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당황한 헬레나가 위선의 성녀 미소를 잃어버리고 얼굴을 일그러뜨릴 때, 엘리제는 그녀를 향해 더할 나위 없이 우아하고 차갑게 조소를 던졌다.

은빛 장미의 전당을 가득 채운 침묵 속에서, 헬레나의 백수정 같은 눈동자가 잘게 떨렸다. 한 번도 타인에게 보인 적 없는 비틀린 실소가 그녀의 입가에 머물렀다 사라졌다. 그 가련하고도 추악한 균열을 목격한 이는 오직 엘리제뿐이었다.

"참으로 어설픈 연극이군요, 성녀 헬레나."

엘리제는 카르디안의 단단한 가슴팍에 기댄 채, 흘러내린 머리타래를 귀 뒤로 쓸어 넘겼다. 손가락 끝에 감기는 비단 같은 감촉이 차가웠다.

"황실의 사냥개를 불러들이는 것이 당신이 준비한 마지막 자선 사업이었습니까? 그렇다면 실망스럽기 그지없군요."

"엘리제 영애, 무슨……."

헬레나가 다시금 억울한 피해자의 눈빛을 가장하려 입술을 깨물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2층 발코니에서 내려다보는 황실 친위대장 로이벤 백작의 서슬 퍼런 시선이 전당 아래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잡담은 그쯤 해두지."

로이벤 백작이 철갑 장갑을 낀 손으로 칠흑 같은 금속 상자를 툭툭 두드렸다. 검은 독수리 인장이 박힌 상자는 그 자체로 황제의 서늘한 의지를 대변하고 있었다.

"황실 재정 유출과 군자금 횡령. 이 무거운 죄목 앞에서 로랑 후작가의 영애와 대공 전하께서 어떤 변명을 하실지 궁금하군. 친위대, 두 사람을 압송하라."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무장한 황실 기사들이 대리석 바닥을 울리며 다가왔다. 귀족 부인들이 드레스 자락을 움켜쥐며 비명을 삼켰고, 전당 안의 공기는 순식간에 동결되었다.

카르디안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가 벼려진 검날처럼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그의 붉은 눈동자에 어린 것은 두려움이 아닌, 노골적인 멸시였다. 그가 엘리제의 허리를 안은 손에 힘을 주며 나직하게 읊조렸다.

"내 영지에 발을 들인 사냥개들이 제 목숨을 담보로 잡은 줄 모르는 모양이군. 로랑 영애, 이 무례한 자들을 여기서 전부 베어 넘겨도 상관없겠나?"

"전하, 검을 쓰기에는 이곳의 카펫이 너무 고급스럽습니다."

엘리제는 카르디안의 품에서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관자놀이를 찌르는 듯한 빙결 두통이 밀려왔지만, 그녀는 입술을 짓씹으며 고통을 내리눌렀다. 지금 물러서면 단두대다. 예정된 파멸의 궤도로 다시 굴러떨어질 수는 없었다.

그녀의 보랏빛 눈동자가 2층 발코니의 로이벤 백작을 정확히 꿰뚫었다. 동시에, 그녀의 시야 너머로 붉고 푸른 숫자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아스모데우스의 이면 장부.'

대상의 영혼에 새겨진 가장 은밀한 죄악과 위선이 기하학적인 수치로 환산되어 허공을 부유했다. 엘리제는 먼저 카르디안의 영혼을 응시했다. 그의 차가운 푸른 불꽃 장부 구석, 거칠게 일렁이는 '붉은 국경 인장'이 보였다.

[황실 군부 비공식 군자금 세탁 거래 내역: 7,400,000 골드] [거래 대상: 북부 장벽 방위 사령부 및 크로이츠 대공 사저] [진짜 목적: 황실 직속 재정원의 조작된 감사에 대비한 '황권 수호 비밀 자금' 비축]

'과연.'

엘리제의 입꼬리가 보이지 않게 호선을 그렸다. 황제는 카르디안이 북부의 군자금을 빼돌려 사리사욕을 채웠다고 의심하여 이 덫을 놓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장부가 보여주는 진실은 달랐다. 카르디안은 오히려 황실 재정원의 부패에 맞서, 제국의 국경을 지키기 위한 비공식 자금을 세탁하여 보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반역이 아니라, 가장 처절한 수호였다.

그리고 엘리제는 시선을 돌려, 이미 파멸의렁텅이에 빠진 바론 메이어의 장부 잔해를 역추적했다. 그곳에는 헬레나의 수하가 보낸 정체불명의 차명 비자금 계좌가 극독처럼 붉게 번쩍이고 있었다.

[바론 메이어 차명 비자금 수신 내역: 송금인 'H.D'] [송금 경로: 황실 재정원 부부장 발렌타인의 사주를 받은 비밀 신탁 기관] [최종 목적지: 로랑 후작가의 채권을 강제 매각하기 위한 자금 지원]

모든 퍼즐 조각이 완벽하게 맞춰지는 순간이었다.

"백작."

엘리제의 맑고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은빛 장미의 전당에 울려 퍼졌다. 친위대 기사들의 발걸음이 우뚝 멈췄다.

"황실의 명예를 수호하는 친위대장께서, 고작 사교계의 사기꾼들이 조작한 장부 몇 장에 놀아나 황실의 대공과 로랑 후작가를 핍박하려 하십니까? 참으로 한심한 광경이군요."

"무슨 무례인가, 로랑 영애! 황제 폐하의 검은 독수리 인장이 보이지 않는단 말인가!"

로이벤 백작이 격분하여 소리쳤다.

"보입니다. 아주 잘 보이지요."

엘리제는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그녀의 타프타 실크 드레스가 바스락거리며 위엄 있는 소리를 냈다.

"그 상자 안에 든 서류는 황실 재정원 부부장 발렌타인이 작성한 감사 보고서겠지요. 대공 전하께서 북부의 군자금을 유출했다는 조작된 혐의서 말입니다. 하지만 백작, 그 서류를 작성한 발렌타인 부부장 본인이 누구의 돈을 받고 움직였는지는 확인해 보셨습니까?"

엘리제는 손가락으로 헬레나를 가리켰다.

"바론 메이어의 비밀 장부에는 아주 흥미로운 자금 흐름이 기록되어 있더군요. 성녀 헬레나의 최측근이 발렌타인 부부장의 사주를 받아, 로랑 후작가를 파멸시키기 위해 수백만 골드의 차명 비자금을 메이어에게 송금한 내역 말입니다. 황실 재정원의 공신력 있는 감사가, 사실은 사리사욕에 눈이 먼 가짜 성녀와 부패한 재정관들의 야합으로 만들어진 위조품이라는 뜻이지요."

"그, 그것이 무슨 터무니없는 소리인가! 증거도 없이 성녀를 모독하다니!"

로이벤 백작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갔다.

"증거라면 여기 있습니다."

엘리제는 품 안에서 작은 양장 노트를 꺼내 들었다. 그것은 바론 메이어의 금고에서 확보한 진품 이중 장부의 필사본이었다. 물론 장부의 이면을 읽는 능력으로 완벽하게 복원해 낸 치명적인 탄환이었다.

"이 장부의 47페이지를 보십시오. 황실 재정원의 직인이 찍힌 비공식 면세 승인서와 헬레나 디아스의 자선 단체 명의로 세탁된 자금의 일련번호가 정확히 일치합니다. 황제의 국고를 좀먹은 진짜 도둑들은 황실 재정원과 저기 서 있는 눈물겨운 성녀님입니다."

헬레나의 얼굴에서 핏기가 완전히 가셨다. 그녀는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서려 했지만, 이미 주변 귀족들의 의혹에 찬 시선이 그녀의 온몸을 사정없이 찌르고 있었다.

"그리고 백작."

엘리제는 고개를 돌려 카르디안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대공 전하의 '붉은 국경 인장'이 찍힌 자금은 횡령이 아닙니다. 그것은 황실 재정원의 부패로 인해 북부 전선의 보급이 끊길 것을 대비하여, 대공 전하께서 개인 사재를 털어 군사들의 식량과 무기를 조달하기 위해 예치해 둔 '방위 자금'입니다. 제국의 군대를 굶겨 죽이려 한 재정원의 음모를 전하께서 홀로 막아내고 계셨던 것인데…… 이를 반역이라 부르신다면, 황실 친위대는 북부의 국경을 적국에 넘겨주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되겠습니까?"

카르디안의 입가에 짙은 흥미가 어린 미소가 걸렸다. 그는 엘리제가 자신의 가장 깊은 비밀인 '붉은 국경 인장'의 용도를 완벽하게 간파하고, 그것을 자신을 변호하는 가장 강력한 방패로 바꾸어 놓은 것에 전율했다.

그가 낮게 웃으며 로이벤 백작을 올려다보았다.

"백작, 내 군사들이 굶주릴 때 황실은 무엇을 했지? 재정원의 배를 불리는 데 바빴던 폐하께서 이제는 내 목숨마저 거두려 하시는가? 진실을 밝히고 싶다면 당장 친국을 시작하라. 황실 재정원의 모든 장부를 이 자리에 까발려 주지."

로이벤 백작은 이마에 흐르는 식은땀을 닦아냈다. 일개 영애의 입에서 황실의 가장 치명적인 재정 비리와 북부 군부의 비밀 자금 흐름이 거침없이 흘러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지금 이들을 억지로 압송했다가는 황실 재정원의 썩은 고름이 온 제국에 터져 나가 황권 자체가 흔들릴 판이었다.

"……수색을 일시 중단한다."

백작은 결국 굴욕적인 선언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로랑 영애가 제시한 장부의 진위를 먼저 파악하겠다. 기사들, 철수하라."

친위대가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전당 안에는 무거운 정적만이 남았다. 승리는 완벽했다. 엘리제는 황실의 칼날을 역으로 이용해 재정원과 헬레나의 목을 조르는 데 성공했다.

카르디안이 엘리제의 귀에 입술을 가까이 가져갔다. 그의 차가운 숨결이 귓가를 간지럽혔다.

"대단하군, 로랑 영애. 내 영혼의 비밀까지 그렇게 쉽게 발가벗길 줄은 몰랐다. 이제 우리는 정말로 한 배를 탄 모양이군."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전하. 저는 당신을 아주 유용한 장기말로 쓸 생각이라고."

"기꺼이 그대의 손 위에서 춤춰 주지. 단, 내 대가는 비쌀 것이다."

그의 붉은 눈동자가 소유욕으로 번뜩였다. 엘리제는 차가운 미소로 화답하며 그의 품에서 벗어났다.

* * *

밤이 깊어, 은빛 장미의 전당 깊숙한 사저로 돌아온 엘리제는 소파에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아아아윽……!"

참아왔던 비명이 입술 사이로 새어 나왔다. 머릿속이 통째로 얼어붙는 듯한 극심한 빙결 두통(Frostbite Headache)이 들이닥쳤다. 뇌수가 얼음송곳으로 찔리는 듯한 감각에 그녀는 손가락 끝이 피가 통하지 않아 하얗게 질릴 때까지 소파의 벨벳 자락을 꽉 쥐었다.

'대가가 치러지고 있어.'

이면 장부를 한 번 가동할 때마다, 그녀의 영혼을 구성하는 소중한 기억들이 무작위로 영구 소실된다. 머릿속의 서랍 하나가 통째로 비워지는 서늘한 공허함이 두통과 함께 몰려왔다. 이번에는 무엇이 사라진 걸까. 어떤 기억이, 누구와의 추억이 지워진 것일까.

그녀가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을 때, 방문이 조심스럽게 열렸다.

"엘리제! 무사했구나!"

오빠 줄리앙 드 로랑이었다. 가문을 구하기 위해 사방으로 뛰어다니느라 초췌해진 얼굴이었지만, 그의 눈 핏줄에는 여동생이 무사히 위기를 넘겼다는 안도감과 기쁨이 가득했다.

줄리앙은 서둘러 엘리제의 곁으로 다가와 무릎을 꿇었다. 그의 손에는 정교하게 세공된 은색 나비 브로치가 들려 있었다. 로랑 후작가의 문양이 작게 새겨진,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장신구였다.

"엘리제, 이걸 보렴. 네가 살아 돌아와서 정말 다행이다. 이 브로치를 기억하니?"

줄리앙이 눈물을 글썽이며 브로치를 그녀의 손에 쥐여 주려 했다.

"네가 아홉 살 때, 가문이 처음 빚쟁이들에게 시달리기 시작했을 때 말이야……. 무서워 울던 내 손을 꼭 잡고, 네가 이 나비 브로치를 보여주며 말했잖니. 우리는 이 나비처럼 하늘 높이 날아올라 가문을 꼭 지켜낼 거라고. 매일 밤 이 브로치를 보며 서로를 잊지 말자고 약속했었는데……."

줄리앙의 목소리는 다정함과 애틋함으로 젖어 있었다. 가문을 수호하려는 책임감만 가득한 소심한 오빠가, 동생에게 건네는 가장 따뜻한 위로이자 약속의 증표였다.

그러나 엘리제는 그 브로치를 가만히 내려다볼 뿐이었다.

눈앞의 은빛 나비는 그저 차가운 금속 덩어리에 불과했다. 머릿속을 아무리 뒤져보아도, 아홉 살의 나와 오빠가 나누었던 그 눈물겨운 약속의 장면은 존재하지 않았다. 텅 빈 어둠만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대가가 지불된 것이다. 가문을 구하기 위해 장부를 가동한 대가로, 그녀는 오빠와의 가장 소중했던 어린 시절의 약속을 뇌리에서 영원히 소실당했다.

엘리제의 보랏빛 눈동자가 비정할 정도로 건조하게 가라앉았다. 그녀는 천천히 손을 거두며 입을 열었다.

"그게 무엇이죠, 오라버니?"

"……어?"

줄리앙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그 브로치 말입니다. 저와 무슨 상관이 있는 물건인지 모르겠군요. 그런 유치한 약속을 한 기억은 제게 없습니다."

"엘리제, 그게 무슨 소리니? 우리가 매년 어머니의 기일마다 이 브로치를 보며……."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기억할 일은 없을 겁니다."

엘리제는 자리에서 일어나 거울 앞으로 걸어갔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한 줌의 온기도 섞여 있지 않았다.

"오라버니, 지금 제게 중요한 것은 이런 쓸데없는 감상주의가 아닙니다. 황실 재정원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로랑 가문의 가산 몰수형을 법적으로 취소시키는 것만이 제 유일한 관심사입니다. 그러니 가문 수호니 약속이니 하는 한가한 소리는 그만두십시오."

줄리앙은 굳어버린 채 동생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의 손에 들린 나비 브로치가 애처롭게 흔들렸다. 눈앞의 엘리제는 분명 자신의 사랑하는 동생이었지만, 그녀의 영혼은 갈수록 차가운 얼음 성벽처럼 변해가고 있었다.

"너…… 정말로 내 동생 엘리제가 맞니?"

줄리앙의 목소리가 슬픔과 충격으로 찢겨 나갔다.

"맞습니다. 하지만 가문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저는 기꺼이 다른 무언가가 될 수도 있습니다."

엘리제는 거울 속의 자신을 정시했다.

거울 속에는 고도로 재단된 실크 드레스와 목을 단단히 죄는 레이스 칼라를 한, 완벽하고 차가운 인형이 서 있었다. 대가를 지불할수록 그녀의 머리는 얼음처럼 차갑게 식어갔고, 사교계를 지배할 정교한 정치적 이성은 날카로워졌다.

비록 그 대가로 자신의 인간적인 영혼을 조금씩 깎아내고 있을지라도, 그녀는 스스로를 사교계의 군림하는 신으로 조각해 나가고 있었다. 설령 그 끝에 남는 것이 차가운 괴물일지라도, 단두대 위에서 목이 잘리는 것보다는 나았다.

"……나가 주십시오. 피곤하군요."

줄리앙은 무거운 침묵 속에서 결국 고개를 숙인 채 방을 나섰다. 그의 발소리가 멀어질 때마다 엘리제의 가슴속 한구석이 서늘하게 내려앉았지만, 그녀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홀로 남은 방안, 엘리제는 책상 서랍을 천천히 열었다.

어둠이 내린 서랍 깊숙한 곳, 아직 해결되지 않은 서류 한 장이 남아 있었다. 헬레나가 그토록 감추고 싶어 했던 위선적인 성화 자선 단체의 세금 포탈 내역.

그 장부 위의 붉은 수치들이, 마치 살아있는 극독처럼 어둠 속에서 짙고 불길하게 번쩍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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