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문풍지를 찢고 들어와 뺨을 후려칠 때마다 머릿속에서 이명이 일었다.
고주파의 기계음. 이가 갈리는 금속성 소음이 관자놀이를 찌를 때마다 에드리안 폰 아이젠베르더는 왼쪽 눈을 질끈 감았다. 눈꺼풀을 비집고 흘러나온 짓무른 피가 뺨을 타고 흘러내려 턱끝에서 얼어붙었다.
영하 십오 도.
난방 시설이라곤 진흙으로 대충 이겨 바른 화로 하나가 전부인 영주 저택의 침실은 사실상 시체 안치실과 다름없었다. 입을 열 때마다 허연 김이 폐부 깊은 곳에서부터 뿜어져 나왔다.
‘동사(凍死)까지 남은 시간, 체온 유지 한계선 기준 약 14시간.’
뇌 신경망 깊숙한 곳에서 기계적인 음성이 울렸다. 차원 단절 테라포밍선 ‘하이페리온’의 데이터베이스가 그의 망막 위에 푸르스름한 홀로그램 수치들을 띄우고 있었다.
[경고: 고출력 연산 장기화에 따른 뇌 신경계 과부하 발생. 좌측 안구 각막 하 출혈율 42% 돌파. 즉각적인 연산 중단을 권고합니다.]
“시끄럽군.”
에드리안은 갈라진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얇은 모포 한 장으로는 제국의 최변방, 이 불모의 영지에 휘몰아치는 설한(雪寒)을 버틸 수 없었다. 지금 당장 열역학적 폐쇄 순환계를 구축하지 못한다면, 다음 날 아침 얼어 죽은 영주의 시체가 발견되는 비극이 일어날 터였다.
그는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저택 뒤편의 폐기된 대장간으로 향했다. 발을 디딜 때마다 얼어붙은 진흙 바닥이 유리창 깨지는 소리를 내며 갈라졌다.
대장간 마당에는 무너진 진흙 가마의 잔해가 흉물스럽게 방치되어 있었다. 현지인들이 진흙과 짚을 섞어 대충 쌓아 올린 원시적인 가마였다. 열효율은 고작 8% 미만. 대부분의 화력이 상부 구멍을 통해 대기 중으로 무의미하게 방출되는 구조였다.
에드리안은 주머니에서 마른 나뭇가지를 꺼내 바닥의 눈을 쓸어내고는 그 위에 정교한 기하학적 도형을 그리기 시작했다.
도염식(倒焰式) 가마.
열기가 곧바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내부 벽면을 따라 하부로 우회하게 만드는 열역학적 설계였다. 하이페리온의 연산 장치가 산출한 최적의 궤적에 따라, 뜨거운 연기가 가마 내부를 순환하며 내부 온도를 최소 1,200도 이상으로 유지하도록 강제하는 구조였다.
오차 한계는 단 1밀리미터.
그가 흙바닥에 막대기로 곡선을 그리며 열 이동 경로를 계산하고 있을 때, 거친 발소리와 함께 눅눅한 가죽 냄새가 바람을 타고 풍겨왔다.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도련님?”
대장장이 칼이었다. 덥수룩한 수염에 숯검댕을 묻힌 거구의 사내가 한 손에 녹이 슬어가는 무겁고 둔탁한 쇠망치를 든 채 에드리안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눈빛에는 변방의 무법지대에서 잔뼈가 굵은 장인 특유의 오만함과 미신적인 불신이 가득 차 있었다.
“가마를 다시 짓는다.”
에드리안은 시선을 바닥에 고정한 채 무미건조하게 대답했다.
“다시 지어요? 이 한겨울에요? 미치신 게 분명하군. 이 동네 흙은 겨울이 되면 귀신의 저주를 받아 다 갈라집니다. 게다가 불을 때면 때려 부술수록 가마 귀신이 노해서 가마가 폭발한다고요! 삼십 년 동안 이 짓을 한 내가 압니다. 그런 해괴한 둥근 모양으로는 열흘을 때워도 쇠 하나 못 녹여요!”
칼은 도끼 같은 망치를 바닥에 쾅 내려찍으며 코방귀를 꼈다. 그의 뒤로 서성이던 젊은 도제들과 몇몇 정착민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추위와 기근에 찌든 이들의 얼굴에는 젊은 영주 후계자에 대한 경멸과 불신이 깊게 패어 있었다.
에드리안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칼을 바라보았다. 피가 고여 붉게 충혈된 왼쪽 눈이 기괴한 안광을 뿜어냈다.
“삼십 년이라.”
에드리안의 목소리에는 분노도, 비웃음도 없었다. 오직 차가운 통계와 수치만이 담겨 있었다.
“그 삼십 년 동안 네가 날려 먹은 석탄과 장작의 양은 대략 120톤에 달하겠군. 그리고 그 결과물로 나온 철기들의 탄소 함유량은 매번 1.5%를 초과했겠지.”
“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칼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너는 풀무질을 할 때 바람의 밀도나 대기 중의 습도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오직 불꽃의 색깔이라는 극히 주관적이고 오차가 큰 시각 정보에만 의존하지. 네가 사용하는 풀무의 가죽 패킹은 틈새가 벌어져 공기 누출률이 34%에 달한다. 덕분에 연소실 내부의 산소 공급량이 부족해 불안정 연소가 일어나고, 온도는 900도 이상으로 올라가지 못해.”
에드리안이 한 걸음 다가서자, 거구의 대장장이가 자신도 모르게 쇠망치 자루를 꽉 쥐었다.
“네가 만드는 철기가 잘 부러지는 이유는 철 광석 안의 황과 인을 제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온도가 1,100도에 도달하지 못하면 슬래그가 완전히 분리되지 않으니까. 네 삼십 년의 경험이란 건, 결국 비효율적인 자원 낭비와 우연에 기댄 조잡한 반복 작업의 총합에 불과하다.”
“이, 이 오만한 귀족 놈이……!”
“반박하고 싶다면 수치로 말해라.”
에드리안이 지면에 그린 도염식 가마의 단면도를 가리켰다.
“이 설계는 내부 열 대류를 제어해 연료 소모량을 60% 절감하고, 최고 온도를 1,300도까지 끌어올린다. 네가 평생 구경도 못 했을 순도 높은 선철을 뽑아낼 수 있다는 뜻이다. 내 말이 틀렸다면, 이 가마에서 첫 번째 쇳물이 나올 때 내 목을 쳐도 좋다. 하지만 성공한다면, 너는 앞으로 내가 지시하는 모든 공학적 규격을 단 1밀리미터의 오차도 없이 따라야 할 것이다.”
칼은 입을 벌린 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에드리안이 읊어댄 단어들은 난생처음 듣는 것들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논리적인 압박감은 삼십 년 동안 불을 만져온 장인의 직감을 짓눌렀다. 수치와 통계라는 무형의 칼날이 그의 경험주의적 자부심을 완벽하게 해체해 버린 것이다. 주변의 정착민들 역시 영주의 기세에 눌려 숨을 죽였다.
실력으로 장인을 침묵시킨 에드리안은 지체 없이 행동에 착수했다. 그러나 현실적인 장벽은 곧바로 들이닥쳤다.
현지의 점토는 질이 극히 조악했다. 규산염 성분이 부족하고 잡석과 모래가 지나치게 섞여 있어, 온도가 조금만 올라가도 열팽창을 견디지 못하고 구조 자체가 붕괴할 위험이 컸다.
에드리안은 뇌내의 하이페리온 스펙트럼 분석기를 작동시켰다.
조정된 시야 너머로 지면의 분자 구조가 격자 모양으로 펼쳐졌다. 가마를 지을 점토의 내화도(耐火度)를 높이려면 고순도의 마그네슘이나 알루미나 성분이 필수적이었다. 일반적인 점토로는 900도 이상의 고온을 견디는 내화벽돌을 만들 수 없었다.
‘분석 범위 확장. 반경 3킬로미터 이내의 지질 스캔.’
[경고: 과부하 위험. 이단심문소의 마력 잔류 감지 센서에 포착될 확률 상승.]
뇌를 찌르는 이명에 이가 시렸지만, 에드리안은 연산을 멈추지 않았다. 왼쪽 눈에서 피가 한 방울 더 떨어져 하얀 눈밭을 붉게 적셨다.
그때, 망막의 스펙트럼 디스플레이 남동쪽 구석에 특이한 신호가 포착되었다.
[좌표: 남동부 계곡 하부 균열 지대.] [성분 분석: 산화마그네슘(MgO) 함량 42% 초과. 유황 및 황화합물 반응 다수 감지. 고유황 마그네슘 점토층 존재 확인.]
‘마그네슘 광상 단서 확보.’
에드리안은 그 좌표를 머릿속 데이터베이스에 깊이 각인시켰다. 지금 당장 그곳으로 가기에는 인력과 시간이 부족했다. 우선은 당장 손에 쥔 조악한 진흙을 정제하여 임시 가마를 쌓는 수밖에 없었다.
“흙을 체에 쳐라.”
에드리안이 차가운 목소리로 지시했다.
“굵은 모래와 불순물을 전부 걸러내고, 미세한 입자만 남겨라. 그리고 물을 최소한으로 섞어 아주 뻑뻑하게 반죽해야 한다. 수분 함량이 8%를 넘어가면 가마가 구워지는 과정에서 수증기압 때문에 폭발한다.”
칼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침을 뱉었지만, 에드리안의 기세에 눌려 군말 없이 도제들을 시켜 흙을 거르기 시작했다.
작업은 밤새도록 이어졌다. 에드리안은 쉬지 않고 가마의 곡률을 측정하며 벽돌이 쌓이는 각도를 감시했다. 조금이라도 각도가 어긋나면 가마 천장의 아치가 하중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질 터였다.
새벽녘이 되어서야 마침내 기묘한 형태의 돔형 도염식 가마가 대장간 마당 한가운데에 모습을 드러냈다. 현지인들이 보기에 그것은 가마라기보다는 거대한 무덤이나 기괴한 마수의 알처럼 보였다.
“동사 위기 극복을 위한 1단계 열원 확보 개시.”
에드리안이 가마 하부의 연소실에 마른 장작을 밀어 넣고 불을 붙였다.
처음에는 매캐한 회색 연기가 상부 구멍으로 조금씩 피어오르더니, 이내 에드리안이 설계한 내부 순환 경로를 따라 연기가 가마 안쪽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가마 내부의 압력이 변하며 독특한 바람 소리가 나기 시작한 것이다.
쉬이이익-!
가마 내부의 온도가 급격히 상승했다. 하이페리온의 온도 센서가 실시간으로 수치를 갱신했다.
400도…… 600도…… 800도……!
열기가 대장간 주변의 얼어붙은 공기를 밀어내기 시작하자, 추위에 떨던 정착민들이 하나둘 가마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따뜻했다. 평소 그들이 쓰던 개방형 화로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강력하고 밀도 높은 열기가 가마 벽면을 통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대장장이 칼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장작을 고작 이만큼만 넣었는데도 가마 전체가 붉게 달아오르며 엄청난 열을 품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삼십 년 경험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기적이었다.
그러나 공학에는 타협이 없었다.
[경고: 가마 외벽 외측 열팽창률 1.2% 도달. 내측 열팽창률 3.8% 도달. 내외벽 온도 차이에 의한 구조적 피로도 임계점 접근.]
“윽…….”
에드리안은 뇌를 관통하는 예리한 통증에 머리를 감싸 쥐었다.
가마의 재료가 된 현지 진흙의 한계였다. 내화도가 떨어지는 조악한 점토는 급격한 온도 상승에 따른 열팽창률의 차이를 버텨내지 못하고 있었다.
쩍-!
불길한 파열음이 대장간 마당에 울려 퍼졌다.
적색으로 달아오른 가마 벽면 한가운데에 미세한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틈새로 눈이 멀 것 같은 백색의 불꽃이 가늘게 새어 나왔다.
“가, 가마가 터진다!”
도제 중 한 명이 비명을 지르며 뒤로 자빠졌다.
“가마 귀신이 노하셨다! 귀신의 불이다!”
가마 주변에 모여 있던 정착민들 사이에 순식간에 공포가 전염병처럼 번져나갔다. 무지와 미신에 갇힌 이들에게 가마의 균열과 기괴한 소음은 신의 분노 혹은 악마의 저주로 받아들여졌다.
그때, 저택 정문 방향에서 수십 개의 횃불이 어둠을 가르며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굶주림과 추위에 지쳐 이성을 잃은 영지민들이 손에 괭이와 낫, 그리고 불붙은 횃불을 든 채 떼를 지어 몰려오고 있었다. 그들의 선두에는 마을의 늙은 주술사가 지팡이를 흔들며 광기 어린 목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젊은 영주가 악마의 기하학으로 대지에 저주를 내렸다! 저 기괴한 가마를 부수지 않으면 우리 모두 이번 겨울에 얼어 죽을 것이다!”
횃불의 붉은 빛이 마당을 가득 메우며, 성난 군중의 그림자가 무너져가는 가마 벽면 위로 일렁이기 시작했다. 에드리안의 머릿속에서는 경고음이 멈추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