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릿한 소독약 냄새와 눅눅한 곰팡이 향이 뒤섞인 정선 세라 병원의 복도는 지나치게 고요했다. 천장에 매달린 구형 형광등은 일정하지 않은 간격으로 지직거리는 소음을 내며 깜빡였다. 서울의 중심, 대한민국 의료의 정점이라 불리는 백강 메디컬 그룹 본원에서 강원도 정선의 이 퇴락한 광산촌 구석으로 쫓겨난 지 정확히 일주일째 되는 날이었다.
하백현은 창틀에 쌓인 먼지를 묵묵히 내려다보았다. 백강 메디컬 그룹의 차기 후계자로 꼽히는 백한기가 저지른 치명적인 의료 사고를 뒤집어쓰고 이곳으로 유배된 처지였다. ‘의사들의 무덤’이라 불리는 이곳에서 조용히 말라 죽으라는 백한기의 비열한 미소가 아직도 눈앞에 선명했다.
“하 선생, 여기 있었나?”
등 뒤에서 낮고 무기력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병원의 외과 과장이자, 한때는 본사에서도 알아주던 서전이었으나 지금은 그저 은퇴 날짜만 손꼽아 기다리는 노의사, 서은우였다. 그의 어깨는 잔뜩 굽어 있었고, 초점 없는 눈동자에는 세월의 때와 함께 깊은 무력감이 내려앉아 있었다.
“예, 과장님.”
백현은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 건조하게 대답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단 한 줌의 감정도 섞여 있지 않았다. 타인을 오직 가치와 숫자로만 환산하는 백현에게, 눈앞의 늙은 의사는 이미 효용 가치를 상실한 폐기물에 불과했다.
그때였다.
-위이잉! 위이이이잉!
고요를 깨부수는 거친 사이렌 소리가 병원 마당을 뒤흔들었다. 낡은 구급차 한 대가 비명을 지르며 응급실 입구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곧이어 철제 카트가 바닥을 긁는 날카로운 소음과 함께 응급구조사의 다급한 외침이 복도를 타고 넘어왔다.
“공사장 추락 환자입니다! 8미터 높이에서 비계와 함께 추락! 활력징후 급격히 저하 중입니다!”
백현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좁혀졌다. 그는 본능적으로 응급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서은우 역시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그 뒤를 따랐다.
응급실 처치실 침대 위에는 온통 피와 진흙으로 범벅이 된 50대 남성이 누워 있었다. 거친 호흡을 몰아쉴 때마다 입술 사이로 검붉은 피거품이 울컥울컥 쏟아져 나왔다.
“혈압 70에 40! 맥박 130회! 산소포화도 82%까지 떨어집니다! 복부 팽만이 심각합니다!”
간호사의 다급한 보고에 서은우가 환자의 복부를 조심스럽게 촉진했다. 손끝에 닿는 단단하고 팽팽한 감각에 서은우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갔다.
“판 페리토니티스(Pan-peritonitis, 범복막염)... 복강 내에 피가 가득 찼어. 다발성 장기 파열이다. 하 선생, 이건 우리 선에서 안 돼. 당장 삼척이나 강릉 종합병원으로 전원 조치해!”
서은우의 목소리가 떨렸다. 이곳 정선 세라 병원에는 제대로 된 CT 장비조차 부실했고, 혈액원과의 거리 때문에 수혈용 팩도 턱없이 부족했다. 마취과 의사는 이미 한 시간 전에 퇴근한 상태였다. 여기서 배를 열었다가는 테이블 데스(수술 중 사망)를 면치 못할 것이 불을 보듯 뻔했다.
하지만 백현은 환자의 손목을 짚은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의 차가운 눈동자가 환자의 전신을 훑었다.
“이 상태로 이송하면 고속도로 위에서 어레스트(심정지) 옵니다. 30분도 못 버텨요.”
“그렇다고 여기서 열겠다는 건가? 마취과도 없고, 어시스트할 인력도 없는 이 무덤 같은 곳에서? 이건 살인 행위야!”
서은우가 백현의 어깨를 붙잡으며 소리쳤다. 그러나 백현은 거칠게 그 손을 뿌리쳤다. 환자를 살려야 한다는 인도주의적 사명감 따위 때문이 아니었다. 그의 뇌리에는 오직 한 가지 계산만이 빠르게 굴러가고 있었다.
‘죽어가는 환자. 그리고 내 손을 묶고 있는 이 유배지.’
이 환자를 살려내야만 이 지옥 같은 정선에서 벗어날 첫 번째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 백강 메디컬 그룹을 집어삼키기 위한 자금이든, 인맥이든, 무엇이든 뜯어내기 위해서는 이 환자의 목숨줄을 쥐어야 했다.
“제가 집도합니다. 어시스트 서십시오, 과장님.”
백현의 음성은 얼음처럼 차가웠고, 거역할 수 없는 기묘한 압박감을 품고 있었다. 서은우는 자신도 모르게 백현의 서슬 퍼런 기세에 눌려 마른침을 삼켰다.
“미쳤군... 정말 미쳤어...”
서은우가 나직하게 중얼거렸지만, 백현은 이미 환자의 카트를 밀고 수술실로 향하고 있었다.
***
정선 세라 병원의 제1수술실. 낙후된 수술실의 공기는 음산하기 짝이 없었다. 구형 인공호흡기에서는 낡은 고무 타는 냄새가 미세하게 흘러나왔고, 무영등의 바퀴는 녹이 슬어 삐걱거렸다.
백현은 신속하게 스크럽을 마치고 수술실로 들어섰다. 수술대 위에는 간이 마취를 마친 환자가 누워 있었다. 서은우 역시 마지못해 수술 가운을 입은 채 백현의 맞은편에 섰다. 그의 눈에는 여전히 회의감과 두려움이 가득했다.
“하 선생,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이건 자살골이야. 본사에서 네 핑계를 대고 이 병원을 폐업시키려 드는 거 몰라? 기어이 꼬투리를 잡히겠다는 건가?”
“조용히 하십시오. 시끄러우면 메스 끝이 흔들립니다.”
백현은 서은우의 경고를 귓등으로 흘리며 오른손을 뻗었다.
“메스.”
간호사가 떨리는 손으로 메스를 건넸다. 백현이 메스를 쥐고 환자의 복부에 칼날을 대려는 순간이었다.
지직, 지지직!
불길한 소음과 함께 수술실 천장의 무영등이 격렬하게 흔들렸다.
“어? 왜 이래?”
간호사의 비명과 동시에 수술실의 모든 전등이 암전되었다. 사방이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잠겼다. 수술실 내부에 설치된 낡은 배전반이 과부하로 나가버린 것이 분명했다.
“정전이다! 비상 발전기 돌려! 빨리!”
서은우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몇 초 후, 덜컹거리는 진동음과 함께 비상 발전기가 가동되며 보조 전등 몇 개가 켜졌지만, 수술대를 비추는 광량은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희미한 주황색 불빛 아래에서는 환자의 복부 윤곽조차 제대로 분간하기 힘들었다.
“하 선생, 수술 중단해! 이 어둠 속에서 배를 열었다가는 어디를 자르는지도 모른 채 환자를 죽이게 돼!”
서은우가 백현의 손을 제지하려 들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백현의 시야가 급격히 뒤틀리기 시작했다. 귓가에서 웅장한 이명이 울리며, 그의 안구 표면에 푸른빛의 정교한 기하학적 선들이 어지럽게 교차했다. 암전된 수술실의 풍경 너머로, 오직 그에게만 보이는 기이한 빛의 스펙트럼이 펼쳐졌다.
[시스템 동기화 완료.] [AR 생명 계달(Ledger) 시스템이 기동합니다.]
머릿속을 울리는 무감각한 기계음과 함께, 환자의 몸 위에 반투명한 푸른색 정보창이 둥실 떠올랐다.
[환자: 정태식 (남, 54세)] [상태: 복강 내 다발성 장기 파열 및 대량 출혈] [사망 확률: 99.4%]
99.4퍼센트. 사실상 시체나 다름없는 숫자였다. 그러나 백현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그 절망적인 수치 아래로 펼쳐진 정교한 3차원 입체 그래픽이었다. 환자의 피부를 투과하여 복강 내부의 혈관 계통도가 완벽한 증강현실(AR)로 시야에 영사되고 있었다.
두껍고 붉은 하대정맥의 줄기, 그 뒤편으로 미세하게 찢어져 검붉은 피를 뿜어내고 있는 분기점이 붉은색으로 깜빡이며 경고음을 보내고 있었다.
[미세 출혈 지점: 복강 내 하대정맥 분지 분기점 후벽] [최적의 접근 경로 탐색 완료. 가이드라인을 표시합니다.]
환자의 복부 위로 선명한 네온 그린 빛의 절개선이 그려졌다. 백현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죽음의 문턱에 선 환자의 생명이, 그의 눈앞에서는 오직 정량화된 규칙과 숫자의 배열로 보이고 있었다. 이 시스템만 있다면, 보이지 않는 어둠 따위는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메스.”
백현의 목소리가 한층 더 낮고 단단해졌다.
“하 선생! 제정신이야? 이 어둠 속에서 메스를 대겠다고?”
서은우가 경악하며 소리쳤지만, 백현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서각!
가이드라인을 따라 메스가 환자의 복부를 단숨에 갈랐다. 추호의 망설임도 없는, 자로 잰 듯한 완벽한 직선이었다.
“미친...!”
서은우는 비명을 지르려다 입을 다물었다. 백현의 손놀림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빨랐기 때문이다. 보통 가이드라인도 없고 시야 확보가 안 되는 어둠 속에서는 손끝의 감각에 의존해 조심스럽게 조직을 박리해야 한다. 하지만 백현은 마치 환자의 뱃속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는 것처럼 거침없이 메스를 놀렸고, 피하조직과 근막을 단 3초 만에 돌파했다.
“리트랙터(견인기) 걸어라, 서 과장.”
반말에 가까운 백현의 지시였지만, 서은우는 대꾸할 시간조차 없었다. 백현의 압도적인 기세와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가위질에 온몸의 신경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서은우는 홀린 듯 리트랙터를 받아 들고 복벽을 벌렸다.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거무죽죽한 핏덩이들. 복강 내는 이미 피바다였다.
“석션! 빨리 석션 대!”
서은우가 소리쳤다. 피를 뽑아내지 않으면 출혈점을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백현은 석션 팁이 피를 빨아들이기도 전에, 이미 핀셋과 겸자를 들고 핏물 속으로 손을 쑤셔 넣었다. 그의 시야에는 붉게 빛나는 미세 출혈점이 선명하게 영사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확히 하대정맥 분지 후벽, 장간막 동맥 후방 2밀리미터 지점. 육안으로는 피에 가려져 절대 보이지 않는, 심지어 정상적인 조명 아래서도 복강을 전부 들어내기 전에는 찾을 수 없는 극희귀 출혈점이었다.
백현의 손가락이 피바다 속에서 번개처럼 움직였다.
탁!
혈관용 클램프가 출혈점의 상하부를 정확하게 물었다. 그 순간, 쿨럭거리며 뿜어져 나오던 검붉은 피가 거짓말처럼 멈추었다.
“...어?”
서은우의 두 눈이 튀어나올 듯이 커졌다. 석션으로 피를 다 걷어내지도 않은 상태였다. 손을 집어넣어 휘저은 지 고작 10초도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그 깊은 곳에 숨어 있던 하대정맥의 출혈점을 단번에 찾아내 클램핑한 것이었다.
“이게... 이게 어떻게 가능한가? 보이지도 않는 곳인데 어떻게 한 번에 집어넣은 거야?”
서은우의 목소리가 사정없이 떨렸다. 평생 수천 번의 수술을 집도해 온 베테랑 서전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신기(神技)였다.
백현은 그의 경악에는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그의 시야에서는 사망 확률 수치가 실시간으로 요동치고 있었다.
[사망 확률: 99.4% -> 85.2%]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하대정맥 뒤편, 관상동맥과 연결되는 미세한 림프구 변이 부위 부근에서 정밀한 출혈 징후가 추가로 포착되었다.
‘여기군.’
백현은 눈을 감지 않았다. 시야에 박힌 푸른색 가이드라인을 따라 바늘을 쥔 지침기를 움직였다.
“실크 4-0. 그리고 타 이(Tie) 준비하십시오.”
백현의 목소리에 서은우는 자신도 모르게 “어, 어!” 하고 대답하며 실을 건넸다. 은퇴만을 기다리던 늙은 의사의 눈동자에 오랜만에 뜨거운 불꽃이 일었다. 눈앞에 있는 이 젊은 의사의 솜씨는, 단순히 ‘잘한다’는 수준을 아득히 초월해 있었다. 그것은 마치 생명의 설계도를 미리 보고 짜 맞추는 신의 손길과도 같았다.
서은우는 백현의 신기에 가까운 집도 속도에 맞추기 위해 필사적으로 손을 움직였다. 무기력하게 죽어가던 그의 서전으로서의 본능이, 백현이라는 압도적인 태양 아래에서 강제로 깨어나고 있었다.
사각, 사각.
바늘이 찢어진 혈관벽을 통과하는 미세한 마찰음만이 수술실을 채웠다. 백현의 손가락은 마치 보이지 않는 실에 이끌리듯 정교하게 춤을 추었다. 어둠 속에서, 오직 보조 전등의 희미한 불빛과 그의 시야에만 보이는 푸른빛의 가이드라인에 의지한 채, 수술은 무서운 속도로 진행되었다.
“프롤렌 5-0.”
“여기 있네!”
서은우는 이제 완벽한 조수로서 백현의 손발이 되어 움직이고 있었다. 백현이 메스를 가르고, 벌리고, 꿰매는 속도는 일반적인 수술의 서너 배에 달했다.
보통의 서전이라면 출혈점을 찾기 위해 탐색하는 데만 한 시간이 걸렸을 과정을, 백현은 단 5분 만에 끝마쳤다.
그리고 10분째 되던 순간.
[사망 확률: 55.3% -> 30.1% -> 12.4%]
수치가 급격히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마지막 미세 혈관의 봉합이 완료되고, 백현이 실을 끊어내는 순간, 환자의 불규칙하던 맥박이 안정적인 리듬을 찾으며 모니터에 녹색 파형을 그리며 안착했다.
띡, 띡, 띡, 띡.
경고음을 울리던 마취 모니터의 비명 소리가 차분한 맥박음으로 바뀌었다.
[사망 확률: 2.1%] [환자의 생체 신호가 안정기에 진입했습니다.] [수술 성공률: 100% 도달.]
완벽한 성공이었다. 아무런 장비도, 제대로 된 조명도 없는 이 시골 병원의 낡은 수술실에서, 사망률 99%에 달하던 다발성 장기 파열 환자를 단 10분 만에 지혈하고 살려낸 것이다.
“...살았어.”
서은우가 땀으로 범벅이 된 이마를 훔치며 주저앉듯 소리쳤다.
“이 어둠 속에서... 그 미세한 출혈점을 단번에 잡고 봉합하다니. 자네, 정체가 뭔가? 인간의 눈으로 그게 가능한 일인가?”
그의 눈에는 경외감을 넘어선 일종의 공포마저 서려 있었다. 평생을 의업에 바친 구도자로서, 방금 백현이 보여준 집도는 의학의 영역을 벗어난 기적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백현은 마스크를 벗어 던지며 차갑게 대답할 뿐이었다.
“살 가치가 있는 환자였을 뿐입니다.”
그에게 환자는 생명의 존엄성을 지닌 존재가 아니었다. 자신을 이 나락으로 떨어뜨린 백강 메디컬 그룹을 무너뜨리고, 자신의 신경을 복구하기 위한 ‘생명 포인트’의 원천이자 적대적 M&A를 위한 자원일 뿐이었다.
그때, 백현의 시야에 황홀한 황금빛 메시지가 떠올랐다.
[수술 성공 보상] [생명 포인트 100P를 획득하였습니다.] [현재 보유 포인트: 100P]
이 포인트만 모으면, 백강의 음모로 손상되었던 신경을 완벽하게 복구하고, 그들의 숨통을 조일 힘을 얻을 수 있다. 백현의 입가에 차가운 승리의 미소가 번지려던 찰나였다.
쩌적!
머릿속이 깨질 듯한 극심한 두통과 함께, 오른손 검지 끝에서부터 타들어 가는 듯한 극심한 작열감이 덮쳐왔다.
“으윽...!”
백현은 신음을 삼키며 오른손을 움켜쥐었다. 손가락 끝이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격렬하게 경련하며 굳어갔다. 손가락의 감각이 빠르게 마비되며 차갑게 식어가는 것이 실시간으로 느껴졌다.
그의 시야에 붉은색 경고 창이 피처럼 붉게 얼룩지며 점멸했다.
[경고: 사망 확률 99% 이상의 인과율 왜곡 수술에 대한 대가가 청구됩니다.] [첫 번째 대가: 우측 척골 신경 전도도 5% 영구 하락.] [신경 마비가 진행됩니다.]
완벽한 성공의 환희 뒤로 찾아온 가혹한 인과율의 법칙. 경련하는 손끝을 내려다보는 백현의 눈동자가 깊은 심연처럼 차갑게 가라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