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왼쪽 시야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고출력 연산의 대가로 지불한 각막의 혈종은 여전히 가시지 않았고, 귀청을 찢는 듯한 이명이 날카로운 기계음처럼 고막을 두드렸다. 에드리안은 관자놀이를 흐르는 식은땀을 닦아내지도 않은 채, 손가락 끝에 닿는 차가운 강철 볼트의 감촉에 집중했다.

“칼.”

에드리안의 목소리는 대장간의 가라앉은 열기 속에서도 서늘하리만큼 침착했다.

“이것들을 전부 가마 안쪽의잿더미 밑에 묻어라. 단 하나의 나사산도 밖으로 드러나서는 안 된다.”

“예? 하지만 영주님, 이것은 방금 완성한…….”

“질문은 사치다. 당장 움직여라.”

칼은 에드리안의 왼쪽 눈에 고인 핏울음과 같은 붉은빛을 보고는 침을 삼키며 입을 다물었다. 장인은 서둘러 가죽 장갑을 끼고 방금 식은 고정밀 볼트와 마그네슘 접종 철판들을 아궁이 깊숙한 곳으로 밀어 넣었다.

그때, 대장간 입구의 두꺼운 오크나무 문이 거칠게 열렸다. 매서운 겨울바람과 함께 들이닥친 것은 영지의 행정을 보좌하는 천재 법학자, 베아트리스 폰 할버슈타트였다. 그녀의 빳빳한 모직 코트 깃에는 이미 하얀 서리가 내려앉아 있었다.

“에드리안 각하,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베아트리스는 숨을 몰아쉬며 에드리안의 행색을 살폈다. 피가 고인 눈과 창백한 안색. 그녀는 눈살을 찌푸렸지만, 이내 냉정을 되찾고 품 안에서 가죽 서류철을 꺼냈다.

“징세관 휴베르트와 발레랑 백작가의 대리인 케셀 남작이 이끄는 기사단이 이미 영지 중앙 광장에 진입했습니다. 표면상의 명목은 ‘체납된 특별 임시 세액의 강제 징수’ 및 ‘불법 마공학 소요 조사’입니다.”

“황실의 명을 참칭한 강탈이군.”

에드리안이 걸음을 옮겼다. 대장간 바깥으로 나서자, 뺨을 때리는 칼바람이 이명을 조금 가라앉히는 듯했다.

“그들이 들고 온 무기는 무엇인가, 베아트리스?”

“황실 재무부의 직인이 찍힌 ‘특별 사법 감사장’입니다. 제국 징세법령 제12조를 근거로, 영지 내의 모든 미등록 생산 시설과 비축 광물을 압수할 권한을 명시하고 있더군요. 발레랑 백작이 뒤에서 손을 쓴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 영지가 고온 가마를 가동해 무언가를 만들기 시작했다는 첩보를 입수한 모양이에요.”

에드리안은 걸어가며 뇌내의 하이페리온 시스템을 가동했다.

징징거리는 이명 너머로, 시야 전면에 푸른빛의 텍스트가 폭포수처럼 흘러내렸다. 제국 건국 이래 축적된 수만 페이지의 법률 데이터베이스. ‘제국 대관세기 전례집’과 ‘종교 양형법’의 텍스트들이 분자 구조식을 분석하듯 정밀하게 정렬되기 시작했다.

[데이터베이스 동기화 완료.] [검색어: 제국 징세법령, 특별 사법 감사, 예외 조항.] [위험도: 상(上) - 불법 마력 방출 감지망 연동 시 즉각적 이단 판정 가능성 존재.]

“그들이 노리는 것은 가마와 마그네슘 광석이다.”

에드리안이 걸음을 멈추고 영주 저택 앞뜰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이미 화려한 제국 황실의 문장이 그려진 대형 마차와, 발레랑 백작가의 상징인 붉은 사자 깃발을 든 무장 기사들이 도열해 있었다. 영지 주민들은 두려움에 질려 주위의 진흙 바닥에 엎드린 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마차에서 내린 사내는 비대하고 기름진 체구의 특별 징세관 휴베르트였다. 그의 옆에는 차가운 철갑옷을 입고 검 자루에 손을 얹은 발레랑 백작의 대리인, 케셀 남작이 서 있었다.

“아이젠베르더의 영주 대리, 에드리안 폰 아이젠베르더!”

휴베르트가 양장 가죽으로 제본된 두꺼운 감사장을 펼치며 찢어지는 듯한 목소리로 외쳤다.

“오랫동안 황실의 부름을 피하며 세금을 체납하더니, 이제는 규격 외의 마공학 가마를 멋대로 축조해 불온한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상소가 접수되었다! 제국 징세법령 제12조에 의거, 이 영지 내의 모든 가마를 파괴하고 비축된 미승인 광물 전량을 압수하겠다!”

케셀 남작이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검을 반쯤 뽑아 들었다.

“순순히 따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에드리안 경. 황실의 명령을 거부하는 것은 곧 반역이며, 이단심문소의 철퇴를 자초하는 길이니까.”

정착민들은 숨을 죽였다. 가마가 파괴되면 이 혹한 속에서 그들이 살아남을 방법은 없었다. 대장간 안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칼의 손이 분노로 부르르 떨렸다.

그러나 에드리안은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을 뿐이었다. 그의 왼쪽 눈에서 흘러내린 굳어버린 피붙이가 그의 창백한 뺨 위에서 기괴한 대조를 이루었다.

“휴베르트 징세관.”

에드리안의 목소리는 기계 장치의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듯 정확하고 감정이 배제되어 있었다.

“당신이 제시한 제국 징세법령 제12조는 ‘상업적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광업 및 제련 시설’에 국한된다. 하지만 우리 영지의 가마는 그 대상이 아니다.”

“무슨 헛소리냐! 저 거대한 진흙 가마와 거기서 뿜어져 나오는 고열을 우리가 모를 줄 알았더냐?”

휴베르트가 뚱뚱한 손가락으로 대장간 뒤편의 고온 가마를 가리켰다.

“저것은 명백한 고온 제련 시설이다! 규격 외의 온도를 내는 가마는 황실 재무부의 허가 없이 축조할 수 없다!”

그 순간, 에드리안의 시야 속에서 하이페리온의 연산이 끝났다. 특정 조항이 붉은색 승인 신호와 함께 떠올랐다.

“‘제국 대관세기 전례집 제47조’를 소환하겠다.”

에드리안의 건조한 선언에 휴베르트와 케셀 남작의 눈썹이 꿈틀했다.

“그게 무슨…….”

“제국 대관세기 전례집 제47조 3항에 명시된 바를 읊어주지.”

에드리안은 외우는 것이 아니라, 뇌내에 떠오른 텍스트를 그대로 출력하듯 낭독했다.

“‘황령의 변방 불모지에서, 영민이 혹한을 피하고 자가 생존을 도모하기 위해 축조한 가내 진흙 화덕 및 그에 수반되는 점토 혼합물은 조세 대상에서 영구히 제외하며, 이를 영주의 사적 상업 자산으로 간주하지 아니한다.’ 이 전례는 천 년 전 3대 황제 프리드리히 시절, 북부 대기근 당시 제정되어 현재까지 단 한 번도 폐지된 적이 없는 황실의 초법적 양해 조항이다.”

휴베르트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진흙 화덕이라니! 저것이 어찌 일개 화덕이란 말이냐!”

“저 가마의 외벽은 무엇으로 만들어졌지?”

에드리안이 고개를 돌려 가마를 가리켰다.

“진흙과 현지에서 채굴한 거친 점토다. 철이나 구리 같은 금속 보강재는 단 일 그람도 들어가지 않았다. 물리적 구성 성분으로 볼 때, 저것은 제47조가 규정한 ‘가내 진흙 화덕’의 범주를 단 0.1%도 벗어나지 않는다. 또한, 그 안에서 구워지는 것은 상업용 철강이 아니라 영민들의 움막을 보수하기 위한 ‘토법 벽돌’이다.”

“궤변이다! 저 벽돌의 경도와 열효율은 일반적인 진흙 벽돌의 수준을 아득히 초과하고 있다!”

케셀 남작이 소리를 질렀다.

이때, 에드리안의 뒤편에 서 있던 베아트리스가 앞으로 나섰다. 그녀는 품에서 가죽 서류철을 열어 황실 법전의 사본들을 매섭게 펼쳐 보였다.

“궤변이 아닙니다, 남작 각하.”

베아트리스의 맑고 날카로운 목소리가 광장에 울려 퍼졌다.

“제국 종교 양형법 제9조를 확인하십시오. ‘이단 혐의가 교단 법정에 의해 공식적으로 확정되기 전까지는, 피의자의 생계 유지용 기초 가설물에 대한 물리적 집행 및 압류는 전면 유예된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특별 징세관 각하, 당신이 들고 있는 특별 사법 감사장은 황실 재무부의 인장은 있으나, 이 지역 관할인 라이하르트 대공의 부서가 누락되어 있습니다.”

휴베르트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그, 그것은…….”

“제국 사법 절차법 제214조에 따르면, 관할 대공의 부서가 없는 외부 감사장은 영지 한계선 내부에서 즉각적인 강제력을 가질 수 없으며, 오직 ‘권고 및 서면 조사’의 효력만을 가집니다.”

베아트리스가 감사장을 든 휴베르트의 손을 똑바로 겨냥했다.

“지금 관할 대공의 서명이 없는 감사장을 무기로 영민들의 생존용 가마를 파괴하려 하시는 겁니까? 이는 명백한 월권이자 직권남용이며, 황실 법정에 소송을 제기하기에 충분한 사유가 됩니다. 소송이 제기되면, 휴베르트 각하, 당신의 가문이 보증한 공탁금 전액이 동결될 것입니다.”

“이, 이…… 건방진 계집이!”

휴베르트가 이마에 땀을 비 오듯 흘리며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그는 일개 변방 영지의 몰락해 가는 영주 후계자와 허울뿐인 법학자가 제국의 사법 체계를 이토록 완벽하게 꿰뚫고 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제국의 법률은 복잡하고 모순되어 보통의 귀족들은 변호사 없이는 한 줄도 읽지 못하는 것이 상식이었다.

하지만 에드리안의 뇌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연산 장치였고, 베아트리스는 그 무기를 가장 치명적인 각도로 휘두를 줄 아는 법학자였다.

“그리고 케셀 남작 경.”

에드리안이 차가운 눈빛으로 남작을 응시했다. 그의 왼쪽 눈에서 붉은 핏방울이 마침내 뺨을 타고 턱 끝으로 뚝 떨어졌다. 그 기괴하고도 압도적인 형상에 남작은 자신도 모르게 검 자루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사법적 권한이 없는 자가 영지 내에서 무력을 행사할 경우, 제국 영지 보전법에 의거하여 ‘사적 침략’으로 규정한다. 내 수비대가 당신들의 목을 베어 영지 경계선에 걸어두어도, 발레랑 백작은 황실 법정에 단 한 줄의 항의서도 제출하지 못할 것이다. 법적으로 당신들은 무단 침입한 도적 떼에 불과하니까.”

정적만이 광장을 지배했다.

황실 기사들은 서로의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검에서 손을 떼었다. 법적인 정당성이 상실된 상태에서의 무력 충돌은 반역죄로 이어질 수 있었다. 제국의 질서는 엄격했고, 그 관료주의의 빈틈을 에드리안은 가장 잔인하게 파고들었다.

휴베르트는 바르르 떨리는 손으로 감사장을 거두어 품에 넣었다.

“……좋다. 이번은 절차상의 이의 제기를 받아들여 한 걸음 물러서지. 하지만 에드리안 경, 이것이 끝이라 생각하지 마라. 황실 재무부에 정식으로 관할 대공의 부서를 요청할 것이다. 그때도 그 알량한 혀를 놀릴 수 있는지 보지.”

“기다리고 있겠소, 징세관.”

에드리안이 건조하게 대꾸했다.

케셀 남작은 분노로 이를 갈며 말머리를 돌렸다. 그는 말에 올라타기 전, 붉은 입술을 뒤틀며 가죽 장갑을 낀 손으로 품 안에서 양필지 한 장을 꺼내 에드리안의 발치에 툭 던졌다.

“법을 아주 잘 아는 영주님이시군. 하지만 에드리안, 아무리 훌륭한 법전이 있어도 물이 없으면 인간은 죽기 마련이지.”

“무슨 뜻이지?”

베아트리스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케셀 남작은 대답 대신 광소하며 말 채찍을 휘둘렀다.

“하하하! 잘 버텨보아라, 아이젠베르더의 쥐새끼들아! 법의 테두리 안에서 굶어 죽고 말라 죽는 기분이 어떤지 조만간 알게 될 테니!”

기사단과 징세관의 마차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영지 바깥으로 빠르게 사라져 갔다.

주민들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칼은 가마 속에서 마그네슘 부품들이 안전한 것을 확인하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칼을 뽑지 않고, 오직 구시대의 율법과 지식만으로 제국의 탐욕스러운 사냥개들을 완벽하게 격퇴한 것이다.

그러나 에드리안의 얼굴에는 승리의 기색이 전혀 없었다.

그는 흙바닥에 떨어진 양필지를 주워 올렸다.

바람에 나부끼는 종이에는 발레랑 백작가의 공식 인장과 함께, 제국 수자원 관리국의 붉은 밀랍 봉인이 찍혀 있었다.

베아트리스가 다가와 종이의 내용을 확인하자마자, 그녀의 안색이 순식간에 종잇장처럼 하얗게 질려버렸다.

“이, 이것은…….”

“‘상류 수계 통제령’.”

에드리안이 나직하게 읽어 내려갔다.

뇌내의 하이페리온 시스템이 종이에 적힌 지리적 좌표와 유량 데이터를 즉각적으로 분석하기 시작했다. 이명이 다시 세차게 울렸고, 시야에는 붉은색 경고등이 깜빡였다.

[경고: 영지 내 주 용수원인 '베저 강' 상류 흐름 차단율 98.4% 예상.] [영지 내 잔여 저수량 기준 생존 가능 기간: 7일.] [스팀 가마 및 일차 동력망 가동 중단 시점: 48시간 이내.]

“발레랑 백작이 점유하고 있는 상류의 아벤베르크 댐…….”

베아트리스가 부르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곳의 수문을 완전히 폐쇄한다는 공식 통보서입니다. 명목상으로는 ‘동절기 상류 수로 유지 보수 및 토사 준설 작업’. 법적으로 하자가 없는 정당한 영지 내 공사 권한 행사입니다.”

그녀의 말대로였다. 발레랑 백작은 법의 빈틈을 노려 역공을 가해온 것이다.

영지 경계선 밖의 사유지에서 벌어지는 수문 폐쇄는 아이젠베르더 영지의 사법 관할권 바깥의 일이었다. 그들이 상류의 문을 잠그면, 이곳 변방의 황량한 영지는 단 일주일 만에 극심한 식수난에 시달리게 되며, 에드리안이 구축하려던 증기 기반의 폐쇄 생태계는 시작하기도 전에 모든 보일러의 용수가 말라붙어 폭발하거나 정지할 수밖에 없었다.

칼이 대장간 문을 열고 나와 마른침을 삼켰다.

“영, 영주님…… 강물이…… 강물이 멈추고 있습니다!”

멀리 영지 외곽을 흐르던 강줄기에서, 얼어붙은 얼음장 밑으로 흐르던 물소리가 거짓말처럼 잦아들고 있었다.

완벽한 통제와 생존을 꿈꾸던 에드리안의 계획 위에, 수자원 금수 조치라는 거대하고 직접적인 사법적 재앙이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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