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쿠구구구……!

가마 밑바닥에서 시작된 진동이 대장간 바닥의 흙먼지를 잘게 흔들었다. 가마의 갈라진 틈새를 메운 급조된 마그네슘 점토 표면으로 기이한 푸른 불꽃이 날름거렸다. 백색 연기는 점차 짙어지며 화덕 내부의 산소를 게걸스럽게 잡아먹고 있었다.

“가장자리로 물러서라!”

에드리안의 외침이 대장간의 고요를 깼다. 그의 왼쪽 눈에서 붉은 핏줄이 터져 나와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귓가에는 고주파의 금속성 이명이 날카롭게 고막을 찔러댔다. 차원 단절된 테라포밍선 ‘하이페리온’의 데이터베이스가 뇌 신경망을 강제로 점유하며 뿜어내는 가혹한 연산의 대가였다.

[경고: 가마 내부 기압 2.4기압 돌파.] [고유황 마그네슘(MgS)과 일산화탄소(CO)의 화학적 연쇄 반응율 87% 도달.] [폭발 한계 도달까지 남은 시간: 42초.]

머릿속 시야에 붉은색으로 명멸하는 홀로그램 경고창이 떠올랐다. 가마 벽면에 바른 남동부 계곡의 고유황 마그네슘 원석 가루가 화덕 내부의 환원 가스와 만나 황화수소와 이산화황 기체를 폭발적으로 뿜어내고 있었다. 이대로 기압이 가마의 구조적 한계를 넘어서는 순간, 진흙과 열풍으로 이루어진 파편이 대장간 안의 모인 이들의 신체를 관통할 터였다.

대장장이 칼은 도끼를 쥔 손을 부르르 떨며 주춤거렸다. “영, 영주님! 이 불꽃은 심상치 않습니다! 악마의 숨결입니다! 가마를 부수고 화덕을 덮어야 합니다!”

“입 닫고 내 지시대로 움직여라!”

에드리안은 흘러내리는 피를 소매로 거칠게 훔쳐냈다. 그의 눈동자는 차갑다 못해 기계적인 무기질의 빛을 띠고 있었다. 미신적인 공포에 질린 인간의 비명은 하이페리온의 연산 장치에 아무런 가치도 없는 잡음에 불과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오직 정밀한 압력 제어와 열역학적 평형뿐이었다.

“송풍구의 가죽 가방을 최대 속도로 압착해라! 공기를 불어넣어 내부 산소 분압을 높인다!”

“미치셨습니까? 불길이 도는데 바람을 더 넣으라니요!”

“환원 분위기를 산화 분위기로 강제 전환하는 것이다! 일산화탄소를 이산화탄소로 산화시켜 탄소 분해 반응을 억제해야 가스가 멈춘다! 당장 움직이지 않으면 네놈의 대장간은 오늘부로 화장터가 될 것이다!”

칼은 에드리안의 안광에 압도되어 자신도 모르게 송풍기 손잡이를 움켜잡았다. 평생을 대장간에서 보낸 거구의 남자가 온 체중바람을 실어 벨로즈(Bellows)를 내리눌렀다.

퍼억-! 퍼억-!

차가운 공기가 급격히 유입되자 가마 내부에서 둔탁한 파열음이 연이어 들렸다. 푸른 불꽃이 순간적으로 거대하게 팽창하며 가마 벽면을 집어삼킬 듯 날뛰었다. 칼의 제자들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엎드렸다.

그러나 에드리안은 뒤러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가마 상부의 배기 댐퍼로 다가가 점토판으로 만들어진 조절판을 맨손으로 붙잡았다. 뜨거운 열기가 가죽 장갑을 뚫고 손바닥을 지졌지만, 그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댐퍼를 15도 각도로 미세하게 열었다.

[계산 완료: 배기구 개방 면적 142㎠. 내부 기압 강하율 초당 0.15기압.] [산소 유입으로 인한 이산화황 연소 가스 배출 시작.]

치이이이이익-!

가마 상부에서 누런 황빛이 도는 가스가 뿜어져 나왔다. 대장간 내부가 매캐한 유황 냄새로 가득 찼지만, 동시에 가마를 터뜨릴 듯 팽창하던 기압의 진동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푸른빛으로 요동치던 불꽃은 급격히 산소를 흡수하며 순수한 백색의 고온 화염으로 정화되었다.

에드리안은 멈추지 않고 칼에게 소리쳤다. “칼! 아까 섞어둔 마그네슘 슬러리 앙금을 가마 외부의 균열 틈새에 한 번 더 도포해라! 지금 온도가 단열 벽돌을 소결하기에 최적의 상태다!”

칼은 멍하니 에드리안의 지시를 따랐다. 회백색의 고유황 마그네슘 점토 반죽이 균열 틈새로 부어졌다. 1,200도가 넘는 화열이 닿자마자, 점토 속의 마그네슘 성분이 급격히 탈수되며 백색의 고밀도 세라믹 층으로 변해갔다.

스스로 굳어지며 틈새를 메우는 자가 치유(Self-healing) 현상이었다. 은하 개척 시대의 테라포밍 기지 건설에 쓰이던 원시적 열역학 차단 기술이, 중세의 거친 대장간 한가운데에서 완벽하게 재현되는 순간이었다.

쿠웅.

가마의 진동이 완전히 멈췄다. 배기구에서는 더 이상 불순한 연기가 아닌, 완전 연소를 뜻하는 투명한 열풍만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가마 내부 온도는 1,350도에서 완벽한 평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제국의 그 어떤 명장도 도달해보지 못한, 오직 신의 영역이라 여겨졌던 고온의 영역이었다.

***

대장간 안에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매캐한 유황 연기가 천장의 그을린 틈새로 빠져나가는 동안, 정착민들과 대장간의 조수들은 숨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그들의 눈에는 방금 벌어진 광경이 단순한 공학이 아니었다. 타오르는 불길을 손짓 하나로 다스리고, 폭발하려는 가마를 호통 한번으로 잠재운 영주의 모습은 두려움을 넘어 경외감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칼은 굳어버린 손으로 송풍기 손잡이를 놓았다. 그의 시선은 가마 벽면에 새로 형성된 백색의 세라믹 층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단단하게 굳은 마그네슘 내화벽돌의 표면을 손가락으로 쓸어내렸다. 차가운 겉면과 달리, 그 내부에는 무시무시한 고열이 갇혀 있었다. 손끝으로 전해지는 열기는 일정했고, 벽돌은 미세한 균열조차 없이 매끄러운 유리질의 광택을 띠고 있었다.

“이게…… 정녕 흙으로 만든 벽돌이란 말인가?”

칼의 목소리가 젖어 있었다. 그가 평생을 바쳐 구워왔던 점토 벽돌들은 1,000도만 넘어가도 녹아내리거나 깨져버리기 일쑤였다. 철을 녹이기 위해 가마를 돌릴 때마다 가마 전체가 무너질까 전전긍긍해야 했던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이 백색의 벽돌은 달랐다. 열기를 가두고 있으면서도 스스로의 형태를 완벽하게 유지하고 있었다. 이것은 단순한 가마가 아니었다. 철을 지배할 수 있는 철옹성이었다.

칼은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의 시선이 에드리안의 발끝에 닿았다. 여전히 왼쪽 눈에서 붉은 피를 흘리며, 가죽 장갑을 낀 손으로 온도를 체크하고 있는 젊은 영주.

철저하게 계산된 논리와 차가운 효율성만을 말하던 이방인.

철컥.

칼이 무거운 무릎을 바닥에 꿇었다. 그의 거친 손이 바닥의 그을린 흙을 짚었다.

“영주님…….”

칼의 고개가 숙여졌다. 그의 넓은 어깨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이 칼, 평생을 쇠와 흙을 만지며 살아왔으나 오늘에야 비로소 참된 장인을 보았습니다. 제 무지와 무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당신이 보여준 것은 미신도, 악마의 장난도 아닙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야금의 도(道)입니다.”

뒤에 서 있던 대장간 조수들과 정착민들도 서로 눈치를 보더니, 이내 하나둘씩 무릎을 꿇기 시작했다. 미신에 휩쓸려 영주를 이단이라 수군대던 폭도들의 기세는 온데간데없었다. 그들의 눈빛에는 이제 절대적인 복종과 맹목적인 신뢰가 깃들어 있었다.

에드리안은 그들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뇌내 연산 장치는 이 상황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정착민들의 반발 확률: 45% -> 0.2%로 급감.] [노동 효율성 향상 기대치: 180%.] [부작용: 대상들의 미신적 숭배 성향 강화. 비합리적 감정 소모 발생 가능성 있음.]

‘인간의 감정이란 참으로 비효율적이군.’

에드리안은 속으로 혀를 찼다. 단지 열역학적 수치를 맞추고 물리 법칙을 증명했을 뿐인데, 이들은 그것을 기적이라 부르며 무릎을 꿇는다. 그러나 이 비합리적인 숭배가 영지 통제력을 확보하는 데 유용하다면 굳이 부정할 필요는 없었다.

“일어서라, 칼.” 에드리안의 목소리는 여전히 건조했다. “감탄할 시간은 없다. 가마의 온도가 최고점에 도달했다. 지금부터 우리가 제작할 주철관의 품질은 이 가마의 온도를 얼마나 유지하느냐에 달려 있다. 당장 도가니를 올려라.”

칼은 급히 몸을 일으켰다. 그의 눈에는 이전에 없던 활기가 생기 가득했다. “예! 영주님! 지시만 내리십시오!”

***

철광석에 석회석을 섞어 도가니에 넣고 가마 깊숙한 곳에 밀어 넣었다.

일반적인 중세의 야금술로는 선철(Pig iron)을 얻는 것이 한계였다. 탄소 함량이 4%를 상회하는 선철은 경도는 높으나 극도로 취약하여, 조금만 충격을 가해도 유리처럼 깨져버렸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제국의 대장장이들은 수없이 매질을 하여 탄소를 빼내는 연철 공정을 거쳤지만, 이는 막대한 시간과 노동력을 소모하는 비효율의 극치였다.

에드리안이 필요한 것은 증기압을 견딜 수 있는 강인하고 질긴 금속, 즉 구상흑연주철(Ductile iron)에 준하는 고강도 주철관이었다.

“칼, 쇳물이 완전히 녹아 흐르는 시점에 내가 지목하는 양의 백색 가루를 투입해야 한다.”

에드리안이 가리킨 것은 마그네슘 광석을 정제하여 얻은 미세한 마그네슘 산화물과 규소 혼합물이었다. 쇳물에 미량의 마그네슘을 첨가하면, 주철 내부의 탄소(흑연)가 뾰족한 침상 구조가 아닌 둥근 구상(Spherical) 구조로 결정화된다. 이는 금속 내부의 응력 집중을 방지하여, 주철임에도 불구하고 강철에 준하는 인성과 인장 강도를 가지게 만드는 핵심 기술이었다.

“지금이다. 투입해라.”

에드리안의 명령과 동시에 칼이 정밀하게 계량된 마그네슘 혼합물을 도가니에 쏟아부었다.

화아아악!

눈을 멀게 할 듯한 백색의 섬광이 도가니 내부에서 터져 나왔다. 쇳물이 요동치며 불꽃을 사방으로 튀겼다. 일반적인 대장장이라면 기겁했을 광경이었지만, 칼은 에드리안의 눈빛을 보며 침착하게 도가니를 집게로 고정했다.

“주조 틀로 이동한다. 한 방울도 흘리지 마라.”

미리 준비된 사형(沙型) 주조 틀은 에드리안이 설계한 정밀한 나선형 홈이 파여 있었다. 폐쇄형 증기압 전달망의 핵심이 될 고압 볼트 세트와 연결 관들이었다.

붉은 쇳물이 모래 틀의 입구를 타고 부드럽게 흘러 들어갔다. 가마의 초고온 덕분에 쇳물의 유동성은 극상에 달해 있었고, 불순물은 표면 위로 가볍게 떠올라 슬래그로 완전히 분리되었다.

치이이익-!

정착민들이 물을 뿌려 틀을 식히자, 매캐한 수증기가 대장간을 가득 메웠다.

완전히 식은 모래 틀을 망치로 깨뜨리자, 그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검붉은 빛을 띠는 매끄러운 금속관들이었다. 표면에는 기포 하나 없었고, 정밀하게 깎여 나간 나사산은 하이페리온의 기하학적 설계 수치와 단 0.05mm의 오차도 없이 일치했다.

칼은 떨리는 손으로 망치를 들어 주철관의 끝부분을 강하게 내리쳤다.

깡-!

맑은 금속성이 대장간에 울려 퍼졌다. 보통의 주철관이었다면 산산조각이 났을 충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관의 표면에는 미세한 흠집조차 나지 않았다. 오히려 망치의 머리가 살짝 찌그러져 있었다.

“이럴 수가…….” 칼이 침을 삼켰다. “이것은 철이 아닙니다. 제국 황실 근위대의 검조차 이보다 질기지는 못할 것입니다. 어떻게 쇳물을 붓기만 했는데 이런 물건이 나온단 말입니까?”

에드리안은 완성된 볼트 하나를 집어 들고 손가락으로 나사산을 훑었다. 기계적 정밀도와 구조적 안정성이 그의 뇌내 연산 장치에 파란색 합격 신호로 기록되었다.

[폐쇄형 증기압 전달망 핵심 부품 제작 완료.] [구조적 강도: 450MPa (목표치 대비 112% 달성).] [영지 내 1차 에너지 순환계 구축 진척도: 14%.]

영지를 완벽히 제어되는 우주선급 폐쇄 생태계로 만들기 위한 첫 번째 주춧돌이 마침내 놓인 것이다. 에드리안의 입꼬리가 아주 미세하게 올라갔다.

“이것이 과학이다, 칼. 자연의 법칙을 이해하고 통제하는 자만이 철의 진정한 주인이 될 수 있지.”

***

그때, 대장간의 열기를 깨뜨리는 급박한 발소리가 밖에서부터 들려왔다.

영지 수비대의 초병이 숨을 헐떡이며 대장간 문을 거칠게 밀치고 들어왔다. 그의 가죽 갑옷은 먼지와 진흙으로 엉망이 되어 있었다.

“영, 영주님! 큰일났습니다!”

에드리안은 차가운 눈빛으로 초병을 바라보았다. 그의 이명은 여전히 완전히 가라앉지 않은 상태였다. “무슨 일이지? 보고는 격식을 갖춰라.”

초병은 침을 꿀꺽 삼키며 에드리안의 기세에 짓눌려 무릎을 꿇었다. “국경 검문소에…… 제국 특별 징세관의 마차가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그 마차 뒤에, 발레랑 백작가의 문장이 새겨진 기사단이 동행하고 있습니다!”

대장간 안의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칼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제국 특별 징세관과 발레랑 백작의 기사단. 그것은 단순한 세금 수급을 위한 방문이 아니었다. 척박한 아이젠베르더 영지를 합법적으로 강탈하고, 영지 내에서 벌어지는 수상한 기술적 움직임을 포착해 이단심문소에 밀고하려는 정적의 노골적인 칼끝이었다.

초병의 보고는 이어졌다. “그들은 지금 영지 경계의 차단막을 무시하고 본관을 향해 진격하고 있습니다. 징세관의 품에는 황제의 붉은 인장이 찍힌 ‘특별 사법 감사장’이 쥐어져 있다고 합니다!”

에드리안의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하이페리온의 데이터 검색창이 그의 시야에 ‘제국 대관세기 전례집’과 ‘종교 양형법’의 수천 가지 조항들을 폭포수처럼 쏟아내기 시작했다.

첫 번째 철깡통을 완성한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거대한 제국의 사법적 올가미가 그의 목을 죄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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