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침묵의 증거
도경의 휴대폰이 울렸다. 새벽 4시 47분. 화면에는 서유하의 이름이 떴다.
"파형 분석이 나왔습니다."
유하의 목소리는 신중했다. 도경은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은 채 수화기를 귀에 댔다.
"신혜진 실종 당시 남겨진 음성 메시지요. 도경님이 윤태오의 목소리라고 확인했던 그것."
침묵. 도경은 유하가 다음 말을 기다리는 것을 느꼈다.
"음성 스펙트럼 분석 결과, 두 개의 다른 음원이 혼재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실제 음성, 하나는 녹음 처리된 음성. 강여울이 자신의 목소리를 윤태오의 음역대로 변조한 후 시간차 녹음으로 합성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도경은 천장을 봤다. 천장의 균열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도경님, 들으시나요?"
"들었다."
"그렇다면 15년 전 심문에서 당신이 읽은 그 음성 신호는……"
"없었다."
도경이 끊었다. 유하의 숨소리만 남았다.
"다시 말해서, 당신이 감지했다고 믿은 것은 실제 신호가 아니었다는 뜻입니다. 강여울이 음성을 조작했고, 당신은 그 조작된 신호를 윤태오의 거짓으로 읽었다는 것이——"
"알았다."
도경은 통화를 끝냈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손이 떨렸다. 이건 떨림이 아니라 거부 반응이었다. 몸이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진동. 그는 목욕탕으로 들어가 찬물을 마셨다. 물이 식도를 내려가면서 가슴이 조였다.
새벽 6시경, 명진섭이 자문실에 나타났다. 도경은 이미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윤태오 재심이 기각되었다."
명진섭은 서류를 건네지 않았다. 말로만 전했다.
"법원 판단은 원래 진술 분석이 공식 기록이고, 새로운 증거는 추측에 불과하다는 것. 당신의 오독은 공식 판단이 되었으니까, 그것을 뒤집으려면 더 확실한 물증이 필요하다고."
도경은 명진섭의 얼굴을 봤다. 동료는 불편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윤태오에 대한 미안함이 아니었다. 조직이 흔들릴까 하는 불안감이었다.
"강여울을 다시 심문하겠다."
"안 된다."
명진섭이 손을 들었다.
"당신은 같은 대상을 세 번 이상 심문하지 않는 규칙이 있지 않나. 이미 세 번을 넘었다."
"네 번째다."
"더 이상은 불가능하다. 조직에서 허가할 수 없다."
도경은 돌아섰다. 심문실로 향했다.
"도경."
뒤에서 명진섭이 불렀다.
"이미 종결된 사건이다. 법원도 인정했다. 이제 그만해야 한다."
도경은 멈추지 않았다. 심문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테이블 위에는 15년 전 윤태오의 심문 기록이 펼쳐져 있었다. 그는 어제 밤 그것을 꺼냈다가 그대로 놔뒀다. 페이지마다 자신의 주석이 있었다. 그 주석들은 모두 오독이었다.
오후 2시, 도경은 경찰청 구금실에 있는 윤태오를 심문실로 옮기도록 지시했다. 명진섭의 반대는 끝까지 이어졌다. 도경은 자문위원의 권한을 꺼냈다. 조직 내 절차를 우회하는 권한. 그것을 사용한 순간, 명진섭의 얼굴이 굳었다. 규칙 위반은 공식 기록으로 남을 것이었다. 도경의 이름 옆에, 영구적으로. 하지만 그는 그것을 감수했다.
심문실의 조명은 변하지 않았다. 형광등의 푸르스름한 빛, 테이블의 흠집, 벽의 곰팡이. 이 공간은 15년 동안 한 치도 변하지 않았다.
윤태오가 들어왔을 때 도경은 손목시계를 보고 있었다. 오후 2시 17분. 정확히 기록해야 했다.
"앉으세요."
윤태오가 앉았다. 15년이 지났지만 그의 얼굴은 기억과 거의 같았다. 다만 눈이 다르다. 이전의 윤태오는 무언가를 간절히 부정하는 눈이었다. 지금의 윤태오는 이미 포기한 눈이었다.
"신혜진 실종 당시 남겨진 음성 메시지가 있습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의."
윤태오는 반응하지 않았다.
"당신의 목소리라고 당신이 확인했습니다. 15년 전 심문에서."
"확인한 게 아닙니다."
윤태오가 처음으로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낮았고, 균열이 있었다.
"당신이 내 목소리라고 했으니까 그렇게 생각했을 뿐입니다."
심문실의 조명이 깜빡인 듯했다. 도경의 시야가 흔들렸다.
"그 음성은 당신의 것이 아닙니다. 조작되었습니다. 강여울이 당신의 음성을 모방해서."
"그렇군요."
윤태오가 웃음 같은 숨을 내쉬었다. 그것은 웃음이 아니었다. 공기를 내보내는 것이었다. 마치 몸속의 뭔가가 새어나가는 소리처럼.
"당신은 내 목소리를 들었다고 했습니다. 심문실에서. 처음 만났을 때, 당신은 나를 바라보고 당신이 읽은 것을 말했습니다. 거짓이라고."
윤태오가 도경의 눈을 맞췄다.
"그 말이 맞았습니다. 나는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당신의 읽음이 맞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신이 내 목소리를 들었다고 하니까, 나는 그렇게 믿었습니다."
도경의 호흡이 얕아졌다.
"당신이 내 목소리를 들었다고 했으니까요."
윤태오가 다시 말했다. 이번엔 명확하게.
"나는 당신의 확신을 들었을 뿐입니다."
침묵이 들어찼다. 심문실의 형광등이 윙 하고 울었다. 도경은 뭔가를 말해야 했다. 입을 열었다. 성대가 진동했다. 하지만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미안——"
목이 막혔다. 도경이 몸을 앞으로 굽혔다. 호흡이 불규칙해졌다. 한 번, 두 번, 세 번. 가슴이 조였다. 심장이 리듬을 잃었다. 손가락이 테이블 모서리를 움켜잡았다. 손톱이 페인트를 벗겨냈다. 손이 떨렸다.
그 순간 도경은 자신이 무엇을 잃었는지 깨달았다. 15년 전 심문실에서 그가 읽어낸 것은 신호가 아니었다. 그것은 확신이었다. 자신의 확신. 그리고 윤태오는 그 확신에 복종했다. 도경이 "거짓"이라고 말했으니까, 윤태오는 자신이 거짓말을 했다고 믿었다. 도경이 "내 목소리를 들었다"고 말했으니까, 윤태오는 그 말을 받아들였다.
그것이 도경의 능력이었다. 상대의 진실을 읽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도경의 읽음을 진실로 만드는 것. 상대를 자신의 확신 속으로 끌어당기는 것. 강요하는 것.
15년을 그렇게 살았다. 자신의 확신이 진실이라고 믿으면서. 하지만 그 확신은 환상이었고, 그 환상 위에 한 사람의 인생이 무너져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 확신이 부서지고 있었다. 도경의 정체성이 무너지고 있었다. 자신이 프로파일러라고 믿었던 것이 실은 강요자였다는 깨달음. 그것은 신체 반응으로 표현될 수 없는 종류의 붕괴였다. 내적인 것. 근본적인 것. 자신이 누구인지를 구성하는 모든 것의 동시 붕괴.
도경은 테이블 아래로 손을 내밀었다. 손목시계를 집어올리려던 순간이었다.
휴대폰이 울렸다.
도경은 기계적으로 전화를 받았다. 유하의 목소리가 떨려 있었다.
"도경님, 강여울입니다. 호송 중에 자살을 시도했습니다."
도경은 일어났다. 윤태오를 보지 않고.
"상태는?"
"응급실로 옮겨졌습니다. 지금 의식이 불분명한 상태입니다."
심문실을 나갔다. 복도가 길게 펼쳐져 있었다. 형광등의 불빛이 바닥에 반복되고 있었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도경의 손이 떨렸다. 이번엔 거부 반응이 아니었다. 절망의 떨림이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도경은 시간을 계산했다. 강여울을 심문할 마지막 기회. 그것이 사라졌다. 의식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릴 수는 있지만, 법적으로 심문할 수 없을 것이다. 의료상 이유로 연기될 것이고, 그 사이 변호사가 붙을 것이고, 강여울은 침묵할 것이다. 강여울은 침묵하는 방법을 안다. 그것이 그녀의 무기였으니까.
응급실 앞에 도경이 섰을 때, 유하가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의식은?"
"아직입니다. 의료진이 응급 처치 중입니다."
도경은 응급실의 창을 통해 강여울을 봤다. 산소 마스크가 얼굴을 덮고 있었다. 점액질의 피부색. 그 순간 도경은 깨달았다. 강여울의 자살 시도가 마지막 설계였을 수도 있다는 것을. 자신을 심문 불가 상태로 만들어 공백을 영구화하려는 설계. 도경이 다섯 번째 심문까지 가면 기억이 무너진다는 사실을 강여울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자살을 시도했을지도 모른다. 도경이 심문할 수 없게 만들기 위해. 혹은 도경이 계속 심문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도경 자신도 구분할 수 없었다. 강여울의 진짜 의도가 무엇인지. 그것이 바로 강여울의 설계였다. 의도를 읽을 수 없게 만드는 것. 도경의 능력을 무력화하는 것.
"도경님?"
유하가 불렀다.
"강여울의 자살 시도가 신혜진 사건의 종결을 증명합니까?"
유하는 대답하지 않았다.
"증명하지 않습니다."
도경이 스스로 대답했다.
"강여울이 죽으면 신혜진의 진짜 범인은 사라집니다. 윤태오가 복권되고, 박신혜의 온도는 15년간의 침묵 속에 남습니다."
도경은 응급실의 복도를 따라 걸었다. 벽에 붙은 포스터들이 눈에 들어왔다. 질병 예방, 응급 상황 대처, 생명 존중. 그 아래 도경의 그림자가 늘어져 있었다.
"공백은 공백으로 두겠습니다."
도경이 말했다.
"신혜진 사건의 조서 공백에, 제가 채우려던 것을 넣지 않겠습니다. 그 공백은 제가 만든 것입니다."
병원 1층 로비에 도경이 섰다. 로비의 바닥은 타일로 되어 있었다. 회색 타일, 그 위의 발자국들. 몇 만 개의 발자국이 그 위를 지나갔을 것이다. 각각의 발자국은 누군가의 시간을 담고 있었다. 누군가의 병, 누군가의 회복, 누군가의 마지막 시간.
도경은 타일 위에 서서 자신의 손목시계를 찼다. 오후 4시 52분.
15년 전 4월 어느 날의 시간은 지워지지 않았다. 박신혜의 마지막 호흡, 윤태오의 억울한 침묵, 도경 자신이 만든 확신의 그 시간. 그것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었다.
도경은 병원 밖으로 나갔다. 밖의 공기는 냉랭했다. 4월의 저녁. 강변의 산책로로 가는 길이 자동으로 떠올랐다. 그곳도 이 시간쯤이면 어두워질 것이다. 가로등이 켜질 것이다. 그리고 그곳의 물은 여전히 같은 속도로 흐를 것이었다.
휴대폰이 울렸다. 유하였다.
"도경님, 강여울이 깼습니다."
"상태는?"
"의식이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의료진이 아직 심문을 허가하지 않았습니다."
"언제?"
"내일 오전 가능할 것 같습니다."
도경은 걸으면서 대답했다. 강변으로 가는 길을 걷고 있었다.
"내일 오전에 다시 들어가겠습니다."
"도경님, 그건 다섯 번째입니다."
유하의 목소리가 떨렸다.
"알고 있습니다."
도경이 말했다.
도경은 침묵했다. 유하도 침묵했다. 전화선 너머로 호흡음만 들렸다.
"다섯 번째까지 가면, 제 기억이 완전히 무너질 것입니다."
도경이 천천히 말했다.
"상대의 얼굴이 제 오류의 증거가 되고, 그 얼굴을 직면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강여울의 온도를 객관적으로 읽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미 무너진 기억 속에서라면, 오히려 객관적으로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도경이 끝냈다.
"강여울의 자살 시도가 설계였다면, 그것은 제가 다섯 번째 심문까지 가도록 유도하는 설계일 수도 있습니다. 제 기억이 무너지는 순간, 제가 심문실로 들어가는 것이 강여울의 손 안에 있을 수도 있습니다."
"도경님——"
"하지만 그렇더라도 들어가겠습니다."
도경이 끊었다.
밤이 내려왔다. 도경은 강변에 도착했다. 산책로의 가로등이 켜져 있었다. 낡은 조명이 어둠을 불완전하게 밝혔다.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15년 전 그 소리가 이 소리와 같은 소리인지, 도경은 구분할 수 없었다.
강변의 돌 위에 도경이 앉았다. 손목시계를 봤다. 오후 8시 17분.
내일 오전, 강여울과의 다섯 번째 심문에서 도경의 기억은 완전히 무너질 것이었다. 그 순간, 그는 자신이 읽어낸 것이 진실인지 공포인지, 감각인지 환상인지 구분할 수 없게 될 것이었다. 강여울의 침묵이 저항인지 승리인지도 알 수 없게 될 것이었다.
하지만 그때도 도경은 계속 물을 것이었다.
당신이 신혜진을 죽였습니까.
그리고 강여울은 대답할 것이었다.
또는 침묵할 것이었다.
그 두 가지 중 하나가 도경의 마지막 진술이 될 것이었다. 아니, 그 둘 다 도경의 마지막 진술이 될 것이었다. 대답도 침묵도. 모두가 도경의 무너진 기억 속에서 같은 무게로 남을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