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너, 지금 어깨 다 썩은 꼴이네. 하지만 토스는 올릴 거지?"

오른쪽 견갑골을 콱 움켜쥔 손아귀의 힘은 무지막지했다. 어깨 관절 내부를 짓누르던 열감이 뼈마디를 타고 척수까지 찌릿하게 타고 올라왔다. 백승우는 신음을 삼키며 고개를 돌렸다.

시선이 맞닿은 곳에는 태성고의 리베로, 이지한이 서 있었다. 땀에 젖어 이마에 달라붙은 앞머리 사이로, 평소의 흐리멍덩한 기색은 온데간데없는 형형한 눈빛이 번뜩였다.

"이거 놓지."

승우의 목소리는 낮고 차가웠다. 서른 살 베테랑 백업 세터 시절의 습관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감정이 거세된 어조였다.

지한은 손을 놓지 않았다. 오히려 손가락 끝에 힘을 더 주어 승우의 어깨 근육을 꾹꾹 눌렀다. 승우의 미간이 좁아지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지한은 천천히 손을 거두었다. 그의 손바닥에는 승우의 몸에서 배어 나온 식은땀이 축축하게 묻어 있었다.

"어깨 보호대도 안 차고 코트에 들어올 때부터 알아봤다. 미련한 새끼."

지한의 말투는 담담했지만, 그 밑바닥에는 끓어오르는 투지가 가득했다. 지한은 자기 가슴바닥을 툭툭 치며 턱짓을 했다.

"네가 코트 위에서 독재를 하든, 우리를 장기말로 쓰든 상관 안 해. 이기기만 한다면 뺨이라도 맞아줄 수 있어. 그러니까 쓸데없이 리시브 받아내겠다고 몸 날리면서 어깨 갉아먹지 마."

"……."

"네가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아도 되게 만들 테니까. 내 수비 범위는 네 상상보다 훨씬 넓어. 등 뒤는 내가 완벽하게 지킨다. 너는 그 썩어 가는 어깨로 앞만 보고 올리기나 해."

승우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비웃음이었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은 이미 이지한이라는 리베로의 신체 스펙과 전생에서의 리시브 성공률 데이터를 0.1초 만에 재정렬하고 있었다.

'이지한. 태성고의 숨은 살림꾼. 전생에서 이 녀석은 평범한 리베로로 끝났지. 하지만 그건 팀 전체가 패배주의에 젖어 수비 라인이 붕괴했기 때문이야. 이 녀석의 진짜 디그 도달 범위는…….'

망막 너머로 얇은 푸른빛의 그리드 라인이 코트 후방 전체를 덮으며 확장되기 시작했다. 이지한의 발끝을 기점으로 사방 3.5미터 구역이 짙은 청색의 '안전 지대'로 매핑되었다. 엄청난 수비 범위였다. 고교 수준을 아득히 초월한, 프로 1부 리그 주전급 리베로의 수비 예측 영역과 맞먹는 수치였다.

승우는 어깨를 가볍게 돌리며 돌아섰다. 통증은 여전했지만, 지한의 오만한 선언이 꽤 쓸만한 도구를 손에 넣었다는 확신을 주었다.

"착각하지 마, 이지한."

승우가 네트를 향해 걸어가며 툭 뱉었다.

"난 널 믿는 게 아니야. 네 몸뚱이가 가진 수치와 효율을 믿는 거지. 그 말 책임져라. 내 손끝에 공이 1밀리미터라도 어긋나서 배달되면, 다음 세트부터 네 자리는 없을 테니까."

지한은 대꾸하지 않았다. 그저 입술을 굳게 다문 채, 후방 수비 라인의 중심인 엔드라인 안쪽으로 몸을 낮추며 들어갔다. 그의 눈빛에는 기묘한 안도감과 더불어, 지독한 승부욕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 * *

삑!

주심의 휘슬 소리와 함께 대진공고의 2세트 반격이 시작되었다.

대진공고의 에이스 서태진이 잔뜩 독이 오른 얼굴로 서브 라인에 섰다. 1세트를 태성고라는 무명 팀에게, 그것도 듣도 보도 못한 백승우라는 세터의 '옥죄는 배급'에 휘둘려 내준 것은 그들에게 엄청난 굴욕이었다.

쿵!

서태진의 무거운 서브가 네트 상단을 스치듯 통과하며 맹렬한 회전을 품고 떨어졌다. 볼의 궤적은 정확히 태성고의 윙스파이커 천다원과 리베로 이지한의 사이 공간, 즉 수비수들이 서로 미루기 딱 좋은 인터벌 구역을 파고들었다.

'온다.'

승우의 눈앞에 붉은색 경고창이 점멸했다.

[경고: 코트의 지배자 시스템 누적 가동 시간 초과.] [현재 뇌 과부하율: 25%] [우측 견관절 신경 마모 가속화 진행 중 (현재 배율 3.0x)] [시야 필터 내 노이즈 발생 비율 상승.]

망막을 메우던 깨끗한 궤적선 위에 지지직거리는 백색 소음 같은 노이즈가 덧씌워졌다. 공의 낙하 지점을 예측하는 빛의 원이 미세하게 흔들리며 두 갈래로 갈라졌다. 두통이 관자놀이를 강타했고, 등 뒤에서부터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어깨 보호대를 착용하지 않고 무리하게 시스템을 가동한 대가였다.

"내가 잡는다! 비켜!"

그 순간, 지한의 날카로운 외침이 체육관을 찢었다.

지한은 마치 승우의 시스템이 예측한 낙하 지점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처럼, 몸을 슬라이딩하며 오른쪽으로 길게 뻗었다. 그의 가슴팍이 코트 바닥을 쓸며 마찰음을 냈다.

퍼억!

묵직한 타구음과 함께, 서태진의 강서브가 지한의 양 팔뚝을 모아 만든 평평한 면에 정확히 얹혔다. 볼의 회전이 지한의 단단한 손목 컨트롤에 의해 완전히 죽어 나갔다.

"백승우!"

구질구질한 회전이 완전히 거세된, 완벽하게 통제된 무회전의 공이 승우의 머리 위로 자로 잰 듯이 날아왔다. 승우는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일 필요가 없었다. 지한이 공을 보낸 위치는 승우가 오버핸드 세팅을 하기에 가장 편안한, 네트 앞 1.5미터 상공의 골든 존이었다.

'과부하 25%? 시야 노이즈?'

승우는 이빨을 악물었다. 오른쪽 어깨에서 타들어 가는 듯한 통증이 치밀었지만, 지한이 만들어 준 완벽한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다원!"

승우의 지휘 아래, 천다원이 이미 중앙에서 왼쪽 윙으로 사선으로 무섭게 파고들고 있었다. 대진공고의 미들블로커 두 명이 천다원의 움직임을 쫓아 황급히 발을 맞추려 했다.

하지만 승우의 눈은 이미 그들의 발끝을 읽고 있었다. 시스템의 노이즈 궤적 사이로, 상대 블로커들의 도약 타이밍 딜레이가 0.1초 단위의 숫자로 선명하게 떠올랐다.

[상대 블로커 A: 도약 지연 0.15초] [상대 블로커 B: 중심 이동 쏠림 우측 70%]

'완전히 낚였어.'

승우는 양손을 공중에 뻗었다. 공을 만지기 직전, 그의 시선은 오른쪽 라이트 공격수 방향을 향했다. 머리 각도와 어깨의 기울기 모두 라이트 백토스를 올릴 것처럼 완벽하게 기만했다.

스윽.

손끝에 닿는 촉감과 동시에, 승우는 손목의 스냅만을 이용해 공을 반대 방향인 왼쪽 전방으로 빠르게 밀어냈다. 백세트인 줄 알고 오른쪽으로 반 보 움직였던 대진공고의 블로커들은 허공에서 중심을 잃고 허우적거렸다.

"뭐시라?!"

천다원은 이미 공중으로 솟구쳐 있었다. 승우가 보낸 공은 다원의 최고 도달 타점인 322cm 높이에서 마치 멈춘 것처럼 딱 멈춰 섰다. 다원은 자신을 가로막는 벽이 단 하나도 없음을 깨닫고 희열에 찬 비명을 질렀다.

"이 미친 세터 새끼가…… 주면 때려야지!"

콰아앙!

다원의 오른팔이 채찍처럼 휘둘러졌다. 공은 대진공고의 텅 빈 코트 중앙에 내리꽂혔고, 라인 안쪽에 깊숙이 박힌 뒤 관중석 2층까지 튕겨 올라갔다.

"와아아아아!"

태성고 벤치와 응원석에서 천장을 뚫을 듯한 함성이 터져 나왔다.

"봤냐! 이게 태성고다!"

다원이 착지하며 가슴을 쾅쾅 치고 포효했다. 그는 승우에게 다가와 멱살을 잡을 듯이 흥분한 얼굴로 소리쳤다.

"야! 방금 토스 뭐냐? 내 손바닥에 쫙 달라붙던데? 너 진짜 정체가 뭐야?"

승우는 다원의 흥분한 얼굴을 차갑게 외면했다. 그의 시선은 오직 제자리로 돌아가 수비 자세를 잡는 이지한에게 향해 있었다. 지한은 승우와 눈이 마주치자, 땀을 훔치며 씩 웃어 보였다.

'쓸만하군.'

승우는 속으로 뇌뇌였다. 이지한의 완벽한 리시브가 있다면, 시스템의 과부하로 인한 어깨 소모를 최소화하면서도 백발백중의 공격을 전개할 수 있다. 이것은 독재자가 부리는 장기말들의 완벽한 유기적 결합이었다.

* * *

대진공고의 감독은 다급하게 작전 타임을 요청했다. 점수는 어느새 18대 12, 태성고의 압도적인 리드였다.

체육관을 채운 관중들의 웅성거림이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야, 저 태성고 세터 누구냐? 백승우라고?" "원래 저런 괴물이었어? 대진공고 블로커들이 아예 놀아나는데?" "리베로 수비도 미쳤어. 서태진 서브를 저렇게 편안하게 받아내는 고교 리베로가 있었나?"

비웃음으로 가득했던 체육관은 어느새 경악과 환호로 뒤덮여 있었다. 최하위 딱지를 달고 있던 태성고가, 전통의 강호 대진공고를 경기력으로 완벽하게 압도하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닌, 철저하게 계산된 전술과 움직임의 결과였다.

승우는 벤치에 앉아 수건으로 얼굴을 덮었다. 어깨의 통증이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뇌 과부하율: 28%] [어깨 관절막 미세 파열 징후 감지.] [경고: 무리한 도약 및 세팅 동작 시 영구 마비 리스크가 32% 증가합니다.]

'아직은 버틸 수 있어. 이 세트만 따내면 예선 시드권은 확실해진다.'

승우는 수건을 걷어내고 물을 마셨다.

그때, 감각이 극도로 예민해진 승우의 시스템 시야 필터 우측 상단에 기묘한 반사광이 잡혔다. 경기장 고층 우측 원형 스탠드 끝자락. 어두컴컴한 관람석 구석에 누군가 홀로 서 있었다.

승우는 고개를 들어 그곳을 응시했다.

그곳에는 깔끔한 한울공고 유니폼 위에 검은색 바람막이를 걸친 남자가 서 있었다. 한울공고의 주전 세터이자, 전생에서 승우를 철저히 짓밟았던 숙적, 강희제였다.

강희제는 삼각대 위에 얹은 묵직한 프로용 비디오카메라를 조작하고 있었다. 그의 카메라 렌즈는 정확히 태성고의 벤치, 그중에서도 백승우의 오른쪽 어깨를 클로즈업하고 있었다.

렌즈 너머로 강희제의 차가운 안광이 빛났다. 그는 승우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음을 눈치챘음에도 불구하고, 카메라 녹화 버튼을 누른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승우의 어깨 움직임과 폼을 아주 정밀하게 관찰하며 수첩에 무언가를 적어 내리고 있었다.

'강희제…….'

승우의 눈동자가 깊게 가라앉았다.

저 녀석은 벌써 눈치챈 것이다. 승우가 특정 타이밍마다 오른쪽 어깨를 미세하게 움츠린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부상 징후를 데이터화하여 다음 결승전에서 철저하게 이용하려 들 터였다.

"승우야, 들어가자. 흐름 끊지 말고 끝내버리자고."

다원이 승우의 등을 툭 치며 코트로 걸어 나갔다. 승우는 강희제에게서 시선을 거두며 입술을 깨물었다.

'분석할 테면 해봐라. 네가 그 데이터를 완성하기 전에, 난 너희의 머리 위에서 코트를 지배할 테니까.'

* * *

2세트 후반, 점수는 24대 22. 태성고의 세트 포인트이자 매치 포인트였다.

대진공고 역시 순순히 물러서지 않았다. 서태진의 끈질긴 백어택과 유효 블로킹으로 점수 차를 턱밑까지 좁혀온 상태였다. 체육관의 열기는 터질 것처럼 달아올랐고, 양 팀 선수들의 유니폼은 땀으로 무겁게 젖어 있었다.

"하나만 더! 이번 한 점으로 끝낸다!"

다원이 소리치며 수비 자세를 잡았다.

대진공고의 세터가 볼을 잡았다. 서태진이 중앙으로 파고드는 척하다가 오른쪽으로 빠르게 빠져나갔다. 시간차 공격(Decoy play)이었다.

승우의 눈앞에 상대 세터의 손끝에서 뻗어 나가는 볼의 탄도 예측선이 그려졌다.

[예측 궤적: 라이트 백 C퀵] [서태진의 타점 도달 시간: 0.85초 뒤]

"오른쪽이다! 블로커 오른쪽으로 붙어!"

승우의 지시에 태성고의 미들블로커들이 황급히 오른쪽으로 벽을 쌓았다.

콰앙!

서태진이 때린 공이 태성고의 3인 블로킹 벽에 정면으로 부딪혔다. 블로커들의 손끝을 맞고 굴절된 공이 태성고 코트 뒤편, 아무도 없는 엔드라인 구석으로 빠르게 날아갔다. 터치아웃이 될 확률이 99%인 궤적이었다.

"아웃이야!"

대진공고 선수들이 승리를 확신하며 손을 번쩍 들던 그 순간.

스스슥!

바닥을 구르는 거친 마찰음과 함께 이지한이 몸을 날렸다. 그의 몸이 코트 바닥과 거의 수평을 이룬 채 허공에 떴다. 왼팔을 길게 뻗은 이지한은 떨어지는 공의 밑바닥을 손등으로 기적처럼 걷어 올렸다.

퍽!

"커버!"

지한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뒹굴었다.

그가 걷어 올린 공은 네트와 다소 멀어진, 코트 한가운데 애매한 높이로 솟구쳤다. 2단 연결을 하기에는 최악의 위치였고, 무엇보다 공격수들이 쇄도할 시간이 부족했다.

'내가 해야 해.'

승우는 이를 악물고 네트를 향해 달렸다. 어깨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관절 내부에서 칼날로 신경을 난도질하는 듯한 극심한 환상통이 뇌를 헤집어 놓았다.

[경고! 어깨 마모율 한계치 돌파 직전!] [시스템 가동 강제 종료 예고: 5초 전……]

망막 위에 붉은색 경고등이 미친 듯이 점멸했다. 시야에 그려진 푸른색 예측선들이 노랗게 썩어 들어가더니, 이내 뱀처럼 발작하듯 요동치며 사방으로 찢어지기 시작했다.

"윽……!"

승우가 도약을 위해 바닥을 힘차게 굴렀다.

공중에 떠오른 그 찰나의 순간, 척수와 오른쪽 어깨 관절을 관통하는 이질적인 뼈 비틀림 현상이 발생했다. 어깨뼈가 탈골되는 듯한 끔찍한 감각과 함께, 승우의 오른팔이 허공에서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공이…… 보이지 않아!'

눈앞의 시스템 예측선이 완전히 깨져 나가며 암전이 시작되었다. 공중에서 무방비하게 노출된 승우의 몸이 균형을 잃고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대진공고의 거대한 블로킹 벽 삼인이 승우의 눈앞을 가로막고 장벽처럼 솟구쳐 올랐다.

정말 이대로 무너지는 것인가.

승우의 눈동자가 극도의 위기감으로 잘게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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