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문이 찢어졌다. 검은 연기가 뿜어 나왔다. 폐기장 바닥이 갈라졌다. 지옥의 심연이 열렸다. 공간이 붉게 물들었다. 검은 철마가 흙먼지를 뚫었다. 거대한 쇠바퀴가 굴렀다. 나락의 문이 완전히 열렸다. 평행 차원의 경계가 무너졌다. 지옥의 냉기가 방을 채웠다. 태식은 숨을 몰아쉬었다. 가슴의 통증이 찌르르 퍼졌다. 딸의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다. 머릿속은 빙판처럼 차가웠다. 아린이 태식의 옷자락을 잡았다. 그녀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아저씨, 저거 봐요." 아린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철마의 본체가 솟구쳤다. 강철 동체에 얼굴들이 박혀 있었다. 도맹에 희생된 자들의 얼굴이었다. 그들이 일제히 비명을 질렀다. 귀가 먹먹해지는 소음이었다. 철마의 헤드라이트가 켜졌다. 붉은 빛이 태식을 비췄다. 진동이 온몸을 흔들었다. 바닥의 콘크리트가 깨졌다. 철마가 서서히 전진했다. 쇳소리가 사방에서 울렸다. "승객은 하차할 수 없다." 철마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쇠사슬이 쓸리는 소리였다. "종착지는 지옥이다." 그것은 강제적인 법칙이었다. 폐기장 전체에 규칙이 깔렸다. 태식의 다리가 무거워졌다. 중력이 몇 배로 늘어난 느낌이었다. 바닥으로 몸이 꺾였다. 아린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그녀의 무릎이 바닥에 찧었다. "움직일 수 없어요." 아린이 신음했다. 태식은 억지로 고개를 들었다. 사지가 납으로 채워진 듯했다. 철마는 규칙의 주인이었다. 영토에 들어온 자를 구속했다. 폭주하는 열차가 다가왔다. 벽을 부수며 전진했다. 남은 거리는 십 미터였다. 이대로 있으면 짓겨 죽는다. 철마의 바퀴가 불꽃을 뿜었다. 태식의 가죽 재킷이 젖어 들었다. 가슴의 상처에서 피가 샜다. 장부의 경고등이 켜진 셈이다. 태식은 이빨을 악물었다. 입안에서 비린 맛이 났다. 그는 자포자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눈빛이 맑아졌다. 감정이 마모된 덕분이었다. 공포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품속을 더듬었다. 손끝에 거친 종이가 걸렸다. 지하철 심야 노선 매뉴얼이었다. 4화에서 확보한 비장의 무기였다. 거기엔 규칙의 허점이 있었다. 태식은 매뉴얼을 꺼냈다. 책장을 빠르게 넘겼다. 피 묻은 손가락바닥이 닿았다. 매뉴얼이 붉게 젖었다. 태식의 눈이 한 구절에 멈췄다. 그가 입술을 열었다. "제9호선 비상 조항." 목소리는 건조하고 낮았다. 철마의 울림을 뚫고 나갔다. "모든 열차는 종착역에 멈춘다." 그것은 철도의 절대 법칙이었다. 괴물도 열차의 형상이었다. 시스템의 규격을 벗어날 수 없다. "종착역 통과 시 자동 제동." 태식이 조항을 소리 내어 읽었다. 그의 손가락이 장부를 눌렀다. 가슴속 상처가 요동쳤다. 심장이 찢어지는 고통이었다. 머릿속의 기억이 또 떨어져 나갔다. 딸이 주었던 머리끈의 색깔. 그 고운 분홍색이 지워졌다. 태식은 개의치 않았다. 고통을 권능의 연료로 삼았다. "결산을 요청한다." 태식이 차갑게 선언했다. 장부가 붉은 빛을 뿜었다. 그 빛이 매뉴얼로 스며들었다. 매뉴얼의 조항이 실체화되었다. 붉은 사슬이 공중에서 나타났다. 사슬이 철마의 바퀴를 감았다. 쿠구구궁! 철마의 동체가 들썩였다. 엄청난 마찰음이 발생했다. "크아아악!" 철마의 내부에서 비명이 터졌다. 마태환의 목소리도 섞여 있었다. "이게 무슨 짓이냐!" 마태환이 울부짖었다. 철마의 속도가 급격히 줄었다. 바퀴가 선로를 긁었다. 불꽃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규칙의 저주가 역으로 걸렸다. 종착역의 제동 법칙이었다. 철마는 멈춰야만 했다. 강제적인 힘이 동력을 꺾었다. 바퀴가 기어 가듯 돌았다. 쇠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났다. 태식은 몸을 일으켰다. 중력의 구속이 풀렸다. 그는 산탄총을 고쳐 쥐었다. 개머리판을 어깨에 밀착했다. 그의 눈이 바퀴를 향했다. 철마의 가속용 바퀴였다. 그곳이 동력의 핵심이었다. 바퀴는 억지로 돌려 하고 있었다. 제동 장치와 마찰하며 붉었다. 금방이라도 터질 듯했다. 태식은 방아쇠를 당겼다. 탕! 은도금 탄환이 바퀴에 박혔다. 은빛 불꽃이 튀었다. 바퀴의 균열이 깊어졌다. "더 쏴라!" 아린이 소리쳤다. 그녀도 권총을 겨눴다. 탕! 탕! 두 사람의 총격이 집중되었다. 태식은 멈추지 않고 전진했다. 한 걸음 뗄 때마다 피가 흘렀다. 그는 한 발을 더 쐈다. 탕! 가속용 바퀴가 결국 쪼개졌다. 파편이 사방으로 날아갔다. 철마의 좌측이 주저앉았다. 굉음과 함께 동체가 기울었다. "말도 안 된다! 내 철마가!" 마태환의 비명이 고조되었다. 철마의 머리 부분이 터졌다. 검은 피가 사방으로 분출했다. 압류된 생명력이 소실되었다. 철마의 눈빛이 흐려졌다. 태식은 총구를 아래로 내렸다. 뜨거운 김이 총구에서 피어났다. 사이다 같은 쾌감이 일지 않았다.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다. 그의 감정은 이미 죽어 있었다. 철마의 조종부가 크게 부풀었다. 쿠와앙! 마지막 폭발이 터졌다. 강철 파편이 비처럼 쏟아졌다. 태식은 아린을 감싸 안았다. 등 뒤로 파편이 스쳤다. 가죽 재킷이 찢어졌다. 연기가 서서히 걷혔다. 철마의 잔해가 널려 있었다. 그 중심에 마태환이 있었다. 그는 기어 나오고 있었다. 그의 가슴은 뻥 뚫려 있었다. 심장이 있어야 할 곳이 비었다. 채무 거울로 버티던 육체였다. 그의 얼굴은 늙어 있었다. 머리카락은 하얗게 샜다. 피부 조각이 뚝뚝 떨어졌다. "강태식..." 마태환이 이빨을 드러냈다. 그의 눈에 광기가 가득했다. 그는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둥근 유리 용기였다. 그 안에서 푸른 빛이 돌았다. 미세한 박동이 느껴졌다. 태식의 심장이 크게 뛰었다. 기억은 없어도 본능이 반응했다. 그것은 딸의 생명 코어였다. 예린의 마지막 남은 온기였다. "이걸 부수면 끝이다." 마태환이 쉰 목소리로 웃었다. 그의 손가락이 용기를 조였다. 유리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오지 마라." 마태환이 뒤로 물러섰다. 그의 등 뒤에 어두운 통로가 있었다. 폐선로의 깊은 어둠이었다. 태식은 총을 겨누지 못했다. 코어가 깨지면 딸은 죽는다. 마태환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가 코어를 쥔 채 달리기 시작했다. 어둠 속으로 빠르게 사라졌다. "아저씨!" 아린이 태식을 불렀다. 태식은 다리를 움직이려 했다. 하지만 무릎이 꺾였다. 장부의 대가가 전신을 덮쳤다. 피가 바닥을 적셨다. 머릿속이 암전되려 했다. 마태환의 웃음소리가 멀어졌다. 어둠 속에서 빛이 사라져 갔다. 태식은 이를 갈며 기어갔다. 손톱이 선로에 긁혀 깨졌다. 놓칠 수 없었다. 이름도 모르는 그 아이를 구해야 했다. 그것만이 그의 유일한 이정표였다.
바닥에 고인 피가 차가웠다. 태식은 이빨을 깨물었다. 턱뼈가 뻐근하게 아팠다. 그는 아린의 어깨를 짚었다. "아저씨 무리하지 마세요." 아린이 그를 부축했다. 그녀의 손끝이 떨렸다. 태식은 고개를 저었다. "시간이 없다." 목소리에서 쇳소리가 났다. 그는 주머니를 뒤졌다. 은도금 탄환은 두 발 남았다. 탄창에 탄환을 밀어 넣었다. 철컥하는 소리가 고요했다. 그는 어둠 속을 노려봤다. 유황 냄새가 진하게 풍겼다. 아귀의 후각이 작동했다. 마태환의 피비린내가 섞였다. 그것은 썩은 고기 냄새였다. "따라와라." 태식이 발을 내디뎠다. 무릎이 꺾이려 했다. 그는 벽을 짚고 버텼다. 어두운 선로가 이어졌다. 바닥에는 녹슨 철골이 가득했다. 천장에서 물방울이 떨어졌다. 그 소리가 심장박동 같았다. 저 멀리서 빛이 흔들렸다. 마태환의 푸른 코어 빛이었다. 그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늙어버린 육체가 비틀거렸다. "거기 서라." 태식이 나직하게 말했다. 목소리가 어둠을 갈랐다. 마태환이 멈춰 섰다. 그가 천천히 돌아섰다. 그의 얼굴은 짓무르고 있었다. 가슴의 구멍에서 검은 김이 났다. 그가 코어를 높이 들었다. "가까이 오면 깨뜨린다." 그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힘을 주었다. 유리 용기가 삐걱거렸다. 태식은 발을 멈췄다. 가슴속 장부가 거칠게 뛰었다. 새로운 대가를 요구하고 있었다. 머릿속의 안개가 더 짙어졌다. 태식은 자신의 팔을 보았다. 살갗이 조금씩 투명해졌다. 인간의 존재감이 사라지고 있었다. 그는 개의치 않았다. "그것을 넘겨라." 태식의 눈빛은 무감각했다. 마태환이 쇳소리로 웃었다. "이 아이가 누구인지 아느냐?" 그가 비열하게 물었다. 태식은 대답하지 않았다. 정말 기억나지 않았다. 하지만 가슴이 저려왔다. 그것은 영혼에 새겨진 각인이었다. "네 마지막 기억의 조각이지." 마태환이 속삭였다. "이걸 얻으면 너는 백치가 된다." 그것이 장부의 최종 결제였다. 딸을 구하는 대가는 자신이었다. 완전한 자아의 소멸이었다. 아린이 태식의 옆으로 나섰다. 그녀의 손에 마그네틱 카드가 있었다. "아저씨 저 자 뒤를 봐요." 아린이 나직하게 경고했다. 마태환의 뒤는 막다른 벽이었다. 하지만 벽에 거대한 문이 있었다. 제9호선의 제어실 문이었다. 그 문 너머에 고압 전류가 흘렀다. "저 문을 열면 끝장이에요." 아린의 목소리가 떨렸다. 마태환이 문손잡이를 잡았다. 그의 손끝에서 검은 피가 묻었다. "같이 죽는 거다." 마태환이 광기 서린 눈으로 웃었다. 그가 문을 거세게 밀쳤다. 쿠구구궁! 문이 열리며 불꽃이 튀었다. 엄청난 전압의 소음이 울렸다. 빛이 사방으로 번쩍였다. 마태환의 몸이 전류에 휩싸였다. 그의 살점이 타들어 갔다. 하지만 그는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의 손이 코어를 쥐고 있었다. 코어가 전류의 중심으로 끌려갔다. 태식은 몸을 던졌다. 가슴의 상처가 완전히 터졌다. 붉은 피가 분수처럼 뿜었다. 그는 고통을 느끼지 못했다. 그의 시선은 코어에 고정되었다. 그는 품에서 채무 거울을 꺼냈다. 마지막 힘을 쥐어짜 냈다. "채무를 회수한다." 그가 거울을 마태환에게 던졌다. 거울이 허공에서 붉게 빛났다. 마태환의 남은 생명력이 빨려 들었다. "아아악! 내 영혼이!" 마태환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그의 손에서 코어가 미끄러졌다. 코어가 낙하했다. 그 아래는 고압 전류판이었다. 닿으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태식은 왼손을 뻗었다. 그의 몸이 허공을 날았다. 손가락 끝에 유리 감촉이 닿았다. 그는 코어를 품에 안았다. 그대로 바닥을 굴렀다. 지직! 전류가 그의 등을 스쳤다. 가죽 재킷이 타들어 갔다. 살 타는 냄새가 진동했다. 태식은 신음조차 내지 않았다. 그는 코어를 단단히 움켜쥐었다. 푸른 빛이 그의 품에서 반짝였다. 그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비었다.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흐려졌다. 기억의 종착지에 다다랐다. 마태환의 육체가 재가 되어 흩어졌다. 그의 소멸과 동시에 진동이 울렸다. 제9호선 전체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천장에서 거대한 콘크리트가 떨어졌다. "아저씨! 피해요!" 아린이 소리치며 달려왔다. 하지만 바닥이 두 갈래로 갈라졌다. 두 사람 사이에 깊은 심연이 생겼다. 태식은 갈라진 틈 너머를 보았다. 아린의 얼굴이 멀어지고 있었다. 태식은 품 안의 코어를 보았다. 그는 코어를 아린에게 던졌다. "받아라." 코어가 허공을 가르며 날아갔다. 아린이 간신히 그것을 받아냈다. 그녀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아저씨! 같이 가야죠!" 태식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발밑이 무너져 내렸다. 그는 어둠 속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지옥의 심연이 그를 삼켰다. 그것은 끝이자 새로운 시작이었다. 태식은 눈을 감았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직 차가운 바람만이 불었다. 그때 어둠 속에서 소리가 들렸다. 쿠구구구궁. 또 다른 열차가 다가오는 소리였다. 그 소리는 9호선이 아니었다. 서울 지하 깊은 곳의 진짜 주인이었다. 태식은 어둠 속에서 눈을 떴다. 그의 눈동자가 붉게 빛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