쾅!
네트를 넘어 상대 수비수의 머리통 바로 옆, 코트의 왼쪽 사이드라인 안쪽 깊숙한 곳에 찍힌 공은 마룻바닥에 맞고 튀어 올라 체육관 벽면의 관중석 난간을 강타했다.
정적.
체육관 안의 모든 움직임이 얼어붙었다. 네트 너머의 상대 팀 선수들은 물론이고, 멍하니 리시브를 지켜보던 태성고의 동료들조차 입을 벌린 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 누구도 태성고의 흔들린 리시브 상황에서 이런 파괴적인 C퀵 속공이 나올 수 있으리라 예상하지 못했다. 그것도 언제나 적당히 공을 띄우던 만년 유망주 백승우의 손끝에서 말이다.
"…어?"
공을 때린 천다원 본인조차 공중에 착지한 뒤 자신의 손바닥을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손바닥이 벌겋게 달아올라 터질 것처럼 욱신거렸다. 방금 전의 스파이크는 자신의 의지로 때린 것이 아니었다. 백승우가 강제로 자신의 몸을 끌어올려, 그 위치에 손을 댈 수밖에 없도록 만든 '강제 복종'의 산물이었다.
천다원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승우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경외심과 함께, 자신을 도구처럼 지배하려 든 세터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과 분노가 뒤섞여 있었다.
"너… 방금 대체 뭘 올린 거야?"
승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차가운 표정으로 천다원을 응시했다. 땀방울이 승우의 턱단을 타고 바닥으로 뚝 뚝 떨어졌다. 어깨의 신경통은 여전히 붉은 신경 스파크처럼 뇌리를 찌르고 있었지만, 승우의 입꼬리는 아주 미세하게 올라가 있었다.
이것이 시스템의 힘이다. 그리고 이것이 자신이 구축할 독재의 시작이었다.
승우가 오른쪽 손가락을 가볍게 털어내며 차갑게 읊조렸다.
"공이 네 최고 타점보다 3센티미터 아래로 떨어졌는데 왜 도약 속도를 줄였지? 다음에는 0.1초 더 빨리 뛰어. 내 토스는 기다려주지 않으니까."
"뭐라고? 이 새끼가 진짜…!"
천다원이 멱살이라도 잡을 기세로 성큼 다가오려던 그 순간.
화아악!
승우의 왼쪽 어깨 뒤편, 살갗 아래 깊숙한 곳에서 정체불명의 붉은 낙인 같은 타점이 소름 끼치는 불꽃을 튀기며 다시 한번 깜빡였다. 시야를 가득 채우는 붉은색 경고 창과 함께, 고막을 찢을 듯한 기계음이 고요한 체육관 안에서 승우의 뇌리에만 울려 퍼졌다.
[경고: 어깨 잔존 신경 마찰 한계 도달.] [부상 방지 보호 장비 미착용 상태에서의 다음 세트 진행 시, 마모율 가속도가 3배로 증가합니다.]
승우의 눈동자가 좌우로 거칠게 흔들렸다. 시야의 가장자리가 붉은 핏빛으로 물들어 가기 시작했다.
붉은 스파크가 망막을 난도질할 때마다 머릿속이 통째로 끓는 물에 처박히는 듯한 극심한 압박감이 밀려왔다. 단순한 통증이 아니었다. 전생의 마지막 순간, 어깨 관절막이 완전히 뜯어지며 코트 위로 쓰러졌던 그 파멸의 기억이 신경 세포 하나하나를 타고 역류하는 기괴한 연소음이었다.
'하아, 하아…….'
승우는 이가 맞부딪쳐 딱딱 소리가 나는 것을 막기 위해 어금니를 악물었다. 입안에서 비릿한 피 맛이 돌았다. 조용히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행위조차 가슴뼈를 무겁게 짓눌렀다. 하지만 승우는 겉으로 단 한 줌의 나약함도 내비치지 않았다. 어깨를 감싸 쥔 손가락끝에 힘을 주어 뼈마디가 하얗게 드러날 정도로 움켜쥐었을 뿐이다.
시야가 서서히 맑아지며 차디찬 코트 너머가 보였다. 상대 진영의 선수들이 얼어붙은 프레임처럼 눈에 들어왔다. 시스템의 반투명한 푸른빛 궤적선이 그들의 무릎 각도, 시선 방향, 무게중심의 미세한 쏠림을 실시간으로 역산해 내고 있었다.
상대 블로커들의 왼발 끝이 안쪽으로 3도 가량 꺾여 있다. 속공에 당황한 나머지 다음 수비 위치를 잡기 위해 과도하게 중앙으로 쏠리려는 역동작의 전조 프레임.
'보인다.'
뇌가 타들어 가는 고통 속에서도 승우의 이성은 차갑게 번득였다. 이 고통의 대가는 반드시 승리로 회수해야 한다. 승우는 흔들리는 눈빛을 지워내며 차갑게 냉소를 머금었다.
천다원은 제자리에 선 채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방금 전 림을 통과하듯 네트 위를 스치고 지나간 공의 궤적이 여전히 시각 피질에 잔상으로 남아 있었다. 손바닥을 타고 올라오는 찌릿한 마찰열이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하, 하아……."
분명 득점이었다. 그것도 상대 블로킹 벽이 손을 뻗기도 전에 코트 바닥을 찢어버린 완벽한 하이 템포의 C퀵. 체육관 가득 울려 퍼지던 둔탁한 타구음이 심장을 미친 듯이 뛰게 만들었다. 아드레날린이 혈관을 타고 폭발하는 듯한 극상의 쾌감이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깊은 불쾌감이 가슴 깊은 곳에서 고개를 치켜들었다.
"너 지금 나를……."
천다원의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자신의 의지로 도약한 것이 아니었다. 백승우가 올린 그 토스는, 만약 자신이 몸을 던져 뛰어오르지 않았다면 공이 그대로 바닥에 떨어져 역적으로 몰릴 수밖에 없는 악마적인 궤적이었다. 살기 위해, 본능적으로 공에 손을 맞추기 위해 몸이 제멋대로 반응한 결과였다. 마치 줄에 묶인 꼭두각시 인형처럼, 승우의 손끝에 놀아난 기분이었다.
"내가 기계냐? 네가 던져주는 대로 받아먹는 개새끼냐고!"
천다원이 붉으락푸르락해진 얼굴로 승우의 멱살을 잡으려 성큼 다가왔다.
승우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한 걸음 다가오는 천다원의 눈을 똑바로 마주 보며, 한없이 건조하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개새끼처럼 짖을 시간 있으면 다음 점프 높이나 계산해. 방금 네 타점은 318센티미터였어. 네 한계치는 322야. 4센티미터가 모자랐다고."
"이 미친 세터 새끼가 진짜……!"
"다음 토스는 0.1초 더 빠르게 간다. 네가 도약 속도를 올리지 않으면 공은 네 손끝을 스치지도 못하고 그대로 네트 밑으로 처박힐 거야. 내 토스에 네 몸을 맞춰. 득점하고 싶다면."
승우의 어조에는 타협이나 배려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철저하게 계산된 수치와 명령만이 있을 뿐이었다. 천다원은 그 압도적인 독선에 짓눌려 숨을 들이켰다. 멱살을 쥐려던 손가락이 허공에서 갈 길을 잃고 움츠러들었다. 분노보다 더 거대한, 이길 수 있다는 감각의 중독성이 그의 몸을 옥죄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태성고 벤치 쪽에서 날카로운 호각 소리와 함께 불호령이 떨어졌다.
삐익-!
"야! 백승우! 너 이리 나와!"
태성고 배구부의 이 감독이 얼굴을 붉히며 작전판을 신경질적으로 두들겼다. 그의 옆에는 교체 선수가 번호판을 든 채 엉거주춤 서 있었다. 예선 첫 경기부터 어이없는 실수와 연패의 흐름에 짓눌려 있던 이 감독은, 승우가 보여준 돌발적인 C퀵과 천다원과의 험악한 갈등을 통제 불능의 불협화음으로 판단한 것이었다.
"지금 팀 분위기 안 보이지? 네 멋대로 볼 배급하고 동료랑 싸울 거면 당장 벤치로 기어 들어와! 교체다!"
감독의 지시는 명백한 패배주의의 산물이었다. 조금이라도 엇박자가 나면 지레 겁을 먹고 안전한 플레이로 회귀하려는 전형적인 무능함. 승우의 전생 기억 속에서도 태성고는 늘 그렇게 감독의 소심한 전술 속에서 서서히 침몰해 갔었다.
승우는 교체 라인으로 걸어가지 않았다. 오히려 벤치를 향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땀에 젖은 앞머리 사이로 드러난 승우의 눈빛은, 감독을 향해 조아리는 유망주의 그것이 아니었다. 수십 년간 프로 무대의 쓴맛을 보고 돌아온 베테랑, 아니 코트 위의 모든 것을 지배하려는 독재자의 눈빛이었다.
승우는 오른손을 들어 올려 검지손가락을 가볍게 흔들었다. 교체 거부의 의사 표시였다.
"뭐, 뭐야? 저 자식이 지금 내 지시를 무시해?"
감독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승우는 벤치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러나 라인을 넘지 않은 채, 코트 구석의 백라인 바로 앞에서 멈춰 섰다. 그리고 감독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체육관 전체에 울려 퍼질 정도로 단호하고 명확한 목소리로 내뱉었다.
"작전 타임 요청하십시오, 감독님."
"뭐? 네가 지금 제정신이야?"
"이 세트, 다음 토스의 득점 확률은 94%입니다. 상대 블로커들의 리커버리 속도가 딜레이되는 타이밍을 이미 완벽하게 마크했습니다. 이 흐름을 끊고 교체 카드를 쓰시겠다면, 이번 예선 시드권은 영원히 날아갈 겁니다."
"저, 저 미친놈이……!"
"선택하십시오. 저를 빼고 늘 하던 대로 무기력하게 패배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이 세트를 가져오시겠습니까."
승우의 목소리에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통계와 확신으로 가득 찬 독재자의 선언에 감독은 숨을 턱 막혔다. 주변의 벤치 멤버들도, 네트 너머 상대 팀 선수들도 승우의 기개에 압도되어 침을 삼켰다.
결국 감독의 손이 부르르 떨리며 본부석을 향해 T자 모양을 그렸다.
삐이익-!
"태성고등학교, 작전 타임아웃!"
타임아웃이 선언되자마자 승우는 벤치로 돌아와 물을 한 모금 들이켰다. 동료들이 자신을 괴물 혹은 미친놈을 보듯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지만, 승우는 개의치 않았다. 그의 머릿속은 오직 다음 랠리를 어떻게 요리할 것인지에 대한 데이터 연산으로 가득 차 있었다.
경기가 재개되었다.
상대 팀, 대진공고의 블로커 3명은 승우를 향해 이를 갈고 있었다. 그들의 눈에는 승우가 그저 기교나 부리며 동료들을 윽박지르는 건방진 풋내기 세터로 보일 뿐이었다.
"저 새끼, 아까부터 오른손 끝이 미세하게 떨려. 어깨나 팔에 부상이 있는 게 분명해. 속공은 허세다! 세터 본인이 직접 처리할 힘은 없어!"
대진공고의 주전 블로커가 전방으로 바짝 붙으며 동료들에게 소리쳤다. 그들은 승우를 철저히 얕잡아 보며, 이번 전술에서 승우가 백토스로 윙 스파이커에게 공을 뺄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승우의 눈앞에서 시스템의 푸른색 격자무늬가 다시 한번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상대 블로커 A, B, C의 도약 예측 지점 매핑 완료.] [최고 타점 높이: 315cm, 318cm, 312cm.] [중앙 영역 오픈 확률: 89%.]
상대 블로커 3명이 승우의 볼 배급을 예측하고 앞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역동작의 흐름이 0.1초 단위로 쪼개져 시야에 투영되었다. 그들의 어깨 위, 최고 타점 사이로 바늘구멍 같은 틈새가 붉은빛 궤적으로 선명하게 드러났다.
'나를 얕잡아 보고 앞으로 쏠렸군.'
승우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리베로 이지한이 몸을 던져 받아낸 공이 정확하게 승우의 머리 위로 날아왔다. 완벽한 A패스. 승우는 양손을 높이 들어 올려 공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누구나 윙 스파이커를 향해 백토스를 쏠 것이라 예상할 수밖에 없는 완벽한 릴리즈 모션이었다.
상대 블로커 3명이 일제히 오른쪽 사이드로 몸을 틀며 도약할 준비를 했다.
"낚였다!"
상대 블로커가 승리의 미소를 지으며 발을 구르는 순간.
스윽.
승우의 손끝이 공에 닿기 직전, 그의 고개가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왼쪽을 향했다. 시선은 완전히 왼쪽 사이드를 향해 고정되어 있었지만, 그의 손가락 끝은 미세하게 회전하며 공의 아래쪽을 깎아내듯 튕겨냈다.
단독 노룩 패스 페인트(No-look dump shot).
공은 승우의 손끝에서 튕겨 나가 비스듬한 탄도를 그리며, 도약하려던 상대 블로커 3명의 머리통 바로 위를 스치듯 지나갔다.
"……?!"
상대 블로커들은 공중으로 솟구치려던 힘을 이기지 못하고 엉뚱한 방향으로 뛰어올랐다. 그들의 시선이 허공에서 급격히 흔들렸다. 그들이 막으려던 윙 스파이커의 위치가 아니었다. 공은 네트 바로 뒤, 상대 코트 정중앙의 텅 빈 공간을 향해 무방비하게 떨어지고 있었다.
툭.
가벼운 마찰음과 함께 배구공이 코트 바닥에 닿았다. 대진공고의 수비진 중 그 누구도 몸을 던지지 못했다. 승우의 완벽한 탄도 계산과 시선 유도에 완전히 속아 넘어가, 마치 바보들처럼 제자리에서 엉금엉금 주저앉거나 엉뚱한 방향으로 허우적거릴 뿐이었다.
"어, 어어……?"
대진공고 선수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갔다. 자신들을 완벽하게 우롱한 승우의 플레이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한 채 멍하니 바닥의 공을 바라보았다.
승우는 네트 너머로 주저앉은 상대 블로커들을 차갑게 내려다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노골적인 비웃음과 오만이 서려 있었다.
"내 움직임을 읽으려 하지 마. 너희 같은 삼류 블로커들의 머리 위는 언제나 열려 있으니까."
도발에 대한 완벽한 응징이었다. 체육관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태성고의 흐름으로 완전히 뒤집혔다. 승우의 독재적인 플레이가 코트 전체를 지배하기 시작한 것이다. 점수판의 숫자가 빠르게 올라가며 태성고가 세트를 리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승리의 기쁨도 잠시였다.
"윽……!"
승우는 착지하자마자 급격히 밀려드는 통증에 오른쪽 어깨를 움켜쥐었다.
어깨 관절 내부에서 날카로운 칼날로 신경을 후벼 파는 듯한 극심한 자극이 뇌를 강타했다. 이마에서 굵은 식은땀이 비 오듯 쏟아졌고, 다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시스템 가동 시간이 누적되면서 전생의 부상 부위가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는 명백한 경고였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버티면 된다.'
승우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어깨를 주물렀다. 어떻게든 통증을 숨기려 애쓰며 다음 플레이를 준비하려던 그 순간.
털썩.
등 뒤에서 묵직하고도 빠른 발소리가 들려왔다. 승우가 미처 뒤를 돌아보기도 전에, 거칠고 단단한 손길이 승우의 오른쪽 견갑골을 무서운 힘으로 콱 움켜쥐었다.
압도적인 악력이 승우의 어깨뼈를 죄어왔다. 통증이 극대화되며 승우의 입에서 억눌린 신음이 새어 나왔다.
"윽…… 누구야?"
고개를 돌린 승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의 등 뒤에 서 있는 사람은 태성고의 리베로, 이지한이었다. 평소에는 묵묵히 공만 받아내던 그의 눈빛이 전에 없이 무겁고 날카롭게 가라앉아 있었다. 이지한은 승우의 어깨를 움켜쥔 손에 힘을 빼지 않은 채, 낮고 단단한 목목한 목소리로 승우의 귓가에 속삭였다.
"너, 어깨 언제부터 이랬냐."
승우의 심장이 쿵 하고 떨어져 내렸다. 시스템의 비밀, 그리고 자신의 시한부 같은 육체의 비밀이 가장 신뢰해야 할 리베로에게 들통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