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기억 복원

또 다른 전화가 울렸다. 경찰청 내부고발 담당자였다.

"형사님, 죄송하지만 고발 건이 접수되었습니다. 당신을 상대로 한."

이준호는 수화기를 내려놨다. 손이 떨렸다. 신경통 때문이 아니었다.

정현택이라는 이름의 형사가 고발장을 제출했다. 고문실에서의 폭행. 용의자 김태희에 대한 불법 신문. 증거 조작 의혹. 종이 한 장이 이준호의 30년 경력을 흔들었다. 병원 담당 경찰이 고발장 사본을 가져왔을 때, 이준호는 그것을 읽지 않았다. 읽을 필요가 없었다. 그 내용은 이미 자신의 뇌에 기억으로 저장되어 있었으니까.

고문실. 손에 피. 김태희의 얼굴. 그것은 기억이었다. 생생한 기억.

하지만 이준호는 그것을 부정해야 했다.

"기억이 없습니다."

담당 경찰에게 그렇게 말했다. 아내 수진에게도 그렇게 말했다. 의사 서준영에게도 그렇게 말했다. 자신에게도 그렇게 말했다.

기억이 없다. 따라서 나는 무죄다.

하지만 기억이 돌아오면서 그 논리가 무너졌다. 기억이 없다는 것은 무죄의 증거가 아니었다. 기억이 없다는 것은 단지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모른다는 뜻일 뿐이었다.

병실의 창밖으로 강남의 도시가 보였다. 저 어딘가에 고문실이 있고, 주차장이 있고, 그리고 자신이 벌인 일들이 있었다. 적어도 기억 속에서는.

---

이수영 상관이 병문안을 왔다.

그는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고급 향수의 냄새를 풍겼다. 경찰청의 고위 간부들이 풍기는 그런 냄새였다. 거리감의 냄새. 현실과의 단절의 냄새.

"어때, 컨디션?"

이수영은 이준호의 어깨를 톡톡 쳤다. 그 손길은 따뜻했지만, 눈은 차갑게 평가하고 있었다.

"괜찮습니다."

"정현택이 고발했다고 들었어. 그 녀석, 안 될 놈이야. 양심 따위 가지고 조직을 흔들면 안 되는데."

이수영은 침대 옆 의자에 앉았다. 정장 바지가 반듯하게 접혔다. 그는 항상 깔끔했다. 깔끔한 사람은 보통 깔끔한 비밀도 가지고 있었다.

"자네가 한 일들, 우리는 다 알아. 그리고 그것을 잊지 않아."

이준호의 호흡이 멈췄다.

"고문이라고 부르는 건 하나의 관점일 뿐이야. 우리는 그것을 '수사'라고 부르지. 결과가 좋으니까. 사건 해결률 94%. 이게 거짓말인가? 범인들을 잡아냈고, 피해자들을 구했고, 시민들이 안전해졌어. 그것이 경찰의 일이 아닌가?"

이준호의 눈동자가 확대되었다. 그것은 죄책감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정이었다. 가장 위험한 종류의 인정. 자신이 한 일이 옳다고 믿게 되는 순간의 인정.

"회복되면 더 큰 일이 있을 거야. 자네는 우리의 사람이니까."

이수영의 손이 이준호의 손목을 잡았다.

"고발 건은 우리가 처리해. 정현택 같은 새끼가 조직을 흔들지는 못할 거야. 자네는 회복에 집중해. 알았나?"

이준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동의였다. 혹은 항복이었다. 더 이상 구분이 안 됐다.

이수영이 떠난 후, 이준호는 자신의 손을 들여다봤다. 손가락에 작은 흉터가 있었다. 첫 번째 기억 속에서 생긴 흉터. 하지만 그것이 언제 생겼는지, 어떻게 생겼는지, 정말 그 기억 속에서 생겼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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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영이 이준호를 재검사했다.

뇌 스캔. MRI. CT. 모든 검사가 반복되었다. 의사는 이준호의 두개골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마치 도자기의 흠을 찾는 것처럼.

"신경학적으로 말하면, 당신의 회복은 불가능합니다."

서준영은 이준호의 눈을 똑바로 봤다.

"측두엽의 손상 정도로는 기억이 돌아올 수 없어요. 그런데 당신의 기억은 돌아오고 있다. 완벽하게. 세부 사항까지."

"의학이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하지만 불가능한 것을 설명하려면 다른 변수가 필요해요."

의사는 태블릿을 꺼냈다. 뇌파 그래프가 화면에 떴다. 상승과 하강의 반복. 규칙적인 패턴.

"당신의 뇌파가 너무 규칙적입니다. 마치 누군가 의도적으로 특정 기억들을 자극하고 있는 것처럼. 신경가소성—뇌가 반복된 자극에 반응해 새로운 신경 경로를 만드는 현상이 있는데, 입원 전에 당신이 그런 자극을 받았다면..."

서준영이 그래프를 내렸다.

"당신이 지금 경험하는 기억들이 정말 당신의 것입니까? 아니면 누군가 당신에게 심어준 것입니까?"

이준호의 입이 말라왔다.

"혹시 병원 입원 전에 다른 치료를 받으셨습니까? 다른 누군가로부터?"

이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수 없었다. 그 시간의 기억이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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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진이 관찰을 시작했다.

남편이 잠에서 깰 때의 눈빛. 남편이 의사와 대화할 때의 손 움직임. 남편이 경찰청 전화를 받을 때의 말투. 모든 것이 의심의 대상이 되었다.

그녀는 침대 모서리에 앉아, 남편의 얼굴을 관찰했다. 미술 강사로서 얼굴을 그려본 경험이 있었다. 사람의 표정은 거짓말을 할 수 없다고 배웠다. 광대뼈의 미세한 움직임, 눈가의 주름, 입꼬리의 각도. 그 모든 것이 진실을 말해준다고.

하지만 지금 그녀가 보는 남편의 얼굴에는 진실이 없었다.

경찰청 전화를 받을 때였다. 남편이 펜을 집었다. 왼손으로. 그런데 기억 속 남편은 오른손잡이였다. 아니, 기억 속이 아니라 지난 15년간 그렇게 써왔다. 왼손으로 펜을 집은 것은 처음이었다.

"당신이 정말 당신인지 확인하고 싶어."

그녀가 중얼거렸을 때, 남편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것도 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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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청 내부에서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누군가가 이준호의 병실 복도를 지나갔다. 문을 열지는 않았지만, 그 존재감은 남아 있었다. 감시의 존재감.

누군가가 이준호의 자동차 열쇠를 만졌다. 차 안을 확인했다. 글로브 박스를 열었다. 백미러를 조정했다. 나머지는 그대로 두었다. 조사가 아니라 위협이었다. 우리가 보고 있다는 메시지.

누군가가 이준호의 집에 들어갔다. 도곡동의 그 평범한 주택. 침실의 옷장을 열었다. 거울 뒤를 확인했다. 침대 밑을 보았다.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았다. 다만 확인했을 뿐이다. 모든 것이 어디에 있는지.

이것이 경찰청의 방식이었다. 직접 고발하지 않는다. 다만 보고 있다는 것을 알리기만 한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

48시간이 다시 지났다.

이준호의 뇌에서 신경통이 시작되었다. 첫 번째 때보다 강했다. 두 번째 때보다도 강했다. 그것은 번개처럼 두개골 안을 주행했다. 측두엽에서 시작해 전두엽으로, 뒤통수로, 다시 이마로.

이준호가 소리를 질렀다.

"아, 아아아아!"

수진이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그녀는 그를 안지 않았다. 대신 한 발 물러섰다. 그 비명이 고통의 비명인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의 표현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신경통이 정점에 달했을 때, 세상이 검게 물들었다. 그리고 그 검음 속에서 기억이 돌아왔다.

주차장. 지하 3층. 형광등이 깜빡거렸다.

여자가 있었다. 박민지였다. 그녀는 이준호를 보고 놀라서 뒤로 물러섰다.

"뭐, 뭐 하는 거예요?"

이준호의 손에 칼이 있었다. 어디서 나온 칼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은 그의 손에 있었다.

"안 돼. 이건 아니야."

박민지가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공포가 있었다.

"내가 말한 거 아니야. 내가 시킨 거 아니야!"

이준호는 칼을 들었다. 그 순간, 그의 표정은 평온했다. 어떤 감정도 없었다. 죄책감, 후회, 동정, 두려움. 그 모든 것이 사라져 있었다. 남은 것은 행동뿐이었다.

칼이 내려왔다.

여자의 비명이 주차장에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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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호가 깨어났다.

병실의 천장이 보였다. 형광등. 흰 벽. 심박 모니터의 소리.

그의 손을 봤다. 손가락이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손가락에는, 이전의 흉터 외에도, 또 다른 자국이 있었다. 새로운 자국. 칼을 잡았을 때 생기는 자국.

이준호는 자신의 손을 계속 봤다. 그것이 자신의 손인지 확실하지 않았다. 기억 속의 손인지, 현실의 손인지, 구분이 안 됐다.

"당신이 뭘 한 거예요?"

수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준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아내는 창문 쪽에 서 있었다. 햇빛이 그녀의 뒷모습을 검게 만들었다.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내가... 뭘 했는데?"

"당신이 말해줘야지."

수진이 돌아섰다.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동정의 눈물인지, 공포의 눈물인지, 아니면 다른 감정의 눈물인지 알 수 없었다.

"지난 며칠 동안 계속 꿈을 꿔. 당신이 누군가를 죽이는 꿈. 그런데 그게 꿈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이준호는 대답하지 못했다.

"당신이 정말 무죄인지, 당신이 정말 범인인지, 그것도 중요하지 않아. 내가 중요한 건... 당신이 정말 누구인지 모르겠다는 거야."

수진이 병실 문을 열었다.

"의사가 당신을 더 관찰하고 싶대. 나도 그게 맞다고 생각해."

그녀가 나갔다.

이준호는 다시 자신의 손을 봤다. 손가락이 계속 떨렸다. 기억 속의 손처럼. 칼을 잡았던 손처럼.

그리고 그 순간, 그는 깨달았다.

자신이 무죄인지 유죄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자신이 정말 누구인지도 이미 알고 있다. 단지 인정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병실의 문이 다시 열렸다. 경찰이 들어왔다. 이준호를 보호한다며. 하지만 그들의 눈빛은 보호가 아니라 감금을 말하고 있었다.

"형사님, 박민지 살인 사건에 관해 몇 가지 묻고 싶습니다."

경찰이 말했다.

"당신은 그 사건의 현장에 있었나요?"

이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기억이 선명했기 때문이다. 너무나 선명해서, 그것이 현실이었는지 기억이었는지 구분이 안 됐다.

그리고 그것이 가장 무서운 부분이었다.

---

경찰이 침대 옆에 서 있었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았다. 아니, 기억하고 싶지 않았다. 경찰청 소속이라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같은 조직의 사람. 같은 조직에서 보낸 감시자.

"박민지 살인 사건은 3개월 전입니다. 당신이 입원하기 한 달 전이죠."

경찰의 음성은 중립적이었다. 하지만 중립적인 목소리가 가장 위험하다는 걸 이준호는 알고 있었다.

"당신의 기억이 없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그 현장 근처에 있었다는 CCTV 기록이 있습니다."

이준호의 목이 건조했다. 입을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했다.

"형사님?"

"모르겠습니다."

목소리가 갈라졌다.

"모르겠다니요?"

"기억이 없다고 했습니다."

경찰이 수첩을 들었다. 펜을 움직였다. 기록을 남기고 있었다. 모든 말이 증거가 되고, 모든 침묵이 혐의가 되는 상황.

"혹시 당신이 박민지와 개인적인 관계가 있었습니까?"

이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개인적 관계? 기억 속에서 그녀는 낯선 사람이었다. 하지만 칼을 들었을 때 이준호의 손은 떨리지 않았다. 그것이 뭘 의미하는가?

"당신의 아내분이 경찰에 증언하셨습니다."

경찰이 말했다.

"당신이 입원 전 며칠간 이상한 행동을 보였다고요. 밤중에 나갔다 들어오곤 했다고. 옷에 흙이 묻어 있었다고. 손에 상처가 있었다고."

경찰의 펜이 멈췄다. 그의 눈이 이준호를 맞췄다.

"그 상처가 혹시 칼에 의한 상처입니까?"

이준호의 손가락 떨림이 더 심해졌다. 기계음이 더 빨라졌다.

"당신은 당신의 아내분을 의심하고 계십니까, 형사님? 아니면 당신이 당신 자신을 의심하고 계십니까?"

경찰이 말했다. 그것은 질문이 아니었다. 진술이었다.

"아직 수사 대상입니다. 당신은 형사이지만, 지금은 피의자입니다."

경찰이 나갔다. 병실 문이 닫혔다. 밖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복도에 서 있다. 감시하고 있다.

이준호는 천장을 다시 봤다. 형광등이 깜빡거렸다. 그 깜빡거림 속에서 또 다른 기억이 떠올랐다. 고문실의 형광등도 이렇게 깜빡거렸다. 김태희가 신음했다. 그 신음이 고통의 신음이었는지 공포의 신음이었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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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시. 서준영 의사가 들어왔다. 검사 기구를 들고 있었다.

"신경통은 어떻습니까?"

"괜찮습니다."

거짓이었다. 신경통은 여전했다. 하지만 말할 필요가 없었다. 의사의 눈에 이미 답이 보이고 있었다.

서준영이 이준호의 눈을 손전등으로 비췄다. 동공이 수축했다. 확장했다. 정상 반응이었다.

"뇌파 검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의사가 태블릿을 꺼냈다. 그래프가 화면에 떴다. 상승과 하강의 반복. 규칙적인 패턴이 있었다.

"당신의 뇌파가 너무 규칙적입니다. 마치 누군가 의도적으로 특정 기억들을 자극하고 있는 것처럼요."

서준영이 그래프를 확대했다.

"입원 전에 반복된 자극을 받았다면, 당신의 뇌는 그것들을 마치 당신 자신의 경험인 것처럼 저장했을 수 있습니다."

이준호의 심박이 다시 올라갔다.

"의사님, 뭘 말씀하시는 겁니까?"

"당신의 뇌에 어떤 외부 개입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약물, 최면, 혹은 더 고차원적인 신경 자극. 병원에 입원한 후가 아니라, 그 전에."

의사가 태블릿을 내렸다.

"당신이 지금 경험하는 기억들이 정말 당신의 것입니까? 아니면 누군가 당신에게 심어준 것입니까?"

서준영이 나갔다. 병실에는 침묵만 남았다.

이준호는 자신의 손을 다시 봤다. 손가락의 흉터. 새로운 자국. 그 모든 것이 현실인지 기억인지, 구분이 안 됐다.

만약 기억이 심어진 것이라면? 그렇다면 그 기억들 속의 자신은 누구인가? 그리고 현실의 자신은 누구인가? 기억이 심어진 것이라면, 그 기억 속에서 자신이 한 일도 누군가의 조작일 수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손의 흉터는 현실이었다. 손 위의 새로운 자국도 현실이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조작이고, 무엇이 현실인가?

---

저녁 6시. 이수영 상관이 들어왔다.

검은 정장. 단정한 넥타이. 30년을 경찰청에서 보낸 사람의 태도. 그는 이준호를 보고 웃었다. 따뜻한 웃음이었다. 하지만 그 웃음은 무언가를 숨기고 있었다.

"준호, 많이 앓았군."

이수영이 침대 옆에 앉았다. 그의 손이 이준호의 손을 잡았다. 따뜻한 손. 하지만 그 손의 압력은 가볍지 않았다.

"자네가 우리를 위해 한 일들은 잊지 않네."

이준호의 눈이 움직였다.

"회복되면 더 큰 일이 있을 테니까."

상관의 손이 이준호의 손을 더 세게 잡았다. 아프지는 않았지만, 위협이었다. 명백한 위협.

"박민지 사건에 대해 경찰이 물었나?"

"네."

"뭐라고 했나?"

"기억이 없다고."

이수영이 미소를 지었다. 그것은 만족의 미소였다.

"좋아. 그렇게 하게. 기억이 없다면 자네는 아무것도 말할 수 없지. 그리고 아무것도 증명할 수 없지."

상관이 일어났다. 창문으로 나갔다. 강남의 야경이 보였다. 불이 켜진 건물들. 그 건물들 안에서 무수한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그들 중 누가 범인이고, 누가 피해자인지, 누가 증인인지, 아무도 모르고 있을 것이다.

"당신이 뭘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당신이 무엇을 기억하는지가 중요해."

이수영이 돌아섰다. 그의 눈이 이준호를 마주했다.

"당신이 기억하는 것만이 현실이 되지."

이준호의 몸이 경직되었다. 침대에 누운 채로 상관을 바라봤다.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무언가가 이준호 안에서 바뀌었다. 얼굴의 근육이 미세하게 수축했다. 눈동자가 확대되었다. 손가락이 침대 시트를 움켜잡았다.

"당신이 기억하는 것만이 현실이 되지."

상관의 말이 반복되었다. 이준호의 입술이 움직였다. 마치 그 말을 따라 읽으려는 것처럼. 하지만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대신 그의 눈빛이 변했다. 공포에서 깨달음으로. 깨달음에서 분노로.

이수영이 나갔다. 병실에는 다시 침묵이 남았다. 하지만 이번 침묵은 이전과 달랐다. 그것은 위협의 침묵이었다.

이준호는 침대 옆 탁자의 서류를 봤다. 고발장 사본. 정현택의 이름이 명시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이름 옆에 손가락이 놓여 있었다. 이수영의 손가락. 아직도 그곳에 있었다.

이준호는 자신의 손을 봤다. 상관의 손이 남긴 자국이 없었다. 하지만 그 감각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압력. 통제. 소속감. 그리고 무언가 더.

---

밤 11시. 이준호는 잠을 자지 못했다. 천장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심박 모니터가 계속 울렸다. 맥박은 여전히 높았다.

48시간. 그것이 기억이 돌아오는 주기였다. 첫 번째 기억은 48시간 후 돌아왔다. 두 번째 기억도 48시간 후였다. 그렇다면 세 번째 기억은 언제 돌아올까?

이준호는 시간을 세었다. 첫 번째 기억이 돌아온 이후로 이미 30시간이 지났다. 남은 시간은 18시간. 18시간 뒤, 또 다른 기억이 돌아올 것이다. 그것이 뭘 보여줄까?

밤 중 누군가 복도를 지나갔다. 발걸음 소리. 감시자의 발걸음. 경찰청은 여전히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아니,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감금하고 있었다.

이준호는 창밖을 봤다. 강남역 방향으로 불이 보였다. 그 불 사이에 어딘가 주차장이 있을 것이다. 박민지가 죽은 주차장. 기억 속에서 그녀를 죽인 주차장.

"내가... 정말 그랬을까?"

이준호가 중얼거렸다.

"내가 정말 칼을 들었을까? 내가 정말 그녀를 죽였을까?"

대답은 없었다. 침묵만 있었다. 그리고 그 침묵 속에서, 이준호의 뇌는 다시 한번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미세한 통증. 머리 뒤쪽에서 시작되는 통증. 그것이 기억이 돌아오기 전의 신호였다.

아직 18시간이 남았는데, 기억이 일찍 돌아오고 있었다.

---

새벽 1시.

통증이 심해졌다. 그것은 더 이상 미세한 통증이 아니었다. 그것은 폭발이었다.

이준호의 손이 침대를 움켜잡았다. 손가락이 하얀색으로 변했다. 심박 모니터가 경고음을 울렸다. 맥박이 분당 140을 넘었다.

"아악—"

이준호가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는 고통의 소리였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다른 무언가의 표현이기도 했다. 분노? 공포? 깨달음?

복도에서 발걸음이 빨라졌다. 의료진이 들어왔다. 간호사가 주사를 들었다. 진정제가 이준호의 팔에 들어갔다. 하지만 그것도 통증을 완화시키지 못했다.

신경통이 정점에 달했을 때, 세상이 다시 검게 물들었다.

그리고 그 검음 속에서 새로운 기억이 떠올랐다.

주차장이 아니었다. 고문실도 아니었다.

그것은 술집이었다. 강남구청 인근의 술집. 이준호는 술집 안에 있었다. 그의 맞은편에는 남자가 있었다. 젊은 남자. 20대 후반. 경찰 배지를 차고 있었다.

정현택. 그것이 그의 이름이었다.

"형사님, 당신이 한 일들을 모르는 척할 수는 없습니다."

정현택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공포와 결연함이 섞여 있었다.

"나는 그걸 봤습니다. 고문실에서. 당신이 용의자를 때리는 걸."

이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기억 속의 이준호는 술잔을 들었다. 천천히 마셨다. 그 모습은 평온했다. 어떤 감정도 없었다.

"나는 고발할 겁니다. 경찰청 내부 고발 시스템으로."

정현택이 계속 말했다.

"당신이 뭘 하든 상관없이. 나는 정의를 위해 그럴 겁니다."

기억 속의 이준호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이 정현택을 마주했다. 그 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동정도 없었다. 위협도 없었다. 단지 깊은 어둠만 있었다.

"정현택."

기억 속의 이준호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낮았다. 거의 속삭임에 가까웠다.

"당신이 고발하면, 당신도 끝날 거야. 당신의 가족도. 당신이 아는 모든 사람도."

정현택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경찰청은 당신을 보호하지 않을 거야. 경찰청은 절대 내부 고발자를 보호하지 않아. 당신은 혼자가 될 거야. 그리고 혼자인 사람은... 쉽게 사라진다."

기억 속의 이준호가 다시 술잔을 들었다.

"내 말을 들었나?"

정현택이 대답하지 못했다. 그의 손이 떨렸다.

"내 말을 들었냐고."

기억 속의 이준호가 더 큰 목소리로 반복했다.

"네... 네, 들었습니다."

정현택이 중얼거렸다.

"좋아."

기억 속의 이준호가 미소를 지었다. 그것은 따뜻한 미소였다. 하지만 그 미소는 동시에 가장 차가운 위협이었다.

"그럼 우리는 아무도 이 대화를 기억하지 않기로 하자."

정현택의 손이 움직였다.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것은 녹음기였다. 기억 속의 이준호가 그것을 보고 웃음을 멈췄다.

"녹음했나?"

"네."

정현택이 대답했다. 그의 목소리는 이제 떨리지 않았다. 결연함만 남아 있었다.

"나는 이미 고발장을 제출했습니다. 당신의 위협도 포함해서."

기억 속의 이준호의 손이 움직였다. 느렸지만 확실했다. 술잔을 들었다가 정현택의 얼굴을 향해 던졌다.

유리가 깨졌다. 정현택이 비명을 질렀다. 얼굴에서 피가 흘렀다.

"당신이 뭘 했는데!"

정현택이 일어나려고 했다. 기억 속의 이준호가 그의 목을 잡았다.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이제 너는 증거가 아니라 피해자가 되는 거야. 그리고 피해자의 증언은..."

기억 속의 이준호가 정현택의 목을 더 세게 조였다.

"신뢰할 수 없지."

---

이준호가 깨어났다.

병실의 천장. 형광등. 심박 모니터의 경고음.

그의 손이 다시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전과 달랐다. 이번에는 그것이 공포의 떨림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정의 떨림이었다.

간호사가 여전히 곁에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걱정이 있었다. 하지만 이준호는 그 걱정을 보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손만 봤다. 손가락의 흉터. 새로운 자국. 그리고 이제는 하나 더 추가될 자국들.

모든 기억이 현실이었다. 모든 범행이 자신의 것이었다. 그리고 이제 그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정말 누구인지.

형사 이준호는 범인이 아니었다.

그는 무언가 더 나쁜 것이었다.

그는 스스로를 속이고 있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속임이 이제 끝나고 있었다. 뇌의 신경이 다시 연결되면서, 억압된 기억들이 하나둘 돌아오고 있었다. 그 기억들은 자신이 한 일들의 증거였다. 그리고 동시에 자신이 누구인지의 증명이었다.

병실 밖에서 경찰의 발걸음이 들렸다. 감시자의 발걸음. 하지만 이제 그들은 단순한 감시자가 아니었다. 그들은 이준호의 진실을 감금하려는 사람들이었다.

이준호는 손을 들었다 놨다를 반복했다.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심박 모니터가 규칙적으로 울렸다. 맥박이 분당 110을 넘었다.

기억 복원의 다음 단계는 무엇일까? 다음 48시간 뒤 돌아올 기억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 기억 이후에는?

이준호는 천장의 형광등을 바라봤다. 그것이 깜빡거렸다. 규칙적으로. 마치 신호를 보내는 것처럼.

당신이 기억하는 것만이 현실이 된다.

상관의 말이 계속 반복되었다. 그렇다면 이준호가 기억하는 것들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 기억들 너머에는 무엇이 있는가?

이준호는 손가락을 굽혔다 폈다를 반복했다.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그것은 공포의 떨림이 아니었다. 그것은 확신의 떨림이었다.

다음 기억이 돌아오는 데 48시간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이준호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 기억이 무엇일지. 그것이 자신을 완전히 파괴할 것이라는 것을. 아니, 파괴가 아니라 완성할 것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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