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눈을 떴을 때 천장이 흰색이었다.

병원 천장의 형광등 불빛. 이준호는 그것을 보고 자신이 누구인지 알았다. 형사 이준호. 서울중앙경찰청 형사팀. 30년 경력.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자신이 여기 왜 있는지는 모르겠다. 몸이 무거웠다. 왼쪽 다리에 깁스가 감겨 있었고, 왼팔에는 링거줄이 연결되어 있었다.

"준호."

아내 수진이 침대 옆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얼굴은 창백했다. 눈 밑에 다크서클이 짙었고, 입술은 말라 있었다. 3일은 자지 않은 것 같은 얼굴이었다. 수진이 그의 손을 잡았다. 따뜻한 손. 하지만 그녀의 눈빛은 뜨거워 보였다.

"당신이 깼어. 의사한테 연락할게."

그녀가 일어서려 했을 때 이준호가 물었다.

"뭐 했어? 나한테."

수진이 멈췄다. 그녀는 돌아보지 않은 채 한참을 서 있다가, 천천히 다시 앉았다.

"사건 현장에서 교통사고. 차가 너한테 부딪혔어. 3일 전이야."

"기억이 없어."

"알아. 의사가 말했어. 뇌가 손상됐다고."

수진이 그의 손을 더 세게 잡았다. 손가락이 떨리고 있었다.

"당신이 정말 당신인지 확인하고 싶어."

그 문장이 이상했다. 이준호는 그녀의 얼굴을 봤다. 그녀는 자신을 보고 있었지만, 그 눈은 누군가 다른 사람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뭔 소리야."

"아무것도 아니야."

수진이 손을 놨다. 그녀는 다시 의자에 앉았고, 휴대폰을 들었다. 손가락이 여전히 떨렸다. 화면을 켜고 끄고를 반복했다. 켜고 끄고. 켜고 끄고. 마치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고 싶지만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손가락이 번호판 위를 맴돌다가 화면을 내려놨다.

의료진이 들어온 것은 10분 뒤였다. 신경외과 의사 서준영과 간호사 둘. 서준영은 이준호의 동공을 확인하고, 손과 발의 감각을 테스트했다.

"다행이네요. 의식도 명확하고 신경학적 반응도 정상입니다."

"기억은?"

"측두엽 손상이 있습니다. 해마 일부도 영향을 받았고요. 사고 직전의 기억, 그리고 그보다 며칠 전의 기억이 손실된 상태인 것 같습니다."

서준영이 차트를 내려놨다. 그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눈빛은 뭔가 다른 것을 재고 있었다.

"그런데 뇌 손상 패턴이 좀 이례적입니다. 정상적으로는 손상된 부위의 기억이 영구적으로 손실되어야 하는데, 선생님의 경우 신경 재생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회복되면 기억이 돌아온다는 뜻인가요?"

서준영이 잠시 침묵했다.

"48시간 주기로 복원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신경통이 신호가 되는 식으로요. 물론 확실하지는 않고요. 개인차가 크거든요. 혹시 병원 입원 전에 다른 치료를 받으셨습니까?"

"아니. 왜?"

"그냥 묻는 겁니다."

서준영의 시선이 이준호의 머리 왼쪽으로 향했다. 손상 부위. 그 의사는 뭔가를 의심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말하지 않았다.

"회복 과정에서 신경통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심할 수도 있고요. 약물로도 완화가 잘 안 됩니다. 그럴 때는 참으셔야 합니다."

"얼마나?"

"개인차가 크지만, 대부분 몇 시간 정도입니다."

서준영이 나갔다. 간호사들도 따라나갔다. 다시 침묵이 돌아왔다. 수진이 여전히 휴대폰을 들었다 놨다를 반복했다.

"수진."

"뭐."

"뭐해?"

"아무것도."

그녀는 거짓말을 했다. 하지만 이준호는 묻지 않았다. 그는 눈을 감고 천장의 형광등 불빛을 느껴보려고 했다. 하지만 어둠만 있었다.

---

48시간이 지났을 때 신경통이 시작됐다.

두통이 아니었다. 그것은 뇌 전체를 누군가 손가락으로 집어 짜내는 느낌이었다. 신경 하나하나가 불타는 듯했다. 이준호는 침대를 움켜잡았다. 손가락이 하얀 시트를 찢었다.

"준호!"

수진이 나타났다. 언제부터 침대 옆에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녀가 의사를 부르러 갔다. 서준영이 들어왔고, 진통제를 놨다. 하지만 효과가 없었다. 신경통은 계속됐다.

그리고 그 통증 속에서 장면이 떠올랐다.

---

고문실. 지하 3층.

형광등 불빛. 콘크리트 벽. 의자에 묶인 남자. 김태희. 용의자. 강간 혐의.

"자백해."

이준호의 목소리. 자신의 목소리가 맞다. 하지만 자신이 그렇게 말한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

"안 했어요."

김태희가 말했다. 그의 얼굴은 부어 있었다. 왼쪽 눈이 감겨 있었다. 피가 입가에서 흘렀다.

이준호가 손을 들어올렸다. 주먹이 공기를 가르며 날아간다. 뼈와 살이 만나는 저항감. 김태희의 얼굴이 한 쪽으로 흔들린다. 그 감각이 생생했다. 손목에서 전해오는 반동. 따뜻함. 피의 냄새.

"자백해."

다시 같은 말. 같은 목소리. 같은 동작. 주먹이 또 날아간다. 이번엔 배다. 김태희의 몸이 의자에 내려앉으려 한다. 쇠사슬이 그를 잡아둔다. 신음이 목구멍에서 터진다.

"됐어. 됐어."

누군가가 말했다. 누구? 자신이 아니다. 목소리만 들렸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됐습니다."

자신의 목소리. 자신이 말했다. 손을 내렸다. 숨이 가팠다. 손가락을 펼쳤다. 손가락에 피가 묻어 있었다. 따뜻한 피. 자신의 피인가, 김태희의 피인가.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 감각이 중요했다. 그 온기가.

그 장면이 끝났다. 마치 영상이 멈춘 것처럼.

---

이준호는 눈을 떴다.

침대에 누워 있었다. 병원 천장. 형광등 불빛. 수진이 자신을 보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창백했다. 입이 조금 벌어져 있었다.

"기억이 왔어?"

서준영이 물었다. 언제부터 그 의사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신경통이 시작됐을 때부터.

"네."

"뭐예요?"

이준호는 말하지 않았다. 자신의 손을 들여다봤다. 손가락이 떨리고 있었다. 손가락에 흉터가 있었다. 작은 흉터. 가운데 손가락 밑 부분. 흰색 줄. 마치 칼이나 유리에 베인 자국 같았다.

"언제 생겼어?"

"뭐가요?"

"이 흉터. 언제."

수진이 다가왔다. 그녀는 이준호의 손을 들어 흉터를 봤다. 그녀의 얼굴이 더 창백해졌다.

"사고 때 생겼을 거야. 차 유리."

서준영이 말했다.

"네.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고 당시 차량이 충돌했으니까요. 유리 파편에 의한 상처일 겁니다."

하지만 이준호는 그 설명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기억 속 자신의 손에 묻어 있던 피. 그 피가 이 흉터와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기억 속 상황에서는 자신의 손가락이 다치지 않았다. 김태희의 얼굴을 때렸을 때 자신의 손가락은 멀쩡했다.

모순이다.

기억이 거짓이거나, 현실이 거짓이거나, 아니면 자신이 거짓이거나.

이준호는 손가락을 자세히 봤다. 흉터의 위치는 가운데 손가락 밑 부분이었다. 마디 바로 아래. 깊이는 얕아 보였지만, 형태는 명확했다. 일직선이 아니라 약간 휜 형태. 마치 누군가 의도적으로 낸 자국처럼.

"당신이 정말 당신인지 확인하고 싶어."

수진이 중얼거렸다. 그녀는 이준호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그 손을 자신의 얼굴 옆에 놨다. 마치 그 손이 자신을 칠 수도 있다는 것을 확인하려는 것처럼.

"뭐해."

"아무것도."

그녀는 손을 놨다. 그리고 일어났다. 침대에서 거리를 두었다. 2미터쯤. 의자까지 가는 거리. 병실 출입문 옆에 앉았다. 마치 도망칠 준비를 하는 것처럼.

서준영이 나갔다. 간호사들도 따라나갔다. 이준호와 수진만 남았다. 침묵이 돌아왔다. 그 침묵 속에서 이준호는 자신의 손가락을 자세히 봤다. 흉터. 그것이 무엇인지, 어디서 생겼는지, 왜 자신은 기억하지 못하는지. 모든 것이 의문이었다.

휴대폰이 울렸다. 병실 전화였다. 간호사가 들어와 수화기를 이준호에게 건넸다.

"형사님, 박과장입니다."

경찰청의 목소리. 박과장. 이준호의 동료. 아니, 상관.

"네."

"입원하신지 3일 되셨고요. 다행히 깨어나셨다고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좀 심각한 일이 생겼어요."

침묵.

"내부 고발이 접수됐습니다. 형사님에 대한 것입니다."

이준호는 말하지 않았다.

"고문 의혹이에요. 용의자 김태희를 대면 조사 중에 폭력을 사용했다는 고발입니다. 증인도 있고요."

"저?"

"네. 형사님이 조사받으셔야 합니다. 물론 회복하신 후에요. 지금은 경찰청에서 보호해드리고 있으니까 걱정 마세요."

박과장이 끊었다. 이준호는 수화기를 내려놨다. 그의 손이 떨렸다. 고문 의혹. 자신이 용의자를 때렸다는 것. 기억 속 그 장면이 현실인가.

수진의 얼굴이 창백했다. 그녀는 휴대폰을 들었다. 손가락이 번호를 입력했다. 누군가에게 전화를 거는 것 같았다. 하지만 통화를 연결하지는 않았다. 그냥 화면을 내려놨다. 손이 떨렸다.

"수진."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침대에서 더 멀리 떨어져 앉았다. 마치 자신의 남편이 아니라 누군가 다른 사람을 보고 있는 것 같은 눈빛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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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이준호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천장을 바라봤다. 형광등 불빛이 흰색 천장을 비추고 있었다. 옆 침대에는 아무도 없었다. 병원 규정상 1인실이 아니었지만, 이준호는 혼자였다. 경찰청의 '보호'였다.

자정을 넘어섰다. 수진은 여전히 출입문 옆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녀의 눈은 감겨 있었지만, 이준호는 그녀가 자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숨이 고르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를 지켜보는 것처럼 긴장한 숨.

이준호는 자신의 손을 다시 들어 봤다. 어둠 속에서 흉터는 더욱 뚜렷해 보였다. 손가락 밑 부분의 그 흰색 줄. 그것이 언제 생겼는지. 차 유리라고 했다. 사고 때 생겼을 거라고. 하지만 기억 속에서는 자신의 손가락이 멀쩡했다. 김태희의 입술에서 흘러나온 피가 자신의 손에 묻었지만, 자신의 손가락에서 피가 나지는 않았다.

모순이다.

기억이 거짓이거나, 현실이 거짓이거나, 아니면 자신이 거짓이거나.

새벽 3시 42분.

이준호의 뇌에서 신경통이 터져 나왔다. 마치 누군가 두개골 안쪽을 손톱으로 긁어내는 것 같은 고통. 그는 신음을 삼켰다. 입술을 깨물었다. 피 맛이 났다. 손가락이 침대 시트를 움켜잡았다. 그리고 그 순간, 또 다른 기억이 돌아왔다.

---

고문실.

형광등이 밝다. 너무 밝다. 눈이 부신다. 앞에 남자가 앉아 있다. 의자에 묶여 있다. 손목에 쇠사슬. 발목에 쇠사슬. 그 남자의 얼굴은 부어 있다. 왼쪽 눈이 감겨 있고, 오른쪽 눈만 떠져 있다. 입술에서 피가 흐르고 있다.

"다시 말해."

자신의 목소리다. 하지만 자신이 아닌 것 같다. 냉정하다. 감정이 없다.

"안 했어요. 진짜 안 했어요."

남자가 울부짖는다. 목소리가 갈라져 있다. 목구멍이 상했다.

"그 여자 봤어? 강간 혐의가 7건이야. 7건. 그리고 넌 그 중 3건에 관여했다. 자백해."

"안 했어요."

자신의 주먹이 날아간다. 남자의 뺨을 친다. 남자의 머리가 옆으로 젖혀진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다. 입에서 피가 더 많이 흐른다. 그 피가 자신의 주먹에 묻는다. 따뜻하고 끈기 있는 감각.

"자백해."

"안 했어요! 진짜!"

또 다른 주먹. 이번엔 배다. 남자가 숨을 쉴 수 없다. 공기를 빨아들이려고 입을 벌린다. 하지만 나오는 것은 신음뿐이다. 자신의 손가락이 남자의 피에 젖는다. 따뜻한 피. 살아 있는 피.

"다시."

자신의 손이 또 날아간다. 이번엔 턱이다. 남자의 머리가 뒤로 젖혀진다. 이번엔 안 돌아온다. 목이 꺾인 것 같은 소리. 아니다. 뼈가 부러지는 소리.

"김태희."

누군가의 목소리. 뒤에서.

"이정도면 충분해."

자신이 돌아본다. 뒤에 남자가 서 있다. 50대 정도. 얼굴이 희미하다. 기억이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목소리는 알 것 같다. 누구지?

"좀 더 해야 해."

자신의 목소리.

"이미 충분해. 그 다음은 우리가 처리한다."

그 남자가 손짓한다. 누군가 들어온다. 순복부를 입은 남자들. 그들이 의자에 묶인 김태희를 풀어낸다. 김태희는 일어날 수 없다. 다리에 힘이 없다. 그들이 그를 옮겨간다.

자신은 남아 있다. 고문실에. 혼자. 손에는 피.

자신의 손가락을 본다. 가운데 손가락 밑 부분에서 피가 흐르고 있다. 언제 났지? 자신은 기억하지 못한다. 손가락을 봤을 때 이미 피가 흐르고 있었다.

---

이준호는 눈을 떴다.

침대. 병실. 형광등. 천장.

신경통은 여전했다. 하지만 기억은 끝났다. 새로운 기억이 온 것이다. 기억 속 자신. 그 남자. 그의 얼굴은 명확하지 않았지만, 그의 목소리는 알 것 같았다. 누구지? 경찰청 사람인가? 아니면 다른 누군가인가?

이준호는 손을 들어 봤다. 손가락 밑 부분을 살펴봤다. 흉터는 있었지만, 피는 없었다. 당연하다. 기억 속의 일은 과거였다. 얼마나 과거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수진이 일어났다. 그녀의 눈이 열렸다. 그리고 이준호를 봤다. 그 눈빛은 더욱 변해 있었다. 두려움. 경계. 그리고 무언가 다른 감정. 혐오에 가까운.

"괜찮아?"

그녀가 물었다.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응."

이준호는 대답했다. 거짓이었다. 전혀 괜찮지 않았다. 기억 속 자신은 자신이 아닌 것 같았다. 그리고 동시에 완벽하게 자신이었다. 그 냉정함. 그 폭력. 그 손에서 흘러내리는 피의 감각. 모두 자신의 것이었다. 적어도 기억 속에서는.

"경찰청에서 전화 받은 거 들었어?"

"응."

"고문?"

"모르겠어."

"당신이 못 한 짓이야. 당신은 그런 사람이 아니야."

수진이 말했다. 하지만 그녀의 눈은 거짓을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을 믿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자신을 모르고 있었다. 마치 자신이 아닌 누군가를 보고 있는 것처럼.

"당신이 정말 당신인지 확인하고 싶어."

그녀가 다시 말했다. 침대 옆에 다시 앉았다. 하지만 여전히 거리를 유지했다. 마치 야생동물을 관찰하는 것처럼. 그 거리감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이준호는 말하지 않았다. 자신이 정말 자신인지, 그도 알 수 없었다.

---

그 다음 48시간은 진통의 연속이었다.

의료진은 신경통을 관리하려고 했지만, 약물은 효과가 없었다. 이준호는 침대에서 몸을 뒹굴었다. 마치 자신의 뇌가 자신을 지옥으로 끌어가는 것 같았다. 신경통의 파동 사이에 기억이 흐릿해졌다. 고문실의 장면이 점점 희미해졌다. 하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마치 물속에 가라앉은 것처럼.

경찰청에서 계속 전화가 왔다. 박과장. 그리고 다른 목소리들. 이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수진이 받았다. 그녀의 목소리는 점점 더 차가워졌다.

"네, 알겠습니다."

"네, 형사님이 회복되면 경찰청에 출두할 것입니다."

"네, 저도 모릅니다."

마지막 말은 자신에게 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휴대폰을 내려놨다. 그리고 이준호를 봤다. 그 눈빛은 더욱 낯설어졌다. 마치 자신을 모르는 여자를 보고 있는 것처럼.

이준호는 자신의 수첩을 들었다. 서준영이 건넸던 것이다. 기억을 기록하라고 했다. 이미 첫 번째 기억을 적어놨다. 고문실. 김태희. 그리고 뒤에 서 있던 남자. 그 남자의 목소리는 알 것 같은데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가 수첩에 새로운 기억을 적기 시작했다. 고문실의 장면. 자신의 손에 피가 묻는 장면. 그리고 손가락에서 흘러나오는 피. 모든 것을 세세하게 기록했다. 마치 누군가에게 증거를 남기는 것처럼.

수진이 그 수첩을 봤다. 그녀의 얼굴이 더욱 창백해졌다.

"뭘 하는 거야?"

"기억을 기록하는 거야."

"왜?"

"까먹을 수도 있으니까."

"그것도 진짜 기억이야?"

수진이 물었다. 그 질문에 이준호는 대답할 수 없었다. 진짜 기억인지 거짓 기억인지, 누가 알겠는가. 자신도 모르고 있었다.

---

48시간 후, 새벽 4시 15분.

또 다른 신경통이 터져 나왔다. 이전보다 더 심했다. 마치 자신의 두개골이 갈라지는 것 같은 고통. 이준호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손으로 머리를 움켜잡았다. 손톱이 두피를 긁었다. 피가 났다. 하지만 그보다 더 심한 고통이 뇌에서 터져 나왔다.

그리고 또 다른 기억이 돌아왔다.

---

주차장.

밤 11시쯤. 형광등 불빛. 자동차들이 줄지어 세워져 있다. 텅 빈 주차장. 발자국 소리. 자신의 발자국. 누군가를 따라가고 있다. 여자다. 검은 코트를 입은 여자. 긴 머리. 빠른 걸음.

"안 돼."

자신이 말한다. 여자가 돌아본다. 얼굴이 보인다. 그리고 인식한다. 이 여자는 알고 있는 사람이다. 수진의 친구. 박민지. 그녀의 얼굴에 두려움이 떠오른다.

"당신... 왜..."

"얘기해."

자신이 다가간다. 손에 칼이 있다. 언제부터 있었지? 자신도 모른다. 기억에 칼이 있었다. 그것뿐이다.

"뭘 얘기하라고..."

박민지가 뒤로 물러난다. 자동차에 등을 대고 선다. 갇혔다. 앞에는 자신. 뒤에는 자동차.

"내 것을 알아. 넌 알아."

자신의 목소리는 낮고 위협적이다. 마치 누군가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제발... 제발..."

박민지가 울먹인다. 손을 들어 올린다. 항복의 제스처.

"잠깐... 생각할 시간을 줄 수 없어?"

"시간이 없어."

자신이 칼을 들어올린다. 칼날이 형광등 불빛에 반짝인다. 그리고 내려찍는다.

저항감. 살이 갈라지는 감각. 따뜻한 액체가 손에 흐른다. 박민지의 비명. 그 비명이 주차장에 울려 퍼진다. 자신은 다시 칼을 올린다. 또 내려찍는다. 또 다시. 그리고 또.

손가락에서 피가 흐른다. 박민지의 피인가, 자신의 피인가. 더 이상 구분이 되지 않는다. 모든 것이 피로 물들어 있다. 따뜻한 피. 생명의 피.

박민지의 몸이 바닥에 쓰러진다. 그녀의 눈이 자신을 본다. 죽어가는 눈. 그 눈에는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것 같은 표정이 있다. 그리고 그 표정은 자신도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

이준호는 눈을 떴다.

침대에서 떨어졌다. 신체가 경련했다. 뇌에서 신경통이 계속되었다. 그리고 기억도 계속되었다. 자신의 손에 피가 있다. 박민지의 피. 따뜻한 피. 그리고 자신은 그 피를 흘리고 있는 것이다.

"당신!"

수진이 침대에서 내려왔다. 그녀는 이준호를 들어올리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의 손이 멈췄다. 이준호의 손을 봤기 때문이다. 그의 손에는 피가 없었다. 하지만 기억 속에서는 피가 묻어 있었다.

"뭐... 뭘 봤어?"

수진이 물었다.

"모르겠어."

이준호는 대답했다. 정말 모르겠었다. 자신이 본 것이 기억인지, 악몽인지, 아니면 누군가 자신의 뇌에 주입한 거짓 기억인지. 모든 것이 불명확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명확했다.

자신의 손이 박민지를 죽였다.

그리고 자신은 그 감각을 기억하고 있었다. 칼이 살을 가르는 저항감. 피가 손에 흐르는 따뜻함. 그 모든 것을.

간호사들이 들어왔다. 이준호를 침대로 옮겼다. 신경통 약을 주입했다. 하지만 여전히 효과가 없었다. 서준영이 들어왔다. 그는 이준호의 눈을 봤다.

"또?"

"응."

이준호는 대답했다.

"뭐를 봤어?"

"살인."

이준호는 말했다. 그리고 수진을 봤다. 그녀의 얼굴은 창백했다. 마치 자신의 남편이 정말 살인자라는 것을 확인한 것처럼.

"제... 제 친구."

수진이 중얼거렸다.

"박민지?"

서준영이 물었다.

"네. 제 친구가... 3개월 전에..."

수진은 완성하지 못했다. 하지만 모두가 이해했다. 박민지는 죽었다. 그리고 이준호의 기억 속에서 자신이 그녀를 죽였다.

이준호는 자신의 손을 들어 봤다. 손가락. 그 손가락에 다시 흉터가 보였다. 가운데 손가락 밑 부분의 흰색 줄. 이번엔 그 흉터의 의미가 달랐다. 그것은 차 유리에 베인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의 범행의 증거였다. 칼이 손가락을 베인 자국. 생생한 증거.

---

그 밤, 경찰청에서 전화가 또 왔다.

박과장이 아니었다. 다른 목소리였다. 여성 목소리. 경찰청 감시단 소속이라고 했다.

"형사님, 박민지 사건이 재조사 중입니다."

"네."

이준호는 대답했다.

"현장에 남겨진 증거들을 다시 검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형사님, 당신 DNA가 피해자 손톱에서 나왔습니다."

침묵이 떨어졌다. 그 여성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명확했다.

"뭐라고?"

이준호가 물었다.

"피해자 손톱에서 검출된 DNA가 형사님과 일치합니다. 혹시 현장에서 뭔가 기억나시는 게 있으신가요?"

"없습니다."

거짓이었다. 모든 것이 기억났다. 칼. 피. 비명. 그리고 박민지의 죽어가는 눈빛. 하지만 이준호는 말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신의 범행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군요. 회복되시면 경찰청에 출두해 주시기 바랍니다. 형사님은 현재 용의자입니다."

전화가 끊겼다.

수진이 이준호를 봤다. 그 눈빛은 더 이상 자신의 아내의 눈빛이 아니었다. 그것은 낯선 여자의 눈빛이었다. 경찰의 눈빛. 아니, 피해자의 눈빛.

"당신이... 박민지를..."

그녀는 완성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준호는 이해했다. 그녀는 이미 자신을 범인으로 인정했다. 기억 속의 자신을 보고, 현실의 자신을 보고, 그리고 자신의 손의 흉터를 보고.

이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말이 없었다. 자신이 정말 범인인지, 아니면 누군가 자신의 뇌를 조작했는지, 그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명확했다.

기억이 현실이 되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은 그 현실을 멈출 수 없었다.

침대 옆에서 수진의 손가락이 침대 난간을 집었다 놨다를 반복했다. 마치 뭔가를 하고 싶은데 할 수 없는 상태. 그녀는 휴대폰을 들었다. 화면을 켰다. 경찰청 번호를 찾는 것 같았다. 하지만 전화를 걸지는 않았다. 손이 떨렸다. 번호판 위를 맴돌다가 화면을 내려놨다.

"수진."

그녀는 돌아보지 않았다.

"넌 뭘 하려고?"

"모르겠어."

그녀의 목소리는 작았다. 거의 중얼거림에 가까웠다.

"당신을 신고하고 싶어. 하지만..."

"하지만?"

"당신이 정말 당신이 아닐 수도 있잖아."

그 말이 침묵으로 떨어졌다. 이준호는 자신의 손을 다시 들어 봤다. 흉터. 그것이 유일한 증거였다. 하지만 증거가 뭘 증명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형광등 불빛이 천장을 밝히고 있었다. 그 아래서 두 사람은 침묵 속에 남겨져 있었다. 남편과 아내. 하지만 더 이상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마치 낯선 사람들처럼.

그리고 기억은 계속될 것이었다. 48시간마다. 새로운 신경통. 새로운 기억. 새로운 범행. 새로운 진실. 아니면 새로운 거짓.

이준호는 눈을 감았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도 형광등 불빛이 보였다. 마치 자신의 뇌 속에서 빛나고 있는 것처럼.

그 빛 속에서 또 다른 기억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었다.

병실 문이 열렸다. 간호사들이 들어왔다. 야간 순찰이었다. 그들은 이준호의 생체신호를 확인했다. 맥박이 빨랐다. 혈압도 높았다. 신경통의 여파였다. 간호사 중 한 명이 수진을 봤다. 그 여자의 얼굴은 창백했다. 거의 유령처럼.

"부인, 좀 쉬세요."

간호사가 말했다.

"괜찮습니다."

수진이 대답했다. 하지만 그녀는 움직이지 않았다. 여전히 침대 난간을 집었다 놨다를 반복했다. 마치 자신의 손을 통제할 수 없는 것처럼.

간호사들이 나갔다. 다시 침묵이 돌아왔다. 형광등 불빛만이 천장에서 흰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이준호는 자신의 수첩을 다시 들었다. 이미 두 번의 기억을 적어놨다. 고문실. 주차장. 그리고 그 속에서 자신이 저지른 폭력과 살인. 모든 것이 기록되어 있었다.

그가 세 번째 기억을 적기 시작했다. 하지만 손이 떨렸다. 글씨가 흔들렸다. 마치 자신이 쓰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다른 사람이 쓰는 것처럼.

수진이 그 수첩을 봤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의자에 앉아 있지 않았다. 침대 가까이 다가왔다. 하지만 여전히 거리를 유지했다. 마치 자신의 남편이 아니라 위험한 동물을 대하는 것처럼.

"당신이 정말 당신인지 확인하고 싶어."

그녀가 다시 말했다. 하지만 이번엔 그 말이 의문이 아니라 확신처럼 들렸다. 마치 자신이 이미 답을 알고 있는 것처럼.

이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자신의 손을 들어 봤다. 손가락의 흉터. 그것이 자신이 누구인지를 말해주고 있었다. 그것이 자신의 정체성이었다.

형광등 불빛이 그 흉터를 밝히고 있었다. 마치 그것이 증거라는 것을 강조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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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6시.

병실의 문이 다시 열렸다. 이번엔 간호사가 아니었다. 경찰 제복을 입은 남자였다. 그리고 그 뒤에 또 다른 남자가 서 있었다. 50대. 얼굴이 희미하게 보였다. 하지만 목소리는 알 것 같았다.

그 남자가 입을 열었다.

"이준호 형사. 당신을 체포합니다."

그 목소리. 이준호는 그것을 알았다. 기억 속에서 들었던 목소리. 고문실에서. "이미 충분해. 그 다음은 우리가 처리한다"고 말했던 그 남자의 목소리.

그 남자가 다가왔다. 그리고 이준호의 얼굴을 봤다. 그의 눈빛은 차갑고 계산적이었다.

"당신은 이미 끝났어. 박민지 사건의 DNA 증거도 있고, 고문 의혹도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그 남자가 이준호의 손을 들어 올렸다. 손가락의 흉터를 봤다.

"이거야. 당신의 손가락. 박민지의 손톱에서 나온 피와 일치하는 DNA. 완벽한 증거지."

그 남자가 웃었다. 그것은 승리의 웃음이었다.

"당신이 뭘 했는지 당신도 알지 못하겠지.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당신이 했다는 거야."

이준호는 말할 수 없었다. 자신이 한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 자신을 함정에 빠뜨린 것인지. 그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모든 증거는 자신을 가리키고 있었다.

수진이 비명을 질렀다.

"아니야! 당신이 뭐 하는 거야!"

그녀가 경찰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경찰은 그녀를 밀어냈다. 그녀는 바닥에 쓰러졌다.

"부인, 진정하세요."

경찰이 말했다.

이준호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다리에 깁스가 감겨 있었지만, 그는 일어났다. 그 남자를 봤다. 그 남자의 얼굴이 이제 명확해졌다. 경찰청 부국장. 이준호의 상관. 아니, 자신을 함정에 빠뜨린 자.

"당신이... 했어?"

이준호가 물었다.

그 남자가 웃었다.

"나? 아니야. 너야. 너는 단지 기억하지 못할 뿐이야."

경찰들이 이준호를 침대에서 내렸다. 수갑을 채웠다. 그는 저항하지 않았다. 저항할 힘이 없었다. 자신이 뭘 했는지 모르는데, 자신의 손가락에는 증거가 묻어 있었다.

수진이 울고 있었다. 그녀는 바닥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이준호를 봤다. 그 눈빛은 더 이상 사랑의 눈빛이 아니었다. 그것은 낯선 여자의 눈빛이었다. 경찰의 눈빛. 아니, 피해자의 눈빛.

"당신이 정말 당신이 아니었어."

그녀가 중얼거렸다.

경찰들이 이준호를 끌어냈다. 그는 침대를 떠났다. 수진도 뒤따랐다. 하지만 경찰은 그녀를 막았다.

"부인, 뒤에 계세요."

이준호는 복도로 나갔다. 형광등 불빛이 복도를 밝히고 있었다. 그 빛 속에서 그는 자신의 손가락을 다시 봤다. 흉터. 그것이 자신의 정체성이었다. 그것이 자신이 누구인지를 말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을 감옥으로 보낼 것이었다.

병원 엘리베이터 앞에서 그 남자가 다시 나타났다. 부국장. 그는 이준호의 어깨에 손을 놨다.

"기억이 돌아올 거야. 계속. 48시간마다. 그리고 그 기억들은 모두 너를 더 깊은 지옥으로 끌어갈 거야."

그 남자가 웃었다.

"왜냐하면 그 기억들은 모두 진짜니까. 너는 정말로 그걸 했어. 넌 단지 기억하지 못할 뿐이야."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경찰들이 이준호를 밀어 넣었다. 수진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형광등 불빛이 엘리베이터 안을 밝히고 있었다. 그 빛 속에서 이준호는 자신의 손을 들어 봤다. 손가락의 흉터. 그것이 증거였다. 그것이 진실이었다.

아니면 그렇게 보이도록 만들어진 거짓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증거였다. 그리고 증거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했다. 문이 열렸다. 경찰청 차량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준호는 그 차에 태워졌다. 그리고 경찰청으로 향했다.

그 차 안에서 이준호는 자신의 손을 계속 봤다. 손가락의 흉터. 그것이 자신의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이 뭘 했는지.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형광등 불빛이 차 창문을 통해 들어왔다. 밤거리의 불빛. 그것이 자신을 감옥으로 인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서 또 다른 기억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었다. 48시간 후. 새로운 신경통. 새로운 진실. 아니면 새로운 거짓.

하지만 이제 그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이미 모든 것이 끝났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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