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마태환이 피를 토했다. 그는 뒤로 물러섰다. 거대한 검은 철마가 비명을 질렀다. 철마가 마태환의 몸을 집어삼켰다. 살과 쇠가 엉겨 붙었다. 기괴한 융합이 시작되었다. 쇳가루가 사방으로 흩날렸다.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태식은 거울을 꽉 쥐었다. 가슴의 상처가 요동쳤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머릿속이 다시 흐려졌다. 딸의 마지막 웃음이 지워졌다. 이제 이목구비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남은 것은 오직 목적뿐이었다. 딸을 구해야 한다. 심연을 부숴야 한다. 그것만이 태식을 움직였다. 철마의 외벽이 부풀어 올랐다. 녹슨 철판들이 꿈틀거렸다. 마태환의 얼굴이 철판 위에 돋아났다. 그가 찢어지는 목소리로 웃었다. "너를 제물로 바치겠다!" 철마가 증기를 토해냈다. 초고온의 열기였다. 쉬이익! 공기가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태식은 옆으로 몸을 던졌다. 바닥을 구르며 철로 뒤로 숨었다. 열기가 등을 쓸고 지나갔다. 가죽 재킷이 타들어 갔다. 살갗이 데어 쓰라렸다. 태식은 신음조차 흘리지 않았다. 그는 감각을 차단했다. 오직 생존의 기동만 남겨두었다. 철마가 궤도를 따라 전진했다. 바닥의 침목이 으스러졌다. 쿠르릉! 진동이 발끝을 타고 올라왔다. 태식은 품에서 산탄총을 꺼냈다. 박두식이 건넸던 개조품이었다. 묵직한 쇠의 감각이 손에 감겼다. 그 장비는 신뢰할 만했다. 태식은 탄창을 확인했다. 특수 제작된 불발 연막탄이었다. 철마가 다시 증기를 뿜었다. 이번에는 사방을 뒤덮을 기세였다. 열풍이 얼굴을 때렸다. 눈앞이 하얗게 가려졌다. 숨을 쉴 때마다 폐가 타는 것 같았다. 태식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열풍 속으로 뛰어들었다. 지형을 머릿속에 그렸다. 왼쪽에 배수관이 있었다. 오른쪽에는 무너진 콘크리트 벽이 있었다. 태식은 벽의 잔해 뒤로 미끄러졌다. 철마의 전조등이 붉게 빛났다. 그 빛이 태식을 찾아 헤맸다. "어디 있느냐 회계사!" 마태환의 목소리가 울렸다. 철마의 동체에서 쇠사슬이 뿜어졌다. 그것은 뱀처럼 허공을 갈랐다. 벽의 잔해가 박살 났다. 돌가루가 뺨을 스쳤다. 태식은 몸을 낮췄다. 산탄총의 노리쇠를 당겼다. 철컥. 차가운 금속음이 울렸다. 태식은 총구를 허공으로 향했다. 붉은 전조등의 중심을 겨눴다. 탕! 굉음과 함께 연막탄이 발사되었다. 탄환은 철마의 정면에서 터졌다. 자욱한 회색 연기가 피어올랐다. 동시에 기괴한 환영들이 솟구쳤다. 지하철 승객들의 유령이었다. 그들은 고통스럽게 울부짖었다. 공포의 에너지였다. 철마는 그 공포를 먹고 자랐다. 하지만 연막탄의 성분은 달랐다. 그것은 공포의 파형을 왜곡했다. 유령들이 서로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환영들이 뒤엉키며 폭발했다. 철마의 시야가 완벽히 가려졌다. "크아악! 눈이! 눈이 안 보인다!" 마태환이 비명을 질렀다. 철마가 갈팡질팡하며 선로를 들이받았다. 쾅! 철제 구조물이 무너져 내렸다. 스파크가 사방으로 튀었다. 태식은 연기 속을 달렸다. 그의 시선은 철창으로 향했다. 서아린이 갇힌 철창이었다. 철창은 천장에 매달려 흔들렸다. 그 밑은 검은 수로였다. 떨어지면 시체도 찾지 못한다. 아린이 철창살을 붙잡고 소리쳤다. "아저씨! 저기 기계실이 보여요!" 그녀의 손가락이 벽면을 가리켰다. 녹슨 철문이 하나 있었다. 기동 통제 밸브룸이었다. 저곳의 밸브를 잠가야 했다. 그래야 철마의 동력을 차단한다. 하지만 철창과 문 사이는 멀었다. 게다가 철마의 촉수가 길을 막았다. 그것은 타오르는 검은 고압 호스였다. 호스 끝에서 증기가 흘러나왔다. 닿는 순간 뼈까지 녹을 것이다. 태식은 주저하지 않았다. "뛰어라." 그가 짧게 외쳤다. "네? 하지만 너무 멀어요!" 아린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내가 막는다. 뛰어." 태식의 목소리는 건조했다. 그는 산탄총을 등에 멨다. 양손으로 쇠파이프를 고쳐 쥐었다. 그리고 철마를 향해 돌진했다. 자살 행위에 가까웠다. 하지만 태식의 눈에는 공포가 없었다. 오직 철저한 계산만 있었다. 철마가 태식의 접근을 알아챘다. "죽어라!" 검은 촉수들이 일제히 뻗어 나왔다. 공기를 찢는 파음이 들렸다. 태식은 첫 번째 촉수를 피했다. 몸을 비틀어 궤도를 바꿨다. 두 번째 촉수가 옆구리를 스쳤다. 옷이 찢어지고 피가 솟구쳤다. 뜨거운 고통이 전신을 지배했다. 태식은 이빨을 악물었다. 그는 전진을 멈추지 않았다. 세 번째 촉수가 정면으로 날아왔다. 태식은 쇠파이프를 내밀었다. 촉수와 쇠파이프가 충돌했다. 깡! 금속음이 고막을 때렸다. 손목의 뼈가 어긋나는 느낌이 들었다. 태식은 버텼다. 그는 몸을 던져 촉수를 휘감았다. 자신의 육체를 방패로 삼았다. 호스에서 뿜어지는 열기가 몸을 구웠다. 치이익! 살이 타는 냄새가 진동했다. 태식은 비명 대신 신음을 삼켰다. 그의 눈이 아린을 향했다. "지금이다." 아린이 눈을 질끈 감았다. 그녀는 철창에서 뛰어내렸다. 허공을 가른 그녀가 문 앞으로 떨어졌다. 아린은 구르며 문을 밀쳐 열었다. 그녀가 무사히 안으로 들어갔다. 철창은 텅 빈 채 수로로 떨어졌다. 풍덩! 더러운 물이 튀어 올랐다. 태식은 그제야 촉수를 놓았다. 그는 뒤로 서너 걸음 물러섰다. 가슴의 상처에서 피가 뿜어졌다. 장부의 대가가 전신을 옥죄었다. 시야가 붉게 물들었다. 마태환이 광소를 터뜨렸다. "네년은 도망쳤지만 너는 끝이다!" 철마의 본체가 꿈틀거렸다. 거대한 바퀴가 회전하기 시작했다. 선로 위를 구르는 쇳소리가 울렸다. 태식은 똑바로 섰다. 그는 도망칠 생각이 없었다. 물러설 곳도 없었다. 태식은 품에서 장부를 꺼냈다. 가죽 표지가 피로 축축했다. 그가 장부를 펼쳤다. 붉은 글씨가 요동쳤다. [죄악 지분 청산.] [검은 철마의 소유권을 주장한다.] 장부에서 검은 사슬이 솟아났다. 사슬들이 태식의 팔을 감았다. 뼈를 깎는 통증이 밀려왔다. 태식은 한 걸음 내딛었다. 그의 발자국마다 핏자국이 남았다. "돌려받겠다." 태식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그는 철마를 향해 걸어갔다. 바퀴 소리가 점점 커졌다. 철마가 무서운 속도로 돌진했다. 태식은 피하지 않았다. 그는 산탄총을 다시 쥐었다. 남은 탄환은 세 발이었다. 모두 은도금 탄이었다. 박두식이 목숨을 걸고 구한 물건이었다. 태식은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탄환이 철마의 전면 유리를 깨뜨렸다. 마태환의 얼굴에 박혔다. "아아악!" 괴물이 비명을 질렀다. 철마의 속도가 주춤했다. 태식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철마의 보닛 위로 뛰어올랐다. 뜨거운 철판이 신발 밑창을 녹였다. 연기가 피어올랐다. 태식은 쇠파이프를 내리찍었다. 마태환의 이마를 겨냥했다. 퍽! 검은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마태환의 눈동자가 뒤집혔다. "이 벌레 같은 놈이!" 철마의 내부에서 증기가 뿜어졌다. 태식의 상체가 뒤로 젖혀졌다. 그는 떨어지지 않으려 사슬을 잡았다. 뜨겁게 달아오른 사슬이었다. 손바닥의 살점이 달라붙었다. 태식은 감각을 잃은 지 오래였다. 그는 오직 적을 죽이는 것에 집중했다. 다시 한번 산탄총을 발사했다. 탕! 이번에는 철마의 동력원인 화로였다. 철판이 찢어지며 붉은 불꽃이 튀었다. 동력이 급격히 요동쳤다. 철마가 비틀거렸다. 선로를 벗어난 바퀴가 굉음을 냈다. 쿠구구궁! 벽면을 긁으며 불꽃의 비가 내렸다. 태식은 그 폭풍의 중심에 있었다. 그의 옷은 이미 피와 기름으로 젖었다. 그때 기계실 안에서 소리가 났다. 쿠우웅. 둔탁한 마찰음이 들렸다. 아린이 밸브를 잠근 것이 분명했다. 철마의 증기 배출구가 닫혔다. 내부 압력이 급격히 상승했다. 철판들이 터질 듯이 부풀어 올랐다. "안 돼! 멈춰라!" 마태환이 절규했다. 그의 목소리에 공포가 서려 있었다. 태식은 냉혹하게 웃었다. 그의 얼굴에는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 그는 마지막 탄환을 화로 깊숙이 밀어 넣었다. 그리고 방아쇠를 당겼다. 탕! 화로가 폭발했다. 거대한 화염이 태식을 덮쳤다. 그 충격으로 태식은 뒤로 날아갔다. 바닥을 몇 번이고 굴렀다. 벽에 부딪힌 뒤에야 멈췄다. 등뼈가 부러지는 고통이 찾아왔다. 입에서 검은 피가 울컥 쏟아졌다. 태식은 간신히 눈을 떴다. 철마는 멈추지 않았다. 동력을 잃었음에도 전진했다. 그것은 광기에 가득 차 있었다. 철마의 동체가 기괴하게 비틀렸다. 마태환의 얼굴이 무너지며 다른 형상이 나타났다. 그것은 거대한 아가리였다. 철마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입으로 변했다. 주변의 공기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강한 흡입력이 태식을 끌어당겼다. 바닥의 파편들이 입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태식은 선로를 붙잡았다. 손가락 끝이 찢어져 뼈가 보였다. 괴철마의 내부에서 검은 기운이 솟구쳤다. 그것은 단순한 물리적인 힘이 아니었다. 차원을 찢는 힘이었다. 9호선 폐기장의 공간이 왜곡되기 시작했다. 공기가 흐릿해졌다. 자욱한 연기와 기계 잔해 속에서 어두운 평행 차원의 문이 열렸다. 나락의 어둠이 아가리를 벌렸다. 지옥과 연결된 통로였다. 그곳에서 수많은 손들이 뻗어 나왔다. 태식을 끌어내리려 했다. "함께 가자 회계사!" 마태환의 마지막 목소리가 나락 속에서 울렸다. 태식의 손이 스르륵 풀려나갔다. 그의 몸이 나락의 심연을 향해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바닥의 금속판이 완전히 뜯겨 나갔다. 태식의 몸이 서서히 미끄러졌다. 나락의 흡입력은 압도적이었다. 검은 손들이 그의 발목을 움켜쥐었다. 살점이 썩어 들어가는 통증이 생생했다. 태식은 이를 악물었다. 눈앞에 선로 분기점이 보였다. 녹슨 지레가 굳게 잠겨 있었다. 태식은 오른손의 쇠파이프를 뻗었다. 지레의 틈새에 단단히 끼웠다. 온 힘을 다해 체중을 실어 당겼다. 뿌드득. 어깨관절이 비틀리는 소리가 났다. 지레가 서서히 움직였다. 철컥! 선로의 방향이 바뀌었다. 돌진하던 철마의 앞바퀴가 걸렸다. 엄청난 마찰음이 귀를 찢었다. 콰아아앙! 철마의 거구가 옆으로 꺾였다. 그대로 바닥을 쓸며 전복되었다. 거대한 쇳덩이가 나락을 가로막았다. 흡입력이 순간적으로 약해졌다. 태식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품에서 채무 거울을 꺼냈다. 거울 표면에 자신의 피를 발랐다. "채무를 이전한다." 그가 장부의 권능을 강제로 깨웠다. 가슴의 상처가 깊게 패였다. 심장이 멈추는 듯한 극통이 덮쳤다. 머릿속에서 딸의 이름이 지워졌다. 가장 소중했던 글자가 사라졌다. 태식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통증마저 도구로 삼았다. 거울이 검푸른 빛을 뿜었다. 그 빛이 철마의 동체를 감쌌다. "아악! 내 생명이! 안 된다!" 마태환의 비명이 허공을 찢었다. 철마의 생명력이 강제 압류되었다. 그 힘이 나락의 손들을 묶었다. 서로가 서로를 끌어당겼다. 철마가 스스로 나락으로 빨려 들어갔다. 태식은 선로를 기어올랐다. 가죽 재킷은 이미 누더기가 되었다. 등 뒤에서 거대한 파열음이 들렸다. 콰르릉! 철마의 본체가 구멍 속으로 떨어졌다. 나락의 문이 요동쳤다. 공간이 왜곡되며 수축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폭풍은 멈추지 않았다. 기압 차로 인해 돌풍이 불었다. 태식의 몸이 다시 붕 떠올랐다. 그때 기계실 문이 열렸다. 아린이 밧줄을 던졌다. "아저씨! 잡아욧!" 밧줄이 태식의 뺨을 스쳤다. 태식은 왼손으로 줄을 낚아챘다. 아린이 온 힘을 다해 줄을 당겼다. 그녀의 발이 바닥에서 미끄러졌다. 태식은 벽면의 돌출부를 디뎠다. 가까스로 기계실 문턱에 닿았다. 그는 안으로 몸을 던졌다. 쾅! 태식이 문을 닫고 빗장을 질렀다. 두 사람은 바닥에 쓰러졌다. 거친 숨소리만 방 안에 가득했다. 아린은 전신을 부들부들 떨었다. 태식은 가슴을 움켜쥐었다. 피가 멈추지 않았다. 딸의 얼굴도 이름도 기억나지 않았다. 머릿속은 텅 빈 도표 같았다. 그때 문 너머에서 소리가 났다. 쿵. 묵직한 울림이었다. 철문이 안쪽으로 찌그러졌다. 나락의 문이 닫히지 않았다. 오히려 폐기장 전체를 삼키고 있었다. 강한 진동이 기계실을 흔들었다. 벽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천장에서 붉은 액체가 흘러내렸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철마의 쇳소리가 문을 뚫고 들어왔다. 괴철마가 마지막 폭주를 시작했다. 그것은 평행 차원의 나락을 이끌고 있었다. 폐기장 전체가 어둠으로 가라앉았다. 지옥의 심연이 문앞까지 들이닥쳤다. 태식은 산탄총을 고쳐 쥐었다. 마지막 싸움의 서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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