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천다원의 커다란 손아귀가 멱살을 틀어쥐는 순간, 승우의 턱밑으로 뜨거운 콧김이 훅 끼쳤다. 땀에 젖어 눅눅해진 유니폼이 팽팽하게 당겨지며 목줄기를 죄었다. 분노로 벌겋게 충혈된 다원의 안광이 승우의 눈동자 바로 앞까지 들이닥쳤다.

전신을 집어삼키는 승리의 희열 속에서도, 철저하게 이용당했다는 자각이 다원의 이성을 마비시킨 모양이었다.

"너…… 날 대체 뭘로 생각하는 거야?"

짐승의 으르렁거림 같은 목소리였다. 체육관의 서늘한 공기가 두 사람의 대치선 사이에서 팽팽하게 얼어붙었다.

승우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두 입술을 굳게 다문 채, 다원의 손목 관절 안쪽, 정중신경이 지나가는 급소 부근을 정확히 겨냥했다.

*탁!*

승우의 단단한 손날이 다원의 손목을 가차 없이 내리쳤다.

예리한 타격음에 다원이 비명을 삼키며 손아귀의 힘을 풀었다. 찌릿한 통증에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서는 다원의 가슴팍을 향해, 승우는 한 걸음 더 밀고 들어갔다. 흔들림 없는 시선이 다원의 일그러진 얼굴을 옭아맸다.

"쓸데없는 감정 낭비할 시간 있으면 점프 피치나 올려."

조소조차 섞이지 않은, 극도로 건조하고 냉정한 어조였다.

"이길 방법은 대령했다. 기어 나가서 들러리나 서든지, 내 노예가 되어 우승컵을 뜯든지 네가 직접 택해라. 질질 짜면서 자존심 타령할 거면 당장 네트 뒤로 꺼지든가."

"이, 개새끼가……!"

다원의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당장이라도 주먹을 날릴 기세였지만, 승우의 눈빛에 담긴 압도적인 확신과 기백에 눌려 발끝은 움직이지 못했다.

그때, 등 뒤에서 묵묵히 상황을 지켜보던 리베로 이지한이 다원의 어깨를 짚었다.

"그만해라, 다원이 너도 알잖아. 방금 그 토스가 아니었으면 네 최고 타점은 구경도 못 했을 거라는 거."

지한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쐐기를 박았다. 다원은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돌렸다. 억울함과 굴욕감, 그리고 부정할 수 없는 승리의 쾌감이 뒤섞인 복잡한 표정이었다.

승우는 그 모습을 보며 속으로 냉소했다. 신뢰니 연대니 하는 얄팍한 단어는 코트 위에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승리라는 마약만이 이 야수들을 지배할 뿐이다.

그 순간, 승우의 오른쪽 어깨 깊은 곳에서 찌르는 듯한 날카로운 환상통이 일어났다.

*두근!*

심장박동과 동조하듯 망막 위에 붉은색 경고 시스템 창이 점멸했다.

[위험: 부상 방지 보호 장비 미착용 상태.] [경고: 어깨 마모율 가속화 3배 적용 중.] [현재 누적 마모율: 8.4%] [경고: 일계 허용치를 초과하여 아라크네 시스템 가동 시, 영구적인 신경 마비 리스크가 동반됩니다.]

뇌리를 찌르는 이명과 함께 관절막이 뜯겨 나가는 듯한 통증이 상완이두근 장두를 타고 흘러내렸다. 1화에서 시스템을 최초로 각성했을 때 나타났던 마모율 1% 상승 메시지가 떠올랐다. 전생에서 자신을 은퇴로 몰고 갔던 파열의 전조였다. 보호대도 없이 이 짓을 계속하다간 정말로 어깨가 주저앉을 터였다.

승우는 이를 악물고 오른팔을 등 뒤로 숨기며 주먹을 쥐었다 폈다. 손끝이 미세하게 저려왔지만, 멈출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세계 최정상. 그 자리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이 걸레짝 같은 어깨가 부서지더라도 멈추지 않는다.

***

사흘 뒤.

전국 종합체전 예선이 치러지는 종합체육관 메인 스타디움의 열기는 상상 이상이었다.

높은 천장 아래 매달린 거대한 메탈 할라이드 조명등이 코트를 눈부시게 비추었다. 사방을 가득 채운 관중들의 함성과 함성 소리가 고막을 멍하게 만들었다. 바닥에 깔린 주황색 타라플렉스 매트는 밟는 느낌부터가 학교 체육관의 낡은 마룻바닥과는 궤를 달리했다.

승우는 코트 주변을 가볍게 뛰며 어깨의 상태를 점검했다. 테이핑조차 하지 않은 맨살의 어깨가 차가운 공기에 노출되어 아릿했다.

자신의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돌린 곳에는, 관중석 중단에 자리 잡은 한 남자가 보였다.

단정한 트레이닝복 차림에 원거리 비디오 카메라를 삼각대에 고정해 둔 채 승우를 노려보는 시선. 한울공고의 천재 세터이자 분석의 귀재, 강희제였다.

강희제는 렌즈의 초점을 승우의 오른쪽 어깨와 견착 타점에 맞춘 채, 펜으로 무언가를 꼼꼼히 기록하고 있었다. 자신을 해부하듯 뜯어보는 그 끈질긴 시선에 승우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마음껏 훔쳐봐라. 그 데이터가 네 목을 조르는 밧줄이 될 테니.'

"이봐, 태성고 멸치 세터!"

네트 너머에서 지옥의 파동 같은 굵직한 음성이 고막을 때렸다.

키 198센티미터, 몸무게 95킬로그램의 거구. 대진공고의 에이스이자 고교 배구계의 파괴신으로 불리는 서태진이 네트 앞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멧돼지 같은 흉곽을 들썩이며 승우의 어깨 쪽을 노골적으로 훑어보는 그의 얼굴에는 비열한 실소가 걸려 있었다.

"어깨 보호대도 안 차고 기어 나왔냐? 몸뚱이 사리면서 조심조심 공 띄우는 계집애 같은 배구는 오늘로 끝이다. 내 블로킹 벽에 처박혀서 질질 짜지나 마라!"

서태진이 네트를 주먹으로 거칠게 내리치며 포효했다. 네트가 출렁이며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압도적인 피지컬에서 뿜어져 나오는 위압감에 태성고의 다른 선수들이 주춤하며 위축되는 것이 보였다.

승우는 가만히 서태진을 대면했다. 그의 눈앞에 서태진의 신체 정보와 운동 도약 한계 수치가 실시간 파란색 선으로 매핑되기 시작했다.

[서태진 (대진공고 / 라이트 스파이커)] - 신장: 198.4cm - 서전트 점프 최고점: 335cm - 블로킹 도약 딜레이: 0.18초 - 특이사항: 오른손 검지 릴리즈 시 미세한 반사 지연 발생.

"목소리만 큰 짐승이군."

승우가 나지막하게 읊조렸다.

"뭐라 마이?"

"시끄러우니까 입 닥치고 네트에나 붙어 있어라. 손가락 뼈마디가 부러지기 싫으면."

승우의 무감각한 대꾸에 서태진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게 달아올랐다.

*삐이이이-!*

경기 개시를 알리는 주심의 호각 소리가 체육관의 소음을 단숨에 찢어발겼다.

대진공고와의 예선 1세트가 마침내 시작되었다.

대진공고의 강력한 목적타 서브가 태성고의 리시브 라인을 흔들었다. 리베로 이지한이 몸을 날려 겨우 받아낸 공이 네트 위로 높게 솟구쳤으나, 궤적이 불안정하게 흔들리며 안테나 바깥쪽으로 치우쳤다.

"이단 연결!"

다원이 외치며 달려 나갈 준비를 했다. 하지만 승우는 이미 공의 낙하지점 아래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망막 위에 빛나는 궤적이 그려졌다.

[예측 낙하지점 매핑 완료.] [어깨 부하 강도: 48%] [통증 임계치 접근 중.]

눈밑으로 보랏빛 안개 같은 잔상이 가른다. 어깨 관절 속에서 송곳으로 후벼 파는 듯한 통증이 치밀었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러내렸지만, 승우의 손끝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지금이다.'

승우는 뛰어오르며 공을 포착했다. 동시에 상대편 블로커 서태진이 네트 너머에서 거대한 성벽처럼 솟구쳐 올랐다. 두꺼운 두 팔이 네트 위를 넘어 승우의 공격 코스를 완전히 차단하고 있었다. 도저히 뚫을 틈이 보이지 않는 철벽이었다.

보통의 세터라면 여기서 백토스로 반대편 공격수를 찾거나, 페인트로 빈틈을 노렸을 것이다.

하지만 승우의 머릿속 슈퍼컴퓨터는 전혀 다른 해답을 내놓고 있었다.

[시스템 매칭: 서태진의 점프 밸런스 붕괴 감지.] [우하방 타점 미끄러짐 발생. 딜레이 0.12초.] [최적 타격 궤적 산출: 서태진 오른손 검지 첫 마디 끝부분.]

서태진은 압도적인 탄력으로 뛰어올랐지만, 착지 시의 밸런스를 고려하지 않은 탓에 도약 정점에서 우측 하단으로 0.1초의 균열이 발생했다. 아주 미세한, 인간의 눈으로는 결코 포착할 수 없는 틈이었다.

승우는 공을 쥐어짜듯 쳐내지 않았다.

손목의 스냅을 이용해 공의 탄속을 극대화하며, 오직 서태진의 오른손 검지 끝마디를 정면으로 겨냥해 공을 쏘아 보냈다.

*슈우욱!*

공은 다원의 스파이크를 위한 토스가 아니었다. 세터인 승우가 직접 상대 블로커의 손끝을 겨냥해 날린 정교한 다이렉트 킬, 터치아웃 테크닉이었다.

"어?!"

서태진이 공중에서 눈을 부릅떴다. 자신의 손가락 바로 앞으로 0.1초의 오차도 없이 날카롭게 파고드는 배구공이 보였다. 피하려 해도 이미 도약한 몸은 공중에서 제어할 수 없었다.

*탁!*

공은 서태진의 오른손 검지 첫 마디 끝부분을 정확히 때린 뒤, 무서운 회전력을 그리며 대진공고의 코트 바깥쪽 관중석 깊숙한 곳으로 튕겨 날아갔다.

*데구르르……*

라인 아웃. 하지만 터치아웃 판정이었다.

*삐이-!*

부심의 시그널과 함께 태성고의 점수판이 먼저 올라갔다.

1-0.

"이, 이런 잔머리 굴리는 새끼가……!"

네트 너머로 착지한 서태진이 제자리에 멈춰 서서 자신의 오른손을 내려다보았다. 손가락 끝마디가 벌겋게 부어올라 있었다. 블로킹 벽 뒤의 구석 모서리를 노려 수비하려던 대진공고의 수비수들은 멍하니 허공만 바라볼 뿐이었다.

완벽한 피지컬을 자랑하던 거신이, 오직 0.1초의 궤적을 계산한 천재 세터의 손끝에 놀아나 바보가 된 순간이었다.

관중석에서 야유와 탄성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승우는 착지하며 차가운 시선으로 서태진을 응시했다.

"말했잖아. 손가락 부러지기 싫으면 조심하라고."

"야, 백승우……!"

서태진이 이빨을 갈며 네트 밑으로 발을 들이밀려 했으나, 동료들이 황급히 그를 붙잡아 말렸다.

이 모습을 관중석에서 지켜보던 한울공고의 강희제는 캠코더 화면을 정지시켰다. 그의 미간이 좁아졌다.

'방금 그건 우연이 아니야. 서태진의 손가락 끝을 정확히 조준했어. 어떻게 저 속도에서 저런 궤적을 찾아내지?'

강희제의 만년필이 수첩 위를 어지럽게 긁어내렸다. 승우의 플레이는 그가 아는 고교 수준의 배구가 아니었다. 철저히 계산된 잔혹한 연출가의 무대였다.

***

경기는 1세트 중반으로 치달았다.

승우는 자신의 어깨가 타들어 가는 듯한 통증 속에서도 지독할 정도로 정교하게 태성고의 공격진을 지배했다.

"다원, 0.05초 늦어. 다음은 타점 320센티미터로 고정한다. 몸이 찢어지더라도 도약해."

"야! 너 진짜 적당히……!"

"득점하고 싶으면 뛰어라."

승우의 얼음장 같은 지시에 다원은 미칠 것 같은 분노를 느꼈지만, 신기하게도 승우가 올리는 토스는 항상 자신의 손바닥이 가장 기분 좋게 닿는 궤적의 정점에 멈춰 서 있었다.

결국 다원은 욕설을 내뱉으면서도 짐승처럼 날아올랐고, 공은 대진공고의 코트 구석구석에 내리꽂혔다.

독재자의 채찍질에 길들여진 기계들처럼, 태성고의 공격수들은 비명을 지르며 득점을 짜내고 있었다.

마침내 세트 포인트.

승우의 정교한 볼 배급과 터치아웃 테크닉에 휘둘린 대진공고는 우왕좌왕하다가 마지막 공격 범실을 저질렀다.

*삐이이이-!*

1세트 종료. 25대 21, 태성고의 승리였다.

"말도 안 돼…… 태성고가 대진공고를 상대로 1세트를 가져갔다고?"

"저 세터 뭐야? 백승우라고? 토스 웍이 완전히 미쳤는데?"

관중석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하위권을 전전하던 태성고의 반란에 메인 스타디움 전체가 들썩였다.

하지만 승우는 기뻐할 여유가 없었다.

벤치로 돌아오는 길, 오른쪽 어깨에서 시작된 통증이 목덜미를 타고 척추까지 번져 나갔다. 눈앞이 순간적으로 핑 돌며 보랏빛 잔상이 거칠게 흔들렸다.

"승우야."

리베로 이지한이 수건을 건네며 승우의 어깨를 조심스럽게 살폈다. 승우의 셔츠가 땀으로 흥건히 젖어 있었고, 숨소리는 지나치게 가빴다.

"테이핑 해줄까? 어깨 상태가 심상치 않아 보여."

"필요 없어."

승우가 차갑게 거절했다.

"테이핑을 하면 관절의 가동 범위가 2센티미터 줄어든다. 0.1초의 오차도 허용할 수 없어. 이대로 간다."

지한은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승우의 독선적인 태도 뒤에 숨겨진 시한부 같은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지한은 말없이 승우의 등을 가볍게 두드려 줄 뿐이었다.

***

2세트가 시작되자, 코트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대진공고의 감독이 작전 타임을 통해 수비 라인을 대폭 수정했고, 무엇보다 네트 너머 서태진의 눈빛이 이성을 잃은 야수의 그것으로 변해 있었다.

"잔대가리 굴리는 세터 놈부터 밟아버린다."

서태진이 이를 갈며 전위로 올라왔다.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가 코트를 무겁게 짓눌렀다.

2세트 후반, 스코어는 18대 19로 팽팽한 접전이었다.

대진공고의 세터가 언더핸드로 낮고 빠르게 올린 공이 네트 왼쪽으로 길게 흘렀다. 나쁜 토스였다. 블로커가 자리 잡기 쉬운 불안정한 궤적.

하지만 서태진에게는 그딴 전술적 정교함 따위는 필요 없다는 듯했다.

"으아아아아아!"

포효와 함께 서태진이 코트 바닥을 차고 솟구쳐 올랐다.

엄청난 도약력이었다. 그의 무릎이 네트 상단에 닿을 듯한 착각마저 불러일으켰다. 허공에 거대한 거신이 머무르는 듯한 압도적인 체공 높이.

승우는 시스템의 궤적을 따라 블로킹 축을 맞추며 다원과 함께 뛰어올랐다.

[예측 타격 지점 산출 완료.] [적 파괴력 수치: 임계치 초과.] [경고: 블로킹 축 붕괴 위험.]

망막 위에 붉은색 경고등이 미친 듯이 점멸했다. 하지만 승우는 물러서지 않고 두 손을 앞으로 뻗어 철벽을 만들었다.

공중에서 서태진의 거대한 상체가 활처럼 휘어졌다. 그리고 그의 무지막지한 오른팔이 채찍처럼, 아니 투하되는 포탄처럼 배구공을 내리쳤다.

*콰아아아아앙-!!!*

체육관 전체가 무너져 내리는 듯한 파괴적인 폭음이 작렬했다.

서태진이 내리꽂은 광폭의 피지컬 스파이크는, 승우가 세워둔 정교한 블로킹 축을 말 그대로 '박살' 내며 파고들었다. 승우의 손가락 끝에 스친 공은 속도가 전혀 줄어들지 않은 채, 태성고의 수비 라인 정중앙 바닥을 강타했다.

*콰앙!*

바닥에 충돌한 공은 엄청난 회전과 함께 코트 뒤편 펜스까지 날아가 처박혔고, 타라플렉스 매트 위에는 거대한 먼지 폭풍이 일어나는 듯한 잔상이 남았다.

승우는 충격의 여파로 코트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으며 밀려났다.

오른쪽 손목과 어깨를 타고 전해지는 무시무시한 충격에 숨이 턱 막혔다. 손끝이 감각을 잃은 채 부르르 떨렸다.

"하하하! 봤냐, 이 멸치 새끼들아!"

네트 너머에서 착지한 서태진이 가슴을 두드리며 야수처럼 포효했다. 그의 압도적인 일격에 태성고 코트 전체가 깊은 침묵과 공포에 휩싸였다.

코트 바닥에 주저앉은 승우의 망막 위에, 붉은색 시스템 경고창이 다시 한 번 거칠게 점멸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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