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202X년 10월 15일 00시 05분, 서안구 신성요양원 3층 격리병동]

쿠우웅ㅡ!

고막을 찢는 파열음이 복도를 강타했다. 천장에서 떨어진 강철 셔터가 바닥의 콘크리트를 찍어 눌렀다. 바닥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두꺼운 먼지 구름이 어둠 속에서 솟구쳤다.

삼거리가 순식간에 잘려 나갔다.

왼쪽 구역에는 차진수 형사가 갇혔다. 오른쪽 격리실에는 분석관 서연희가 고립되었다. 한태오는 약제실 앞 좁은 통로에 홀로 남겨졌다. 세 개의 공간은 완벽히 차단되었다.

"콜록! 한태오! 들려?"

철판 너머에서 진수의 거친 기침 소리가 새어 나왔다. 질소 가스가 뿜어 나오는 소리가 그 뒤를 이었다. 쉬이이익 하는 소리는 뱀의 숨소리를 닮아 있었다.

태오는 움직이지 않았다.

입안에서 흘러내린 피가 턱 끝을 타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무런 맛도 없었다. 혀의 신경은 이미 죽어 있었다. 오직 코끝을 스치는 비린 냄새만이 뇌의 후각 피질을 자극했다.

손끝이 하얗게 변색되어 가고 있었다. 감각이 소실되는 전조였다. 시뮬레이션을 가동할 때마다 지불해야 하는 육체의 세금이었다.

태오는 벽면에 달라붙었다. 녹색 페인트가 벗겨진 콘크리트 벽이었다. 그곳에 낡은 배전반과 굵은 동축 케이블 선들이 어지럽게 얽혀 있었다.

태오는 귀를 벽에 밀착시켰다. 차가운 냉기가 뺨을 얼렸다.

그는 눈을 감았다.

머릿속의 방들이 차례로 붕괴하기 시작했다. 동생 채영의 마지막 얼굴이 먼지처럼 흩어졌다. 기억의 영토가 소실된 자리에 낯선 자의 광기가 채워졌다.

동일시 시뮬레이션.

태오는 이제 강윤성이 된다.

강윤성. 카론의 그늘에서 평생을 기어 다닌 이인자. 스승의 시선이 자신을 건너뛰어 한태오라는 괴물에게 닿았을 때, 그의 내부에서 끓어올랐을 추악한 질투심.

태오의 심장박동이 빨라졌다. 분노가 아닌, 모방범의 비틀린 흥분이 혈관을 타고 달렸다.

'스승님은 틀렸어.' '내가 더 완벽해.' '태오를 이 방에 가두고 내 설계를 보게 하겠어.'

윤성의 시선으로 요양원의 지도가 재구성되었다.

이 요양원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었다. 윤성에게는 하나의 거대한 회로 기판이었다. 스승의 정교함을 흉내 내기 위해 윤성은 모든 전선과 유압 파이프를 직접 뜯어고쳤다.

태오의 머릿속에 배선도가 그려졌다.

약제실 내부의 저울. 그것은 낚시용 미끼였다. 진짜 제어 장치는 저울 밑이 아니었다. 윤성은 비겁했다. 그는 완벽한 대칭을 만들 능력이 없었다. 그래서 편법을 썼다.

"태오 씨... 제 목소리... 들려요...?"

우측 격리실 배관 너머에서 연희의 목소리가 들렸다. 가냘프고 젖어 있었다. 산소가 희박해지고 있다는 증거였다.

"듣고 있어요."

태오의 목소리는 건조했다.

"정신... 차려야 해요. 또 시뮬레이션을 쓰면... 정말로 자아가 깨져버려요."

연희의 숨소리가 가빠졌다. 그녀는 철제 배관을 붙잡은 채 필사적으로 말을 이어갔다.

"채영이... 기억나죠? 채영이가 매년 봄마다... 오빠랑 약속했던 거요. 동산의 목련이 피면... 같이 바다에 가기로 했다고... 태오 씨가 직접 적어둔 일기장에 있었어요."

태오는 침묵했다.

그녀의 목소리가 뇌의 지워져 가는 영역을 두드렸다. 채영이라는 이름이 마음의 심연에서 가늘게 공명했다. 하지만 그 울림은 너무나 미약했다.

"그 약속... 아직 안 지켰잖아요. 그러니까 돌아와요. 괴물이 되지 말아요."

연희는 울고 있었다. 슬픔의 온도가 배관을 타고 전해졌다.

그러나 태오의 눈동자는 여전히 유리알처럼 차가웠다. 그는 연희의 감정에 전염되지 않았다. 오직 사건의 논리적 모순만을 응시했다.

'윤성은 스승의 규칙을 모방했다.' '하지만 그의 열등감은 빈틈을 만든다.'

태오는 주머니에서 금이 간 태엽식 회중시계를 꺼냈다.

째깍. 째깍. 째깍.

일정한 기계적 마찰음이 손바닥을 타고 진동했다. 유품인 이 시계는 단순한 장식품이 아니었다. 주파수와 물리적 주기를 측정하는 정밀한 기준 시계였다.

태오는 시계를 배전반의 나동그라진 구리선 접촉부에 갖다 대었다.

째깍거리는 톱니의 마찰 진동이 구리선을 타고 미세한 주파수로 흘러 들어갔다.

윤성이 설계한 회로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그는 스승의 아날로그 타이머를 흉내 내기 위해 구형 동력 제어 장치를 사용했다. 그 장치는 전기 신호의 미세한 간섭에 취약했다.

태엽 시계의 마찰 진동이 전선으로 흡수되자, 기계식 타이머의 톱니바퀴가 일시적으로 헛돌기 시작했다.

탁. 탁. 탁.

셔터의 유압 펌프가 비정상적인 주기로 요동쳤다. 가스의 유출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졌다. 시간을 벌었다.

"차 형사님."

태오가 왼쪽 철문을 향해 차갑게 외쳤다.

"콜록! 왜 불러, 새끼야! 나 아직 안 죽었다!"

"셔터 오른쪽 하단 모서리를 보십시오. 배선 인입구가 보일 겁니다."

진수가 벽을 더듬는 소리가 들렸다.

"보인다. 얇은 구리선 같은 게 튀어나와 있어. 이걸 끊을까?"

"아닙니다. 만지면 즉시 폭발합니다. 윤성은 그 선을 저가형 니켈선으로 감쌌습니다."

"니켈?"

진수의 목소리에 의문이 서렸다.

태오는 시뮬레이션 속 윤성의 기억을 끄집어냈다. 윤성은 자재가 부족했다. 서안구 폐공업지구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합금선을 썼다. 니켈은 열에 극도로 민감하다.

"온도가 올라가면 니켈선은 급격히 팽창합니다. 저항값이 변해 회로가 오작동을 일으킵니다. 형사님이 가진 라이터를 쓰십시오."

"라이터?"

"은도금 라이터. 평소에 튕기시던 그것 말입니다. 불꽃을 인입구에 직접 대지 말고, 그 주변의 철판을 달구십시오."

철문 너머에서 팅 하는 금속음이 들렸다. 진수가 라이터를 켠 모양이었다.

"달구고 있다! 뜨거워 죽겠네!"

"30초만 버티십시오. 시계로 측정하겠습니다."

태오는 회중시계를 눈앞에 두었다. 초침이 금이 간 유리 너머로 느리게 움직였다.

째깍. 째깍.

약제실 내부의 공기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시간의 흐름이 기하학적으로 고정되었다. 윤성이 설계한 보이지 않는 기계 도면이 태오의 머릿속에서 완전히 해부되고 있었다.

자신을 가두려 했던 적의 심리를 역이용해, 그가 심어놓은 덫의 척추를 부러뜨리는 쾌감이 뇌리를 스쳤다.

30.

29.

28...

탁!

왼쪽 셔터의 제어 상자에서 불꽃이 튀었다. 지익 하는 소리와 함께 유압식 실린더의 압력이 빠져나갔다. 니켈선이 열팽창을 견디지 못하고 저항의 임계치를 넘어선 것이다.

"오른다! 셔터가 올라가!"

진수의 거친 외침이 복도에 울려 퍼졌다.

강철 셔터가 굉음을 내며 서서히 위로 들리기 시작했다. 틈새로 진수의 찌푸린 얼굴이 드러났다. 그의 손에는 뜨겁게 달아오른 은도금 라이터가 쥐어져 있었다.

태오의 입꼬리가 아주 미세하게 올라갔다.

그의 시뮬레이션은 완벽했다. 윤성의 열등감은 결국 기계적인 결함으로 이어졌다. 스승을 뛰어넘고 싶어 했던 조급함이 스스로의 목을 죄어버린 꼴이었다.

하지만 해소의 여운은 길지 않았다.

치이이이이익ㅡ!

갑자기 복도 천장에 달린 스피커가 찢어지는 듯한 하울링 소리를 뿜어냈다.

- 아하하하하! 역시 한태오야! 대단해!

스피커 너머에서 강윤성의 광기 어린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의 목소리는 시기심과 악의로 뒤틀려 있었다.

- 하지만 스승님이 가르쳐주신 진짜 재미는 지금부터야. 넌 너무 많은 걸 알고 있어.

태오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 귀가 아주 예민하더군, 프로파일러 선생? 그 잘난 청각으로 이것도 버텨봐.

위이이이이이잉ㅡ!

갑자기 벽면 전체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윤성이 요양원 내부의 음향 장치 시스템을 오버클럭했다. 가청 한계를 한참 초과한 초고주파의 소음이 격실의 좁은 공간으로 사정없이 쏟아져 들어왔다.

뇌를 직접 바늘로 찌르는 듯한 고통이 태오의 머리를 강타했다.

"아악!"

오른쪽 격실에서 연희의 비명이 들렸다.

진수 역시 귀를 틀어막으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의 귀에서 붉은 피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태오는 벽을 짚었다.

눈앞이 붉게 물들었다. 이명의 소음이 청각 신경을 마비시키며 머릿속의 모든 사고 과정을 정지시키려 했다.

삐이이이이이이ㅡㅡㅡㅡ.

고막이 터질 것 같은 고주파의 진동이 격벽을 타고 태오의 온몸으로 밀려들었다.

뇌수가 끓어오르는 감각이었다.

눈앞의 시야가 붉은색에서 검은색으로 빠르게 변해갔다. 시각 정보가 왜곡되기 시작했다.

태오는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콘크리트 바닥의 냉기가 무릎뼈를 타고 올라왔다. 차가움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신경계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어느 순간, 고통이 사라졌다.

귀를 찢던 소음이 거짓말처럼 멈추었다. 사방이 정적에 잠겼다.

물리적인 소음이 멈춘 것이 아니었다. 태오의 청각이 완전히 기능을 침묵한 것이었다.

청각 마비.

동일시 시뮬레이션의 대가였다. 뇌의 청각 피질이 영구적인 손상을 입었다. 완벽한 무음의 세계가 태오를 감쌌다.

태오는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진동은 남아 있었다. 벽면의 미세한 떨림이 손끝을 통해 뇌로 전달되었다.

진동의 주기는 일정했다.

태오는 왼손에 쥔 회중시계를 바라보았다. 금이 간 유리 너머로 초침이 돌고 있었다.

째깍. 째깍.

시계의 내부 톱니가 맞물리며 발생하는 미세한 마찰 진동. 태오는 시계의 금속 몸체를 귀 뒤쪽의 유양돌기에 밀착시켰다.

뼈를 통해 진동이 전해졌다.

시계의 진동 주기는 초당 5회. 벽면에서 느껴지는 고주파의 진동 주기는 그보다 훨씬 빨랐다. 두 진동이 뇌의 인지 영역에서 겹쳐졌다.

태오는 눈을 부릅떴다.

물리적인 주파수의 간섭 효과.

윤성이 설치한 고주파 발생기는 배전반의 구형 콘덴서와 연결되어 있었다. 콘덴서의 진동을 강제로 왜곡시키면 회로 전체를 가열해 터뜨릴 수 있었다.

태오는 시계를 배전반의 주 전력선에 강하게 압착했다.

시계의 태엽 스프링이 가진 고유 진동수가 구리선을 타고 흘러 들어갔다. 미세한 역주파가 배전선 내부로 파고들었다.

파르르.

배전반 내부의 구리 단자들이 비정상적으로 떨리기 시작했다. 니켈선이 다시 한번 붉게 달아올랐다.

태오는 시계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손톱 밑에서 피가 배어 나와 시계의 은빛 표면을 적셨다.

온도가 상승했다.

퍼억!

배전반 내부에서 작은 폭발이 일어났다. 검은 연기와 함께 불꽃이 튀었다.

벽면의 진동이 멈추었다.

동시에 태오의 귀로 미세한 소리들이 다시 흘러 들어왔다. 청각이 완전히 복구된 것은 아니었다. 둔탁하고 먼 거리에서 들리는 듯한 먹먹한 소리였다.

"하아... 하아..."

셔터 아래로 기어 나온 진수가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의 귀밑으로 흘러내린 피가 턱선에 고여 있었다.

태오는 약제실 바닥으로 시선을 돌렸다.

두 개의 밸브가 달린 저울.

진수의 가스 밸브는 이미 멈췄다. 하지만 연희가 갇힌 격리실의 산소 차단 밸브는 여전히 작동 중이었다. 저울의 오른쪽 접시가 아래로 내려앉아 있었다.

"연희 씨."

태오가 배관에 대고 말했다.

답변이 없었다. 가냘픈 신음조차 들리지 않았다. 산소 고갈로 의식을 잃은 것이 분명했다.

남은 시간은 1분 내외였다.

태오는 저울 앞으로 걸어갔다.

왼쪽 접시 위에 무거운 쇠뭉치를 올리면 오른쪽 밸브가 열려 산소가 공급된다. 하지만 그 순간, 왼쪽 구역의 셔터가 다시 내려앉아 진수를 압사시키는 구조였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다.

윤성이 설계한 잔혹한 이지선다였다.

태오는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냈다. 수첩의 빈 페이지를 빠르게 넘겼다.

'윤성은 카론의 규칙을 모방했다.' '카론은 결코 무의미한 죽음을 강요하지 않는다.' '규칙에는 반드시 탈출구가 존재한다.'

태오는 시뮬레이션의 감각을 다시 끌어올렸다. 뇌가 타들어 가는 극심한 두통이 엄습했다.

그는 윤성의 눈으로 저울을 보았다.

저울의 하단 받침대. 그곳에 아주 작은 일련번호가 음각되어 있었다.

[09-15]

날짜가 아니었다. 그것은 기계의 압력 수치였다. 0.95기압.

태오는 자신의 회중시계를 보았다. 시계의 뒷면에 새겨진 조절 나사가 눈에 들어왔다. 태엽의 장력을 조절해 물리적 압력을 가할 수 있는 금속 핀이었다.

태오는 시계의 핀을 뽑아 저울 받침대의 좁은 틈새에 찔러 넣었다.

딱.

기계식 저울의 내부 기어가 고정되었다. 양쪽 접시의 무게 균형이 강제로 고정되었다.

치이이이익ㅡ.

연희의 격리실로 산소가 유입되는 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진수의 머리 위에 멈춰 있던 셔터도 고정되었다.

두 사람 모두 살았다.

태오는 벽에 기대어 주저앉았다. 입에서 흘러나온 피가 바닥에 작은 웅덩이를 만들었다.

그는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했다. 동료를 구했다는 안도감도, 승리의 희열도 없었다. 오직 머릿속의 방들이 통째로 사라진 거대한 공허함만이 존재했다.

여동생 채영의 얼굴은 이제 형체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그때였다.

복도 끝의 스피커가 아닌, 태오의 코트 주머니 속에서 진동이 울렸다.

그의 개인 휴대전화였다.

태오는 둔해진 손가락으로 전화를 꺼냈다. 액정 화면에는 발신 번호가 표시되지 않은 문자 메시지가 와 있었다.

메시지의 내용은 단 한 줄이었다.

[진짜 사냥개는 주인의 냄새를 맡는 법이다.]

그리고 첨부된 음성 파일 하나.

태오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파일을 재생했다.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온 것은 강윤성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20년 전, 서안구 폐공업지구에서 들었던 낯익고 다정한 목소리였다.

- 태오야, 오빠가 올 때까지 거기 가만히 있어야 해. 알았지?

여동생 채영의 마지막 목소리였다.

그 뒤로 기계음 섞인 차가운 남성의 음성이 이어졌다.

- 규칙을 어긴 건 네 동생이었다, 태오야.

카론이었다.

태오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지워진 기억의 심연에서 붉은 피비린내가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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