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밤 10시 43분. 응급실 대기실의 형광등이 도경의 얼굴을 하얀색으로 만들었다.

의식 회복. 강여울이 깨어났다는 보고를 받은 지 17분이 지났다. 도경은 메모장의 같은 줄을 다섯 번 지웠다. 펜끝이 종이를 뚫었다.

"다섯 번 심문은 규칙 위반입니다."

유하가 옆에 섰다. 도경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규칙이 있는 이유를 아십니까?"

"안다."

"그런데?"

"규칙이 깨졌다."

도경의 손이 떨렸다. 왼손으로 오른손목을 누르자, 시계 줄이 손가락 사이로 파고들었다. 15년을 매일 같은 시간에 차던 시계. 시간은 여전히 정확하게 흐르고 있었다. 도경은 초침을 세었다. 하나, 둘, 셋.

"당신이 가면 진실이 흐릿해질 것 같습니다."

유하의 말이 들렸다. 도경은 여전히 초침을 세고 있었다.

"아니다. 이미 흐릿하다."

자정 17분. 심문실 복도의 조명이 깜빡였다. 강여울은 침상에 누워 있었지만, 이미 호스가 빠져 있었다. 의식이 돌아오자 자신의 상태를 가늠하는 데 1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녀는 도경을 보자 웃었다.

심문실의 녹음기가 작동했다. 도경은 의자를 밀어냈다. 철제 다리가 바닥을 긁었다.

"신혜진."

도경이 입을 열었다. 강여울의 미소가 깊어졌다.

"당신이 읽은 것이 진실이 아니라 당신의 기억이었다는 것을 이제 아셨군요."

도경의 손가락이 테이블을 두드렸다. 다섯 번. 멈췄다.

"신혜진 실종이 언제였습니까?"

"2008년 4월 17일. 토요일 오후 2시 31분."

강여울의 답변은 정확했다. 너무 정확했다. 도경은 그 정확함 자체를 읽기 시작했다. 정확함이 신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정확함 뒤의 침묵이 거짓을 만든다는 것을 15년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 침묵은 없었다. 강여울은 쉼 없이 말을 이었다.

"박신혜는 2008년 4월 24일. 목요일 오후 7시 42분. 저는 두 번 죽였습니다. 한 번은 손으로, 한 번은 증거로."

도경이 펜을 내려놨다. 강여울이 계속했다.

"신혜진을 죽인 것은 그냥 실수였습니다. 직장에서 저를 무시하던 동료. 한 번의 밤, 한 번의 실수. 저는 그걸 묻었어요. 강변 깊숙한 곳에. 그런데 박신혜가 나타났죠. 그 여자는 저를 봤어요. 그 밤에 저를 봤어요."

강여울의 손이 테이블 위에서 움직였다. 도경은 그 손의 온도를 읽으려 했다. 하지만 읽을 것이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행동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도경이 읽기를 원하는 감정을 배치하고 있었다.

"당신이 박신혜를 죽였습니다."

도경이 말했다.

"네, 그렇게 되어야 했어요. 신혜진은 우연이었지만, 박신혜는 필연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필연을 당신이 만들어주셨어요."

"내가?"

"당신은 윤태오를 봤어요. 제 진술을 들으면서, 윤태오의 어긋난 온도를 감지했어요. 그건 제가 준 신호였습니다. 당신이 정확하게 읽을 거라는 걸 알았거든요."

도경의 손목시계를 가리키는 강여울의 검지손가락. 그 손가락은 떨리지 않았다.

"당신은 확신하는 사람이에요. 확신하는 순간, 다른 가능성을 닫아버리죠. 저는 그걸 15년 동안 관찰했어요. 당신이 제 신호를 어떻게 읽을지, 어디서 멈출지. 제가 당신의 감각을 설계했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아세요?"

도경이 입을 열었다. 강여울이 먼저 말했다.

"당신이 본 것은 없습니다."

침묵이 내려앉았다. 심문실의 시계가 째깍째깍 울렸다. 도경은 자신이 15년 동안 무엇을 보았는지 다시 생각해보려 했다. 윤태오의 눈. 그 눈이 내려다보는 각도. 손가락이 테이블을 누르는 깊이. 그 손가락 아래 나타나는 손톱의 초승달 모양.

그런데 그 장면이 정말 있었는가.

"당신이 본 것은 없다고 했는데, 윤태오의 목소리는 어떻게 조작했습니까?"

도경이 물었다.

"조작이 아니라 편집입니다. 당신이 이미 듣기를 원하는 것만 남기는."

"당신이 그 편집을 할 수 있었습니까?"

"당신이 할 수 있게 해줬어요. 당신이 그 신호를 읽을 거라는 확신이 저를 만들었거든요."

도경은 강여울의 말 속 모순을 찾으려 했다. 하지만 찾을 것이 없었다. 그녀는 이미 도경의 논리를 설계했다. 도경이 반박할 모든 것을 미리 배치해놓았다.

"그럼 박신혜의 카메라는?"

"강변에 묻어놨어요. 당신이 찾을 때까지."

도경의 손가락이 테이블을 다시 두드렸다. 다섯 번. 그 다섯 번의 리듬 속에서 도경은 자신의 기억을 재구성해보려 했다. 윤태오를 심문했던 그날. 그 심문실의 온도. 그 온도가 정말 있었는가, 아니면 도경이 만들어낸 것인가.

심문실 밖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도경이 녹음기를 멈췄다. 강여울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그 미소는 도경이 읽은 모든 거짓 중에서 가장 참된 것 같았다. 참된 거짓. 그런 것이 존재하는가.

복도로 나오는 순간 유하가 다가왔다. 그녀의 얼굴이 창백했다.

"윤태오가 제출했습니다. 물증을."

도경이 멈춰 섰다.

"뭐?"

"15년 전 당신이 놓친 것입니다."

유하의 손에 투명한 증거 봉투가 들려 있었다. 도경은 그걸 집으려다 손을 거뒀다. 봉투 안의 물체가 선명하게 보였다. 카메라. 디지털카메라. 기억은 없었다. 하지만 그 카메라가 무엇인지는 알았다.

"박신혜가 가지고 있었어요. 그 밤에."

유하가 말했다.

"15년 전 경찰은 이걸 못 찾았어요. 윤태오도 못 찾았어요. 그런데 강여울이 남겨놨어요. 그의 집에. 계획된 것 같습니다. 윤태오가 15년을 사는 동안, 이걸 찾을 때까지."

도경이 봉투를 집었다. 손이 떨렸다. 카메라의 무게는 생각보다 가벼웠다. 하지만 그 안의 기억은 도경을 짓눌렀다.

"기록실로 가야 합니다."

도경이 말했다.

"지금입니까?"

"지금."

도경은 복도를 빠져나갔다. 밤 거리는 차가웠다. 손목시계가 자정을 넘었다. 도경이 기록실로 향하는 발걸음이 빨라질수록, 뒤에서 휴대폰이 울렸다.

명진섭이었다.

"도경. 이제 멈춰야 한다."

목소리는 차갑고 단호했다.

"왜?"

"강여울이 합의를 제시했다. 자신의 죄를 모두 인정하는 대신, 윤태오의 재심이 진행되지 않는 조건으로."

도경이 걸음을 멈췄다.

"그녀가?"

"그녀가다. 조직은 이미 결정했다. 윤태오는 무죄 판정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15년 전 사건은 종결된 채로 남겠지. 박신혜는 미제사건이 된다. 신혜진도 그렇게."

"그건 정의가 아니다."

"정의? 도경, 당신이 뭘 말하는 건가?"

명진섭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당신은 15년 전에 정의를 했어? 아니면 당신의 확신을 했어? 이제 와서 그걸 구분하려고?"

도경의 손가락이 휴대폰을 쥐었다. 분노였는지 절망이었는지 구분할 수 없었다. 다만 자신이 무엇을 해왔는지 정확히 보는 것이 두려웠다. 그것이 책임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짓누르는 것이 두려웠다.

"기록실에 가지 마. 집으로 돌아가. 은퇴 서류에 서명했으니 이제 끝이다. 다 끝이다."

전화가 끊겼다.

도경은 기록실로 향하는 발걸음을 멈췄다. 거리의 가로등이 깜빡였다. 명진섭의 말이 맞다면, 기록실의 증거들은 법정에 오르지 않을 것이었다. 박신혜와 신혜진은 영원히 미제로 남을 것이었다. 도경이 기록실에 가든 가지 않든, 결과는 같았다.

하지만 도경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록실로. 손목시계가 울렸다. 밤 12시 51분. 멈추는 순간 자신이 무엇을 해왔는지 정확하게 보일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이 도경이 가장 두려워하던 온도였다.

# 기록실

밤 1시 3분. 자문실의 기록실은 형광등 하나만 켜져 있었다. 도경이 문을 밀고 들어서자 공기가 얼어붙은 듯했다. 카메라를 든 손이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기록실 담당자는 없었다. 유하가 미리 연락해둔 것이었다. 도경은 증거 봉투를 책상 위에 놓고 한참을 바라만 봤다.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았다. 무엇이 더 두려운지 구분할 수 없었다. 카메라를 켜는 것인지, 아니면 켜지 않는 것인지.

결국 손가락이 움직였다.

카메라는 구형 디지털카메라였다. 2009년식으로 보였다. 배터리가 없을 리 없었는데, 강여울이 보관해온 것이라면 충전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도경은 전원 버튼을 눌렀다.

화면이 켜졌다.

내장 메모리에는 사진이 남아있었다. 촬영 날짜는 2008년 4월 22일. 박신혜가 실종되던 날 오후 3시 47분부터 오후 5시 23분까지. 1시간 36분 동안 촬영된 것들.

첫 번째 사진. 강변의 산책로. 벚꽃이 흩어지고 있었다. 피크닉을 준비하는 여자의 손. 도시락을 펼치는 모습. 그 옆에 누군가의 그림자. 카메라를 드는 손. 박신혜의 손이었다.

두 번째 사진. 같은 자리. 다른 각도. 여자가 웃고 있었다. 옆에 남자가 앉아있었다. 얼굴은 잘려있었다. 어깨만 보였다. 카메라에 잡힌 것은 그 남자의 손목뿐이었다.

도경의 호흡이 얕아졌다.

손목에 시계가 차여있었다. 특이한 디자인의 손목시계. 금속 밴드. 도경의 손이 자신의 손목으로 향했다. 같은 시계였다. 15년을 매일 차던 그것. 하지만 사진은 2008년 4월 22일이었다. 도경이 그 시계를 산 것은 2010년이었다.

시간이 맞지 않았다.

손가락이 화면을 누르려다 멈췄다. 다음 사진. 세 번째 사진으로 넘어갔다.

박신혜가 카메라를 자신에게 향했다. 셀카. 그 뒤에 남자. 얼굴이 보였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도경은 그 얼굴을 알았다.

15년 전 자신이 심문실에서 마주했던 얼굴. 윤태오.

하지만 그건 아니었다.

도경의 손이 떨렸다. 카메라 화면이 흔들렸다. 네 번째 사진. 다섯 번째 사진. 여섯 번째. 계속 같은 얼굴. 계속 같은 시계. 하지만 각도가 조금씩 달랐다. 조명이 일관되지 않았다. 배경의 나무 위치가 이상했다.

일곱 번째 사진부터 달라졌다.

박신혜가 없었다. 빈 산책로. 그리고 남자 혼자. 얼굴이 정확히 보였다. 도경은 그 얼굴을 알았다. 자신의 거울 속에서 본 얼굴보다도 더 잘 알았다.

자신이었다.

도경의 호흡이 멈췄다. 손이 떨렸다. 화면 속의 자신은 웃고 있었다. 자신은 그런 표정을 한 적이 없었다. 손가락이 화면 위에서 맴돌았다. 다음 사진을 보려는 손가락이 얼어붙었다.

여덟 번째. 아홉 번째. 열 번째. 모두 같은 자리, 같은 얼굴, 같은 시계. 하지만 햇빛의 각도가 계속 변했다. 그림자의 길이가 일관되지 않았다. 도경의 손가락 관절이 자연스럽지 않았다. 손톱의 초승달 모양이 사진마다 달랐다.

기록실의 형광등이 울렸다.

도경은 카메라를 내려놨다. 손이 떨렸다. 자신이 본 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하지만 알고 싶지 않았다.

문이 열렸다. 유하가 들어섰다. 그녀의 얼굴이 창백했다.

"도경."

유하가 말했다.

"그 사진들을 봤습니까?"

도경이 카메라를 내려놨다.

"봤다."

"법의학 전문가가 분석했습니다."

유하가 책상에 앉았다. 그녀의 손에는 파일이 들려있었다.

"그 사진들은 조작된 것입니다. 포토샵으로. 고도의 기술로. 배경의 나무, 햇빛의 각도, 당신의 손가락 관절까지도. 모두 다른 사진들을 합성한 것이에요. 픽셀 단위의 오류가 있습니다. 빛의 굴절 각도가 맞지 않아요. 그림자의 길이 계산이 틀렸습니다."

유하가 파일을 펼쳤다. 분석 결과가 나왔다. 도경은 그것을 읽기 시작했다.

"박신혜는?"

도경이 물었다.

"박신혜의 사진들은 진짜입니다. 처음 여섯 장. 그 다음은 모두 조작. 당신이 들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물건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빛의 각도가 맞지 않아요."

도경이 강여울의 설계를 역추적해보려 했다. 그녀가 15년을 기다리면서 무엇을 했는가. 언제 카메라를 구했는가. 언제 사진을 합성했는가. 얼마나 정교하게 도경의 얼굴을 만들어냈는가.

그리고 도경은 그것이 얼마나 쉬웠을 것인지 알았다.

왜냐하면 도경 자신이 15년을 기다리면서 자신의 기억을 조작했기 때문이다.

"강여울이 이걸 만들었습니다. 15년을 기다리면서. 당신이 자신의 죄를 의심하게 만들기 위해. 당신의 기억을 흔들기 위해. 당신 자신을 범인으로 만들기 위해."

유하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럼 박신혜는?"

"박신혜는 강여울이 죽였습니다. 신혜진도. 그리고 다른 피해자가 더 있습니다. 아직 발견되지 않은."

"윤태오는?"

"윤태오는 정말 무고했습니다. 완전히. 그 모든 시간이 당신의 감각 때문에 빼앗겼어요. 강여울의 조작 때문에."

도경이 일어섰다.

"명진섭은?"

"조직의 결정을 따를 겁니다. 이 증거들은 법원에 제출되지 않을 거예요. 강여울의 합의 조건 때문에. 윤태오는 무죄로 나갈 거지만, 박신혜는 미제로. 신혜진도 미제로."

유하가 말했다.

"당신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도경은 기록실을 둘러봤다. 15년의 기록들. 자신이 심문했던 사람들. 자신이 확신했던 것들. 모든 것이 한 사람의 설계 위에 있었다.

"나가야겠다."

도경이 말했다.

"어디로요?"

"강변으로."

강변에 가야 한다. 그곳에서 자신이 정말 무엇을 했는지, 기억이 아닌 발자국으로 확인해야 했다. 강여울이 신혜진을 묻은 그곳. 그곳에 도경의 흔적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해야 했다. 자신의 기억이 조작되었다면, 그곳이 유일한 증거였다.

도경이 기록실을 빠져나갔다. 밤거리는 여전히 차가웠다. 손목시계가 울렸다. 밤 1시 17분. 시간은 흐르고 있었고, 도경의 확신은 역행하고 있었다.

뒤에서 유하의 목소리가 들렸다.

"도경. 당신은 누구를 심문해야 합니까?"

도경이 멈춰 섰다.

"당신 자신을 심문해야 합니까? 아니면 강여울을?"

유하가 말했다.

"아니면 15년 동안 당신이 심문해온 모든 사람들을?"

도경은 대답하지 않았다. 강변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빨라졌다.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앞을 보는 시선도 흐릿했다. 마치 역행하는 시간 속에서 거꾸로 걷는 것처럼, 도경의 발은 자신이 온 길을 거슬러 올라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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