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쿠우웅!

엄청난 충격음과 함께 헬기가 세라 병원 앞마당 아스팔트 바닥에 동체 착륙하듯 거칠게 내려앉았다. 기체 하부에서 불꽃이 튀었고, 로터 블레이드가 회전을 멈추며 사방으로 빗물을 튕겨냈다.

백현은 무전기를 던져두고 하얀 가운을 휘날리며 원장실 문을 박차고 나갔다.

“서 과장님, 응급실 하이브리드 룸 개방하고 마취 준비하세요.”

“하 선생! 이 날씨에 대동맥 박리 수술을 여기서 하겠다고? 인공심폐기도 노후화되었고, 혈액 재고도 부족해!”

서은우가 경악하며 소리쳤지만, 백현은 이미 복도를 질주하고 있었다.

그의 시야에 붉은색 시스템 경고등이 미친 듯이 명멸하기 시작했다.

[돌발 퀘스트: 정계 거물의 생명을 수확하라.] [환자의 사망 확률: 98.7%] [집도 성공 시 획득 포인트: 500P] [실패 시 대가: 오른손 척골 신경 전도도 20% 영구 상실 (오른손 기능 완전 마비)]

백현은 달리는 도중 자신의 오른손을 내려다보았다.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지난번 수술의 대가로 우측 척골 신경 전도도가 이미 5% 영구 하락한 상태였다. 약지와 새끼손가락 끝에 남아 있는 이물감이 묵직하게 손끝을 짓눌렀다.

성공하면 백강 메디컬을 무너뜨릴 거대한 권력의 날개를 얻게 될 것이고, 실패하면 의사로서의 생명이 끝장난다.

“98.7%라.”

백현의 입가에 냉소적인 미소가 걸렸다.

“억지로 살려내서, 몸값을 비싸게 받아내 주지.”

응급실 자동문이 열리며, 폭풍우가 몰아치는 앞마당의 차가운 빗줄기가 백현의 얼굴을 때렸다. 헬기의 문이 열리고, 피투성이가 된 들것이 빗속으로 밀려 나오고 있었다.

들것을 밀고 오는 응급대원들의 발걸음이 진흙탕에 미끄러졌다. 그 뒤를 따르는 것은 흠뻑 젖은 명품 트렌치코트 차림의 여자, 큐어 캐피탈의 채유진 대표였다. 그녀의 하얀 얼굴은 공포와 빗물로 얼룩져 있었다.

“하백현 선생이 맞습니까?”

채유진이 숨을 헐떡이며 소리쳤다. 백현은 대답 대신 들것 위로 몸을 숙였다.

환자는 쉰 살 중반의 남성이었다. 입가에는 피거품이 물려 있었고, 경정맥은 터질 듯이 부풀어 올라 목덜미를 기괴하게 부풀리고 있었다.

백현의 눈앞에 반투명한 푸른색 스크린이 떠올랐다.

[환자: 조민국 (56세)] [진단: 급성 A형 대동맥 박리 및 심낭 압전] [사망 확률: 98.7%] [출혈 지점: 상행 대동맥 후벽부 4mm 파열]

“조민국 의원입니다. 청와대 입성이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예요. 서울로 가려다가 기상 악화로 회항했습니다. 제발 살려야 합니다!”

채유진의 목소리가 다급하게 귓전을 때렸다.

그때 백현의 주머니 속에서 요란하게 진동이 울렸다. 화면에 뜬 이름은 백강 메디컬 그룹 본사 기획조정실의 송우진 전무였다. 백현을 이곳 정선으로 유배 보낸 장본인 중 한 명이었다.

버튼을 누르자마자 귓전을 찢을 듯한 고함이 터져 나왔다.

- 하백현! 너 지금 무슨 미친 짓을 하려는 거야! 조민국 의원이 그쪽으로 간다는 보고 받았어. 절대 손대지 마! 당장 헬기 돌려서 서울 본원으로 이송해!

송우진의 목소리에는 극도의 패닉이 서려 있었다.

"이송 중에 죽습니다."

백현이 건조하게 대답했다.

- 죽더라도 이송 중에 죽어야 우리 책임이 안 돼! 그 낙후된 정선 세라 병원에서 조 의원이 사망하기라도 하면, 우리 그룹 전체가 정치적 매장을 당해! 이건 본사 공식 명령이다. 손끝 하나라도 대면 네 의사 면허를 날려버릴 줄 알아!

"면허?"

백현이 낮게 실소했다.

"당신들이 내 면허 걱정을 해줄 처지인가? 이 환자는 내 먹잇감이야. 건드리지 마라."

- 하백현! 너 미쳤어?! 거기 장비로 대동맥 박리 수술이 가능할 것 같아?! 당장 멈추…!

백현은 전화를 끊고 배터리를 분리해 바닥에 던져버렸다. 구두굽으로 밟아 으스러뜨리는 소리가 빗소리에 묻혔다.

"수술실로 밀어 넣어."

백현의 단호한 명령에 응급대원들이 주춤했다. 본사의 경고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백현의 안광에는 거부할 수 없는 지배력이 깃들어 있었다.

"내 병원이다. 내 구역에서는 내가 살리고 내가 죽인다. 움직여."

그 기세에 눌린 대원들이 서둘러 들것을 응급실 안쪽으로 밀기 시작했다.

***

수술실 예비실에서 소독액으로 손을 씻는 백현의 뒤로 채유진이 따라 들어왔다. 그녀는 세라 병원의 낡은 인테리어와 먼지 낀 형광등을 보며 절망적인 표정을 지었다.

"이런 낡은 곳에서 수술을 하겠다고요? 인공심폐기도 10년은 되어 보이는 구형인데다가, 마취과 의사도 한 명뿐이잖아요! 서울의 일류 대학병원 교수들도 이 상태면 생존율이 5% 미만이라고 했습니다."

백현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브러시로 손가락 사이사이를 문질렀다. 푸른색 소독 비누 거품이 씻겨 내려가며 그의 곧은 손가락이 드러났다.

"그 일류 교수들이라는 작자들은 환자의 목숨보다 자신의 수술 성공률 그래프를 더 아끼니까 도망친 겁니다."

"당신은 다른가요? 당신도 실패하면 모든 독박을 쓰고 파멸할 텐데."

백현이 천천히 몸을 돌렸다. 젖은 머리칼 사이로 드러난 그의 눈빛은 차갑다 못해 시릴 정도로 투명했다.

"나는 실패하지 않으니까."

"근거 없는 자신감이군요."

"근거가 아니라 거래 조건입니다, 채 대표님."

백현이 한 걸음 다가섰다. 그의 몸에서 풍기는 서늘한 소독약 냄새가 채유진의 호흡을 막아섰다.

"조민국 의원이 살아서 이 문을 나가면, 당신이 이끄는 큐어 캐피탈은 정선 세라 병원에 500억 원 규모의 무기한 시설 투자를 단행합니다. 그리고 내가 진행할 백강 메디컬 그룹의 채권 매입 및 적대적 M&A에 무제한 자금을 지원하는 우호 지분 세력이 되십시오."

채유진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지금 사람 목숨을 담보로 사모펀드를 협박하는 겁니까?"

"협박이 아니라 투자 제안입니다. 98.7%의 사망률을 뒤집는 대가치고는 아주 저렴하지 않습니까?"

백현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수술실 문을 발로 밀어 열었다.

"결정은 수술이 끝나기 전까지만 하십시오. 살려놓은 뒤에 딴소리하면, 그 자리에서 다시 심장을 멈춰버릴 테니까."

그의 잔인하도록 철저한 비즈니스 마인드에 채유진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하지만 동시에, 이 지옥 같은 상황에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이 남자의 기괴한 실력에 매료되고 있었다.

***

"바이탈 흔들립니다! 혈압 60에 30, 심박수 140회! 어레스트 유발 직전이에요!"

마취과 서은우 과장의 다급한 외침이 수술실의 정적을 깨뜨렸다.

"심낭 천자 먼저 시행합니다. 18게이지 니들 주세요."

백현이 초음파도 보지 않고 환자의 명치 아래쪽으로 거침없이 바늘을 찔러 넣었다.

푹.

바늘 끝이 정확하게 심낭을 뚫자, 검붉은 압박 혈액이 순식간에 주사기 가득 차올랐다. 심장을 누르고 있던 피가 빠져나가자 혈압이 일시적으로 80까지 회복되었다.

"메스."

가슴 한가운데를 절개하는 칼날의 움직임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피부와 피하지방이 갈라지고, 전기 소작기에서 연기와 함께 단백질 타는 냄새가 피어올랐다.

"흉골 절개기(Sternal Saw)."

덜덜덜거리는 모터 소리와 함께 조민국의 가슴뼈가 반으로 갈라졌다. 레트랙터로 갈비뼈를 벌리자, 그 안에 갇혀 있던 생지옥이 모습을 드러냈다.

상행 대동맥이 시커멓게 부풀어 올라 있었다. 마치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은 물풍선 같았다. 외벽의 아주 미세한 틈새로 붉은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인공심폐기 캐뉼레이션(삽관) 시작합니다. 서 과장님, 헤파린 투여하세요."

"하 선생, 대동맥 후벽부가 너무 약해서 캐뉼라를 넣는 순간 찢어질 수도 있어!"

"내가 넣으면 안 찢어집니다."

백현의 눈에는 이미 시스템이 제시하는 최적의 삽관 경로가 푸른색 선으로 선명하게 영사되고 있었다.

서은우가 침을 삼키며 가이드라인을 잡는 순간, 갑자기 모니터가 광란의 경고음을 울렸다.

삐이이이이—!

"어레스트(심정지) 들어갔습니다! 심실세동(V-fib)이에요!"

서은우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제세동기 준비해! 20줄 패들 줘!"

"안 돼!"

백현이 서은우의 손을 가로막았다.

"지금 이 약해진 대동맥에 전기 충격을 주면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대동맥이 통째로 폭발합니다. 제세동기 치우세요."

"그럼 어쩌자고! 심장이 멈췄는데 수술을 어떻게 해!"

그 순간, 백현의 오른손에 끔찍한 감각이 찾아왔다.

찌릿하는 통증과 함께 약지와 새끼손가락이 안쪽으로 굳어 들어갔다. 손가락 끝의 감각이 완전히 마비되며 메스를 잡은 손끝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위험: 마비 한계치 도달.] [오른손 ulnar nerve 기능이 급격히 저하됩니다.] [현재 수술 진행률: 12%] [잔여 수명 또는 생명 포인트를 연소하여 신경을 강제 복구하겠습니까?]

'복구해.'

백현은 망설임 없이 뇌 속으로 명령을 내렸다.

'남은 생명 포인트 100을 전부 투입한다. 신경망 강제 오버드라이브 실행.'

[100P가 소모됩니다.] [오른손 척골 신경 전도도를 15분간 120%로 인공 폭발시킵니다.]

화르륵!

오른팔의 혈관을 타고 뜨거운 마그마가 흘러드는 듯한 극렬한 통증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이내, 마비되었던 손가락 끝에 전율에 가까운 감각이 돌아왔다. 단순한 회복이 아니었다. 손끝의 모든 미세한 세포들이 자석처럼 정밀하게 반응하는 초감각적 상태였다.

"4-0 프롤렌(Hemi-suture) 주세요."

백현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

"인공심폐기 없이 무심폐기 상태로 대동맥을 직접 봉합하겠습니다."

"미쳤어?! 심장이 멈춘 상태에서 무심폐기로 대동맥 후벽을 기운다고? 그건 신이 와도 못 해!"

서은우가 이성을 잃고 소리쳤다. 대동맥 박리 수술에서 체온을 내리고 혈액 순환을 멈추는 인공심폐기 과정 없이 직접 봉합을 시도하는 것은 의학계에서 자살 행위로 규정된 짓이었다.

"내가 합니다."

백현의 손이 허공을 갈랐다.

그의 오른손은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늘이 부풀어 오른 대동맥의 외막과 내막을 동시에 관통했다. 얇은 종잇장처럼 찢어지기 쉬운 병변 부위를, 백현은 마치 현미경을 보듯 정확하게 한 땀 한 땀 엮어 나갔다.

*스윽, 탁. 스윽, 탁.*

실이 통과하는 소리만이 정적 속에 울려 퍼졌다.

서울 대학병원의 내로라하는 흉부외과 석좌교수들이 왔더라도 최소 30분은 걸렸을 초미세 문합이었다. 하지만 백현의 손끝은 1초에 한 번씩 완벽한 매듭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봉합 정밀도: 99.8%] [봉합 정밀도: 100%] [시스템 보정 경로 일치율: 100%]

그의 시야에 붉게 빛나던 사망 확률 수치가 미친 듯이 깎여 나가기 시작했다.

[98.7% -> 74.2% -> 45.0% -> 12.3%]

"말도 안 돼..."

서은우는 어시스트를 서는 것도 잊은 채 넋을 잃고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백현의 바늘놀림은 예술을 넘어선 신의 영역이었다. 찢어진 대동맥의 후벽부가 마치 원래 하나의 살덩어리였던 것처럼 매끄럽게 이어붙여지고 있었다.

마지막 매듭이 지어지는 순간, 백현이 차갑게 명령했다.

"에피네프린 1앰플 이엔(IV)으로 슛 하세요. 심장 마사지 들어갑니다."

백현이 두 손으로 갈라진 흉골 사이의 심장을 쥐었다. 그리고 일정한 리듬으로 압박을 가했다.

하나, 둘, 셋.

"뛰어."

백현이 나지막이 읊조렸다.

그의 손끝에서 뿜어져 나온 인과율의 힘이 환자의 심장 근육을 강타했다.

두근.

미세한 수축이 일어났다. 이어서 모니터의 일자 선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삐, 삐, 삐, 삐—!

규칙적인 사인파가 그리드의 격자무늬를 채워 나갔다. 혈압이 빠르게 상승하며 110을 돌파했고, 터질 듯이 부풀어 올랐던 대동맥은 백현이 봉합한 라인을 따라 한 방울의 피도 흘리지 않은 채 안정적으로 박동하기 시작했다.

[환자의 사망 확률: 0.1%] [돌발 퀘스트 완료.] [획득 생명 포인트: 500P] [보상: 우측 척골 신경 전도도 정상 수치 일시 유지]

수술실 내부의 긴장감이 일순간에 탁 풀렸다. 간호사들은 다리가 풀린 듯 주저앉았고, 서은우는 땀으로 범벅이 된 얼굴로 멍하니 백현을 바라보았다.

"너... 도대체 정체가 뭐냐?"

백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젖은 장갑을 벗어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고는 수술대에서 한 걸음 물러섰다.

***

수술실 밖 복도는 여전히 폭풍우 소리로 가득했다.

탈진한 듯한 걸음으로 수술실 문을 열고 나온 백현의 앞을 채유진이 가로막았다. 그녀의 얼굴은 충격과 경외감으로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수술실 유리창 너머로 벌어진 비현실적인 기적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그녀였다.

그녀는 백현의 가운에 묻은 붉은 피를 바라보았다. 그 피는 단순한 얼룩이 아니라, 거대한 권력을 굴복시킨 전리품처럼 보였다.

"조 의원은?"

채유진이 마른침을 삼키며 물었다.

"살았습니다."

백현이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건조하게 대답했다.

"약속대로 세라 병원은 폐업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큐어 캐피탈의 자금은 이제 내 것입니다."

채유진은 가쁜 숨을 깔딱였다. 그녀는 평생 수많은 정치가와 자산가들을 상대하며 그들의 목숨줄을 쥐고 흔들었다고 자부해 왔다. 하지만 지금 자신의 눈앞에 서 있는 이 젊은 의사는, 돈과 권력 그 위의 영역인 '생사' 자체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녀가 백현에게 한 걸음 더 다가섰다. 그녀의 눈동자에 기괴한 갈망과 고뇌가 뒤섞여 일렁였다.

"하백현 선생."

채유진이 목소리를 낮추어 속삭였다.

"당신이 원하는 자본의 규모가 대체 얼마입니까? 백강 메디컬 그룹을 완전히 뼈째로 씹어 삼키려면, 얼마나 더 필요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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