쩍-!
붉게 달아오른 점토 벽면을 찢고 눈이 멀 것 같은 백색의 불꽃이 가늘게 새어 나왔다. 대지가 얼어붙은 영지의 밤공기 속에서, 가마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가마 내부의 급격한 열팽창률 차이를 이기지 못한 조악한 현지 점토가 한계에 다다른 것이었다.
“가, 가마가 터진다! 가마 귀신이 노하셨다!”
대장장이 칼의 제자 녀석이 바닥을 기며 비명을 질렀다. 그 비명은 마당을 가득 메운 정착민들의 가슴속에 잠재되어 있던 무지와 미신을 단숨에 자극했다. 굶주림과 혹한에 찌든 육체는 이성보다 공포를 먼저 받아들이는 법이었다.
“젊은 영주가 악마의 기하학으로 대지에 저주를 내렸다!”
수십 개의 횃불이 어둠을 가르며 대장간 마당으로 밀려들었다. 선두에 선 늙은 주술사가 구부러진 지팡이를 흔들며 광기 어린 목소리로 군중을 선동했다.
“저 기괴한 가마를 부숴라! 저 사악한 불구덩이를 당장 무너뜨리지 않으면, 이번 겨울이 가기 전에 우리 모두 얼어 죽을 것이다!”
낫과 괭이를 치켜든 정착민들의 눈빛에는 이성이 거세되어 있었다. 그들에게는 눈앞의 가마가 내뿜는 강력한 열기조차 따뜻한 구원이 아니라, 가혹한 겨울을 불러온 악마의 징조일 뿐이었다. 성난 파도처럼 밀려오는 군중의 중심에서, 에드리안 폰 아이젠베르더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의 시야 오른쪽 아래에서는 하이페리온의 연산 수치가 여전히 가차 없이 흐르고 있었다.
[경고: 가마 단열재 외벽 균열 폭 4.2mm로 확대. 열손실률 분당 7.5% 상승 중.] [군중의 심박수 및 아드레날린 분비량 측정: 전형적인 폭동 임계점 도달.]
에드리안은 차가운 숨을 내쉬었다. 그의 뇌는 감정적인 두려움을 느끼는 대신, 이 혼란을 가장 빠르게 제압할 수 있는 수치적이고 법적인 공식을 계산해 내고 있었다. 에드리안은 허리춤에서 가죽으로 장정된 두꺼운 책자를 꺼내 들었다. 그것은 영지의 행정 기록이자, 제국 군주가 하사한 영주 사법권의 상징이었다.
“모두 멈춰라.”
목소리는 크지 않았으나, 기묘할 정도로 정교한 음역대로 다듬어져 마당 전체에 고르게 울려 퍼졌다. 군중이 주춤한 사이, 에드리안은 책장을 넘기며 낭독하기 시작했다.
“아이젠베르더 영지 사법조례 제12조, 그리고 제국 대관세기 전례집 부역령 제4장에 의거한다. 영주는 영지 내의 공공 안전과 생존을 위해 모든 정착민에게 무상 노역을 명할 권리를 가진다. 또한, 영주의 직속 자산인 대장간과 가마를 훼손하려 드는 자는 영지 반역죄로 간주하여 그 자리에서 즉결 처형할 수 있다.”
차가운 철퇴 같은 법조문이 낭독되자, 횃불을 들고 날뛰던 정착민들의 기세가 한풀 꺾였다. 그들은 미신을 믿었지만, 오랜 세월 자신들의 목숨줄을 쥐고 흔들었던 영주의 절대적인 사법 권력 앞에서는 본능적인 공포를 느꼈다.
“처형이라니! 영주님이 우리를 다 죽이려 하신다!”
늙은 주술사가 지팡이를 흔들며 다시 소리쳤으나, 에드리안은 그를 완전히 무시한 채 대장간 마당의 중심에 서 있는 가마를 가리켰다.
“너희가 믿는 미신은 통계학적 가치가 없다. 이 가마가 터지는 것은 귀신의 노여움이 아니라, 내부 온도 800도와 외부 온도 영하 15도의 극심한 온도 차이에 따른 열팽창률의 물리적 불일치 때문이다. 칼!”
갑작스러운 부름에, 구석에서 도끼를 쥐고 발을 동동 구르던 대장장이 칼이 흠칫 놀라며 대답했다.
“예, 예! 영주님!”
“가마 하부의 공기 순환구를 봐라. 저 구멍의 지름은 정확히 12인치다. 내부의 열기가 대류 현상을 일으키며 상부로 올라갈 때, 하부의 차가운 공기가 유입되면서 가마 벽면에 일정한 공기막을 형성하도록 설계되었다. 이것이 내가 계산한 고온 단열의 원리다. 지금 균열이 생긴 것은 저 순환구에 조악한 진흙 조각이 끼어 공기의 흐름이 15% 차단되었기 때문이다. 귀신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막힌 구멍과 열역학적 수치 오류만 있을 뿐이다.”
에드리안은 긴 쇠꼬챙이를 집어 들더니, 불꽃이 새어 나오는 가마 하부의 순환구 속으로 거침없이 밀어 넣었다. 뜨거운 열기가 그의 뺨을 스쳤으나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깡! 깡!
쇠꼬챙이가 가마 안쪽의 그을린 점토 덩어리를 쳐서 떨어뜨리는 소리가 맑게 울렸다. 순간, 막혀 있던 공기 구멍이 뚫리며 흡기음이 들려왔다.
슈우우우-!
마치 거대한 짐승이 숨을 들이마시듯, 가마 하부로 차가운 공기가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외벽의 균열 사이로 새어 나오던 백색의 불꽃이 순식간에 안쪽으로 빨려 들어가며 잦아들었다. 달아오르던 외벽의 붉은빛이 안정적인 주황빛으로 내려앉았다.
“이…… 이것이 불이 숨을 쉬는 법이다.”
칼이 넋을 잃고 중얼거렸다. 평생 불을 다뤄온 대장장이조차 한 번도 보지 못한, 기하학과 계산이 만들어낸 완벽한 통제였다. 정착민들은 손에 든 낫과 괭이를 내려놓지도 못한 채, 눈앞에서 일어난 기적 같은 현상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들의 미신적 공포가 기계적인 법칙 앞에 정면으로 박살 나는 순간이었다.
그때, 군중의 뒤편에서 구두굽 소리가 단호하게 울려 퍼졌다. 횃불의 불빛을 받으며 걸어 나온 인물은 베아트리스 폰 할버슈타트였다. 그녀의 손에는 두꺼운 황실 법전이 들려 있었다.
“아직도 자신들의 무지를 증명하려는 자들이 있군요.”
베아트리스는 차가운 은회색 눈동자로 가마 주변의 군중을 훑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제국 법학자 특유의 엄격함과 권위가 서려 있었다.
“제국 형법 제14조 제3항을 읊어 드리지요. sovereign(소버린), 즉 영지 영주의 합법적인 행정 및 기술적 공무집행을 폭력이나 위협으로 방해한 자는 사형에 처한다. 주동자는 사지를 찢어 영지 경계에 매달고, 가담한 자들의 모든 사유재산은 영주 직속 창고로 귀속되며, 그 가속들은 평생 제국의 광산 노예로 매각된다.”
그녀는 법전의 한 페이지를 손가락으로 짚으며 주술사를 정면으로 매섭게 노려보았다.
“당신이 흔들고 있는 그 지팡이는 제국 종교 양형법 제7조에 규정된 ‘미신을 통한 민심 선동죄’에 정확히 부합합니다. 이단심문소에 이 조항으로 고발장이 접수된다면, 당신은 단 일주일도 걸리지 않아 불타는 장작더미 위에서 회개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 당장 무기를 내려놓고 무릎을 꿇지 않는다면, 이곳에 있는 모든 이들의 이름이 제국 사법 재판소의 사형 집행 명부에 기록될 것임을 경고합니다.”
베아트리스의 말은 단순한 위협이 아니었다. 그녀가 읊조린 법조문들은 제국의 숨 막히는 지배 체계를 지탱하는 실제 법률들이었다. 정착민들에게 이단심문소와 광산 노예라는 단어는 가마 귀신보다 훨씬 더 구체적이고 끔찍한 현실이었다.
툭. 툭.
성난 군중 속에서 누군가 낫을 떨어뜨렸다. 그 소리를 시작으로, 마당을 가득 메웠던 횃불들이 하나둘 땅바닥으로 내려앉았다. 주술사는 사시나무 떨듯 떨며 지팡이를 떨어뜨렸고, 정착민들은 차가운 얼음바닥 위로 무릎을 꿇었다.
“영주님…… 살려주십시오…… 배가 고프고 추워서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가마를 부수려던 것이 아닙니다! 제발 자비를…….”
에드리안은 꿇어앉은 군중을 보며 단 한 톨의 감정적 만족감도 느끼지 않았다. 그에게 이 상황은 그저 비합리적인 변수가 제거되고, 영지의 인적 자원이 다시 통제 가능한 영역으로 귀속된 것에 불과했다.
“자비는 내 영역이 아니다.”
에드리안이 차갑게 선언했다.
“하지만 통제된 질서 속에서는 생존이 보장된다. 지금 당장 대장간 뒤편의 연료용 석탄을 가마로 운반해라. 행동으로 너희의 유용성을 증명하는 자에게는 오늘 밤 따뜻한 호밀죽과 가마의 온기를 나누어 줄 것이다. 움직여라.”
그의 기계적인 명령에 정착민들은 군말 없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 폭동을 일으키려던 무리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완벽한 복종이었다. 그들은 영주의 차가운 사법권과, 눈앞에서 증명된 열효율의 법칙 아래 철저히 길들여지고 있었다.
그때, 영지 경비대원 한 명이 어둠 속에서 숨을 헐떡이며 대장간 마당으로 뛰어 들어왔다. 그의 얼굴은 공포로 하얗게 질려 있었다.
“영, 영주님! 큰일났습니다!”
에드리안은 경비대원의 심박수와 호흡 주기를 분석했다. 극도의 공황 상태였다.
“보고해라. 문장 구조를 단순화해서 요점만 말해.”
“이단심문소의 불심검문 마차가 영지 남쪽 진입로를 통과했습니다! 마차에 장착된 마력 감지 성물이 사방으로 빛을 뿜으며 이쪽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마당의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이단심문소. 그 이름만으로도 제국의 모든 귀족이 숨을 죽이는 거대한 카르텔이었다. 그들의 성물 센서는 미세한 마력 파동조차 감지해 내어, 마공학 기술을 독점하려는 교단의 규격에 어긋난 모든 독자적인 동력 장치를 ‘악마의 산물’로 규정해 파괴했다.
에드리안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수축했다. 하이페리온의 연산 장치가 비상 경보를 울렸다.
[위험: 제국 이단심문소의 표준 마력 감지 센서(자외선 및 에테르 파동 검출기) 접근 중.] [현재 가마 내부의 초고온 연소에 따른 열에너지 방출이 마력 파동의 자외선 대역과 교차할 확률: 94.2%.] [즉각적인 차단 조치가 없을 시, 가마를 불법 마공학 보일러로 오인할 가능성 극도로 높음.]
이단심문관 아마데우스의 음험한 얼굴이 에드리안의 기억 속에서 스쳐 지나갔다. 만약 지금 저 가마의 열기를 그대로 노출한다면, 영지를 개조하기도 전에 이단 혐의로 화형대에 서게 될 터였다.
“칼, 가마 상부의 댐퍼를 완전히 닫아라. 연소 가스의 통로를 차단한다.”
에드리안이 신속하게 지시했다.
“하지만 영주님! 댐퍼를 닫으면 내부 압력이 급상승해서 가마가 진짜로 터질 수도 있습니다!”
“지시대로 해라. 압력 제어는 내가 한다.”
에드리안은 뇌 신경망에 직접 명령을 내렸다.
‘하이페리온, 영지망 내 마력 발산 등급을 정밀 억제 모드로 전환. 가마 내부의 열 역학 파동을 적외선 대역 이하로 강제 감쇄시킨다.’
[경고: 고출력 연산에 따른 뇌 신경망 과부하 발생 예상. 각막 혈종 및 이명 발생 가능성 있음.]
“실행해.”
순간, 에드리안의 시야가 붉게 물들었다. 왼쪽 눈에서 뜨거운 피 한 줄기가 뺨을 타고 흘러내렸고, 귀가 먹먹해지는 날카로운 이명이 뇌리를 헤집었다. 하지만 그는 이를 악물고 버텼다.
스으으으-
가마 주변을 감싸고 있던 기묘한 미열과 공기의 일렁임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하이페리온의 억제 필드가 가마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리적 파동을 완벽하게 왜곡하여 흡수해 버린 것이었다.
저 멀리 어둠 속에서 은색 십자가가 정교하게 조각된 검은 마차가 대장간 마당 초입에 멈춰 섰다. 마차 지붕 위에 매달린 푸른색 마석 센서가 사방으로 빛을 뿌리며 회전하고 있었으나, 가마가 서 있는 대장간 방향에 이르러서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은 채 조용히 깜빡일 뿐이었다.
마차의 문이 열리지 않은 채, 잠시 머무르던 마차는 이내 방향을 틀어 저택 본관 쪽으로 서서히 움직였다. 불심검문 마차가 일단 고비를 넘어선 것이었다.
“후우…….”
에드리안은 눈가에 흐르는 피를 걷어내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귀를 찢는 이명 속에서도 가마의 내부 압력 수치는 계속해서 올라가고 있었다. 댐퍼를 닫아 열기를 억제한 대가였다.
[경고: 가마 내부 압력 2.5기압 돌파. 최종 붕괴 임계점까지 45초 남음.]
이제 가마를 정상화해야 했다. 에드리안은 칼에게 다시 소리쳤다.
“댐퍼를 15%만 열어라! 그리고 대장간 구석에 쌓아둔 특수 점토 슬러리를 가져와 균열 부위에 도포해라!”
칼과 제자들이 서둘러 물에 갠 점토를 가마의 쩍 갈라진 틈새에 바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급하게 조달한 일반 점토는 고열을 견디지 못하고 이내 흘러내리거나 타버렸다.
그때, 에드리안의 머릿속에 번뜩이는 데이터가 스쳐 지나갔다.
‘영지 남동부 계곡…….’
그곳은 1일 차에 하이페리온의 지질 분석을 통해 발견했던, 열역학 차단 기능이 극도로 뛰어난 고유황 마그네슘 광상이 묻힌 지역이었다. 그 광물의 화학적 조성이라면 이 정도의 고온과 압력을 견디는 내화벽돌의 완벽한 원료가 될 수 있었다. 지금 당장은 그 광석이 없었지만, 칼이 예전에 그 계곡 인근에서 가져와 방치해 두었던 조악한 조각들이 대장간 한구석에 더미로 쌓여 있었다.
“칼! 저 구석에 있는 회백색 돌가루를 물에 가라앉혀서 윗물을 버리고, 남은 앙금을 지금 바르는 점토에 섞어라! 당장!”
“예? 저 무겁기만 하고 쓸모없는 돌가루를 말입니까?”
“설명할 시간 없다. 30초 내로 실행하지 않으면 가마 전체가 파편으로 변해 이 마당을 쓸어버릴 것이다.”
에드리안의 서슬 퍼런 기세에 칼은 급히 회백색 돌가루를 점토 반죽에 쏟아붓고 마구 섞었다. 고유황 마그네슘 조각이 섞인 급조된 내화 점토가 가마의 균열 부위에 두껍게 덧발라졌다.
치이이익-!
수분이 증발하며 거품이 일었다. 놀랍게도, 마그네슘 성분이 고열에 반응하며 순식간에 단단한 세라믹 층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균열을 타고 새어 나오던 압력과 열기가 마침내 완벽하게 차단되었다. 가마의 내부 온도는 1,000도를 돌파하며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성공인가……?”
칼이 땀을 닦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나 에드리안의 시야에 떠오른 하이페리온의 분석 창은 전혀 다른 경고를 뿜어내고 있었다.
[경고: 고유황 마그네슘 내부의 고유황 불순물이 고온의 일산화탄소와 반응 중.] [화학적 연쇄 반응 시작. 유황 성분의 급격한 기화로 인한 내재 파동 발생.]
가마 내부에서 기이한 백색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 연기는 단순한 수증기가 아니었다. 가마 벽면에 바른 마그네슘 광석의 불순물이 내부의 열역학적 에너지와 결합하여, 통제할 수 없는 연쇄 폭발을 일으키기 직전의 전조 증상이었다.
쿠구구구……!
가마의 바닥에서부터 기분 나쁜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고, 가마 내부의 백색 불꽃이 푸르스름한 빛으로 변해갔다. 에드리안의 눈가가 다시 한번 파르르 떨렸다. 가마를 살리기 위해 덧바른 광물이, 이제는 가마 전체를 날려버릴 시한폭탄으로 변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