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지하수가 공중으로 세차게 솟구쳐 올랐다. 차가운 물방울들이 흩뿌려지며 메마른 흙먼지를 적셨고, 무지갯빛 포말이 정착민들의 거친 얼굴 위로 쏟아졌다. 흙투성이 손을 들어 올리며 환호하는 영지민들의 함성 소리가 계곡을 가득 채웠다.

그러나 그 환희의 한복판에서 에드리안의 왼쪽 눈은 핏빛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지독한 이명이 귓속을 파고들었다. 머릿속 깊은 곳에서 서늘한 기계음이 고막을 짓눌렀다. 하이페리온의 연산 장치를 무리하게 가동해 수맥의 흐름을 짚어낸 대가였다. 붉은 점막 사이로 흘러내린 눈물이 뺨을 타고 내렸다. 에드리안은 소매 끝으로 눈가를 훔쳐내며, 점차 시야를 가려오는 붉은 장막 너머를 응시했다.

말머리를 돌린 백작 사설 기사단의 등 뒤로, 거대한 검는 마차가 대지를 누르며 다가오고 있었다.

마차 바퀴가 진흙을 이겨내는 소리는 둔탁했다. 사방을 칭칭 감은 은색 쇠사슬이 부딪치는 금속음이 이명과 섞여 불쾌한 불협화음을 만들어냈다. 마차 문짝에 선명하게 낙인찍힌 '불타는 눈' 문양. 제국 이단심문소의 인장이었다.

베르너 기사대장이 삐딱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말 고삐를 당겼다. 그의 손에 들린 양피지는 황실의 금빛 봉인이 아닌, 피처럼 붉은 왁스로 밀봉된 교단의 기소장이었다.

"하하하! 에드리안 폰 아이젠베르더!"

베르너의 외침에 정착민들의 환호성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물보라가 떨어지는 소리만이 스산하게 울려 퍼질 뿐이었다.

"네놈이 제국 법전 뒤에 숨어 우리 백작님의 권력을 피할 수 있을진 몰라도, 신의 심판까지 피할 수 있을 줄 알았더냐! 이단심문소 본소 기소장이다! 너를 불법 마공학 제조 및 악마학 접촉 혐의로 즉시 체포한다!"

검은 제복을 입은 이단심문소 서기관들과 철갑을 두른 무장 성기사들이 마차 주변을 에워싸며 영지 경계선으로 발을 디뎠다. 쇠사슬이 풀리는 칼날 같은 소리가 고요한 정적을 깼다.

에드리안의 시야 오른쪽 구석에서 붉은 경고등이 격렬하게 점멸했다.

[경고: 고출력 마력 파동 탐지 센서 접근 중.] [대상 식별: 제국 이단심문소 표준형 에테르 검출기.] [연산 장치 출력 제한 모드 가동 필요. 뇌 신경망 과부하율 87%.]

머리가 깨질 듯한 통증이 관자놀이를 관통했다. 에드리안은 이가 맞부딪치는 것을 참으며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그의 뒤에서 베아트리스가 차가운 눈빛으로 법전을 품에 안은 채 발걸음을 맞춰왔다.

"멈춰라."

에드리안의 목소리는 낮고 건조했다. 피가 섞여 붉게 변한 왼쪽 눈이 이단심문소의 서기관을 정면으로 쏘아보았다.

"이곳은 아이젠베르더 영지다. 제국 영지법에 의거하여, 영주의 사법적 승인이나 제국 법정의 정식 영장 없이는 그 누구도 이 경계선을 넘을 수 없다."

"닥쳐라, 악마학자 놈!"

베르너가 채찍을 휘두르듯 기소장을 흔들었다.

"이것은 아마데우스 이단심문관님께서 직접 서명하신 본소 기소장이다! 종교 양형법상 이단 혐의자는 영지 면책권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서기관 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중년의 사제가 한 걸음 걸어 나왔다. 그의 가슴팍에는 정교하게 세공된 은색 구체가 매달려 있었다. 구체 내부에서 미세한 톱니바퀴가 돌아가며 이따금 푸른빛을 발했다. 이단심문소의 자랑이자, 미세한 마력의 흐름을 잡아내는 성물 탐지기였다.

사제가 냉혹한 어조로 선언했다.

"아이젠베르더 영주 후계자 에드리안. 귀하는 허가받지 않은 고온 열원 장치를 제작하고, 이를 통해 금지된 동력을 추출하여 수계를 교란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소. 성서 양형법 제12조에 의거, 기계를 압수하고 신병을 구속하겠소."

무장 성기사들의 무거운 군화가 영지 경계선 안쪽의 진흙을 밟았다.

정착민들이 겁에 질려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방금 전까지 영주를 연호하던 이들이 이단심문소의 상징을 보자마자 본능적인 종교적 공포에 질려 뒤로 물러섰다. 미신과 공포는 이 낙후된 영지를 지배하는 가장 강력한 쇠사슬이었다.

에드리안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의 뇌내에서는 이미 하이페리온의 데이터베이스가 폭발적인 속도로 회전하고 있었다. 이명이 한층 더 날카로워졌고, 왼쪽 눈에서 핏방울이 툭, 하고 흘러내려 턱 끝에 맺혔다.

"서기관."

에드리안이 손가락을 들어 기소장을 가리켰다.

"그 기소장에 적힌 나의 죄목이 정확히 무엇인지 읊어보아라."

"허가받지 않은 열원 장치를 통한 동력 추출 및 수계 독점이다!"

베르너가 대신 악을 썼다. 에드리안의 입가에 차가운 비웃음이 걸렸다.

"그렇다면 먼저 수계 독점이라는 죄목부터 논해보지."

에드리안은 품 안에서 낡았지만 꼼꼼하게 정리된 가죽 가방을 열어 두꺼운 양피지 뭉치를 꺼냈다. 그것은 주도 연방법정에서 공인된 법률 사본이었다.

"제국 대관세기 전례집 제47조를 인용하겠다."

에드리안의 목소리가 맑게 울려 퍼졌다.

"‘제국의 영주가 자신의 영토 내에서 지하수를 개발할 때, 그것이 인접한 영지의 수맥과 연결되어 있다 할지라도, 마법적 수단이 아닌 순수한 기계적 야금술과 물리적 도구를 사용하여 도수(導水)한 경우에는 영주 간 수도관 공유 면제권을 획득한다.’"

서기관의 눈썹이 꿈틀했다. 에드리안은 쉬지 않고 논리를 밀어붙였다.

"발레랑 백작은 본 영지가 백작령의 수자원을 무단으로 찬탈했다고 주장하며 수금 조치를 내렸으나, 이 펌프는 순수한 석탄 연소와 수증기압을 이용한 물리적 장치다. 대관세기 전례집 제47조에 명시된 예외 조항에 완벽히 부합하지. 즉, 수계 독점 및 찬탈이라는 전제 자체가 사법적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백작령이 주장하는 권리 침해는 이 전례법에 의해 원천 무효다."

"그, 그건 귀족들 간의 사법적 분쟁일 뿐이다!"

베르너가 당황하여 말을 더듬었다.

"하지만 네놈이 사용한 그 기괴한 무쇠 펌프는 이단심문소가 규제하는 불법 마공학 장치다! 동력을 발생시키는 열원 장치 자체가 악마의 기술이란 말이다!"

"열원 장치라."

에드리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시선이 서기관의 가슴에 달린 성물 탐지기로 향했다.

"성서 양형법 제12조, 그리고 그 하부 시행령인 '동력 기구 규제 성칙' 제4조를 열거해 주지. 이단으로 규정되는 불법 열원 장치란 '에테르 및 마석의 직접적인 분해를 통해 화씨 1천 도 이상의 열을 일정하게 방출하는 마력 순환계'를 뜻한다. 맞나?"

서기관은 침을 삼키며 대답하지 못했다. 에드리안의 기계적인 정확함에 압도당한 기색이 역력했다.

"내가 가동한 장치는 마석을 단 1그램도 사용하지 않았다."

에드리안이 솟구치는 지하수 파이프 옆에 설치된 무쇠 보일러를 가리켰다.

"저것은 이 영지에서 채굴한 일반 석탄과 고유황 마그네슘 광석을 혼합하여 연소시키는 단순한 외연기관이다. 연소 온도는 화씨 850도 안팎에 불과하며, 이는 대장간의 용광로 온도보다도 낮다. 성서 양형법이 규정하는 '이단 소화(消火) 범위'의 최저 기준 수치인 화씨 1천 도에 미치지 못한다는 뜻이다. 수치상 명백한 누락이지."

"말장난하지 마라!"

베르너가 검을 반쯤 뽑아 들며 위협했다.

"열이 나고 기계가 움직이는데 마력이 쓰이지 않았을 리가 없다! 저기 서기관님의 성물이 증명하지 않느냐!"

실제로 서기관의 가슴에 달린 은색 구체는 미세하게 푸른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에드리안은 하이페리온의 분석 데이터를 시각 정보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분석 완료: 대상 성물(에테르 검출기)의 수신 필터 오류 발견.] [해당 장치는 특정 무기질(황 및 마그네슘)의 고온 연소 시 발생하는 자외선 파장을 에테르 파동의 2차 고조파로 오인하도록 설계됨.] [메커니즘: 광학적 대역폭 필터의 정밀도 한계로 인한 오진.]

"성물이 반응하는 이유를 알려주지."

에드리안이 서기관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귀관들이 가진 그 탐지기는 정밀한 에테르 검출기가 아니다. 그저 고온의 연소 과정에서 발생하는 자외선(UV) 대역의 파장을 마력의 물리적 파동으로 오인하는 불량품일 뿐이다. 만약 저 장치가 진짜 마력을 감지하는 것이라면, 지금 당장 저 보일러의 연료를 끄고 대장간의 일반 숯을 넣어도 반응해야 할 것이다. 해보겠나?"

서기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갔다. 교단의 권위를 상징하는 성물을 '오작동하는 기계'로 격하시키는 에드리안의 논리는 지극히 모욕적이었으나, 동시에 반박할 수 없을 만큼 치밀했다.

이때, 베아트리스가 앞으로 나섰다. 그녀는 품고 있던 제국 공문서 사본을 높이 치켜들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황실 대법관의 제자다운 추호의 망설임도 없었다.

"게다가 이 기소장에는 중대한 사법적 하자가 있습니다."

베아트리스의 날카로운 지적에 서기관의 시선이 그녀에게 쏠렸다.

"이 기소장은 아마데우스 이단심문관의 대리인 명의로 발부되었습니다. 하지만 제국 주도 연방법 제17조에 따르면, 제국 정식 귀족 가문의 영지 후계자를 신병 확보 및 사형 집행에 처하기 위해서는 대리 서명이 아닌 본소 이단심문관의 '직접 친필 서명과 황실 대법원의 관할권 이관 승인서'가 동시에 첨부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은 체포 집행은 명백한 관할권 남용이자 불법 구금입니다."

"그, 그것은 교단의 특별 사법권에 의해..."

서기관이 변명하려 했으나, 베아트리스는 자비 없이 그의 말을 자르고 들어갔다.

"특별 사법권은 영지 내에 악마의 실체적 소환이나 대규모 마력 폭주가 발생했을 때에만 제한적으로 발동됩니다! 지금 이 영지에 악마가 있습니까? 아니면 마력이 폭주하여 대지가 무너지고 있습니까? 솟구치는 것은 그저 깨끗한 지하수뿐입니다!"

그녀의 손가락이 콸콸 쏟아지는 물줄기를 가리켰다.

"이것은 영지민들의 생존이 걸린 수자원 개발입니다. 만약 교단이 정당한 법적 절차를 무시하고 아이젠베르더의 후계자를 체포하려 든다면, 저는 황실 법학자의 이름을 걸고 이 사건을 주도 연방법정(Sovereign Federal Court)의 공개 재판으로 즉각 압수 이송할 것입니다. 주교의 대리 권한 위임 한계를 넘어서는 이 월권행위를, 과연 황실 대법관들이 묵과할 것 같습니까?"

'주도 연방법정'과 '공개 재판'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서기관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교단은 언제나 어둠 속에서 비밀리에 이단을 심판하고 처형하는 것을 선호했다. 만약 이 사건이 황실과 귀족들이 지켜보는 주도 연방법정으로 넘어가 공개 재판이 된다면, 교단의 허술한 성물 탐지기 메커니즘과 법률적 허점이 대륙 전역에 폭로될 터였다. 그것은 마공학 독점 체제를 유지하려는 교단에게 치명적인 타격이었다.

완벽한 사법적 외통수였다. 에드리안의 이성적이고 차가운 수치 분석과 베아트리스의 정밀한 법률적 역공이 맞물려, 교단의 사자들이 가진 종교적 권위를 밑바닥부터 뒤흔들어 놓았다.

목책 뒤에서 지켜보던 정착민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다시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공포가 아니었다.

"영주님이 맞다... 저 기계는 그냥 석탄을 태우는 가마일 뿐이잖아."

"이단심문소가 우리 물을 빼앗으려고 거짓말을 하는 거였어!"

"우리를 살려준 물을 왜 이단이라고 하는 건가!"

민심의 흐름이 급변하고 있었다. 미신에 눈이 멀어 폭동을 일으키려던 정착민들이, 이제는 자신들에게 실체적인 물과 권리를 보장해 주는 에드리안의 '기계적 질서' 아래로 완전히 결집하기 시작한 것이다.

베르너는 분노로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져 서기관의 멱살을 잡을 듯이 다가갔다.

"서기관! 뭐 하는 건가! 당장 저 미치광이 놈을 쇠사슬로 묶으라고 명령해라! 저놈은 이단이다! 내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그러나 서기관은 베르너의 손을 거칠게 뿌리쳤다. 그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그는 에드리안의 핏빛 왼쪽 눈과, 그 뒤에서 차갑게 자신을 내려다보는 베아트리스를 번갈아 보았다.

"…체포를 유예한다."

서기관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뭐, 뭐라고?!"

베르너가 경악하여 비명을 질렀다. 서기관은 에드리안을 매섭게 쏘아보며 기소장을 거두어 품에 넣었다.

"에드리안 폰 아이젠베르더. 네놈이 법전의 빈틈을 교묘히 파고들어 일시적인 형벌 유예를 얻어냈을지는 몰라도, 교단의 감시를 벗어날 수는 없다. 너의 그 기괴한 장치와 야금술이 정말로 마력과 무관한지, 본소의 상급 심문관들께서 직접 검증하실 것이다."

서기관이 가슴의 은색 구체를 움켜쥐며 뒤로 돌아섰다.

"이 사건은 제국 성법 회의로 공식 이관하겠다. 그리고..."

그의 목소리가 한층 더 낮고 음산해졌다.

"본관은 이 영지 내에 숨겨진 또 다른 불법 마공학 장치와 악마학의 증거를 찾기 위해, 내일부터 사방에 압수수색 요원을 투입하겠다. 영지 경계선 내의 모든 가마와 대장간, 정수 공급망을 이단심문소의 이름으로 봉인하고 철저히 수색할 것이다."

그것은 노골적인 보복이자 새로운 위협이었다. 영지의 심장부인 도자기 가마와 기계 가공소를 압수수색하겠다는 선언에, 에드리안의 눈썹이 미세하게 꿈틀했다.

서기관은 베르너를 향해 차갑게 명령했다.

"철수한다. 성법 회의의 정식 영장이 발부될 때까지 대기하라."

검은 마차가 삐걱거리며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먼지를 휘날리며 사라지는 교단의 무리를 바라보는 에드리안의 왼쪽 눈에서, 마지막 피 한 방울이 지면으로 툭 떨어졌다.

시작된 것은 승리가 아니었다.

영지의 모든 산업 기반을 송두리째 압수당할 수 있는, 더 거대하고 가혹한 종교적 감시망이 아이젠베르더 영지를 옥죄어 오기 시작했다. 에드리안의 머릿속에서 하이페리온의 경고음이 다시 한번 낮게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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