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바닥이 진동했다. 천장에서 먼지가 쏟아졌다. 기적이 울렸다. 공기를 찢는 고음이었다. 귀가 먹먹했다. 터널 저편이 붉게 물들었다. 붉은 전조등이었다. 괴물이 다가오고 있었다. 거대한 증기기관차였다. 검은 철판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그 표면에 얼굴들이 박혀 있었다. 수많은 인간의 얼굴이었다. 그것들이 동시에 비명을 질렀다. 아린이 귀를 막았다. 그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이게 무슨 소리야?" 그녀가 소리쳤다. 목소리가 굉음에 묻혔다. 태식은 대답하지 않았다. 눈을 가늘게 떴다. 열차의 속도가 너무 빨랐다. 제동 장치가 없는 듯했다. 이대로는 치인다. 흔적도 없이 으스러질 것이다. 피할 곳이 없었다. 선로는 하나뿐이었다. 태식은 주변을 훑었다. 우측 벽면이 보였다. 좁은 틈새가 있었다. 비상 배수구였다. 녹슨 철망이 가로막고 있었다. 태식은 아린을 보았다. 그녀는 얼어붙어 있었다. 다리가 떨리고 있었다.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였다. 태식은 손을 뻗었다. 그녀의 덜미를 잡았다. "읍!" 아린이 신음했다. 태식은 팔에 힘을 주었다. 그녀를 벽으로 던졌다. 몸이 허공을 날았다. 철망에 거칠게 부딪혔다. 콰당. 철망이 찌그러지며 열렸다. 그녀는 안으로 굴러떨어졌다. 태식이 다가갔다. 철망 문을 세차게 밀어 닫았다. 철제 빗장을 질렀다. "야! 강태식!" 아린이 안에서 소리쳤다. 그녀가 철망을 두들겼다. "너 미쳤어? 나와!" 태식은 듣지 않았다. 그는 선로로 돌아섰다. 홀로 궤도에 남았다. 바람이 불어왔다. 뜨겁고 비린 바람이었다. 열차가 코앞까지 들이닥쳤다.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을음이 얼굴에 닿았다. 가슴의 상처가 쑤셨다. 장부가 꿈틀거렸다. 품 안이 뜨거웠다. 태식은 장부를 꺼내지 않았다. 의지만으로 기동했다. '결산을 시작한다.' 뇌리가 번쩍였다. 붉은 글자가 시야를 가렸다. [신체 강화를 요청합니까?] 태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가를 지불하십시오.] [극통과 출혈이 발생합니다.] 태식은 망설이지 않았다. '지불한다.'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다. 붕대 속 실밥이 터졌다. 검붉은 피가 솟구쳤다.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통증이 전신을 난도질했다. 태식은 이를 악물었다. 어금니가 바스러졌다. 비명은 나오지 않았다. 대신 힘이 차올랐다. 근육이 비정상적으로 부풀었다. 혈관이 검게 솟구쳤다. 시야가 온통 붉었다. 시간이 느리게 흐르기 시작했다. 밀려오는 열차가 보였다. 바퀴의 회전이 눈에 들어왔다. 태식은 옆을 보았다. 선로 전환기가 있었다. 수동 레버였다. 두꺼운 사슬이 감겨 있었다. 자물쇠는 완전히 녹슬었다. 열차와의 거리는 삼십 미터. 시간이 없었다. 태식은 레버로 도약했다. 자갈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는 사슬을 움켜쥐었다. 손바닥 가죽이 찢어졌다. 붉은 피가 쇠사슬을 적셨다. 태식은 허리를 굽혔다. 온 힘을 손끝에 모았다. 괴성이 터져 나왔다. "으아아아!" 장부의 힘이 요동쳤다. 파직. 사슬이 견디지 못했다. 쇠고리가 비명 지르며 끊어졌다. 파편이 뺨을 스치고 갔다. 태식은 레버를 잡았다. 그대로 아래로 꺾었다. 쇠와 쇠가 마찰했다. 끼이이익. 소름 끼치는 굉음이 일었다. 레버가 중간에 걸렸다. 녹이 슬어 굳은 탓이었다. 열차는 십 미터 앞이었다. 열기가 살을 태울 듯했다. 태식은 발을 올렸다. 레버를 힘껏 찼다. 체중을 모두 실었다. 쿵. 레버가 끝까지 내려갔다. 선로가 둔탁하게 움직였다. 덜컥. 궤도가 옆으로 어긋났다. 그 순간 열차가 진입했다. 앞바퀴가 선로를 벗어났다. 엄청난 충격음이 터졌다. 콰아아앙! 열차의 앞머리가 솟구쳤다. 괴물이 비명을 질렀다. 쇠가 찢어지는 고음이었다. 열차는 벽을 들이받았다. 콘크리트가 박살이 났다. 돌가루가 폭풍처럼 날렸다. 태식은 몸을 날렸다. 선로 옆 패인 홈으로 숨었다. 거대한 쇳덩이가 스쳐 갔다. 열기가 등을 쓸고 지나갔다. 가죽 코트가 타들어 갔다. 살이 익는 냄새가 진동했다. 태식은 고통을 씹어 삼켰다. 이를 악물고 버텼다. 뒤이어 객차들이 덮쳐왔다. 연쇄적으로 뒤집어졌다. 쿠쿠쿠쿵. 지하 터널이 무너질 듯했다. 사방이 불바다로 변했다. 검은 연기가 시야를 가로막았다. 숨을 쉴 수 없었다. 매캐한 탄내가 목을 찔렀다. 얼마나 지났을까. 굉음이 서서히 잦아들었다. 사방이 다시 고요해졌다. 타오르는 불꽃 소리만 남았다. 태식은 벽에서 기어 나왔다. 몸을 일으켰다. 온몸이 피투성이였다. 가슴의 상처에서 피가 흘렀다. 그는 비틀거리며 걸었다. 구두가 자갈을 밟았다. 바닥에는 검은 기름이 가득했다. 열차의 잔해는 참혹했다. 쇠가 껌처럼 짓겨 있었다. 뼈 조각들이 사방에 널렸다. 이것은 기계가 아니었다. 살아있는 괴물이었다. 태식은 잔해 속을 걸었다. 무언가 이끌림이 있었다. 아귀의 후각이 꿈틀거렸다. 탄내 사이로 다른 냄새가 났다. 매우 익숙한 냄새였다. 태식은 멈춰 섰다. 잿더미 속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허리를 숙였다. 손으로 재를 헤집었다. 손가락 끝이 뜨거웠다. 살이 타들어 가는 통증이 왔다.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더 깊이 파헤쳤다. 뜨거운 철판을 들어 올렸다. 그 밑에 무언가 있었다. 은색 빛이 반짝였다. 태식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는 손가락으로 그것을 집었다. 목걸이였다. 조그만 은제 목걸이였다. 별 모양 펜던트가 달려 있었다. 펜던트는 찌그러져 있었다. 그 뒷면에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강예린.' 그의 딸의 이름이었다. 태식의 심장이 멈추는 듯했다. 차가운 감정이 가슴을 쳤다. 그는 목걸이를 꽉 쥐었다. 날카로운 은모서리가 살을 찔렀다. 피가 새어 나와 은을 적셨다. 그때 품 안의 장부가 빛났다. 붉은 빛이 코트를 뚫고 나왔다. 머릿속이 차갑게 식어갔다. 대가를 치를 시간이었다. 머릿속에서 무언가 떨어져 나갔다. 기억의 파편이었다. 한 장의 사진이 떠올랐다. 딸과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어느 해 여름이었다. 놀이공원 회전목마 앞이었다. 딸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녀의 뺨은 붉었다. 그녀의 손은 따뜻했다. 그 이미지가 흐려지기 시작했다. 마치 불타는 종이처럼. 가장자리부터 검게 변했다. 형체가 뭉개졌다. 이윽고 완전히 사라졌다. 태식은 기억하려 애썼다. 딸의 얼굴을 그리려 했다. 하지만 떠오르지 않았다. 이목구비가 기억나지 않았다.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머릿속에는 하얀 공백만 남았다.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슬픔조차 마모되어 사라졌다. 가슴에는 차가운 얼음만 가득했다. 그는 목걸이를 주머니에 넣었다. 눈빛이 더욱 깊은 심연으로 변했다. 어둠 속에서 다시 소리가 들렸다. 쇠사슬이 끄는 소리였다. 철컥. 철컥.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어둠 속에서 형체가 드러났다. 거대한 덩치였다. 피로 얼룩진 가죽 앞치마를 둘렀다. 오른손에 녹슨 쇠사슬이 감겨 있었다. 사슬 끝에는 날카로운 갈고리가 매달렸다. 지하도맹의 도살자였다. 그의 눈은 흐릿하게 뒤집혀 있었다. "침입자다." 갈라진 쇳소리가 터널을 울렸다. 도살자가 사슬을 크게 휘둘렀다. 휙. 파공음이 공기를 찢었다. 갈고리가 태식의 양어깨를 노렸다. 태식은 옆으로 몸을 던졌다. 콰직. 갈고리가 선로 바닥에 깊게 박혔다. 돌가루가 폭풍처럼 튀었다. 태식은 권총을 들어 올렸다. 남은 탄환은 세 발이었다. 탕. 은도금 탄환이 도살자의 어깨에 박혔다. 치익. 상처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도살자가 고통에 괴성을 질렀다. "크아악!" 그러나 그는 멈추지 않았다. 사슬을 잡아당기며 돌진했다. 태식은 뒤로 비틀거리며 물러섰다. 그의 등 뒤에 깨진 열차 잔해가 있었다. 바닥에는 검은 기름이 흥건했다. 기관차의 연료 탱크가 파손된 탓이다. 불길이 기름을 타고 번지고 있었다. 태식은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냈다. 낡은 지포 라이터였다. 그는 거칠게 휠을 돌렸다. 탁. 작은 불꽃이 피어올랐다. 태식은 기름 더미 속으로 라이터를 던졌다. 화르륵. 화염 장벽이 도살자의 앞을 가로막았다. 도살자의 옷에 순식간에 불이 붙었다. 그가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쳤다. 태식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품에서 장부를 꺼내 들었다. 피 묻은 가죽 표지가 붉게 달아올랐다. 장부가 스스로 펼쳐졌다. 붉은 글자가 시야를 가득 채웠다. [죄악 지분을 확인합니다.] [대상: 지하도맹 도살자.] [살해한 무고한 자: 마흔두 명.] [채무 초과로 인한 파산을 선고합니다.] 태식의 목소리가 터널에 낮게 깔렸다. "압류한다." 기묘한 돌풍이 일었다. 도살자의 몸에서 검은 기운이 솟구쳤다. 그것들이 장부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도살자의 육체가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피부가 뼈에 말라붙었다. 그는 한 줌의 재로 변해 흩어졌다. 그가 쥐고 있던 쇠사슬만 굴러떨어졌다. 사방이 다시 고요해졌다. 태식은 무릎을 꿇었다. 입에서 비린 피가 솟구쳤다. 가슴의 부상이 불로 지지는 듯 아팠다. 통각이 극대화되는 대가였다. 그는 고통을 씹어 삼키며 일어섰다. 철망 너머에서 아린이 소리쳤다. "강태식! 열어줘!" 태식은 비틀거리며 다가갔다. 철망의 빗장을 풀어주었다. 아린이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녀는 태식의 피투성이 몸을 보았다. "너 이 몸으로 정말 괜찮은 거야?" 태식은 그녀의 말을 무시했다. 그는 불타는 열차 잔해로 걸어갔다. 아귀의 후각이 무언가를 가리켰다. 탄내 사이로 익숙한 냄새가 났다. 태식은 잔해 속에 손을 집어넣었다. 뜨거운 열기에 살가죽이 익어갔다.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재를 헤집었다. 손끝에 차가운 금속이 걸렸다. 그는 그것을 꺼내 들었다. 은색으로 빛나는 목걸이였다. 별 모양의 작은 펜던트였다. 펜던트 뒷면에 글자가 보였다. '강예린.' 태식은 딸의 목걸이를 감싸 쥐었다. 그 순간 장부가 요동쳤다. 태식의 머릿속이 뿌옇게 흐려졌다. 딸과 함께 찍은 유년 시절 사진이었다. 그 사진 한 장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가슴이 텅 비었다. 눈물은 흐르지 않았다. 태식은 입가를 닦았다. 검은 피가 묻어났다. 아린이 다가왔다. 그녀의 눈이 흔들렸다. "방금 그건 대체..." 그녀가 말끝을 흐렸다. 태식은 대답하지 않았다. 도살자의 재를 뒤졌다. 그 안에 열쇠가 있었다. 녹슨 검은 열쇠였다. 태식은 그것을 집어 들었다. 장부가 뇌리에서 반응했다. [압류품: 도살자의 열쇠] [용도: 지하 분기점 개방] 태식은 열쇠를 챙겼다. 그때 터널이 흔들렸다. 우르릉. 천장이 빠르게 갈라졌다. 콘크리트가 무너져 내렸다. 통로가 막히고 있었다. "피해야 해요!" 아린이 소리쳤다. 돌아갈 길은 없었다. 태식은 앞을 보았다. 어둠뿐이었다. "뛴다." 태식이 달리기 시작했다. 아린이 그 뒤를 쫓았다. 뒤편에서 굉음이 울렸다. 먼지 폭풍이 몰아쳤다. 전방에 거대한 철문이 나타났다. 굳게 닫혀 있었다. 태식은 열쇠를 꽂았다. 거칠게 힘을 주어 돌렸다. 철컥. 문이 열렸다. 두 사람은 안으로 뛰어들었다. 태식이 문을 닫아걸었다. 쾅. 진동이 잦아들었다. 지독한 습기가 밀려왔다.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태식은 손전등을 켰다. 빛줄기가 어둠을 갈랐다. 넓은 지하 광장이었다. 바닥에 검은 물이 가득했다. 물 표면에 거품이 일었다. "여긴 어디지?" 아린이 침을 삼켰다. 태식은 바닥을 비췄다. 하얀 뼈들이 가라앉아 있었다. 인간의 유골이었다. 태식은 무기를 찾았다. 파이프를 쥐고 뜯어냈다. 콰드득. 날카로운 쇠 파이프였다. 물결이 거세게 일렁였다. 철벅. 철벅. 어둠 속에서 무언가 솟아올랐다. 창백한 가죽을 가진 괴물들이다. 눈이 없는 기형의 괴물이었다. 그들이 이빨을 드러냈다. 수십 마리가 그들을 에워쌌다. 태식은 파이프를 고쳐 잡았다. 권총 탄환은 두 발뿐이었다. 아린이 그의 뒤에 붙었다. 괴물 하나가 도약했다. 태식이 파이프를 휘둘렀다. 퍽. 괴물의 머리가 으스러졌다. 검은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태식은 뒤로 회전했다. 다음 놈의 목을 관통했다. 괴물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바람을 가르는 손톱이 매서웠다. 태식의 몸이 갑자기 굳었다. 장부의 반동이 찾아왔다. 통증이 뇌리를 난도질했다. 시야가 붉게 물들었다. 그 틈에 손톱이 뺨을 그었다. 선혈이 솟구쳤다. 괴물이 목덜미를 물기 위해 돌진했다. 그때 강렬한 불빛이 비췄다. "엎드려!" 익숙한 고함이 울렸다. 박두식의 목소리였다. 태식은 아린을 안고 엎드렸다. 쿠아앙! 거대한 총성이 터졌다. 산탄총 불꽃이 어둠을 밝혔다. 괴물들이 비명을 지르며 찢겨 나갔다. 두식이 탄피를 뱉어냈다. 짤랑. 그가 산탄총을 어깨에 걸쳤다. "아직 안 죽었네 형씨." 두식이 낄낄거리며 다가왔다. "여긴 어떻게 왔지?" 태식이 몸을 일으켰다. "돈이 되는 냄새를 맡았지." 두식이 품에서 종이를 꺼냈다. 찢겨진 매뉴얼이었다. "제9호선 폐기장 정보가 있더군." 그가 종이를 건넸다. 태식이 종이를 받아들었다. 붉은 글씨가 눈에 박혔다. '제물은 도달 후 하루 뒤 해체된다.' '단 영혼을 압류당한 자는 예외다.' 예린이 살아있을 가능성이었다. 시간이 촉박했다. 그때 천장에서 피가 떨어졌다. 툭. 툭. 바닥의 물 위로 붉은 원이 그려졌다. 태식은 고개를 들었다. 거미 같은 괴물이 매달려 있었다. 그것의 얼굴은 인간이었다. 지하도맹의 간부였다. 그가 쥔 무전기에서 소리가 났다. 지직거리는 기계음이었다. "태식아." 마태환의 목소리였다. "네 딸의 심장은 아주 뜨겁더군." 태식의 눈동자가 차갑게 얼어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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