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고: 사망 확률 99% 이상의 인과율 왜곡 수술에 대한 대가가 청구됩니다.] [첫 번째 대가: 우측 척골 신경 전도도 5% 영구 하락.] [신경 마비가 진행됩니다.]
오른손 약지와 새끼손가락을 타고 빙하가 흐르는 듯한 극심한 냉기가 치솟았다. 손가락을 미세하게 벌리고 굽히는 뼈사이근(interosseus muscle)이 굳어갔다.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나일론 실을 문 채 고정되어 있어야 할 지침기(needle holder)의 끝이 1밀리미터 간격으로 요동쳤다.
마지막 피부 봉합을 앞둔 순간이었다.
“하 선생? 손이 왜 그러나?”
서은우가 땀방울이 맺힌 이마를 찌푸리며 물었다. 그의 시선이 백현의 떨리는 오른손으로 향했다.
백현은 어금니를 머지러지게 맞물렸다. 턱관절에서 빠드득 소리가 났다. 신경 전도도 5% 하락. 수치상으로는 미미해 보일지 몰라도, 머리카락 한 올 두께의 혈관을 다루는 외과의에게는 사형 선고나 다름없는 치명상이었다. 손가락 끝의 촉각이 지우개로 문지른 것처럼 둔탁해졌다.
‘겨우 이 정도로 무너질 줄 알았나.’
백현은 떨림을 억누르기 위해 왼손으로 오른손목을 단단히 움켜잡았다. 시야에 영사된 AR 생명 계달의 반투명한 인터페이스가 붉은빛을 뿜어내며 경고음을 울려댔다.
[환자의 사망 확률: 5.2%] [경고: 남은 봉합이 지연될 경우 국소 감염 및 미세 삼출물 발생 확률 증가.]
시간이 없었다. 백현은 호흡을 깊게 들이쉬었다가, 아주 천천히 내뱉었다. 폐부 깊숙이 들어찬 차가운 소독약 냄새가 뇌를 깨웠다. 그는 굳어가는 오른손가락 대신 손목 전체의 회전반경을 이용해 바늘의 각도를 조절했다. 손가락의 정밀 제어가 불가능하다면, 팔뚝 전체의 근육을 동기화해 오차를 메우면 그만이었다.
서각. 서각.
피부를 뚫고 들어간 만곡침이 매끄러운 곡선을 그리며 표피를 통과했다. 둔해진 감각 너머로, 실이 조직을 통과하는 미세한 저항감이 손목뼈를 타고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백현은 단 한 치의 어긋남 없이 매듭을 지었다.
뚝.
가위 끝이 실을 끊어내는 맑은 마찰음이 수술실에 울려 퍼졌다.
[사망 확률: 4.8%] [환자의 생체 신호가 임계값 이하로 안정되었습니다. 수술 성공.] [현재 보유 포인트: 100P]
눈앞의 붉은 경고 창들이 연기처럼 스러지고, 차분한 청색의 홀로그램이 환자의 흉부 위로 내려앉았다. 기계적인 맥박 소리만이 고요한 방을 채웠다.
“말도 안 돼…….”
서은우가 마스크를 벗어 던지며 중얼거렸다. 그의 얼굴은 경이감을 넘어 기괴한 생명체를 보는 듯한 공포로 질려 있었다. 무영등도 꺼진 정전 상태에서, 오직 보조 랜턴 자락과 감각만으로 다발성 장기 파열 환자의 미세 출혈점을 전부 찾아내 꿰맨 것이다. 현대 의학의 상식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폭거였다.
백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오른손을 들어 가만히 쥐었다 폈다. 약지와 새끼손가락 끝에 얇은 가죽 장갑을 낀 것처럼 이물감이 느껴졌다. 완벽한 집도에 대한 대가치고는 뼈아팠지만, 감상에 젖어 있을 시간은 없었다.
그는 시야 한구석에서 정밀 필터링 모드로 작동 중인 계달 시스템의 혈관 지도를 노려보았다.
[환자: 강태훈 (남성, 58세)] [기형적 혈관 구조 감지: 관상동맥 좌전하행지(LAD) 후방의 이소성 림프관-정맥 문합부(Ectopic Lymphatic-Venous Anastomosis)]
일반적인 해부학 교과서에는 존재하지 않는 극희귀 변이였다. 이 환자가 그간 서울의 내로라하는 대형병원에서도 원인 불명의 흉강 출혈로 죽어갔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관상동맥 뒤편 깊숙이 숨어 있는 림프구 변이 출혈점.
백현은 시스템의 데이터 저장 기능을 활성화했다.
[특이 해부학적 변이 데이터를 추출합니다.] [추출 완료. ‘림프계 변이 특성 profile-01’로 라이브러리에 저장되었습니다.]
이 정보는 단순한 수술 기록이 아니었다. 언젠가 백강 메디컬 그룹의 심장부를 겨냥할 때, 그들의 오만함을 밑바닥부터 부숴버릴 치명적인 무기가 될 터였다.
백현은 메스를 트레이에 툭 떨어뜨렸다. 금속음이 정적을 깨뜨렸다.
“환자는 중환자실로 옮기세요. 마취 깨는 대로 내게 보고하고.”
서은우는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백현은 수술실 문을 밀치고 나갔다. 등 뒤로 서은우의 거친 숨소리가 멀어졌다.
***
두 시간 후, 정선 세라 병원의 임시 중환자실.
낡은 인공호흡기가 쌕쌕거리는 기계음을 내뱉는 침상 머리에 하백현이 서 있었다. 침대 위에는 산소마스크를 쓴 사내가 누워 있었다. 강태훈. 정선 일대의 사설 카지노 자금을 주무르는 어둠의 거물이자, 동시에 백강 메디컬 그룹의 채권을 다량 보유한 자산가였다.
강태훈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더니 마침내 무겁게 열렸다. 충혈된 눈동자가 초점을 잡지 못하고 흔들리다 백현의 무표정한 얼굴에 멈췄다.
“여…… 기가……”
갈라진 목소리가 산소마스크 안에서 웅얼거렸다.
백현은 그의 안색을 살피는 대신, 품 안에서 서류 한 장을 꺼내 침대 머리맡에 툭 던졌다. 하얀 종이 위로 세라 병원의 미수 채권 목록과 주식 양도 합의서라는 굵은 글씨가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정신이 좀 듭니까, 강 사장님.”
백현의 목소리에는 의사 특유의 따뜻함이나 안도감 따위는 털끝만큼도 묻어있지 않았다. 차갑고 건조한 건물의 대리석 바닥 같은 어조였다.
강태훈은 떨리는 손을 들어 마스크를 약간 옆으로 밀어냈다.
“자네가…… 날 살린 의사인가?”
“의사라기보다는, 당신 목숨의 채권자라고 해 두죠.”
백현이 펜 한 자루를 그의 손가락 사이에 끼워 넣었다. 강태훈의 눈동자에 의아함과 불쾌감이 동시에 스쳤다. 아무리 사선을 넘나들었다지만, 그는 정선 바닥에서 도끼 한 자루로 돈줄을 쥔 자였다. 새파랗게 젊은 의사 놈이 눈을 똑바로 뜨고 협박조로 나오는 꼴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이게…… 무슨 짓거리야? 고맙다는 인사는 나중에 섭섭지 않게 채워줄 테니, 일단 이 수작질부터 치워.”
강태훈이 펜을 내던지려 했다. 그러나 백현은 그의 손목을 무자비할 정도로 강하게 움켜쥐었다. 뼈가 으스러질 듯한 압박에 강태훈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오해하시는 모양인데, 나는 히포크라테스 선서 같은 위선적인 서약에 목매는 사람이 아닙니다.”
백현이 상체를 숙였다. 그의 차가운 눈동자가 강태훈의 시선을 옭아맸다.
“당신은 2시간 전에 완벽하게 죽은 목숨이었습니다. 서울의 백강 본원에서도 포기하고 이곳으로 유배 보내듯 버린 쓰레기였지. 그걸 내 손으로 억지로 끄집어 내려온 겁니다. 그 대가로 내 손가락의 신경까지 태워 먹으면서 말이야.”
백현은 오른손 약지를 내밀어 보였다. 미세하게 떨리는 손끝이 강태훈의 눈앞에 머물렀다.
“이 병원이 백강 메디컬 그룹에 지고 있는 미수 채권 30억 원. 그리고 당신이 담보로 잡고 있는 백강 메디컬 그룹의 개인 소유 주식 1.5%. 그걸 지금 이 자리에서 내게 양도하십시오.”
강태훈의 얼굴이 분노로 붉게 달아올랐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쇳소리를 냈다.
“미친놈……! 의사 놈이 환자 목숨을 담보로 협박을 해? 내가 이대로 소송이라도 걸면 자네 면허는 물론이고 이 개 같은 병원도 한순간에 날아갈 줄 알아!”
“소송?”
백현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냉소적인 미소였다.
“해보십시오. 하지만 그전에 당신 가슴속에 있는 이소성 림프관이 다시 터질 겁니다. 일반적인 CT나 MRI로는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기형 혈관이지. 내가 지금 당장 이 중환자실에서 나가면, 당신은 12시간 이내에 흉강에 피가 가득 차서 숨도 못 쉬고 고통스럽게 질식사할 겁니다. 서울에서 헬기를 띄워도 여기까지 오는 데 한 시간 반이 걸리는데, 그 전에 심장이 멈추겠지.”
백현의 손가락이 강태훈의 흉골 한가운데를 꾹 눌렀다.
“윽……!”
강태훈이 비명을 지르며 몸을 떨었다. 수술 부위의 통증이 아니라, 백현이 내뿜는 압도적인 살기에 기가 눌린 탓이었다. 돈과 폭력으로 세상을 지배해 왔다고 자부했건만, 눈앞의 남자는 생사의 경계를 완전히 장악한 절대자처럼 보였다.
“지분을 넘기고 살아서 백강 놈들에게 복수를 하든, 아니면 그 잘난 주식증서를 수의 삼아 관짝으로 들어가든. 선택은 자유입니다. 내 인내심은 그리 길지 않아서 말이죠.”
백현은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환자의 사망 확률: 4.9% -> 12.0% (심리적 동요 및 혈압 상승으로 인한 출혈 위험 증가)]
실시간으로 변하는 숫자가 강태훈의 이마 위로 붉게 일렁였다. 백현의 눈에는 그 숫자가 강태훈의 목줄을 죄는 올가미로 보였다.
강태훈은 백현의 가라앉은 눈동자에서 타협의 여지가 전혀 없음을 깨달았다. 이 인간은 의사가 아니라, 악마였다. 그것도 아주 치밀하고 합리적인 거래를 제안하는 자본주의의 악마.
“……윽, 펜.”
강태훈이 마침내 패배를 선언하듯 펜을 쥔 손을 부르르 떨었다.
사각, 사각.
합의서 하단에 서명이 완성되는 순간, 백현의 시야에 푸른빛의 시스템 알림이 폭죽처럼 터져 나왔다.
[거래 성립: ‘정선 세라 병원 채권 30억 원’ 및 ‘백강 메디컬 지분 1.5%’ 확보.] [자본적 실탄이 충전되었습니다. 메디컬 그룹 찬탈을 위한 기초 자산이 형성됩니다.]
백현은 서류를 보기 좋게 접어 품에 넣었다. 그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 아주 정중하고 숙련된 동작으로 강태훈의 이불을 덮어주었다.
“현명한 선택입니다, 강 사장님. 이제 당신은 정선에서 가장 안전한 환자입니다. 푹 쉬십시오.”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중환자실을 빠져나왔다.
복도로 나오자 억눌렀던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오른손의 마비감은 여전했지만, 품에 넣은 서류의 무게감이 그 고통을 상쇄하고도 남았다. 백강 메디컬 그룹의 후계자 백한기, 그리고 그 뒤에 버티고 선 이사장 백강현. 그들의 목을 벨 첫 번째 칼날이 손에 쥐어진 것이다.
그때, 저 멀리 복도 끝에서 원장실 여직원이 사색이 된 얼굴로 달려왔다.
“하, 하 선생님! 큰일 났어요!”
그녀의 손에 들린 팩스 용지가 거칠게 휘날리고 있었다. 백현의 미간이 좁아졌다.
“무슨 일입니까?”
“서울 본사…… 백한기 부사장실에서 직접 공문이 내려왔어요. 지금 당장 원장실로 가보셔야 해요!”
백현은 여직원의 손에서 공문을 낚아챘다.
종이 상단에 박힌 백강 메디컬 그룹의 붉은 로고 아래, 피처럼 붉은 도장이 찍힌 문구가 백현의 시야를 가득 채웠다.
[정선 세라 병원 강제 청산 및 폐업 예고 통지서] [본 원은 적자 누적 및 의료 시설 기준 미달에 따라, 기한 내에 정선 세라 병원의 모든 의료 행위를 중단하고 부지를 매각 처분할 것을 명령함. - 부사장 백한기]
백현의 입꼬리가 서서히 올라갔다.
놈들이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가 이곳에서 숨통을 틔우기도 전에, 아예 싹을 잘라버리겠다는 수작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간과한 것이 있었다.
이제 이 유배지는 단순한 시골 병원이 아니었다. 백현이 움켜쥔 30억 원의 채권과 1.5%의 지분이 꿈틀거리기 시작한, 백강의 제국을 무너뜨릴 폭탄의 뇌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