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잉- 지잉-.
지하 석조 대장간의 습한 공기를 가르고 울리는 기계음은 고막을 찌르는 금속성 파동이었다. 에드리안의 시야 오른쪽 구석에 투영된 하이페리온의 연산 인터페이스가 붉은색 경고등을 미친 듯이 점멸했다.
[위험: 외부 에테르 탐지 센서 자외선 대역 동기화율 94.2%.] [경고: 고온 마그네슘 접종 가마의 복사열 및 피스톤 마찰 온도가 제국 이단심문소 표준 감지 임계치를 초과함.] [연산 장치 과부하율 87%. 신경망 모세혈관 압력 임계치 돌파.]
"윽……."
에드리안의 입에서 억눌린 신음이 새어 나왔다. 왼쪽 눈꺼풀 사이로 뜨거운 액체가 흘러내렸다. 시뻘건 핏방울이 뺨을 타고 흘러내려 턱끝에서 툭, 하고 석판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명이 두개골 내부를 징 치듯 울려 대며 균형 감각을 사정없이 흔들었다. 하이페리온의 인공지능 보조 연산 장치가 방출하는 미세 파동을 억제하기 위해 신경망을 극한으로 쥐어짜낸 대가였다.
"에드리안 님! 눈에서 피가 흐릅니다!"
베아트리스가 경악하며 한 걸음 내디뎠다. 그녀의 하얗게 질린 얼굴이 어두운 지하 조명 아래에서 파르르 떨렸다. 법률의 자구 하나하나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던 그녀였으나, 에드리안의 왼쪽 눈을 가득 채운 핏빛 혈종과 기괴할 정도로 차가운 무표정의 대비에는 본능적인 공포를 느낀 듯했다.
"물러서라, 베아트리스."
에드리안은 소매 끝으로 거칠게 피를 훔쳐냈다. 붉은 자국이 뺨에 길게 번졌지만, 그의 동공은 기계 장치의 톱니바퀴처럼 고정되어 흔들리지 않았다.
"뇌 신경망의 국소적 모세혈관 수축 현상일 뿐이다. 생명 유지 전반에는 아무런 통계적 지장이 없다. 지금 중요한 것은 저 탐지기의 파동을 감쇄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저 붉은 빛은 이단심문소의 성물이 우리를 포착했다는 신호 아닙니까!"
칼이 대장간 바닥에 뒹굴던 커다란 쇠망치를 움켜쥐며 외쳤다. 그의 무뚝뚝한 얼굴은 땀과 그을음, 그리고 형언할 수 없는 두려움으로 뒤범벅되어 있었다.
"그 빌어먹을 성직자 놈들이 쇠틀을 들고 들이닥치면 우린 전부 화형대행입니다! 가마를 부숴야 합니다! 당장 저 황동 펌프도 때려 부수고 숨겨야 합니다!"
"어리석은 소리."
에드리안의 목소리는 지하수의 냉기보다도 차가웠다.
"이단심문소의 성물이 감지하는 것은 마력이 아니다. 그들이 '신성한 감지기'라 부르는 장치는 실상 특정 파장대의 자외선과 고온 마찰에서 발생하는 에테르 섭동을 감지하는 기계적 센서에 불과하다. 지금 감지기가 반응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가마 내부의 고유황 마그네슘이 연소하며 방출하는 복사열, 그리고 황동 피스톤이 왕복 운동을 하며 발생하는 금속 마찰열의 자외선 스펙트럼이다."
에드리안은 시각 센서에 비친 펌프의 단면도를 강제로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하이페리온의 보조 연산 성능을 강제로 1% 미만의 대기 모드로 전환하자, 머릿속을 짓누르던 이명이 서서히 잦아들었다. 왼쪽 눈의 통증도 둔탁한 감각으로 가라앉았다.
"보조 연산을 일시 중단한다. 지금부터는 철저히 마학적 반응이 배제된, 순수 물리적 운동만으로 이 장치를 구동한다."
"마학적 반응이 없다니요? 그게 가능합니까?"
베아트리스가 의아한 듯 물었다. 제국에서 쓰이는 모든 고출력 펌프와 동력기는 마석의 마력을 연소시켜 압력을 얻는 구조였다. 마력을 쓰지 않고 어떻게 이 거대한 수압을 감당한단 말인가.
"중력과 인간의 근육은 이단심문소의 감지망에 잡히지 않는 완벽한 무마력 동력원이다."
에드리안은 펌프의 하단부로 걸어가 이중 밸브의 압력 조절 나사를 손으로 돌렸다.
"기계적 마찰열을 상쇄하기 위해 수냉식 차단벽을 가동한다. 칼, 피스톤 실린더 표면에 나 있는 보조 배관 홈에 차가운 지하수를 끊임없이 부어라. 마찰 부위의 온도가 섭씨 40도를 넘지 않게 유지하면 자외선 방출은 감지기의 필터 하한선 이하로 떨어진다."
칼은 에드리안의 광기 어린 정밀함에 압도된 듯, 침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얘들아, 양동이에 물 채워라! 실린더가 식을 때까지 계속 들이부어!"
대장간 구석에서 잔뜩 움츠려 있던 도제들과 정착민들이 서둘러 움직이기 시작했다. 양동이가 부딪치는 요란한 소리가 지하실을 채웠다.
"이제 레버를 돌린다."
에드리안이 거대한 주철제 크랭크 축을 가리켰다. 그것은 지하 12미터 아래의 황동 피스톤과 기어로 연결된, 인간의 완력만을 요구하는 단순하고도 무식한 장치였다.
"이 장치는 마석의 힘으로 돌아가는 세련된 황실의 장난감이 아니다. 철저히 질량의 법칙과 레버의 원리에 지배받는 중력식 피스톤이다. 성인 남성 네 명의 교대 근력이 지속적으로 투입되어야만 임계 압력을 유지할 수 있다."
에드리안은 정착민들을 차가운 눈빛으로 훑어보았다.
"너희는 이 물을 마시지 못하면 겨울이 오기 전에 갈증과 오염된 수질로 인한 이질로 사망할 것이다. 생존 확률을 소수점 위로 올리고 싶다면, 저 레버를 돌려라. 이것은 노동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에너지 변환 작업이다."
정착민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에드리안의 말은 따뜻한 위로나 격려와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가혹한 통계 수치를 들이밀며 목을 죄는 것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 차가운 논리 속에는 기묘한 확신이 있었다. 저 영주가 지시하는 대로 움직이면 살 수 있다는, 기계적이고도 명확한 인과관계가 그들의 뇌리에 박혔다.
"내가 먼저 잡겠소!"
정착민 중 가장 체격이 건장한 사내가 앞으로 나섰다. 가마 소동 때 가장 앞장서서 미신을 부르짖던 자였다. 그는 이제 에드리안의 지배력 아래 완전히 굴복한 눈빛으로 레버의 가죽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나도 돕겠네!"
또 다른 정착민이 달려들었다. 칼 역시 도끼를 내려놓고 자신의 두꺼운 팔뚝을 레버 위에 얹었다.
"하나, 둘, 셋! 당겨라!"
콰드득!
묵직한 주철 기어가 맞물리며 소름 끼치는 마찰음을 냈다. 펌프의 실린더가 아래위로 왕복 운동을 시작했다.
슈우우우-!
압축된 공기가 배출되는 소리와 함께 실린더 내부가 진공 상태로 변해갔다. 그와 동시에 도제들이 양동이의 차가운 지하수를 실린더 외벽에 사정없이 부었다. 치이익 하는 미세한 열방출 소리가 났으나, 차가운 물줄기가 금속 표면을 감싸 안으며 마찰열을 즉각적으로 흡수해 버렸다.
지잉- 지잉- 울리던 간이 경보 장치의 비명 소리가 한 옥타브 낮아졌다.
"계속해라. 멈추지 마라."
에드리안은 경보 장치의 지시 바늘을 주시하며 명령했다.
"속도를 일정한 리듬으로 유지해라. 분당 왕복 횟수 40회를 넘지 않도록. 마찰 계수를 최소화해야 한다."
"흐읍! 으차아아!"
정착민들의 거친 숨소리가 지하실을 가득 채웠다. 땀방울이 그들의 이마에서 흘러내려 황동 파이프 위에 떨어졌고, 기계는 그들의 근육이 뿜어내는 기계적 에너지를 고스란히 유체의 압력으로 변환시켰다.
그것은 지극히 원시적이면서도 가장 확실한 물리학적 극복이었다. 마법도, 신성한 기적도 개입하지 않은, 인간의 육체와 정밀하게 가공된 금속 기어의 연대였다.
철컥, 철컥, 철컥.
일정한 박자로 돌아가는 기계음 속에서, 경보 장치의 적색 불빛이 마침내 황색으로, 그리고 마침내 차분한 녹색 안정 상태로 돌아왔다. 이단심문소의 성물 센서가 마찰열과 자외선 파장의 급격한 저하를 감지하고 추적을 포기한 것이었다.
"성공이다……."
베아트리스가 나직하게 탄성을 질렀다.
그 순간, 압력 제어 밸브의 게이지가 임계점에 도달했다.
쿠구구구-!
지하 깊은 곳에서부터 거대한 수압이 관을 타고 역류하는 진동이 대장간 바닥을 흔들었다. 이윽고 대장간 중앙에 설치된 지상 방출구의 조절 밸브가 수압을 이기지 못하고 팅, 하며 열렸다.
콰아아아아-!
맑고 투명한 지하수가 거대한 분수처럼 공중으로 치솟았다. 지하수의 차가운 물방울이 대장간의 어두운 천장에 부딪혀 사방으로 흩날렸다.
"물이…… 진짜 물이 쏟아져 나온다!"
"우리가 살았다! 살았어!"
정착민들이 서로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다. 칼은 쏟아지는 물줄기 아래에 머리를 처박고 미친 듯이 물을 들이켰다.
"커허억! 답답하던 목구멍이 다 뚫리는 것 같구만! 영주님, 정말로 물줄기가 터졌습니다!"
에드리안은 얼굴에 튀는 물방울을 닦아내지도 않은 채, 시각 인터페이스에 기록되는 수치를 읽었다.
[수원 공급률: 시간당 4,200리터. 영지 내 생존 안정성 지표: 34%로 급상승.]
"기뻐하는 것은 이쯤 해두지."
에드리안의 차가운 음성이 물소리를 뚫고 울렸다.
"이 수원은 일시적인 갈증을 해결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발레랑 백작이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즉각 사법적 권한을 동원해 우리의 수원을 압류하려 들 것이다."
베아트리스가 옷자락에 묻은 물을 털어내며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녀의 눈빛은 이미 법학자의 날카로움을 되찾고 있었다.
"맞습니다. 백작은 이 영지 전체의 수자원 독점권을 주장하고 있어요. 관습법상 영지 경계선 내의 수로는 인접한 대영주의 관할에 종속된다는 조항을 악용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간과한 법적 허점이 존재한다."
에드리안은 주머니에서 가죽으로 장정된 낡은 서류철을 꺼냈다. 그것은 그가 4화에서 하이페리온의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제국 대관세기 전례집의 수천 가지 조항을 샅샅이 분석하여 찾아낸 치명적인 예외 조항이었다.
"제국 대관세기 전례집 제47조 제3항."
에드리안이 서류를 펼치자, 베아트리스의 눈이 크게 떠졌다.
"이것은…… 천 년 전 제국 건국 초기, 대가뭄 시절에 제정된 임시 예외 전례집이군요?"
"그렇다. 제47조 제3항에 명시된 바에 따르면, '귀족 간의 영토 경계선 분쟁에 있어, 지상의 하천이나 공유 수도관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불모지의 영주가 자신의 사유지 내에서 지하 암반층을 천공하여 무마력적 방법으로 독자적인 지하수원을 획득할 경우, 해당 지하수원은 인접 영지의 수계 권한 및 모든 공유 수도관 의무 규정으로부터 영구히 면제되며, 그 소유권은 온전히 발굴한 영주에게 귀속된다'고 규정되어 있다."
베아트리스의 입술이 가볍게 떨렸다.
"백작이 주장하는 수자원 독점권은 오직 '지상 수계와 연결된 수로'에만 적용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파 내려간 것은 지하 12미터의 암반층수입니다. 게다가 마력을 전혀 쓰지 않는 순수 기계적 피스톤 방식으로 물을 올렸으니, 교단의 마력 사용 규제법에도 저촉되지 않아요!"
"즉, 법적으로 발레랑 백작은 이 지하수에 대해 단 1밀리리터의 소유권도 주장할 수 없다."
에드리안이 서류를 덮는 순간, 대장간 입구의 지상 통로에서 거친 가쁜 숨소리가 들려왔다. 보초를 서던 영지 병사 한 명이 허겁지겁 계단을 굴러 떨어지듯 내려왔다.
"영, 영주님! 큰일 났습니다! 발레랑 백작의 사설 기사단이 경계선을 넘어오고 있습니다!"
"기사단?"
칼이 다시 쇠망치를 치켜들었다.
"그 탐욕스러운 백작 놈이 결국 군대를 보낸 겁니까?"
"병력의 규모는?"
에드리안이 차분하게 물었다.
"중장기병 10기를 포함한 약 30명의 무장 병력입니다! 영토 침범 및 불법 수리 시설 설치 혐의로 영지를 수색하겠다고 하며 영지 입구의 목책을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가자."
에드리안이 발걸음을 옮겼다.
"우리의 사법 보호막이 얼마나 견고한지 그 오만한 백작의 수하들에게 직접 증명해 줄 시간이다."
***
아이젠베르더 영지의 경계선, 조잡하게 얽은 나무 목책 앞은 이미 팽팽한 긴장감으로 터질 듯했다.
철갑을 두른 거대한 군마들이 거친 김을 내뿜으며 흙먼지를 일으켰고, 가슴팍에 발레랑 백작가의 붉은 사자 문양을 새긴 사설 기사들이 오만한 자세로 검자루를 쥐고 있었다.
그들의 선두에는 백작가의 가신이자 사설 기사대장인 '베르너'가 서 있었다.
"비켜라, 비천한 도망자 놈들아!"
베르너가 채찍을 휘두르며 목책을 지키던 영지 민병대원들을 위협했다.
"아이젠베르더 영지가 백작령의 수계를 무단으로 도용하여 불법적인 마공학 양수기를 가동하고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 당장 영지 내부를 수색하고 관련된 불법 기계 장치를 압수하겠다! 저항하는 자는 제국 영토 사법 방해죄로 즉결 처형하겠다!"
"누구 마음대로 제국의 영지를 수색하겠다는 것인가?"
차가우면서도 또렷한 목소리가 목책 너머에서 들려왔다.
정착민들의 호위 속에 에드리안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왼쪽 눈은 여전히 핏빛으로 충혈되어 기괴한 분위기를 풍겼지만, 그의 걸음걸이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그의 뒤편에는 대법학자의 위엄을 갖춘 베아트리스가 제국 법전의 사본을 품에 안은 채 서 있었다.
베르너는 에드리안의 기괴한 안구를 보고 주춤했으나, 이내 코웃음을 쳤다.
"오, 동사하기 직전의 가난뱅이 영주 후계자께서 직접 나오셨군. 에드리안 경, 우리는 정당한 법적 절차에 따라 수사권을 행사하러 왔다. 당신들이 백작령의 수자원을 도둑질했다는 증거는 이미 차고 넘친다!"
"증거라."
에드리안은 베르너의 무장 병력을 수치적으로 계산했다.
'중장기병 10기, 보병 20기. 현재 영지의 미비한 방어력으로는 무력 충돌 시 아군의 생존율은 14.8%에 불과하다. 하지만 사법적 방어벽을 가동할 경우, 저들의 침입 확률은 0%로 수렴한다.'
에드리안이 베아트리스에게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베아트리스가 앞으로 나서며 맑고 엄숙한 목소리로 공표했다.
"제국 법률 대리인이자 할버슈타트 가문의 가신으로서 경고합니다. 발레랑 백작의 사설 기사단은 지금 제국법을 심각하게 위반하고 있습니다."
"뭐라? 법률 대리인?"
베르너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우리는 백작령의 하천 수계 독점권에 의거해 수색을 진행하는 것이다. 무슨 개소리냐!"
"개소리인지 아닌지는 이 전례집을 보고 판단하시지요."
베아트리스가 제국 대관세기 전례집 제47조 제3항이 적힌 문서를 높이 치켜들었다. 황실의 붉은 밀랍 인장이 선명하게 찍힌 정식 법률 사본이었다.
"제국 대관세기 전례집 제47조 제3항에 의거, 아이젠베르더 영지가 획득한 수원은 지상 수계와 완전히 차단된 '지하 암반층수'입니다. 또한, 어떠한 마력석이나 교단 규제 대상 동력원을 사용하지 않는 '순수 기계적 중력식' 공법으로 채굴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수원은 백작령의 하천 독점권 범위에서 영구히 면제됩니다!"
베르너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그 뒤에 서 있던 백작가의 법정 대리인이 다급하게 베아트리스의 서류를 빼앗기듯 가져가 살펴보았다.
"이, 이것은……."
법정 대리인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대관세기 전례집 제47조 제3항…… 황실 법정의 최종 판례가 살아있는 조항입니다. 지, 지하 암반층을 무마력으로 기계식 채굴한 경우…… 백작령의 관할권이 미치지 않는다는 예외 조항이 명확히 기재되어 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
베르너가 고함을 질렀다.
"저놈들이 땅속에서 물을 퍼 올렸든 어쨌든, 우리 백작님의 물을 훔친 것이나 다름없지 않으냐!"
"법적으로는 완전히 다릅니다, 기사대장님!"
대리인이 식은땀을 흘리며 소근거렸다.
"이 조항에 따르면, 우리가 영지 경계를 넘어 강제로 수색을 감행할 경우, 오히려 '황실 영지 관할권 침해죄' 및 '사유 재산 무단 침탈죄'로 황실 법정에 기소될 수 있습니다. 특히 상대편에 할버슈타트 가문의 법학자가 버티고 있다면…… 백작님께서도 법적 책임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베르너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검을 뽑아 당장이라도 에드리안의 목을 베고 싶었으나, 법전의 절대적인 권위와 황실 밀랍 인장 앞에서는 사설 기사단 따위가 감히 힘을 쓸 수 없었다. 제국의 엄격한 신분제 사법 체계 하에서 황실 법전의 예외 조항을 어기는 것은 곧 반역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으, 으드득……."
베르너는 이빨을 갈며 에드리안을 쏘아보았다.
"겨우 이런 구닥다리 법 조항 뒤에 숨어 목숨을 보전하겠다는 거냐, 에드리안 경!"
"법은 국가를 통제하는 가장 효율적인 알고리즘이다."
에드리안이 감정 없는 어조로 대꾸했다.
"너희의 무력은 그 알고리즘의 예외 조항을 돌파할 연산 능력이 없다. 돌아가라. 너희가 이 경계선을 한 발짝이라도 넘는 순간, 제국 대법원에 발레랑 백작을 상대로 한 10만 골드 규모의 손해배상 및 관할권 침해 소송이 즉각 접수될 것이다."
완벽한 사법적 외통수였다.
베르너는 결국 검을 칼집에 밀어 넣었다.
"철수한다! 당장 철수해!"
백작의 사설 기사단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비참하게 말머리를 돌려 도망치듯 사라졌다.
목책 뒤에서 숨죽이고 지켜보던 정착민들이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우리가 이겼다! 백작의 기사단을 말 한마디로 쫓아냈어!"
"영주님 만세! 아이젠베르더 만세!"
그들의 눈에는 이제 에드리안이 단순한 영주가 아닌, 자신들을 굶주림과 외적의 위협으로부터 완벽하게 지켜줄 수 있는 절대적인 지배자로 보이기 시작했다. 미신과 무질서로 가득했던 영지에 '기계적 질서'와 '법적 안정성'이 뿌리내리는 순간이었다.
콸콸콸 쏟아지는 지하수의 맑은 물줄기가 대지를 적시며 영지의 풍요를 구가하듯 공중으로 치솟아 올랐다.
그러나 에드리안의 시선은 멀어지는 기사단의 흔적 너머, 지평선 한편에 머물러 있었다.
말머리를 돌린 기사단의 흙먼지 뒤로, 묵직하고 거대한 검은색 마차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마차의 사방에는 은색 쇠사슬이 감겨 있었고, 마차 문에는 제국 이단심문소의 상징인 '불타는 눈' 문양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마차의 문이 열리고, 검은 사제복을 입은 사법 대리인 무리가 걸어 나왔다. 그들의 선두에는 베르너 기사대장이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합류해 있었다.
베르너의 손에는 발레랑 백작의 서류가 아닌, 양식부터가 완전히 다른 양피지 한 장이 들려 있었다. 그것은 제국 교단에서 발행하는 가장 무거운 사법 집행장이었다.
"하하하! 에드리안 폰 아이젠베르더!"
베르너가 광기 어린 목소리로 외쳤다.
"네놈이 제국 법전 뒤에 숨어 우리 백작님의 권력을 피할 수 있을진 몰라도, 신의 심판까지 피할 수 있을 줄 알았더냐!"
베르너가 높이 치켜든 양피지 하단에는, 피처럼 붉은 인장과 함께 날카로운 필체로 한 인물의 서명이 박혀 있었다.
[이단심문관 아마데우스.]
"이단심문소 본소 기소장이다! 너를 불법 마공학 제조 및 악마학 접촉 혐의로 즉시 체포한다!"
검은 옷을 입은 이단심문관의 무장 성기사들이 쇠사슬을 풀며 영지 경계선으로 일제히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에드리안의 시야 속에서, 하이페리온의 경고등이 다시 한번 핏빛으로 점멸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