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 뒤, 제국 도성 아헨의 최북단에 솟아오른 성법 회의 판결소.
납으로 마감된 육중한 창틀 사이로 침침한 겨울 햇살이 비쳐 들었다. 높은 천장의 아치마다 수백 년 묵은 그을음과 이끼가 들러붙어 있었고, 공기 중에는 말린 향초와 오래된 양가죽 종이 썩는 냄새가 무겁게 감돌았다. 사흘 전 영지에서 단행된 이단심문소의 전격적인 압수수색으로 인해 에드리안의 모든 가마와 간이 야금 주조소는 붉은 진흙으로 봉인된 상태였다. 그 삼일 밤낮 동안 덜컹거리는 죄수 마차에 갇혀 도성으로 압송되는 내내, 에드리안의 왼쪽 눈은 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뇌 신경망에 가해진 하이페리온의 연산 과부하는 아직 완전히 가라앉지 않았다. 귓가에서 고주파의 금속성 이명이 웅웅거리며 신경을 긁어댔지만, 에드리안은 단 한 번도 신음하지 않았다. 그의 무표정한 얼굴은 얼어붙은 강 표면처럼 매끄러웠다.
"피고, 아이젠베르더 영지의 후계자 에드리안 폰 아이젠베르더는 전방으로 나아오라."
재판관석의 가장 높은 자리에 앉은 세 명의 대법관 중 한 명인 폰 슐레지엔 공작이 근엄한 목소리로 선언했다. 공작의 어깨 위로 늘어진 담비 모피 가운이 그의 권위를 대변하듯 두텁게 가라앉았다. 그 좌우에는 보수적인 제국 귀족원의 원로들과 은색 장식을 두른 이단심문관들이 배심원석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에드리안은 쇠사슬이 가볍게 부딪히는 소리를 내며 한 걸음 내딛었다. 그의 곁에는 제국 법학자의 상징인 검은 학사 가운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베아트리스가 백동으로 장식된 서류 가방을 든 채 보폭을 맞추고 있었다.
"경외하올 황제 폐하의 대리인이자, 제국의 공의를 수호하시는 존경스러운 대법관 폰 슐레지엔 공작 전하."
에드리안의 목소리는 낮고 명료했다. 사슬에 묶인 죄인의 비굴함이나 정적을 향한 노골적인 적대감 따위는 전연 섞여 있지 않은, 지극히 절제되고 품격 있는 제국 관습 서두였다.
"또한, 제국의 거룩한 율법을 수호하시는 성법 회의 배심원 각하들께 아이젠베르더의 이름으로 경의를 표하나이다."
재판관석의 보수적 귀족들 사이에서 미세한 웅성거림이 일었다. 이단 혐의로 압송된 변방의 무능한 영주 자식이 제국 궁정의 가장 까다로운 관습 칭호와 격식을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구사하자, 그들의 얼굴에 당혹감이 스쳤다. 통상적으로 이단 재판에 끌려온 피고들은 공포에 질려 횡설수설하거나, 감정에 치우쳐 억울함을 호소하다가 법관들의 심기를 거스르기 일쑤였다. 그러나 에드리안의 태도는 마치 정교하게 윤을 낸 기계 장치처럼 완벽한 궤도를 그리고 있었다.
"예의를 차릴 시간은 끝났다, 에드리안."
배심원석의 가장 앞줄에 앉아 있던 이단심문관 아마데우스가 차갑게 쏘아붙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손에는 아이젠베르더 영지의 가마터에서 압수해 온 몇 가지 물품들이 들려 있었다. 그것은 열역학적 단열을 위해 제작된 마그네슘 내화벽돌의 파편과, 가마 내부의 불순물을 정제하는 과정에서 수거된 검은 가루들이었다.
"이것들이 바로 네놈의 영지에서 불법적으로 가동되던 연금술 가마의 잔해다. 본 이단심문소는 이 기괴한 벽돌과 가루에서 제국 교단이 규정한 마력 허용 한계치를 초과하는 비정상적인 고온 반응의 흔적을 감지했다. 이는 명백히 악마학의 지식을 빌려 물질의 성질을 왜곡한 이단의 증거다!"
아마데우스의 선언에 법정 내부의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에드리안은 아마데우스가 들어 올린 마그네슘 벽돌 파편을 조용히 응시했다. 그의 뇌내 데이터베이스가 실시간으로 해당 물질의 분자 구조와 화학적 성질을 시각화하기 시작했다.
[대상: 탄산마그네슘 및 백운석(Dolomite)의 열분해 화합물.] [성분 분석: 산화마그네슘(MgO) 85%, 이산화규소(SiO2) 5%, 산화칼슘(CaO) 8%.] [판정: 비마력성 천연 광물 야금재.]
에드리안은 왼쪽 눈의 욱신거리는 통증을 억누르며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심문관 각하께서 제시하신 물증은 제국 종교 양형법 제12조가 규정하는 '금지된 연금술 촉매'의 범주에 단 1리브르도 부합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악마학의 산물이 아닌, 제국 서부 산맥에서 흔히 발견되는 백운석과 고유황 마그네슘 광석을 단순히 열처리하여 얻은 산화마그네슘 화합물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궤변이다! 일반적인 가마의 온도로는 철을 이토록 정밀하게 녹여낼 수 없다. 마력의 조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아마데우스가 책상을 내리치며 호통쳤다. 법정의 귀족들이 그의 기세에 밀려 숨을 죽였다. 그러나 에드리안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논리적인 반박을 이어갔다.
"그것은 화학적 열역학의 기초적인 환원 반응을 이해하지 못한 무지에서 비롯된 오해입니다. 백운석을 섭씨 900도 이상의 고온에서 가열하면 이산화탄소가 방출되며 극도로 고밀도화된 다공성 단열재가 형성됩니다. 이 단열 벽돌은 가마 내부의 열용량이 외부로 방출되는 것을 물리학적으로 차단할 뿐입니다. 열을 가두는 성질이 뛰어난 광물을 이단이라 규정하신다면, 겨울철 폐하의 침실을 데우는 벽돌 역시 이단으로 규정해야 마땅할 것입니다."
"무슨 무례한 언사인가!"
"이것은 무례가 아닌 사실의 나열입니다, 심문관 각하. 제국 광물세 징수 조례집 제4조에 따르면, 백운석과 염기성 마그네시아는 황실 가마의 보수재로 정식 등록된 '세속적 교역품'입니다. 교단 수색대가 수거한 검은 가루 역시 연소 과정에서 발생한 단순한 황화합물 찌꺼기일 뿐, 마력의 잔재인 에테르 파동은 전혀 검출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만약 검출되었다면, 심문관 각하께서 이 자리에서 직접 성물의 정밀 감측 결과를 낭독하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에드리안의 논리적이고 구체적인 반박에 아마데우스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실제로 이단심문소가 영지에서 수거한 물질들에서는 그 어떤 마력 반응도 나오지 않았다. 단지 상식을 초월한 야금 기술의 정밀도에 겁을 먹고 이단이라는 프레임을 씌우려 했을 뿐이었다.
이때, 방청석의 한 구석에서 짐짓 거만한 헛기침 소리와 함께 한 남자가 걸어 나왔다. 화려한 벨벳 코트에 금색 자수를 촘촘히 새겨 넣은 사내, 아이젠베르더 영지의 수자원을 압박하여 에드리안을 고사시키려 했던 발레랑 백작이었다.
"훌륭한 말장난이군, 에드리안 군."
발레랑 백작이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재판관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벽돌과 가루가 이단이 아니라 칩시다. 하지만 그 가마와 철공소에서 만들어진 기괴한 철제 펌프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 장치는 내 영지에서 흘러내려 가는 수계를 임의로 전용하여 작동하고 있소. 제국 수자원 관리법과 영지 간 경계 조약에 따르면, 인접한 영주 간의 동의 없이 공유 수계의 수량을 기계적 장치로 통제하는 것은 명백한 사법 침해이자 영토 강탈 행위요."
발레랑 백작의 목소리가 법정 내에 징처럼 울려 퍼졌다. 그는 교단의 이단 심문이라는 종교적 칼날 뒤에 숨어, 에드리안이 구축한 증기 펌프와 수자원 공급망을 합법적으로 몰수하려는 속셈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었다. 배심원석의 귀족들이 발레랑의 논리에 동조하듯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영주 간의 수자원 분쟁은 제국 법정에서 언제나 가장 민감하고 강력한 기득권 수호의 명분이었기 때문이다.
"아이젠베르더는 발레랑 백작가의 정당한 수리권을 침해했다! 이는 제국 법전에 의거해 영지 몰수 사유에 해당한다!"
발레랑 백작의 대리인들이 일제히 소리 높여 외쳤다. 법정의 기세가 순식간에 에드리안을 압박하는 방향으로 급선회했다. 아마데우스 역시 기회를 잡았다는 듯 음산한 미소를 지었다.
바로 그 순간, 에드리안의 등 뒤에 서 있던 베아트리스가 가방에서 두꺼운 양가죽 법전을 꺼내 들며 단상 앞으로 나섰다. 그녀의 구두 굽 소리가 대리석 바닥을 맑게 때렸다.
"존경하는 대법관 전하, 그리고 배심원 각하들."
베아트리스의 목소리는 얼음송곳처럼 날카롭고 명징했다.
"발레랑 백작이 주장하는 수리권 침해는 제국의 근간이 되는 사법 전례를 완전히 왜곡한 억지에 불과합니다. 본 변호인은 제국 대관세기 전례집 제47조를 근거로, 아이젠베르더 영지의 수자원 이용이 완벽하게 합법적이며 타 영지의 간섭으로부터 면제됨을 증명하고자 합니다."
"제47조라고?"
폰 슐레지엔 공작이 눈을 가늘게 뜨며 법전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베아트리스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해당 조항의 구절을 거침없이 낭독했다.
"제국 대관세기 전례집 제47조 '수도관 공유 면제권'에 명시된 바에 따르면, '어느 영주가 자신의 영토 내에서 타 영지의 자연 흐름에 의존하지 아니하고, 지하에 매장된 비출수성 심층수 혹은 고립된 지하수원을 독자적인 인공 도관 및 폐쇄형 순환 장치로 끌어올려 사용하는 경우, 이는 인접 영주의 수리권 공유 의무에서 영구히 면제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녀의 목소리가 법정의 천장을 때리고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발레랑 백작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시더니 급격히 굳어지기 시작했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그 펌프가 퍼 올리는 물은 내 영지의 강물과 연결된 수맥이 분명하다!"
발레랑 백작이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에드리안은 그를 차갑게 내려다보며, 하이페리온의 연산 장치가 사전에 완벽하게 분석해 둔 지질학적 지표 데이터를 꺼내 들었다.
"백작 각하, 귀하의 주장은 지질학적 사실과 정면으로 배치됩니다. 아이젠베르더 영지 지하 150미터 아래에 존재하는 대수층은 상부의 두터운 불투수성 점토층과 고밀도 편암층으로 인해 각하의 영지를 흐르는 지표수와 물리적으로 완전히 차단되어 있습니다. 즉, 우리가 퍼 올린 물은 각하의 영지에서 단 한 방울도 유입되지 않은, 수천 년간 고립되어 있던 '심층 지하수'입니다."
에드리안은 미리 준비해 온 지질 단면도를 재판관석을 향해 펼쳐 보였다. 정교하게 그려진 광물층의 수치와 압력 분포도는 반박의 여지가 없는 과학적 증거였다.
"여기에 더해, 우리가 구축한 정수 공급망은 외부로 흘러나가지 않고 영지 내부에서만 순환하는 '폐쇄형 순환 도관'입니다. 따라서 전례집 제47조의 요건을 100% 완벽하게 충족합니다. 발레랑 백작령의 수량에는 단 1밀리리터의 손실도 발생하지 않았음을 통계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습니다."
베아트리스가 법전을 쾅 소리가 나게 닫으며 쐐기를 박았다.
"법에 명시된 전례와 물리적 사실이 이토록 명백하거늘, 발레랑 백작은 무슨 권리로 제국 법전의 권위를 무시하고 타 영주의 정당한 사유 재산과 독자적 수자원을 강탈하려 하시는 것입니까? 이는 제국의 신분제 사법 체계와 황실 전례집에 대한 노골적인 도전입니다!"
"이, 이럴 수가..."
발레랑 백작은 입을 벌린 채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재판관석의 폰 슐레지엔 공작은 안경을 고쳐 쓰며 지질 단면도와 법전의 제47조 조항을 번갈아 검토했다. 그의 고개가 천천히 아래위로 움직였다.
"음... 확실하군. 전례집 제47조의 해석과 물리적 지표가 정확히 일치한다. 발레랑 백작, 귀하의 수리권 침해 소송은 근거가 빈약하므로 기각한다. 아이젠베르더의 지하수 개발 및 폐쇄형 도관 가동은 법적으로 아무런 하자가 없다."
"공작 전하!"
발레랑 백작이 절망적인 비명을 질렀지만, 공작의 단호한 선언은 번복되지 않았다. 법정의 귀족들은 이제 에드리안을 무시무시한 괴물을 보듯 바라보고 있었다. 미신이나 무력 시위 대신, 그들이 가장 신성시하는 제국의 법률과 격식, 그리고 압도적인 지식을 무기로 자신들의 목줄을 죄어오는 이 젊은 영주에게서 형언할 수 없는 지적 압박감을 느낀 것이다.
완벽한 사법적 승리였다. 발레랑의 탐욕스러운 음모는 제국 대관세기 전례집의 조항 아래 완전히 조각나 버렸다.
하지만 아마데우스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의 두 눈에 서린 살기가 한층 더 짙어졌다. 법정의 분위기가 에드리안 쪽으로 기우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는 듯, 그는 품 안에서 붉은 비단으로 감싸인 둥근 성물을 꺼내 들었다.
"법률의 빈틈을 타 교묘하게 빠져나가는구나, 이단아."
아마데우스가 성물을 감싸고 있던 비단을 거칠게 벗겨냈다. 그 안에서 드러난 것은 정교한 은색 톱니바퀴들과 푸른색 마석이 기괴하게 얽혀 있는, 이단심문소의 극비 성물인 '정밀 에테르 감측계'였다.
"아무리 법전의 자구를 뒤틀어 변명할지라도, 네놈이 만든 그 사악한 기계 장치들이 마력의 파동을 품고 있다면 그것은 결코 숨길 수 없다. 이 성물은 아주 미세한 불법 마력의 흔적조차 결코 놓치지 않는다."
아마데우스가 성물을 법정 중앙의 연단 위에 올려놓으며 에드리안을 매섭게 쏘아보았다.
"에드리안 폰 아이젠베르더. 네놈이 정말로 떳떳하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네놈이 가져온 그 기계 피스톤 장치를 이 성물 앞에 작동시켜 보아라. 만약 이 성물이 단 한 번이라도 경보를 울린다면, 네놈은 법전 뒤에 숨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즉시 이단으로 규정되어 화형대로 향하게 될 것이다!"
웅장하던 법정의 공기가 다시 한번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처럼 긴장감으로 가득 찼다.
성물의 중심부에 박힌 푸른 마석이 마치 살아있는 괴물의 눈동자처럼 기괴한 빛을 발하며 에드리안의 기계 장치를 향해 반응하기 시작했다. 에드리안의 귓가에서 하이페리온의 경고음이 그 어느 때보다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