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가죽 옷을 입은 사내들이 왔다. 그들의 손에 총기가 들려 있었다. 총구가 태식을 겨눴다. 불꽃이 터졌다. 태식은 몸을 날렸다. 콘크리트 침목 뒤로 숨었다. 탄환이 침목을 때렸다. 돌가루가 사방으로 튀었다. 뺨이 찢어졌다.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태식은 눈을 깜빡이지 않았다. 통증이 뇌를 찔렀다. 하지만 감각은 차분했다. 아린은 바닥을 기었다. 그녀가 비명을 질렀다. "엎드려!" 태식이 낮게 읊조렸다. 사내들이 다가왔다. 군화 소리가 철길을 울렸다. 모두 다섯 명이었다. 그들은 가죽 옷을 입었다. 옷에서 피비린내가 풍겼다. 장기 밀매꾼들이었다. 그들의 눈빛은 흐리멍덩했다. 약에 취한 상태였다. "쥐새끼가 여기 있었군." 앞장선 사내가 웃었다. 그가 다시 방아쇠를 당겼다. 쾅. 소음 부품이 없는 총성이었다. 터널이 찢어질 듯 울렸다. 태식은 아귀의 후각을 켰다. 공기의 흐름이 보였다. 화약 연기가 선을 그렸다. 탄도가 머릿속에 그려졌다. 태식은 옆으로 굴렀다. 녹슨 철판 뒤로 몸을 숨겼다. 철판에 구멍이 뚫렸다. 태식은 권총을 쥐었다. 품에서 꺼낸 낡은 리볼버였다. 그가 조준했다. 사내의 무릎을 겨눴다. 탕. 사내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그가 무릎을 움켜쥐었다. 뼈가 으스러진 소리가 났다. "이 새끼가!" 다른 사내들이 총을 난사했다. 태식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앞으로 달렸다. 지그재그로 움직였다. 터널 벽면의 홈을 이용했다. 어둠이 그의 아군이었다. 태식은 다시 방아쇠를 당겼다. 탕. 두 번째 사내의 어깨가 뚫렸다. 그가 총을 떨어뜨렸다. 태식은 덮쳐들었다. 사내의 턱을 주먹으로 쳤다. 뼈가 맞춰지는 소리가 났다. 사내가 바닥에 고꾸라졌다. 태식은 그의 총을 빼앗았다. 자동권총이었다. 묵직한 감각이 손에 감겼다. 나머지 세 명이 뒤로 물러섰다. 그들의 얼굴에 독기가 올랐다. 사내 중 하나가 품을 뒤적였다. 그가 푸른 부적을 꺼냈다. 부적에 피를 묻혔다. "유령이 우리를 지킨다!" 그가 광적으로 소리쳤다. 그들의 몸에 푸른 빛이 감돌았다. 기이한 막이 형성되었다. 공기가 일렁였다. 태식이 총을 쏘았다. 탕. 탕. 총알이 막에 부딪혔다. 불꽃만 튀고 튕겨 나갔다. 막은 깨지지 않았다. 사내들이 비열하게 웃었다. "지하의 신이 주신 힘이다!" 그들이 다시 총구를 겨눴다. 태식의 눈이 가라앉았다. 그는 품을 뒤적였다. 가죽 장부를 꺼냈다. 심연의 결산 장부였다. 장부가 붉게 반응했다. 태식의 손가락이 페이지를 넘겼다. 피가 장부에 스며들었다. 동시에 극통이 밀려왔다. 온몸의 뼈가 삐걱거렸다. 눈에서 핏방울이 떨어졌다. 장부를 쓰는 대가였다. 태식은 고통을 삼켰다. 그의 눈에 글자가 보였다. 사내들의 채무 상태였다. 그들의 영혼은 저당 잡혀 있었다. 검은 철마에게 채무가 있었다. 그 대가로 보호막을 얻었다. 보호막의 이름은 유령 방벽. 조건은 하나였다. 선로에서 죽은 자들의 믿음. 그 믿음이 방벽을 유지했다. 태식이 입술을 열었다. "그 믿음은 사기다." 건조한 목소리가 울렸다. 사내들이 멈칫했다. "뭐라고?" "지하의 원혼은 너희를 돕지 않는다." 태식이 장부에 피로 적었다. [채무자들의 신용 자산 부정] [소문의 원천을 왜곡함] 태식이 말을 이어갔다. "너희가 죽인 자들의 원혼이다." "그들이 너희를 지킬 리 없다." "원혼은 방벽이 아니다." "너희의 목을 조르는 밧줄이다." 장부가 붉은 빛을 토했다. 사내들의 몸을 감싼 푸른 막이 흔들렸다. 막의 색이 검게 변했다. 그것은 방패가 아니었다. 검은 손들이었다. 수십 개의 검은 손이 사내들의 목을 감쌌다. "억, 어억!" 사내들이 숨을 들이켰다. 그들의 얼굴이 보라색으로 변했다. 방벽이 그들을 조르고 있었다. 믿음이 파산했다. 소문이 왜곡된 결과였다. 그들이 믿던 힘이 독이 되었다. "살려줘!" 사내가 허공을 허우적거렸다. 태식은 다가갔다. 그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가슴의 통증이 심해졌다. 기억의 일부가 또 사라졌다. 예린의 생일날 먹었던 음식. 그 맛이 기억나지 않았다.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갔다. 태식은 개의치 않았다. 그는 권총을 들어 올렸다. 사내의 이마에 총구를 댔다. "파산이다." 태식이 중얼거렸다. 탕. 사내의 머리가 뒤로 꺾였다. 그가 바닥에 쓰러졌다. 나머지 두 명도 손에 목이 졸려 자멸했다. 그들은 피를 토하며 주저앉았다. 터널에 정적이 찾아왔다. 사내들의 시체만 남았다. 그들의 몸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연기는 장부 속으로 흡수되었다. [죄악 지분 일부 압류] [검은 철마의 영향력 1% 감소] 장부에 글자가 새겨졌다. 태식은 장부를 덮었다. 입에서 검붉은 피가 흘렀다. 그는 피를 닦지 않았다. 아린이 천천히 다가왔다. 녀석의 얼굴은 창백했다. 그녀는 시체들을 내려다보았다. "방금 그건 뭐였어?" "사기극을 끝낸 거다." 태식이 차갑게 말했다. "그들은 가짜 힘을 믿었다." "그걸 무너뜨렸을 뿐이다." 아린이 마른 침을 삼켰다. 그녀의 눈에 두려움이 서렸다. 태식의 냉혹함 때문이었다. 사람이 죽었는데 태식은 덤덤했다. 심지어 자신의 피를 보면서도 무표정했다. "당신 정말 인간 맞아?" 아린이 나지막이 물었다. "모르겠다." 태식이 답했다. 그는 걸음을 옮겼다. 터널 저편으로 향했다. 아린이 그의 뒤를 쫓았다. 그녀가 스패너를 꽉 쥐었다. "아까 들린 목소리." 그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오빠의 목소리도 섞여 있었어." 태식은 멈추지 않고 걸었다. "함정이다." "알아. 하지만 들렸어." 아린의 목소리가 떨렸다. "당신 딸의 이름도 부르지 않았어?" 태식의 발걸음이 미세하게 느려졌다. 예린. 딸의 이름이었다. 하지만 이상했다. 그 이름을 떠올려도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 슬픔도 없었다. 분노도 일지 않았다. 그저 메마른 사막 같았다. 장부가 그의 감정을 갉아먹은 탓이었다. 기억은 있으나 감각이 없었다. 껍데기만 남은 아비였다. "기억나지 않는다." 태식이 말했다. "거짓말." 아린이 쏘아붙였다. "그렇게 차가운 척하지 마." "사실이다." 태식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감정이 가라앉았다." "그게 무슨 소리야?" "지옥을 걷는 비용이다." 태식의 말은 건조했다. 아린은 더 묻지 못했다. 그녀는 태식의 등 뒤에서 기이한 슬픔을 보았다.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슬픔. 그것이 더 끔찍했다. 바닥의 선로가 다시 이어졌다. 주변의 서리가 더 두꺼워졌다. 공기가 얼어붙을 듯 차가웠다. 태식은 아귀의 후각을 유지했다. 새로운 냄새가 섞여 들었다. 비린내와 화약 냄새 외의 것. 돈 냄새였다. 지저분한 지상의 냄새였다. 태식은 걸음을 멈췄다. 손등의 흉터가 욱신거렸다. 선로 저편에서 불빛이 비쳤다. 강한 서치라이트였다. 눈이 부셨다. 아린이 손으로 눈을 가렸다. 그림자들이 나타났다. 방한복을 입은 사내들이었다. 그들의 손에는 엽총과 쇠파이프가 들려 있었다. 조직적인 움직임이었다. 지하도맹의 정예들이었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 한 사내가 걸어 나왔다. 뚱뚱한 체구였다. 가죽 코트를 입고 있었다. 입에는 두꺼운 시가를 물고 있었다. 그가 시가 연기를 내뿜었다. 연기가 서치라이트 불빛에 흔들렸다. 그의 얼굴이 드러났다. 박두식이었다. 지하 암시장의 거물. 그가 비열한 미소를 지었다. "여어, 형사 양반." 박두식이 손을 흔들었다. "여기까지 올 줄은 몰랐는데." 그의 뒤로 부하들이 총구를 겨눴다. 십여 자루의 총구가 태식을 향했다. 탈출구는 없었다. 뒤는 절벽이었고 앞은 적이었다. 태식은 권총을 꽉 쥐었다. 장부가 품 안에서 차갑게 식어갔다.

두식이 시가를 내뿜었다. "포기해라 형사 양반." 그가 비열하게 웃었다. "여긴 내 구역이다." 그의 부하들이 총구를 좁혔다. 태식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시선이 천장을 향했다. 터널 천장에 고압 전선이 있었다. 노후화된 전선이었다. 그 위로 고드름이 맺혀 있었다. 바닥은 얼어붙어 미끄러웠다. 태식은 지형을 읽었다. "거래를 하지." 태식이 낮게 말했다. 두식이 흥미롭다는 듯 보았다. "무슨 거래?" 태식은 주머니를 만졌다. 푸른 약물이 만져졌다. 아귀의 정수였다. 그것을 꺼내 보였다. 두식의 눈이 탐욕으로 젖었다. "그걸 넘겨라." "조용히 넘기면 살려주지." 두식이 침을 삼켰다. 태식은 약물을 허공으로 던졌다. 두식의 시선이 약물을 쫓았다. 부하들의 눈동자도 움직였다. 찰나의 빈틈이었다. 태식은 권총을 들어 올렸다. 그가 조준한 곳은 두식이 아니었다. 천장의 고압 전선이었다. 탕. 총탄이 철골을 때렸다. 스파크가 폭발했다. 열기에 고드름이 녹아내렸다. 거대한 얼음 덩어리가 떨어졌다. 그것이 서치라이트를 덮쳤다. 콰직. 불빛이 단숨에 꺼졌다. 터널이 암흑에 잠겼다. "어두워!" "총을 쏴라!" 사내들이 비명을 질렀다. 그들은 장님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태식은 달랐다. 아귀의 후각이 길을 밝혔다. 피비린내가 좌표였다. 태식은 어둠 속을 달렸다. 얼어붙은 선로를 미끄러지듯 밟았다. 그는 첫 번째 사내에게 육박했다. 턱을 주먹으로 가격했다. 뼈가 으스러졌다. 사내가 비명도 없이 쓰러졌다. 태식은 그의 소총을 빼앗았다. 그대로 개머리판을 휘둘렀다. 두 번째 사내의 관자놀이를 쳤다. 둔탁한 소리가 어둠을 찢었다. "어디 있어!" 두식이 허공에 대고 소리쳤다.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태식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두식의 등 뒤로 다가갔다. 차가운 총구를 목덜미에 밀어 넣었다. "대원들을 물리쳐라." 태식의 목소리는 얼음 같았다. 두식의 온몸이 굳었다. 그가 천천히 손을 올렸다. "형사 양반 진정해." "대화로 풀자고." "내 딸은 어디 있나." 태식이 물었다. "나도 모른다." "거짓말이군." 태식은 방아쇠에 힘을 주었다. 그 순간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 장부가 멋대로 반응했다. 그의 머릿속이 다시 비워졌다. 딸의 목소리가 흐려졌다. 기억의 조각이 부서졌다. 태식은 신음조차 흘리지 않았다. 그는 고통을 씹어 삼켰다. 그때 선로가 진동했다. 쿠구구구. 바닥의 먼지가 솟구쳤다. 터널 깊은 곳에서 바람이 불었다. 피와 녹슨 쇠 냄새가 섞인 바람. 그것이 다가오고 있었다. 두식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놈이다." 두식이 이를 떨었다. "검은 철마가 오고 있어." 저 멀리 어둠 속이었다. 붉은 눈 두 개가 번뜩였다. 거대한 증기기관차의 형상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쇠가 아니었다. 인간의 살점과 유골로 덮인 괴물. 비명 지르는 철마가 돌진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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