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타라플렉스 매트 위로 흩날리는 미세한 먼지 너머로, 서태진의 거대한 그림자가 짙게 내려앉았다.

오른쪽 손등에서 시작된 격통이 팔꿈치를 타고 어깨 관절 깊은 곳까지 송곳처럼 파고들었다. 승우는 바닥을 짚은 손끝이 제멋대로 떨리는 것을 멈추기 위해 주먹을 꽉 쥐었다. 비정상적으로 치솟는 심장 박동음이 귓가를 어지럽게 울려댔다.

[경고: 코트의 지배자 시스템 활성화 누적 시간 초과.] [전생의 신경 손상 동기화율 상승 중.] [어깨 관절 보호 장비 미착용 상태 감지: 마모율 3배 가속 페널티 적용.] [현재 어깨 부위 마모율: 4.8%]

망막을 가득 채운 붉은색 경고창은 사정없이 깜빡이며 승우의 시야를 갉아먹었다. 1화에서 처음 시스템을 각성했을 때 1%에 불과했던 마모율이, 보호대조차 차지 못한 채 격렬한 경기를 거듭하며 벌써 임계치로 치닫고 있었다. 승우는 어금니를 사려 물었다. 전생의 은퇴를 불렀던 그 끔찍한 파열 통증이, 마치 시한폭탄의 초침처럼 가슴을 짓눌렀다.

"하하하! 봤냐, 이 멸치 새끼들아!"

네트를 흔들며 가슴을 두드리는 서태진의 포효가 체육관 천장을 때렸다. 대진공고 응원석에서는 귀가 먹먹할 정도의 함성이 쏟아졌다. 정교한 블로킹 축을 피지컬 하나로 짓뭉개버린 괴물의 무력시위였다. 18대 20. 순식간에 두 점 차로 벌어진 스코어보드가 태성고의 목을 죄어왔다.

"야, 백승우. 괜찮냐?"

천다원이 땀에 젖은 얼굴로 다가와 투덜거리며 손을 내밀었다. 눈빛에는 승우의 무리한 블로킹 시도에 대한 불만과, 동시에 서태진의 파괴력에 대한 본능적인 위축이 뒤섞여 있었다.

승우는 다원의 손을 무시한 채 스스로 바닥을 밀어 일어섰다.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며 냉랭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손 치워. 공 하나 놓친 것 가지고 초상집 분위기 만들지 마라."

"뭐? 이 새끼가 진짜 걱정을 해줘도……!"

"걱정할 시간에 네 수비 위치나 신경 써."

승우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다원을 지나쳐 뒤편에 서 있는 이지한을 바라봤다. 리베로 이지한은 승우의 떨리는 오른쪽 어깨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무거운 시선이 승우의 등 뒤에 꽂혔다.

승우는 지한의 곁으로 걸어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지한아. 다음 서태진의 백어택 타점은 평소보다 30센티미터 왼쪽으로 흐를 거다."

지한의 눈썹이 꿈틀했다. 승우의 목소리는 지극히 건조하고 기계적이었다.

"서태진은 흥분하면 임팩트 순간에 골반을 과도하게 비트는 버릇이 있어. 시스템이 보여주는 궤적은 우측이지만, 실제 낙하지점은 그보다 왼쪽이다. 네 세컨 백업 진입 위치를 평소보다 0.1초 빠르게 잡고, 반 보 뒤로 물러나 대기해."

"……어깨는."

지한이 짧게 물었다. 그의 시선은 승우의 유니폼 어깨 부근에 머물러 있었다. 5화에서 벤치 뒤편, 지한이 단단하게 압박 붕대를 감아주며 승우의 가방 속 진통제 팩을 발견했던 그 기억이 두 사람 사이의 무거운 침묵으로 내려앉았다.

"버텨."

승우는 냉정하게 잘라 말했다.

"내 어깨가 부서지든 말든, 네 의무는 내가 올릴 토스의 궤적 아래로 공을 쳐 올리는 것뿐이다. 딴생각하지 마."

지한은 더는 묻지 않았다. 그저 유독 무거운 침묵 속에서 무릎 보호대를 한번 고쳐 잡고는, 승우가 지시한 수비 라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묵묵하지만 확실한 신뢰. 승우는 지한이 만들어준 등 뒤의 안전지대를 느끼며 다시 네트 앞으로 나아갔다.

*삑-!*

심판의 휘슬 소리와 함께 대진공고의 서브가 시작되었다. 강하게 회전하며 날아온 공을 태성고의 레프트가 겨우 받아냈다. 리시브가 흔들려 네트 뒤쪽으로 길게 밀려나는 상황.

승우는 공의 궤적을 쫓으며 도약했다.

그 순간, 관객석 2층 스탠드 가장자리에 앉아 있는 한 남자의 모습이 시야에 걸려들었다. 한울공고의 분석 세터, 강희제였다.

강희제는 무릎 위에 태블릿을 올려놓고, 고성능 캠코더로 승우의 오른팔 움직임을 정밀 분석하고 있었다. 그의 안경 너머 눈빛은 차갑고 예리한 메스 같았다. 이미 3화에서부터 승우의 견착 타점과 릴리즈 딜레이를 집요하게 수집해 온 강희제였다. 그는 승우가 특정 타이밍에 어깨를 미세하게 웅크리는 동작을 포착하고, 그것을 '치명적인 약점'으로 확신하고 있는 터였다.

'보고 있나, 강희제.'

승우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데이터를 맹신하는 천재 세터의 오만함. 그것만큼 요리하기 쉬운 먹잇감은 없다. 승우는 일부러 오른쪽 어깨를 크게 움츠리며 부자연스러운 궤적으로 양손을 뻗었다. 전형적인 어깨 통증으로 인한 타점 제어 실패의 모션이었다.

"오른쪽이다! 세터 어깨 나갔어! 넷 터치 조심하고 블로킹 채워!"

대진공고의 전위 블로커들이 승우의 눈속임 동작에 속아 일제히 우측으로 쏠렸다. 관객석에서 이를 지켜보던 강희제의 볼펜 끝이 멈췄다. 그의 입가에 얇은 미소가 번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승우의 손끝은 공에 닿기 직전, 0.1초의 찰나에 완전히 다른 궤적을 그렸다.

[코트의 지배자 시스템 가동: 변칙 더블 터치 페이크 릴리즈.] [상대 블로커 반응 속도: 0.24초 지연.] [사각지대 좌표 매핑 완료.]

승우는 공을 가볍게 밀어내는 척하다가 손목의 스냅을 찰나의 순간 멈추었다. 홀딩 반칙의 경계선을 교묘하게 타는, 두 손의 미세한 시간차 릴리즈. 심판의 눈에는 완벽한 원 터치 토스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상대 블로커의 도약 타이밍을 완전히 뺏는 극단적인 변칙 토스였다.

"……어?!"

대진공고 블로커들의 몸이 허공에서 먼저 떨어지기 시작했다. 승우의 손끝을 떠난 공은, 블로커들이 만들어낸 벽의 가장 깊숙한 사각지대를 뚫고 천다원의 머리 위로 완벽하게 솟구쳤다.

"쳐, 다원아!"

승우의 날카로운 외침이 코트를 가로질렀다.

천다원은 이미 승우의 노예나 다름없었다. 승우의 성격은 혐오스러웠지만, 그의 손끝에서 뿜어져 나오는 토스는 다원의 몸을 본능적으로 움직이게 만드는 마약이었다. 다원은 바닥을 짓이기며 솟구쳐 올랐다.

*콰아앙-!*

상대 블로커들의 손끝을 스치지도 않은 공이 대진공고의 코트 한가운데에 내리꽂혔다. 완벽한 노 마크 오픈 공격.

19대 20. 순식간에 추격의 불씨가 당겨졌다.

"이, 이 씨발…… 토스 타이밍이 왜 저래?!"

대진공고의 세터가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소리쳤다. 네트 너머의 서태진 역시 이마에 힘줄을 돋우며 승우를 노려보았다.

승우는 관객석 2층을 힐끗 올려다보았다. 강희제의 미소가 완전히 굳어 있었다. 태블릿을 두드리던 그의 손가락이 허공에 멈춰 서 있었다. 자신이 수집한 데이터가 철저히 기만당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분석가의 얼굴에 당혹감이 서서히 번져가고 있었다.

"데이터는 거짓말을 하지 않지."

승우는 들리지 않을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돌아섰다.

"하지만 그 데이터를 만드는 주체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잊으면, 이렇게 사냥당하는 거다."

경기는 피를 말리는 접전으로 흘러갔다.

서태진의 피지컬은 괴물 같았지만, 승우의 정교한 0.1초 조율선 앞에서는 서서히 균열을 일으키고 있었다. 승우가 지시한 위치에 정확히 버티고 선 이지한은 서태진의 강타를 연이어 걷어 올렸다.

"한 번 더!"

지한이 바닥을 뒹굴며 살려낸 공이 승우의 머리 위로 높게 솟구쳤다.

스코어는 23대 24. 태성고의 세트 포인트이자, 이 점수를 내주면 듀스로 이어지는 절체절명의 순간.

[경고: 뇌 과부하 수치 65% 돌파.] [우측 어깨 신경 마비 유발 경고음 발생.] [통증 제한 장치 가동 한계.]

눈앞이 붉은 아지랑이로 일렁였다. 어깨뼈 내부에서 타오르는 불꽃이 신경을 타고 척추까지 타고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숨을 쉴 때마다 비명이 터져 나오려 했지만, 승우는 이빨이 깨질 정도로 턱을 악물었다.

지금 여기서 무너질 수는 없다. 전생의 그 비참했던 백업 세터의 삶으로 돌아갈 바에는, 차라리 이 코트 위에서 어깨가 완전히 떨어져 나가는 편이 나았다.

"다원아!"

승우의 목소리는 피가 섞인 듯 걸걸했다.

"뛰어라. 네 한계는 거기가 아니다."

승우는 공의 궤적을 0.1초 단위로 쪼개며, 마지막 힘을 쥐어짜 내 토스를 올렸다. 공은 네트 상단 322센티미터의 허공, 오직 천다원만이 도달할 수 있는 극단의 공간에 멈춰 서듯 내려앉았다.

'옥죄는 배급.'

그것은 공격수의 체력과 심리를 벼랑 끝까지 밀어붙여, 오직 승리만을 짜내기 위한 독재자의 채찍이었다.

"으아아아아아!"

천다원은 비명을 지르며 날아올랐다. 그의 근육이 찢어질 듯 팽팽하게 당겨졌다. 승우가 만들어낸 절대적인 정점의 공간에서, 다원의 오른팔이 대포동 미사일처럼 휘둘러졌다.

*파아아앙-!!!*

공은 대진공고의 블로커 세 명의 손끝을 완전히 관통하며 바닥에 작렬했다. 수비수들이 몸을 날렸지만, 공은 이미 코트 밖 펜스를 강타한 뒤였다.

*삑-!*

세트 종료를 알리는 주심의 긴 휘슬 소리.

25대 23. 태성고의 2세트 획득이었다.

체육관이 떠나갈 듯한 함성이 태성고 응원석에서 터져 나왔다. 천다원은 착지하자마자 무릎을 잡고 거친 숨을 몰아쉬었고, 이지한은 조용히 승우의 곁으로 다가와 그의 흔들리는 몸을 부축했다.

"끝냈다."

지한이 나직하게 말했다.

승우는 대답 대신 거친 숨을 내뱉으며 관객석 높은 울타리를 올려다보았다.

그곳에는 강희제가 서 있었다. 그는 태블릿을 가방에 넣고는, 천천히 두 손을 들어 가볍게 박수를 치고 있었다. 비웃음과 경계심이 기묘하게 섞인 미소.

강희제의 시선이 승우의 붉게 달아오른 오른쪽 어깨에 머물렀다. 그의 눈빛은 마치 '네 수명은 여기까지다'라고 말하는 듯 차가웠다.

승우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강희제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마주 보았다. 허공에서 두 세터의 날카로운 눈빛이 스파크를 일으키며 격돌했다. 지옥 같은 3세트의 서막을 알리는 침묵의 선전포고였다.

"세트 스코어 1대 1! 태성고가 기어이 대진공고의 숨통을 추격하며 경기를 파이널 세트로 끌고 갑니다! 백승우 세터의 변칙적인 볼 배급이 완전히 먹혀들었습니다!"

장내 아나운서의 고양된 목소리가 앰프를 타고 코트를 흔들었지만, 승우의 귀에는 그저 웅웅거리는 이명으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웜업존으로 걸어가는 승우의 걸음걸이가 미세하게 흐트러졌다. 오른쪽 어깨관절 내부에서 타오르는 열감이 가슴뼈를 타고 목덜미까지 뻗쳐올랐다. 단순한 통증이 아니었다. 전생의 수술실에서 느꼈던, 신경이 한 올 한 올 끊어지는 듯한 찌릿한 마비감이 손가락 끝까지 번지고 있었다.

탁.

벤치 뒤편의 그늘진 구석, 승우가 주저앉듯 의자에 깊숙이 몸을 묻은 순간이었다. 이지한이 말없이 승우의 앞을 가로막아 서며 관중석과 카메라의 시야를 차단했다.

"대라."

지한의 손에는 이미 가위와 두꺼운 고탄력 키네시오 테이프, 그리고 승우의 가방 깊숙한 곳에서 꺼낸 초강력 냉각 압축 팩이 들려 있었다. 지난 5화의 새벽 특훈 날, 승우의 사물함에서 발견했던 비상용 진통제와 보강재들의 용도를 지한은 굳이 묻지 않았다. 그저 세터의 몸이 한계에 달했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인지했을 뿐이다.

치이익-!

강력한 냉각 스프레이가 어깨 피부에 닿자마자 얼어붙는 듯한 감각과 함께 통증이 일시적으로 마비되었다. 지한의 손길은 기계적이면서도 정교했다. 견갑골의 움직임을 구속하지 않으면서도, 삼각근과 회전근개를 최대한 단단하게 들어 올리는 프로 수준의 이중 압박 테이핑이 승우의 어깨 위로 겹겹이 얹혔다.

"어깨가 고장 난 세터의 토스는 리베로가 아무리 잘 받아 올려도 쓰레기다."

지한이 테이프를 강하게 잡아당겨 승우의 쇄골 부근에 밀착시키며 나직하게 읊조렸다. 그의 손아귀에 실린 힘이 유독 묵직했다.

"그러니까 버텨라. 3세트가 끝날 때까지는 네 손가락이 부러져도 공을 띄우란 말이야."

승우는 굳어가는 얼굴로 지한을 올려다보았다. 동정이나 위로 따위는 없는, 철저히 승리만을 갈망하는 사냥개의 눈빛. 그 독한 눈빛이 오히려 승우의 비틀린 마음에 안도감을 주었다.

"걱정 마라. 내 지휘봉이 꺾이는 일은 없다."

승우는 붕대로 꽁꽁 싸매여 감각이 둔해진 어깨를 억지로 몇 번 회전시켰다. 뻐근한 저항감이 느껴졌지만, 근육이 강제로 고정된 덕에 어깨의 흔들림은 확실히 줄어들었다.

[경고: 일시적 마취 조치로 인한 통증 차단 상태.] [경고: 실제 신경 마모는 정상 속도의 3.5배로 누적 진행 중.] [현재 어깨 부위 마모율: 5.1%]

뇌를 찌르는 경고창을 눈짓으로 지워버리며 승우는 다시 코트로 걸어 나갔다.

3세트. 매치 포인트를 향한 마지막 15점 승부. 고교 배구 예선전의 룰에 따라 파이널 세트는 15점 제의 단기전으로 치러진다. 단 한 번의 범실, 단 한 번의 토스 미스가 그대로 탈락을 의미했다.

"야, 멸치 새끼."

네트 너머에서 대기하던 서태진이 승우를 발견하고는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그의 유니폼은 이미 땀으로 흥건히 젖어 있었지만, 두 눈에 서린 살기는 오히려 2세트보다 더 흉포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그 어깨 장식품, 언제까지 버티나 보자. 이번 세트에는 네 손가락째로 공을 처박아 줄 테니까."

"입만 살아 움직이는군, 서태진."

승우는 냉랭하게 대꾸하며 백 라인으로 이동했다.

*삑-!*

경기 시작을 알리는 휘슬이 울렸다. 대진공고의 서브가 매섭게 태성고의 코트 구석을 파고들었다.

"오라이!"

다원이 몸을 날려 리시브를 시도했다. 하지만 강력한 무회전 플로터 서브는 다원의 팔뚝을 맞고 네트 안쪽이 아닌, 안테나 바깥쪽의 불가능한 궤적으로 꺾여 나갔다. 배구 규칙상 안테나 외곽을 벗어난 공은 정상적인 어택 라인 안으로 되돌릴 수 없다.

"아웃 오프 바운드 궤적 진입!" "안 올라가!"

태성고 벤치에서 절망적인 비명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승우의 망막 위로 푸른색 예측선이 번쩍였다.

[안테나 외부 볼 궤적 역추적 완료.] [반사각 84도. 터치 타이밍 0.12초 전.] [코트의 지배자 시스템 강제 동기화.]

승우는 속도를 늦추지 않고 코트 밖, 심판대 바로 아래의 사각지대를 향해 몸을 던졌다. 오른발로 타라플렉스 매트 끝을 강하게 디디며 허공으로 솟구쳤다. 어깨를 구속한 테이핑이 팽팽하게 찢어질 듯한 비명을 질렀다.

"미친 세터 놈이 저걸 잡으러 간다고?!"

대진공고의 블로커들이 경악한 표정으로 승우의 움직임을 쫓았다.

승우는 공중에서 상체를 비틀며 안테나 밖으로 완전히 벗어난 공의 아래쪽으로 오른손을 뻗었다. 0.1초 단위로 쪼개진 시야 속에서, 공의 가죽 표면에 새겨진 미세한 홈까지 선명하게 다가왔다.

'잡는다.'

손가락 끝에 닿는 둔탁한 감각. 승우는 어깨의 회전을 최소화한 채, 오직 손목과 손가락의 척골 반사만을 이용해 공을 네트 정중앙의 가장 높은 타점으로 쳐 올렸다. 중력을 거스르는 듯한 역회전 언더 토스였다.

"다원아, 때려!"

"으오오오옵!"

뒤늦게 달려 들어온 천다원이 승우가 띄워 올린 기적 같은 공을 향해 도약했다. 상대의 블로킹 벽이 미처 제대로 형성되기도 전, 다원의 스파이크가 대진공고의 빈 코트를 강타했다.

*콰앙!*

1대 0. 기선제압을 하는 태성고의 선취점이었다.

"말도 안 돼…… 저 각도에서 토스를 올렸다고?"

관객석의 강희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의 손에 들린 태블릿 화면에는 방금 전 승우의 도약 각도와 어깨의 가동 범위가 실시간 데이터로 렌더링되고 있었다.

"아니야. 무언가 이상해."

강희제의 미간이 좁혀졌다. 화면 속 승우의 오른쪽 어깨 가동 범위는 정상적인 세터에 비해 확연히 좁아져 있었다. 테이핑으로 강제 고정해 둔 상태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볼의 낙하지점을 찾아가는 풋워크와 터치 타이밍은 오히려 이전 세트보다 0.05초 빨라져 있었다.

"어깨가 망가졌는데…… 어떻게 더 완벽해지는 거지?"

컴퓨터 같은 분석력을 자랑하는 강희제의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데이터 너머의 사각지대. 그것은 시스템이 제공하는 초월적인 감각과, 전생의 무명 시절을 거치며 뼈에 새겨진 승우의 승부욕이 결합해 만들어낸 미지의 영역이었다.

경기는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진흙탕 싸움으로 변해갔다.

서태진의 피지컬은 확실히 위협적이었다. 그는 전위로 올라올 때마다 압도적인 높이에서 태성고의 블로커들을 유린하며 득점을 올렸다. 8대 9. 대진공고가 1점을 리드한 채 코트 체인지가 이루어졌다.

승우의 이마에서 흘러내린 땀방울이 타라플렉스 바닥 위로 툭툭 떨어졌다.

손끝의 감각이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다. 지한이 감아준 단단한 테이핑조차 피와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지지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시스템이 제공하는 시각적 UI마저 미세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경고: 뇌 과부하 한계치 도달 임박(78%).] [예측 궤적의 오차 범위가 증가합니다.] *치이익-*

시야 구석에 노이즈가 끼며 붉은색 궤적선이 두 갈래로 갈라져 보였다. 승우는 흔들리는 머리를 세차게 흔들며 초점을 맞추려 애썼다.

그 순간, 대진공고의 세터가 볼을 잡았다. 그의 손끝에서 튕겨 나간 공이 네트 중앙으로 낮고 빠르게 흘렀다. A퀵 속공의 궤적.

하지만 네트 너머에서 도약하는 것은 미들 블로커가 아니었다.

오른쪽 전위에서 폭발적인 속도로 중앙을 향해 꺾어 들어오는 거구. 서태진이었다.

"이 자식들이……!"

다원이 뒤늦게 블로킹을 위해 발을 뗐지만, 서태진의 템포가 한 박자 더 빨랐다. 서태진은 허공에서 승우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야만적인 미소를 지었다.

"끝이다, 백승우!"

공중에서 두 개의 예측 궤적이 겹쳐지며 승우의 시야를 어지럽혔다. 왼쪽인가, 오른쪽인가. 시스템의 일시적인 랙(Lag)으로 인해 정확한 타격 지점이 매핑되지 않았다. 0.1초의 짧은 침묵 속에서, 승우의 심장이 쿵쾅거리며 요동쳤다.

바로 그때, 서태진의 스파이크가 허공을 가르며 승우의 두 손을 향해 내리꽂혔다. 블로킹 벽을 무너뜨리는 것을 넘어, 승우의 어깨를 완전히 끝장내겠다는 듯한 악의가 담긴 다이렉트 킬이었다.

*콰아아아앙-!!!*

엄청난 충격음과 함께 승우의 두 손바닥에 묵직한 질량이 얹혔다. 그리고 그 순간, 승우의 귓가에 뼈가 어긋나는 듯한 불길한 파열음이 선명하게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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