 표정에 쏟아졌다.
"당신 기억이 또 돌아왔어."
질문이 아니었다. 확인이었다.
이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손을 내려놓았다. 침대 시트가 손가락에 닿았다. 차갑고 거친 면이 실재를 상기시켰다.
"박민지가 생각나?"
수진이 한 발 더 가까워왔다. 목소리가 낮았다. 진정한 것처럼 들리려고 애쓰는 톤이었다.
이준호가 얼굴을 들었다. 그녀의 눈이 그의 눈과 만났다. 그 순간, 수진의 얼굴이 움직였다. 눈썹이 내려앉았다. 입꼬리가 떨렸다. 그녀는 그의 답을 듣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당신이 박민지를 죽였어?"
목소리가 갈라졌다. 두려움이 드러났다. 그녀는 자신의 남편을 보고 있는 게 아니라, 낯선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
이준호의 입이 벌어졌다. 닫혔다. 다시 벌어졌다. 기억 속의 칼이 그의 혀를 자르고 있었다.
"모르겠다."
이 단어가 나올 때 수진의 얼굴이 완전히 무너졌다. 울음이 아니었다. 더 위험한 것. 절망. 배신감. 그리고 두려움이 한 점으로 응축되었다. 그녀는 침대에서 물러섰다. 천천히. 한 발, 두 발.
"박민지는 내 친구야."
수진의 목소리가 떨렸다.
"내 친구를 당신이 죽였어?"
이준호가 손을 뻗었다. "수진—"
"손 치워."
그녀의 목소리가 얼음이 되었다. 이준호의 손이 공중에서 멈췄다. 수진은 계속 뒤로 물러났다. 침실 문 쪽으로. 그녀의 눈은 여전히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시선 속에는 더 이상 남편이 없었다. 오직 의심만 있었다.
침실로 들어간 그녀가 곧 나타났다. 검은색 여행용 가방을 들고. 이미 준비된 것. 옷들이 대부분 사라진 침실, 이른 아침부터 짐을 챙기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나는 호텔에 가 있을 거야. 며칠 동안."
수진의 목소리는 공허했다. 감정이 모두 소진된 것처럼.
"당신이 누구인지 확실해질 때까지. 또는 경찰이 당신을 데려갈 때까지."
그녀가 병실의 문으로 향했다. 손에 들린 가방의 끈이 팽팽했다.
"수진!"
이준호가 침대에서 일어섰다. 신경통이 다시 울렸다. 하지만 그것은 배경음이었다.
"기다려!"
수진이 멈추지 않았다. 문을 열고 나갔다. 복도의 불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녀의 실루엣이 그 속으로 사라졌다.
문이 닫혔다.
이준호는 침대 앞에 서 있었다. 손을 뻗은 채로. 그 손이 공기를 움켜쥘 뿐이었다.
시계가 아침 6시 27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
병원 의료 기록실은 지하 2층이었다.
이준호는 밤 9시경에 내려갔다. 신경통은 여전했지만 약해지고 있었다. 48시간 주기로 기억이 돌아온다면, 다음 기억은 24시간 뒤에 올 것이었다. 시간이 있었다.
의료 기록실의 잠금장치는 전자식이었다. 이준호는 자신의 환자 카드를 긁었다. 대기 중인 상태로도 일부 지역에 접근할 수 있었다. 기록실의 문이 열렸다.
형광등 아래 파일들이 서 있었다. 색상별로 분류되어 있었다. 이준호의 파일은 빨간색이었다. 응급 입원. 심각한 상태. 그는 자신의 파일을 꺼냈다.
뇌 스캔 이미지가 여러 장 들어 있었다. 측두엽의 손상 부위가 노란색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손상 범위는 약 3×2센티미터. 해마의 일부도 포함되었다. 서준영 의사의 메모가 적혀 있었다.
'정상적 손상 패턴. 측두엽 손상으로 인한 기억 소실 예상. 그러나 72시간 후 뇌파 활성화 증가. 신경 재생의 가능성. 혹은 비정상적 신경 활동. 원인 불명.'
손상의 원인 항목에는 '자동차 충돌'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 다음 줄에는 손글씨로 '?'가 추가되어 있었다.
이준호는 파일을 다시 집어넣으려 했을 때 발걸음이 들렸다. 복도에서. 빠르고 결정적인 발걸음.
문이 열렸다.
정현택이었다. 형사. 고발자. 그의 얼굴이 창백했다. 밤 9시 30분에 의료 기록실에 나타난 그의 눈빛에는 긴장이 감돌았다. 마치 누군가의 지시를 받은 듯한.
"형사님."
이준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정현택은 대답하지 않았다. 한 발 더 가까워왔다. 손에 파일을 들고 있었다. 경찰청의 공식 파일. 박민지 살인 사건. 미해결 사건.
"이 사건의 기록을 보면, 당신이 현장을 처음 발견한 사람이었어요."
정현택이 파일을 펼쳤다. 사진이 나왔다. 주차장의 바닥. 피. 박민지의 시체. 그 모습이 이준호의 기억 속 그것과 정확히 일치했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진전이 없었어요."
정현택이 사진을 내밀었다. 이준호는 받지 않았다.
"당신의 기억이 사실이라면, 당신은 박민지를 죽인 거예요. 그리고 당신이 담당 형사니까, 당신은 자신의 범행을 은폐했다는 뜻이에요."
이준호가 입을 다물었다.
"당신의 기억이 거짓이라면, 누군가 당신의 뇌에 거짓 기억을 주입했다는 뜻이에요. 그리고 그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경찰청 내부에만 있어요."
정현택이 파일을 닫았다.
"둘 중 어느 쪽이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같아요. 진실을 찾는 거예요."
"그럼 우리가 함께 알아봅시다."
정현택의 눈이 이준호의 눈과 마주쳤다. 그 속에는 두려움과 결의가 섞여 있었다.
"당신을 도와주겠어요. 하지만 대신에 당신은 나한테 진실을 말해야 해요. 당신이 기억하고 있는 것들이 정말 당신이 한 일이 맞는지, 아니면 누군가 만들어낸 거짓인지. 당신이 정말로 누구인지."
이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할 말이 없었다.
"내일 밤에 다시 만나요. 여기가 아니라 다른 곳에서."
정현택이 돌아섰다. 문을 열고 나갔다. 복도의 불빛이 그의 뒷모습을 삼켰다.
이준호는 혼자 남겨졌다. 의료 기록실의 형광등 아래에서. 파일들 사이에서.
그의 손이 다시 떨리기 시작했다.
———
병실로 돌아왔을 때는 밤 10시 15분이었다.
침실의 불은 꺼져 있었다. 수진은 소파에 앉아 있었다. 창문 쪽으로. 강남의 야경이 그녀의 옆모습을 비추고 있었다. 그녀는 이준호의 발소리를 들었지만 돌아보지 않았다.
"당신 어디 갔다 왔어?"
목소리가 평탄했다. 더 이상 감정이 없었다. 그것이 더 무서웠다.
이준호가 침대에 앉았다. "산책을 했어."
거짓이었다. 명백한 거짓.
"밤 9시에?"
"네."
수진이 천천히 돌아봤다. 그녀의 눈이 이준호의 눈과 만났다. 그리고 다시 돌아봤다. 창밖으로. 강남의 불빛이 여전히 그녀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박민지의 엄마가 전화했어. 오늘. 형사청 누군가가 박민지 사건을 다시 조사하고 있다고. 당신 이름으로."
이준호의 호흡이 멈췄다.
"박민지가 3개월 전에 죽었다는 거, 나도 알아. 당신이 담당 형사였다는 것도. 그런데 왜 지금 다시 조사하는 거야?"
수진이 일어섰다. 천천히. 침대 쪽으로 걸어왔다. 하지만 이준호에게 닿지는 않았다. 침대의 모서리에 앉았다. 그들 사이에 30센티미터의 거리가 있었다.
"당신이 박민지를 죽였어. 그게 당신의 기억이잖아."
단정이었다. 질문이 아니었다.
"그런데 왜?"
수진의 목소리가 떨렸다.
"박민지가 뭘 했는데? 박민지가 당신한테 뭘 했는데 그렇게까지 해야 했어?"
이준호가 입을 열려 했다.
"대답하지 마."
수진이 손을 들었다.
"나는 당신의 대답을 듣고 싶지 않아. 나는 당신이 무엇을 했는지 알고 싶지 않아. 나는... 당신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아."
그녀가 일어섰다. 침실로 가는 문을 향해 걸어갔다. 침실은 이미 비어 있었다. 침대, 옷장, 거울. 그녀의 옷들은 대부분 사라져 있었다.
수진이 복도로 나왔다. 손에는 검은색 여행용 가방. 이미 짐이 다 들어 있었다. 옷, 세면도구, 그리고 호텔 예약 확인서가 들어 있을 것이었다.
"나는 호텔에 가 있을 거야."
그녀의 목소리가 침실에서의 것과 달랐다.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다. 결정이 내려진 것이었다.
"당신이 누구인지 확실해질 때까지. 또는 경찰이 당신을 데려갈 때까지."
수진이 병실의 문으로 향했다.
"수진!"
이준호가 침대에서 일어섰다. 신경통이 다시 울렸다. 하지만 그것은 배경음이었다.
"기다려!"
수진이 멈추지 않았다. 문을 열었다. 복도의 불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녀의 실루엣이 그 속으로 사라졌다.
문이 닫혔다.
이준호는 침대 앞에 서 있었다. 손을 뻗은 채로. 그 손이 공기를 움켜쥘 뿐이었다.
시계가 밤 10시 47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
밤 11시 30분.
이준호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심박 모니터가 일정한 리듬으로 울리고 있었다. 그 리듬이 자신의 심장인지, 기계의 심장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내일 밤 정현택과의 만남. 다른 곳. 진실. 그 시간까지 48시간이 남아 있었다. 그 사이 다음 기억이 올 것이었다. 언제인지는 알 수 없었다. 밤 5시 30분경이 될 수도, 그보다 먼저 올 수도 있었다. 정현택과의 약속 시간과 겹칠 수도 있었다.
불확실성이 그를 짓눌렀다.
이준호는 손가락을 들여다봤다. 흉터가 여전했다. 1센티미터 정도의 옅은 자국. 손등의 혈관이 파란색으로 도드라졌다. 손가락을 굽혔다 펼쳤다. 그의 손이 칼을 들 수 있었다. 그의 손이 누군가를 찌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손이 정말로 자신의 손이었는가?
이준호는 침대 옆 탁자에 있는 메모지를 집어들었다. 펜을 움켜쥔 손이 떨렸다. 글씨가 삐뚤어졌다.
박민지 살인 사건. 담당 형사: 이준호. 현장 발견자: 이준호. 용의자: 이준호.
펜이 멈췄다. 다시 움직였다.
기억 속의 손 = 현실의 손?
펜이 떨렸다.
정현택이 왜 이 시간에 의료 기록실에 있었는가?
펜을 놓았다. 다시 집어들었다.
수진도 알고 있었나?
이준호는 메모지를 접었다. 손가락이 종이를 구기는 순간, 펜이 떨어졌다. 침대 아래로. 그는 메모지를 침대 밑에 숨겼다. 증거. 자신이 생각하고 있다는 증거. 자신이 누구인지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증거.
밤 11시 45분.
이준호는 다시 누웠다. 천장을 바라봤다. 심박 모니터의 리듬이 계속되었다. 그 리듬 속에서 그는 내일 밤을 기다렸다.
정현택과의 만남. 다른 곳. 진실.
그리고 그 사이에, 언제 올지 모를 다음 기억.
손가락의 흉터가 따끔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