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픽셀이 뭉개진 태블릿 화면 속에서, 사내의 거대한 어깨가 양옆으로 비죽 솟아 있었다. 대진고등학교의 라이트 백어택커 서태진. 그는 인터뷰 마이크를 향해 침을 뱉듯 뇌까렸다.

- "태성고 세터요? 아, 그 백승우라는 애?"

서태진이 굵은 목덜미를 꺾으며 이빨을 드러냈다. 카메라는 그의 오만한 눈빛을 클로즈업했다.

- "몇 번 기교 좀 부린다고 세터가 된 줄 아나 본데, 제 블로킹 벽 앞에서는 그냥 툭 치면 깨지는 유리 인형에 불과합니다. 진짜 배구가 뭔지 코트 위에서 뼈저리게 느끼게 해 주죠. 기대해라, 기교파 꼬맹이."

툭, 화면이 꺼졌다. 검은 유리 액정 위로 백승우의 메마른 안색이 비쳤다.

"유리 인형이라."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분노가 아닌, 차가운 생리적 거부감이 척추를 타고 내렸다. 승우는 자신의 오른쪽 어깨 관절을 천천히 돌렸다. 셔츠 너머 뼈와 인대가 맞물리는 곳에서 쇠사슬이 쓸리는 듯한 둔탁한 소리가 났다.

[경고: 어깨 관절막 마모율 가속화 진행 중.] [현재 부상 방지 보호 장비 미착용 상태. 누적 마모율 가속 페널티가 3배로 증폭됩니다.]

망막을 찌르는 붉은색 시스템 경고창이 눈앞에서 점멸했다. 회귀와 동시에 얻은 '코트의 지배자' 시스템은 승우에게 신적인 예측 시야를 선사했으나, 그 대가는 전생의 어깨 파열 통증을 실시간으로 앞당기는 가혹한 사형 선고였다.

체육관 창문 너머로 푸르스름한 새벽빛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오전 4시 30분. 아직 경비원조차 출근하지 않은 시간, 태성고등학교 체육관의 왁스 칠한 바닥은 얼음판처럼 차가웠다.

"세 걸음 더 뒤로 가."

승우의 목소리가 텅 빈 체육관의 천장을 때렸다.

"뭐?"

안면 가득 땀을 흘리며 무릎을 짚고 있던 천다원이 고개를 쳐들었다. 그의 셔츠는 이미 소금기 어린 땀으로 젖어 얼룩덜룩해진 상태였다. 새벽부터 소집되어 세 시간째 반복되는 도약 훈련에 다원의 허벅지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서태진의 블로킹 도약 높이는 최고 345센티미터다. 속도가 느린 C퀵이나 정직한 오픈 토스로는 그 벽을 절대 넘지 못해. 네 도약 시작 지점이 지금보다 반 걸음만 늦어도, 공은 네 손을 떠나기도 전에 서태진의 손바닥에 걸려 바닥으로 처박힐 거다."

"야, 백승우! 지금 세 시간째 점프만 뛰었어! 발목이 부러질 것 같다고!"

"그럼 부러진 채로 뛰어."

승우의 어조에는 한 줌의 동정심도 섞여 있지 않았다.

"이 코트 위에서 쓸모없는 고기는 필요 없어. 서태진의 블로킹 타이밍을 찢어발기려면, 네가 공중에서 볼을 터치하는 순간을 0.1초 앞당겨야 해. 그러기 위해선 러닝 스텝을 밟을 때 마지막 디딤발의 각도를 안쪽으로 10도 더 꺾어라. 원심력을 가속도로 바꾸란 뜻이야."

"크윽……!"

다원이 이를 악물었다. 그의 눈동자에 서린 것은 승우를 향한 깊은 증오와, 동시에 부정할 수 없는 기묘한 굴복이었다. 승우의 말대로 스텝을 밟았을 때 몸이 공중으로 한 뼘 더 솟구치는 그 감각을, 다원의 육체는 이미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승우는 천다원의 반응을 확인하지 않은 채, 구석에 놓인 가방으로 걸어갔다. 어깨 관절 깊은 곳에서 타오르는 화끈한 열감을 식혀야 했다. 가방 지퍼를 열고 거칠게 내용물을 뒤적이는 순간, 손끝이 무뎌진 탓에 가방이 바닥으로 엎어졌다.

툭, 투두둑.

싸구려 플라스틱 약병과 때 묻은 관절막 압박 붕대가 먼지 쌓인 마루판 위로 굴러갔다. 정밀 검진 진통제 병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굴러가다 누군가의 발끝에 멈췄다.

검은색 아식스 배구화. 태성고의 리베로, 이지한이었다.

지한은 말없이 허리를 숙여 진통제 병을 집어 올렸다. 약병에 인쇄된 붉은색 경고 문구를 바라보는 그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이거, 전생…… 아니, 예전부터 쓰던 거냐?"

지한이 목소리를 낮추며 승우에게 다가왔다. 그는 약병과 붕대를 승우의 가방에 밀어 넣으며, 승우의 오른쪽 어깨를 유심히 살폈다. 승우는 불쾌한 기색을 숨기지 않고 지한의 손에서 가방끈을 낚아챘다.

"참견하지 마."

"참견이 아니야, 세터 새끼야."

이지한의 어조는 평소와 달리 무거웠다. 그는 승우의 젖은 훈련용 티셔츠 깃을 거칠게 잡아당겼다. 드러난 승우의 오른쪽 어깨는 붉게 충혈되어 있었고, 견갑골 주변의 근육들이 비정상적으로 수축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보호 장비조차 착용하지 않은 상태로 이 무지막지한 훈련량을 소화해 낸 결과였다.

"어깨 보호대도 안 차고 이 짓을 한 거냐? 너 지금 제정신이 아니야. 대진공고랑 붙기도 전에 어깨가 먼저 박살 나고 싶어서 환장했어?"

"박살 나지 않아."

승우가 지한의 손을 거칠게 뿌리쳤다.

"서태진을 꺾으려면 이 정도 리스크는 당연한 지불이야. 내 어깨가 마비되든 말든, 코트 위의 조율은 내가 해. 넌 네 역할이나 해라. 내 등 뒤로 떨어지는 공만 확실하게 받아 올리란 말이다."

"미련한 새끼."

지한이 혀를 차며 자신의 무릎 보호대 안쪽에서 두껍고 질긴 스포츠 테이프 롤을 꺼냈다. 가위를 꺼내들기도 전에 손으로 테이프 끝동을 이빨로 물어뜯은 그가 승우의 어깨 뒤로 돌아섰다.

"가만히 있어. 움직이면 살점까지 같이 뜯어낼 테니까."

지한의 단단한 손가락이 승우의 견갑골을 강하게 내리눌렀다. 찌릿한 통증과 함께 차가운 테이프가 극도로 긴장된 근육 위로 밀착되었다. 지한은 승우의 어깨 관절막이 더 이상 벌어지지 않도록, 끊어질 듯 팽팽하게 팽창된 테이프를 교차하여 감아올렸다. 어깨가 단단한 석고 붕대에 고정된 것처럼 옥죄어왔다.

"내 등 뒤가 뚫리기 전까진, 너도 코트 위에서 쓰러지지 마라. 네가 독재자든 뭐든 상관없는데, 내 세터가 코트 위에서 유리 인형처럼 깨지는 꼴은 눈뜨고 못 봐."

지한의 나직한 경고는 승우의 가슴속 깊은 곳을 건드렸으나, 승우는 그저 차갑게 받아쳤다.

"쓸데없는 감상이다, 이지한. 난 널 동료로 믿는 게 아니야. 단지 내 볼 배급을 완벽하게 처리해 줄 가장 신뢰도 높은 도구로 사용할 뿐이지."

"알아, 임마. 그러니까 그 도구질이나 제대로 하라고."

지한이 승우의 어깨를 탁 때리며 물러섰다. 테이핑의 강한 압박감 덕분에 신경을 찌르던 통증이 일시적으로 둔화되었다. 승우는 다시 볼 카트를 향해 걸어갔다. 눈앞의 시스템 인터페이스가 새롭게 갱신되며 푸른빛을 뿌렸다.

[임시 보강 상태 감지: 어깨 마모율 가속 페널티가 1.5배로 경감됩니다.] [남은 가동 시간 동안 시스템 연산 정밀도가 유지됩니다.]

승우는 볼 카트에서 가죽 냄새가 물씬 풍기는 미카사 시합구를 집어 들었다. 가죽의 질감이 손바닥에 닿는 순간, 머릿속에서 대진공고 서태진의 움직임이 프레임 단위로 재생되기 시작했다.

서태진은 압도적인 신체 능력을 갖춘 기가 센 포식자다. 그러나 그런 놈들일수록 자신의 힘에 취해 전술적 빈틈을 노출하기 쉽다. 특히 라이트에서 백어택을 시도할 때, 서태진은 오른손의 파괴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도약 직전 오른발 끝에 체중을 과도하게 싣는 버릇이 있었다.

그 찰나의 순간, 즉 서태진의 점프 각 최고점이 형성되기 전 0.1초의 공백.

그 틈새를 뚫고 들어가는 옥죄는 속공만이 대진공고의 거대한 블로킹 벽을 무너뜨릴 유일한 열쇠였다.

"천다원, 이리 와."

승우의 부름에 다원이 씩씩거리며 네트 앞으로 걸어왔다.

"이번엔 백어택이다. 세 걸음 뒤에서 시작해. 내가 공을 띄우는 순간, 네 시야에는 아무것도 두지 마. 오직 내 손끝에서 출발하는 공의 궤적만 보고 몸을 던져."

"하, 백어택? 이 타이밍에 갑자기 웬 백어택이야? 연습 한 번 안 해본 걸 실전에서 쓰겠다고?"

"그러니까 지금 몸에 새기라는 거야."

승우가 공을 가볍게 튕겼다.

"대진공고의 서태진은 네 전면 블로킹을 예측하고 먼저 뜰 거다. 놈이 공중에 머무는 시간은 0.8초. 하지만 네가 내 토스에 맞춰 0.1초 먼저 도약한다면, 놈의 손끝이 네 타점에 도달하기도 전에 공은 상대 코트 바닥에 꽂힌다. 이건 물리 법칙이고, 통계야."

"그게 말처럼 쉬운 줄 알아? 네가 올리는 토스는 숨이 막힌단 말이야!"

"숨이 막혀도 들이쉬어. 그게 싫으면 코트에서 내려가든가."

승우의 차가운 눈빛이 다원의 미간을 꿰뚫었다. 다원은 주먹을 꽉 쥐며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분노로 이글거리는 그의 눈동자 속에는, 동시에 승우가 보여주는 그 기묘한 정밀함에 대한 집착이 도사리고 있었다.

"올려. 받아낼 테니까."

다원이 뒤로 물러서며 수비 자세를 취했다.

승우는 심호흡을 했다. 어깨를 감싼 테이프가 살점을 파고드는 감각이 선명했다. 머릿속의 시스템이 격렬하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코트의 지배자 시스템 가동.] [대상: 천다원. 타점 예측선 매핑 시작.] [최적의 백어택 낙하지점: 네트 뒤 3미터 라인, 높이 325센티미터.]

"간다."

지한이 걷어 올린 공이 부드러운 포물선을 그리며 승우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승우는 도약했다. 어깨의 신경이 찢어지는 듯한 환상통이 뇌를 때렸지만, 이지한의 단단한 테이핑이 관절의 흔들림을 억제했다. 손가락 끝에 닿는 가죽의 감촉을 느끼는 순간, 승우의 시야에 빛나는 궤적이 그려졌다.

0.1초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극도로 잔인하고도 정밀한 볼 배급.

"뛰어!"

승우의 손끝에서 튕겨 나간 공은 마치 보이지 않는 실에 끌려가듯, 천다원의 타점 최고점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날아갔다.

다원은 본능적으로 몸을 날렸다. 승우의 지시대로 왼발 끝에 체중을 70%만 실은 채 안쪽으로 딛는 스텝. 몸이 평소보다 가볍게 회전하며 공중으로 솟구쳐 올랐다.

공중에서 다원의 눈에 들어온 것은, 자신의 손바닥 바로 앞에 자석처럼 멈춰 서 있는 듯한 배구공이었다.

'어……?'

도망칠 구멍도, 타협할 여지도 없는 완벽한 배달. 다원의 오른팔이 채찍처럼 휘둘러졌다.

*콰아아앙!*

체육관 전체를 뒤흔드는 굉음이 폭발했다.

다원의 손바닥에 정타로 맞물린 공은, 네트 위를 칼날처럼 가르며 상대 코트의 3미터 라인 안쪽에 거칠게 박혔다. 바닥에 충돌한 공은 그대로 천장 조명 부근까지 솟구쳐 올랐다가 코트 밖으로 굴러갔다.

정적.

체육관 안에는 오직 거친 숨소리만이 맴돌았다.

천다원은 공중에 멈춰 섰던 자신의 오른손바닥을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손바닥이 화끈거리며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뼈마디가 울리는 듯한 완벽한 임팩트였다.

"이…… 이게 내 타점이라고?"

다원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승우의 독재적인 배급에 억지로 몸을 맞추었을 뿐인데, 자신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은 백어택이 완성되어 있었다. 몸속의 세포 하나하나가 승리의 쾌감으로 전율하고 있었다.

승우는 착지하며 어깨를 가볍게 털었다. 그의 무표정한 얼굴에 아주 미세한, 만족감 어린 비소가 스쳐 지나갔다.

"나쁘지 않군."

승우가 차갑게 말했다.

"하지만 방금 건 서태진의 수비 블로킹이 없는 상태였어. 실전에서는 이보다 0.05초 더 빨라야 한다. 멍하니 서 있지 마. 다음 세트 준비해."

그 냉혹한 지시가 천다원의 뇌리를 때렸다.

완벽한 성장의 짜릿함이 온몸을 지배하는 순간, 다원의 가슴 깊은 곳에서 솟구친 것은 경외감만이 아니었다. 자신을 철저히 승우의 손아귀 안에서 놀아나는 기계, 혹은 승리를 쥐어짜 내기 위한 정교한 장기말로 취급했다는 것에 대한 극도의 모멸감이었다.

다원의 호흡이 급해졌다. 땀에 젖은 앞머리 사이로 이글거리는 안광이 승우를 향했다.

성큼, 성큼.

다원은 짐승 같은 걸음걸이로 승우를 향해 다가갔다.

"야, 백승우."

승우가 뒤를 돌아보는 찰나, 다원의 거친 손아귀가 승우의 젖은 유니폼 깃을 거칠게 움켜잡았다. 주먹에 힘이 들어가며 승우의 몸이 앞으로 쏠렸다.

"너…… 날 대체 뭘로 생각하는 거야?"

다원의 굵은 목소리가 분노와 혼돈으로 뒤섞여 떨리고 있었다. 승우는 멱살을 잡힌 채로도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오직 차갑게 가라앉은 두 눈동자만이, 자신을 옥죄려 드는 사나운 포식자의 눈빛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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