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마리안 드 바이올렛의 독기 어린 시선이 뒤통수를 뚫어버릴 기세로 내리꽂혔다.

학내 심문실의 무거운 철문이 닫히는 그 순간까지도, 그녀는 품속의 검은 마석을 꽉 움켜쥔 채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고 있었다. 그 처절하고도 삼류 악당 같은 표정이라니. 대연회에서 나를 마물 소환죄의 주범으로 몰아 완전히 매장해 버리겠다는 살벌한 의지가 굳이 마법을 쓰지 않아도 사방으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내 머릿속은 그녀의 얄팍한 음모 따위보다 훨씬 더 숭고하고 아름다운 숫자로 가득 차 있었다. 예를 들면, 내 통장에 찍힐 퇴직금의 자릿수라거나, 카라칼 영지로 이주할 때 챙겨갈 가구들의 이사 비용 같은 것들 말이다.

"아가씨, 침을 좀 닦으시는 게 좋겠습니다. 은퇴 자금을 계산할 때마다 턱 끝이 다소 축축해지시는 경향이 있습니다."

정적을 깨고 들려온 목소리에 나는 정신을 차렸다.

아카데미 내 네페르티 가문 전용 별관의 비밀 영빈실. 단정하게 빗어 넘긴 머리에 안경을 치켜올린 수석 집사 벤이 언제나처럼 소리 없는 미소를 지으며 차를 내밀고 있었다.

"벤, 무엄하구나. 나는 제국의 존귀한 공작 가문 영애로서 아주 엄숙하게 내 미래의 자산 포트폴리오를 점검하고 있었을 뿐이다."

"예, 예. 당연히 그러셨겠지요. 연이율 4.5%의 채권 금리를 보며 엄숙하게 침을 흘리시는 공작 가문 영애는 제 평생 처음 봅니다만."

"원래 돈 냄새는 인류 역사상 가장 향기로운 향수란다. 그나저나 벤, 이것부터 해명해 봐."

나는 주머니에서 짤랑거리는 무거운 쇠붙이를 꺼내 탁자 위에 툭 던졌다.

녹이 잔뜩 슬어 당장 쓰레기통에 처넣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허름한 무쇠 열쇠였다. 하지만 이 고철 덩어리는 불과 몇 시간 전, 삼엄하기 짝이 없던 황실 직속 심문실의 마도 결계를 두부 자르듯 가볍게 무력화하고 내부 상황을 광장에 생중계하는 기적을 연출했다.

"이게 그냥 가문의 낡은 금고 열쇠라며? 가문의 금고 열쇠가 어떻게 황실의 최고급 마도 방어벽을 우회해서 해킹할 수 있는

냐?”

내 매서운 추궁에 벤은 상체를 꼿꼿이 세운 채, 안경테를 아주 느긋하게 밀어 올렸다. 그의 얼굴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평온함이 깃들어 있었다.

“아가씨, 세상사 모든 일에는 우연이라는 마법이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그 열쇠는 그저 저희 네페르티 가문의 지하 창고 구석에 방치되어 있던 낡은 무쇠 조각일 뿐이지요. 다만, 그것을 제작한 고대 마도사가 마침 황실의 초대 마도단장과 아주 절친한 사이였고, 두 사람이 술김에 보안 시스템의 백도어를 공유했을 가능성이 아주 미세하게 존재할 뿐입니다.”

“그 미세한 가능성이 제국 법정에서는 ‘황실 반역죄’라는 다섯 글자로 번역된다는 사실을 모르는 건 아니겠지?”

나는 탁자를 탁 치며 의자 앞으로 몸을 기울였다.

“내가 아카데미에서 품위 있게 미움받아 카라칼 영지로 쫓겨나려는 건,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가문 연금을 펑펑 쓰며 딩굴거리는 완벽한 백수 노후를 보내기 위해서야! 단두대 위에서 목이 단정하게 썰려 나가서 영원한 안식을 취하겠다는 뜻이 아니라고!”

만약 반역죄로 엮여 가문이 멸문지화라도 당하는 날에는, 내가 지금까지 눈물겹게 모아둔 은퇴 자금과 변경의 부동산 포트폴리오가 전부 국고로 환수될 터였다. 생각만 해도 위장이 뒤틀리고 뇌가 쪼그라드는 공포였다.

[정직의 장부]가 내 머릿속의 이 지독한 이기주의를 감지하고 0.1초 만에 목구멍을 강제로 개방했다.

“반역죄로 내 예쁜 목이 날아가면, 카라칼 영지에서 쓰려고 모아둔 내 소중한 금화 5만 닢을 단 한 푼도 못 쓰고 황실 뚱보들에게 기부하는 꼴이 되잖아! 내 돈이 황실 금고로 들어가는 꼴을 보느니 차라리 제국을 무너뜨리고 말겠어!”

아차. 본심이 너무 정직하게 튀어나왔다.

하지만 벤은 내 상스러운 절규를 듣고도 놀라기는커녕, 오히려 깊은 감동을 받은 듯 두 손을 모아 가슴에 얹었다. 그의 눈가가 촉촉하게 젖어 드는 착각마저 일었다.

“과연 아가씨이십니다. 황실의 권위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정당한 사유 재산을 지키겠다는 그 숭고한 투지……! 이 벤, 아가씨의 그 깊고 이기적인 혜안에 다시 한번 뼈를 묻기로 다짐했습니다.”

“아니, 뼈는 묻지 말고 그냥 일이나 제대로 해.”

나는 이마를 짚었다. 이 가문의 고용인들은 어째서 하나같이 필터가 고장 난 착각증 환자들뿐이란 말인가. 하지만 벤의 유능함만큼은 진짜였기에, 나는 서둘러 다음 안건으로 넘어갔다.

“그건 그렇고, 카일이 연무장에서 부러뜨렸던 그 마검의 파편은 어떻게 되었지?”

“물론 아주 엄중하게 보관 중입니다.”

벤이 품 안에서 비단으로 감싼 묵직한 가죽 주머니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주머니가 열리자, 은은한 검은 마력을 뿜어내는 날카로운 금속 파편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파편에 새겨진 마법 문양은 황실 기사단의 전유물인 ‘유도식 마력 제어식’입니다. 일전에 연무장에서 소환되었던 마물이 아가씨가 아닌, 마리안 드 바이올렛 영애의 마석에 반응했던 이유가 바로 이 파편의 마력 파장과 일치하기 때문이지요.”

“과연.”

나는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마리안 그 삼류 여배우가 나를 모함하기 위해 마물을 불러들였다는 결정적 물증이 내 손안에 쥐어진 셈이었다. 대연회에서 나를 마물 조종죄로 옭아매려 할 때, 이 파편을 그녀의 콧구멍 앞에 들이밀어 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웅장해졌다.

“아주 좋아. 대연회 때 마리안의 그 가식적인 눈물샘을 완전히 말려버릴 무기가 생겼군. 그런데 벤, 그것보다 더 중요한 ‘내 노후 대책’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지?”

내 질문에 벤의 눈빛이 진지하게 변했다. 그는 주위의 결계를 한 번 더 점검하더니, 품 안에서 아주 낡고 누런 양피지 한 장을 조심스럽게 펼쳤다.

“기다리시던 소식입니다, 아가씨. 카라칼 영지의 행정적 명의 이전 서류는 이미 공작가의 인장까지 찍혀 완벽하게 준비되었습니다. 아카데미 최종 평가에서 아가씨가 ‘품위 유지 의무 위반’으로 공식 추방 판정만 받으시면, 그 즉시 카라칼 영지는 아가씨의 사유지가 됩니다.”

“훌륭해! 드디어 그 지긋지긋한 사교계 가식쟁이들과 미친 집착광 남주들의 면상에서 벗어날 수 있겠구나!”

나는 양피지 지도를 보며 쾌재를 불렀다. 카라칼 변경. 제국의 극서부에 위치해 몬스터가 끓고 찬 바람이 쌩쌩 부는 척박한 땅. 겉보기에는 귀족들이 가장 기피하는 유배지 중의 유배지였다. 황실과 사교계의 감시망에서 완벽하게 벗어난 최고의 자유지대이기도 했다.

하지만 벤이 손가락으로 지도의 한 구석, 거칠게 그려진 계곡 부분을 짚었다.

“그리고 이것이 제가 아카데미 도서관 금서 구역에서 입수한 카라칼 영지의 진짜 지적도와 변방의 초서 기록입니다.”

“이게 뭔데?”

“겉으로는 마물이 날뛰는 척박한 계곡으로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제국 전체를 통틀어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고순도 마석 광맥이 매장된 노다지 땅입니다. 황실의 세무관들조차 그 험준한 지형 때문에 접근을 포기해, 공식 장부에는 단 한 줄도 기록되지 않은 ‘조세 피난처’이지요.”

벤의 조용한 음성이 영빈실 안을 부드럽게 울렸다.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지도를 내려다보는 내 은회색 눈동자가 탐욕스러운 빛으로 사정없이 흔들렸다.

고순도 마석 광맥이라니. 그것도 세금 한 푼 안 내는 무등록 광산이라니! 이건 평생 놀고먹는 수준을 넘어, 매일 밤 금화로 가득 찬 욕조에서 반신욕을 해도 남을 수준의 막대한 자산이었다.

“벤…… 너, 정말로 유능하구나.”

내 목소리가 감격으로 부르르 떨렸다.

“과찬이십니다, 아가씨. 아가씨의 완벽한 은퇴를 보좌하는 것이야말로 이 수석 집사의 유일한 기쁨이니까요.”

“좋아. 약속하지, 벤. 내가 카라칼 영지로 내려가는 날, 너를 그곳의 총괄 관리인으로 임명하겠다. 네 퇴직 연금은 제국 재상의 연봉 두 배로 책정해 주지. 우리 둘이서 그 척박한 똥땅을 아늑한 황금의 제국으로 만드는 거다.”

“아가씨의 그 지독하게 속물적이고 가성비 넘치는 탐욕에 제 남은 평생을 베팅하겠습니다.”

벤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안경 너머로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우리는 서로의 눈빛에서 피어오르는 지독한 이기주의와 탐욕을 확인하며 조용히 잔을 부딪쳤다. 완벽한 속물 주인과 더 완벽한 속물 집사의 든든한 동맹이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그럼 대연회 전까지 마검 파편의 마력 반응을 확실하게 고착화해 두겠습니다.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아가씨.”

벤이 서류와 지도를 챙겨 몸을 돌렸다. 영빈실의 문이 부드럽게 열렸다가 닫히며, 그의 발소리가 멀어졌다.

혼자 남은 나는 의자 깊숙이 몸을 묻었다. 머릿속으로 카라칼 영지에서 보낼 안락한 백수 라이프를 상상하자 입꼬리가 주체할 수 없이 올라갔다.

하지만 평화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탁자 위의 촛불이 갑자기 기괴하게 흔들렸다. 방 안의 온도가 순식간에 급강하하며, 등 뒤에서 서늘한 기운이 척추를 타고 올라왔다.

스스스슥.

그림자가 벽을 타고 길게 늘어나더니, 문이 열리지도 않았는데 영빈실 한구석의 어둠 속에서 한 남자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백은색의 성스러운 사제복을 입었으나, 그 위에 드러난 얼굴은 성자라기엔 너무나 퇴폐적이고 위험한 미소를 짓고 있는 남자.

내 이복 남동생이자, 아카데미 학탑의 괴물 같은 천재. 그리고 종교적 위선 뒤에 어두운 광기를 숨겨둔 성자, 레이나르 엘 필레아스였다.

“누님, 집사와의 밀회가 꽤나 즐거우셨나 봅니다.”

그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속삭이며 내게 다가왔다. 그의 은빛 눈동자 속에는 평소의 가식적인 성스러움 대신, 나를 통째로 집어삼킬 듯한 기괴하고 짙은 소유욕이 가득 일렁이고 있었다.

그가 찬바람이 일 만큼 차가운 손가락으로 내 목덜미를 가볍게 쓸어내리며, 귓가에 입술을 가져다 댔다.

“하지만 저를 빼놓고 그런 재미있는 계획을 세우시다니…… 섭섭해서 눈물이 날 것 같군요, 나의 가증스럽고 사랑스러운 누님.”

그의 손끝에서 흘러나온 가느다란 마력이 내 온몸을 구속하듯 부드럽게 옭아매기 시작했다.

그의 손끝에서 흘러나온 가느다란 마력이 내 온몸을 구속하듯 부드럽게 옭아매기 시작했다.

피폐 소설 속 광증에 찌든 집착 남주다운, 아주 전형적이고도 소름 끼치는 연출이었다. 보통의 영애라면 이 서늘한 마력의 압박과 귓가를 간지럽히는 퇴폐적인 음성에 눈물을 흘리며 자비를 구했으리라.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내 머릿속의 ‘정직의 장부’는 이 로맨틱(?)하고도 치명적인 구도를 전혀 다른 방향으로 계산하고 있었다.

[보유 자산 방어 경보: 상대의 마력 접촉으로 인해 드레스의 마법 방어 안감이 미세하게 마모되고 있습니다. 예상 수리 비용: 금화 3닢. 또한 체온 저하로 인한 난방비 추가 지출 위험 감지.]

금화 3닢? 미친, 이 사이비 교주 새끼가 남의 귀한 드레스에 무슨 짓을 하는 거야!

내 목구멍을 뚫고 솟구치려는 본심을 억누르기 위해 ‘하얀 거짓말’을 시도해 보려 했다. 이를테면, *“앗, 레이나르. 네 마력이 너무 차갑고 무서워서 몸이 떨리는구나. 제발 멈춰 주겠니?”* 같은 내숭 말이다.

그러나 머리를 가차 없이 찌르는 강렬한 편두통과 함께 머릿속에서 경고음이 요란하게 울렸다.

[경고: 위선적 타협 시도 감지. 실행 시 보유 금화 50닢 즉시 차감.]

‘안 돼! 내 50닢!’

나는 눈을 부릅뜨고, 0.1초 만에 뇌 필터를 완전히 해제해 버렸다. 기왕 뱉을 거라면 한 푼도 내지 않는 100% 무가공 탄산수 독설이 나았다.

“그 더러운 손가락 당장 안 치워, 이 사이비 교주 녀석아?”

“……예?”

레이나르의 퇴폐적인 미소가 찰나의 순간 빳빳하게 굳었다.

나는 그의 차가운 손가락을 가차 없이 탁 쳐내며, 묻은 먼지를 털어내듯 드레스 깃을 사정없이 털었다.

“치워! 네 차가운 손끝 때문에 내 목덜미에 소름이 돋았잖아! 이 소름을 가라앉히기 위해 내 기초대사량이 쓸데없이 낭비되고 있다고! 안 그래도 요즘 아카데미 식당의 식자재 단가가 올라서 영양 보충하기도 힘든데, 네가 내 아까운 칼로리를 무단으로 갈취해 가겠다는 심산이냐?”

“누님, 지금 제가 마력으로 누님을 구속하는데…… 칼로리 걱정을 하시는 겁니까?”

“칼로리뿐만이 아니야! 네가 방금 뿜어낸 그 칙칙하고 축축한 마력 때문에 내 드레스 안감의 마법 장벽이 마모됐어! 이거 공작가가 제휴 맺은 명품 의상실에서 맞춘 최고급 실크란 말이다! 수리비로 청구될 금화 3닢, 네가 당장 현찰로 물어낼 거 아니면 당장 그 구질구질한 마력 끄고 구석으로 꺼져!”

레이나르는 멍청한 표정으로 자신의 손끝을 내려다보았다.

황실조차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는 성국의 성자이자, 학탑의 천재 마법사인 자신이 뿜어낸 치명적인 마력이 고작 ‘금화 3닢짜리 드레스 마모 주범’으로 격하당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내 팩트 폭행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나는 이마를 짚으며 그의 낯짝을 매섭게 쏘아보았다.

“그리고 그 성스러운 척하는 미소 좀 치워라. 눈은 전혀 안 웃으면서 입꼬리만 경련하듯 올리고 있으니까 꼭 안면마비 온 삼류 사기꾼 같잖아. 네 그 위선적인 면상을 볼 때마다 내 안구 건조증이 극도로 심해져서 인공눈물 물약 비용으로 매달 동화 다섯 닢씩 깨지는 건 알고나 지껄이는 거냐? 내 지갑에 빨대 꽂을 생각 아니면 그 썩은 미소 당장 지워!”

“…….”

생중계로 발레르 심문관을 파멸시킬 때보다 더 매서운 가성비 폭격이었다.

정적이 영빈실을 무겁게 내리눌렀다. 나는 레이나르가 모욕감에 부르르 떨며 나를 저주하거나, 혹은 내 목을 조르려 들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차라리 그 편이 나았다. 학우 폭행죄로 엮어서 당장 카라칼 영지로 유배당하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내 예상은 이번에도 처참하게 빗나갔다.

“아…….”

레이나르의 입술 사이로 기묘한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의 하얗게 질려 있던 뺨이 서서히 붉게 상기되기 시작했다. 은빛 눈동자 속에 서려 있던 어두운 안개가 걷히고, 그 자리에 형용할 수 없는 기괴한 희열과 소유욕이 폭발적으로 소용돌이쳤다.

스스스슥, 그가 천천히 내 발밑으로 무릎을 꿇었다. 성자복의 밑단이 바닥에 쓸리는 것조차 개의치 않는 몸짓이었다.

“과연…… 과연 나의 유일한 구원자이십니다, 누님.”

“뭐? 구원자 같은 소리 하네. 당장 일어나서 내 안구 건조증 치료비나 입금해.”

“모두가 내 앞에서는 성스럽다며 우러러보고, 뒤에서는 제 이익을 위해 가식적인 침묵만을 유지할 때…… 오직 당신만이 내 추악한 안면 근육의 경련과 썩은 미소를 똑바로 지적해 주시는군요. 심지어 내 마력이 낭비하는 칼로리와 드레스 안감의 손상까지 계산해 주시다니.”

그가 내 드레스 자락을 조심스럽게 쥐며, 황홀경에 빠진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이 얼마나 실용적이고, 가식 없으며, 지독하게 아름다운 구원입니까. 누님, 당신의 그 매서운 채찍질이 제 더러운 영혼을 정화하는 것만 같습니다. 제발 저를 더 매도해 주십시오. 저를 더 가차 없이 깎아내려 주십시오!”

‘미친놈이잖아, 이거!!!’

나는 경악을 금치 못하며 의자 뒤로 몸을 한껏 뺐다. 피폐 소설 속 집착 남주들은 원래 다 이렇게 매를 버는 마조히스트들뿐이란 말인가? 황태자 카일 녀석도 독설을 퍼부었더니 자아성찰을 하겠다며 질척거리더니, 이 성자 녀석은 한술 더 떠서 매도를 갈구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쿵————!!!

영빈실의 튼튼한 참나무 문이 엄청난 굉음과 함께 박살 나며 안쪽으로 나뒹굴었다. 사방으로 나뭇조각과 먼지가 뿌옇게 휘날리는 그 틈바구니 속에서, 극도로 살벌한 마력을 뿜어내는 거대한 인영이 걸어 들어왔다.

“레이나르 엘 필레아스. 내 약혼녀의 드레스 자락에서 당장 그 더러운 손을 치우지 않으면, 네놈이 속한 성국의 대성전을 통째로 철거해 버리겠다.”

검푸른 황실 기사단 제복을 걸친 사내. 붉게 타오르는 눈동자에 통제되지 않는 광포한 소유욕을 가득 담은 황태자 카일이었다.

그는 박살 난 문짝을 가볍게 즈려밟으며, 마치 사냥감을 포착한 포식자처럼 레이나르를 쏘아보았다.

나는 박살 난 문과 흩어진 나뭇조각들을 보며, 이마에 핏대를 세운 채 머리를 감싸 쥐었다.

‘공작가 전용 별관의 참나무 문…… 저거 황실 특제 마도 방벽 도금 처리된 거라 새로 맞추려면 최소 금화 150 닢인데…… 어떤 미친 황태자 놈이 남의 집 문짝을 부수고 난리야!!!’

내 평화롭고 안락한 카라칼 은퇴 계획의 최대 장애물들이 마침내 한자리에 모여, 내 지갑과 멘탈을 동시에 박살 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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