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수와 오른쪽 어깨 관절을 관통하는 이질적인 비틀림이 온 신경을 헤집었다. 어깨뼈가 탈골되는 듯한 끔찍한 감각과 함께, 오른팔이 허공에서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공이…… 보이지 않아!’
눈앞의 푸른색 시스템 예측선이 완전히 깨져 나가며 암전이 시작되었다. 공중에서 무방비하게 노출된 몸이 균형을 잃고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대진공고의 거대한 블로킹 벽 3인이 눈앞을 가로막고 장벽처럼 솟구쳐 올랐다.
[경고! 어깨 마모율 한계치 돌파 직전!] [시스템 가동 강제 종료 예고: 3초 전……]
망막 위에 붉은색 경고등이 미친 듯이 점멸했다. 시야에 그려진 궤적선들이 노랗게 썩어 들어가더니, 이내 뱀처럼 발작하듯 요동치며 사방으로 찢어지기 시작했다.
1화에서 첫 시스템을 가동할 때 나타났던 경고, '어깨 마모율 1% 상승'이라는 회색 메시지가 붉은 핏빛으로 변해 뇌리를 강타했다. 어깨 보호대를 장착하지 않은 맨몸의 대가는 가혹했다. 관절을 보호할 최소한의 장구도 없이 무리하게 뽑아 올린 도약의 끝에서, 마모율 가속화 페널티가 3배 속도로 뼈마디를 갉아먹고 있었다.
오른쪽 어깨 내부에서 쇠가죽을 갈아내는 듯한 마찰음이 고막을 울리는 환각이 일었다. 이대로 팔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은 고통 속에서, 승우의 동공이 잘게 흔들렸다.
여기서 멈추면 전생의 그 걸레짝 같던 백업 세터로 돌아갈 뿐이다. 평생을 코트 아래에서 남의 등만 바라보며 패배주의를 곱씹던 그 비참한 삶으로.
"……그렇게는 안 돼."
승우는 이를 악물었다. 어금니가 맞부딪치며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는 뇌 과부하를 억지로 유지하며 폭주하는 시스템의 톱니바퀴 속으로 정신을 밀어 넣었다. 사방으로 찢어지며 튀는 미친 궤도 표식들 사이로, 오직 하나의 도피처가 보였다. 코트 뒤편에서 몸을 날린 리베로 이지한의 수비 각도 끝자락. 지한이 목숨을 걸고 걷어 올린 공이 포물선의 정점을 지나 떨어지는 바로 그 지점이었다.
보호 장구 없이 맨몸으로 마모율 한계를 파고드는 무모한 짓이었지만, 승우에게는 선택지가 없었다. 척수를 타고 흐르는 극심한 환상통을 무시한 채, 그는 억지로 오른손을 뻗었다.
파앗!
암전되던 시야 너머로 찰나의 순간, 가느다란 푸른색 실선이 다시금 공의 궤적을 꿰뚫었다. 0.1초의 예측 궤도가 기적처럼 복구되는 순간이었다.
"다원아!"
승우의 목구멍에서 피 냄새 섞인 비명이 터져 나왔다.
공중에서 대치한 대진공고의 블로커들은 승우의 굳어버린 자세를 보고 이미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세터의 폼이 무너졌다. 정교한 백토스나 속공은커녕, 공을 제대로 건드리는 것조차 불가능해 보이는 불안정한 자세였다.
하지만 승우의 손끝은 멈추지 않았다.
어깨에서 시작된 통증 수치가 뇌의 한계를 모조리 깨부수며 치솟았지만, 승우의 시선은 오직 한 곳만을 향했다. 네트 너머를 흘겨보며 도약하는 천다원의 움직임. 다원의 발끝이 코트를 박차고 오르는 순간, 그의 신체 한계선인 322cm의 타점이 허공에 선명한 붉은 선으로 그어졌다.
‘네 감정 따위는 상관없어. 부서지더라도 뛰어.’
승우는 천다원의 뻗은 손바닥 중지 끝마디를 시스템의 조준선으로 삼았다. 극도의 고통 속에서도 그의 손가락 끝은 미세하게 조율되었다. 공의 회전을 억지로 멈추며, 오직 중지 하나에 모든 힘을 실어 공을 물렸다.
정교한 아크(Arc)의 궤적이 아니었다. 그것은 공격수의 손가락 끝을 강제로 옭아매는 독재자의 사슬이었다.
공이 승우의 손가락을 떠나 천다원의 오른손 중지 끝에 정확히 걸렸다.
"이…… 미친 세터 새끼가!"
천다원의 눈에 핏발이 섰다. 승우가 올린 토스는 타협이 없었다. 조금만 늦어도 손목이 꺾이거나 네트에 걸릴 수밖에 없는, 그야말로 공격수의 목을 죄어오는 가혹한 스피드였다.
그러나 다원의 야성적인 본능이 몸뚱이를 먼저 움직였다. 승우가 완벽하게 계산해 낸 322cm의 허공. 그곳에서 다원의 오른팔이 채찍처럼 휘둘러졌다.
콰아아앙!
폭탄이 터지는 듯한 파열음이 체육관을 가득 채웠다.
천다원의 손바닥을 떠난 공은 대진공고가 쌓아 올린 3인 블로킹 벽의 손끝 사이, 불과 몇 센티미터의 틈새를 칼날처럼 파고들었다. 블로커들이 반응하기도 전에 공은 코트 바닥에 내리꽂혔다.
쿵!
바닥에 설치된 목재 타일이 비명을 지르며 공을 튕겨냈다. 공은 대진공고 리베로의 얼굴 옆을 스치듯 지나가 체육관 벽면을 강타한 뒤에야 굴러떨어졌다.
정적.
체육관 안의 모든 소음이 단숨에 휘발되었다.
대진공고의 선수들은 멍하니 자신들의 발밑에 찍힌 선명한 공 자국을 바라보았다. 터치아웃도 아니었다. 완벽한 인(In). 3인 블로킹을 정면으로 뚫어버린, 그야말로 압도적인 파괴력의 C퀵 속공이었다.
"……득점."
주심의 호각 소리가 정적을 깨뜨렸다.
삑-!
"와아아아아!"
태성고 벤치에서 대기하던 후보 선수들이 코트 안으로 격렬하게 뛰어들었다. 누구도 이길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강팀 대진공고를 상대로, 연습경기의 마지막 세트를 가져오는 순간이었다.
승우는 착지하자마자 오른쪽 어깨를 움켜쥐며 무릎을 꿇었다. 셔츠 너머로 느껴지는 관절 부위가 불덩이처럼 뜨거웠다. 가쁜 숨을 몰아쉴 때마다 허파가 짜부라지는 느낌이었다.
[경기 종료. 태성고 공식 예선 대비 실전 매치 승리.] [코트의 지배자 시스템 동기화 완료.] [승리 보상: '어깨 한계 돌파(통증 제어 백신 1회)' 자원을 획득하였습니다.] [경고: 현재 어깨 영구 손상률 12%]
망막 위에 뜬 붉은 주홍글씨 표기가 승우의 눈동자에 차갑게 반사되었다. 영구 손상률 12%. 전생의 부상이 실시간으로 어깨를 갉아먹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였다.
"승우야! 너 괜찮냐?"
이지한이 가장 먼저 달려와 승우의 어깨를 붙잡았다. 지한의 손끝이 승우의 굳어버린 관절 부위를 조심스럽게 쓸어내렸다. 그의 시선이 승우의 안색을 집요하게 살폈다. 승우가 숨을 죽이며 미세하게 어깨를 비틀자, 지한의 미간이 무겁게 좁아졌다.
지한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무릎 보호대 안쪽에 숨겨둔 테이핑 가위와 전용 약물 팩을 매만졌다. 승우의 부상을 눈치챈 유일한 아군이자, 그의 등 뒤를 지키는 리베로로서의 무언의 경고였다.
"비켜."
승우는 지한의 손을 거칠게 쳐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통증 제어 백신이 주입되자, 어깨를 짓누르던 타는 듯한 불길이 서서히 가라앉는 것이 느껴졌다. 겨우 숨통이 트였다.
"야, 백승우."
거친 숨을 몰아쉬며 천다원이 다가왔다. 그의 오른손은 방금 전의 임팩트 때문에 붉게 부어올라 있었다. 다원은 승우의 멱살을 잡을 듯이 매서운 눈초리로 쏘아보았다.
"너 방금 그 토스 뭐야? 내 손가락 부러뜨릴 작정이었냐? 조금만 늦었어도 블로킹에 완전히 걸렸어!"
다원의 목소리에는 분노와 함께, 방금 전 자신의 한계를 강제로 끌어올려 득점을 성공시켰다는 기괴한 희열이 뒤섞여 있었다. 몸은 아직도 흥분으로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승우는 차가운 눈빛으로 다원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시선에는 동료를 향한 따뜻한 격려나 신뢰 따위는 눈곱만큼도 없었다. 오직 철저한 계산과 지배욕만이 남겨져 있었다.
"늦지 않았잖아."
"뭐?"
"네 도약 속도와 팔의 스윙 궤적을 계산해서 준 거야. 손가락이 부러질 것 같으면 더 빨리 반응했어야지. 내 토스에 토 달지 마. 넌 그냥 내가 올린 공을 때리기만 하면 돼."
"이 오만한 자식이 진짜……!"
천다원이 주먹을 꽉 쥐며 한 걸음 더 다가섰지만, 승우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한 걸음 다가서며 다원의 귓가에 차갑게 속삭였다.
"하지만 넣었지. 그게 네 진짜 타점이야. 322센티미터. 앞으로 내 토스를 받아내고 싶으면 그 타점 유지해."
다원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승우의 독선적인 태도에 치가 떨렸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그의 가슴을 짓눌렀다. 승우가 올린 그 잔혹한 토스가 아니었다면, 자신은 평생 가도 그 높이에서 공을 때려보지 못했을 것이다.
태성고 부원들은 승우를 중심으로 묘한 침묵에 잠겼다. 예전처럼 패배주의에 젖어 "수고했다"며 대충 얼버무리던 분위기는 간데없었다. 서로를 향한 불만과 경외, 그리고 승리에 대한 타오르는 갈증이 코트 위에 팽팽한 긴장감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전국 최약체라 불리던 태성고가, 오직 승우의 독재적인 배급 아래에서 본선 무대를 뒤흔들 수 있는 괴물 같은 군단으로 격상되는 순간이었다.
* * *
흘러가는 시간은 차가웠다.
연습경기가 끝난 뒤, 태성고 배구부실의 공기는 이전과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부원들은 승우의 눈치를 보며 훈련 강도를 높였고, 누구도 훈련장에서 먼저 발을 빼려 하지 않았다. 승우가 보여준 그 압도적인 피드백과 정밀한 분석이 그들의 패배주의를 송두리째 뽑아내 버렸기 때문이다.
"이번 예선 대진표 나왔다."
감독이 칠판에 대진표를 붙이자, 부원들이 일제히 몰려들었다.
승우는 멀찍이 떨어져 벤치에 앉은 채, 개인 태블릿 화면으로 공시된 전국체전 예선 대진표를 무심히 내려다보았다.
태성고의 등급은 이번 연습경기 승리로 인해 공식 참가 등급이 한 단계 격상되어 있었다. 이제 더 이상 변두리의 이름 없는 약체가 아니었다. 당당히 본선 시드권을 다툴 수 있는 위치까지 올라선 것이다.
그러나 승우의 시선은 대진표의 가장 높은 곳에 멈췄다.
모니터 화면 중앙, 다음 1회전 상대 팀의 이름이 붉은색 글씨로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대진고등학교]
그리고 그 밑에는 뉴스 썸네일 하나가 첨부되어 있었다.
대진공고의 주전 공격수이자, 고교 배구계의 괴물 피지컬이라 불리는 라이트 백어택커 서태진의 인터뷰 영상이었다.
화면 속 서태진은 거만한 표정으로 마이크를 향해 삐딱하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의 등 뒤로 보이는 거대한 체구가 카메라 화면을 꽉 채웠다.
- "태성고 세터요? 아, 그 백승우라는 애?"
서태진이 비죽이며 이빨을 드러내고 웃었다. 그의 거친 눈빛이 카메라 렌즈를 뚫고 승우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듯했다.
- "몇 번 기교 좀 부린다고 세터가 된 줄 아나 본데, 제 블로킹 벽 앞에서는 그냥 툭 치면 깨지는 유리 인형에 불과합니다. 진짜 배구가 뭔지 코트 위에서 뼈저리게 느끼게 해 주죠. 기대해라, 기교파 꼬맹이."
노골적인 도발이었다.
승우는 태블릿 화면을 응시하며 가만히 자신의 오른쪽 어깨를 만졌다. 셔츠 너머로 느껴지는 관절 깊은 곳에서, 다시금 욱신거리는 미세한 통증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유리 인형.
서태진의 그 오만한 목소리가 체육관의 차가운 정적 속으로 무겁게 가라앉았다. 승우의 눈동자가 차갑게 식어내리며, 그의 손가락 끝이 태블릿 화면 속 서태진의 얼굴을 거칠게 쓸어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