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202X. 10. 15. 00:05 | 서안구 폐정수장 외곽 수풀 지대 (북위 37° 28' 11", 동경 126° 41' 03")]

지지직. 지직.

무전기 스피커가 거칠게 찢어졌다. 소음의 틈새로 기묘한 호흡이 섞였다. 연희의 다급한 목소리는 끊겼다. 그 자리를 메운 것은 얇은 소리였다.

휘이이— 휘이—

낮고 일정한 고음의 파열음. 누군가 입술을 좁혀 부는 휘파람이었다. 박자는 정확히 0.8초 간격이었다. 기계처럼 정교한 주기의 반복. 태오의 왼쪽 귀 안쪽이 팽팽하게 조여들었다. 기억의 저편에서 녹슨 못이 솟아올랐다. 20년 전의 겨울이었다. 동생 채영의 손을 놓치기 직전이었다. 공장 뒤편 어둠 속에서 울리던 멜로디. 정확히 동일한 음조였다.

태오는 무전기를 쥔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손끝이 하얗게 변색되어 있었다. 감각이 무딘 손끝으로 코트 주머니를 뒤적였다. 손바닥에 차가운 금속 덩어리가 닿았다. 금이 간 태엽식 회중시계였다. 동생 채영이 남긴 유일한 흔적. 태오는 시계의 옆면 용두를 돌렸다.

째깍, 째깍, 째깍.

톱니가 맞물려 돌아가는 소리가 시작되었다. 마찰음은 일정했다. 1초에 정확히 다섯 번의 미세한 마찰. 태오는 이 마찰음을 기준점으로 삼았다. 물리적 주기를 측정하는 자신만의 도구였다. 이전 정수장 지하 격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시계의 일정한 마찰음은 큰 힘을 발휘했다. 황산 방출과 사슬 방출 트랩의 기계적 주파수. 그 주파수의 간섭 주기를 계산해 냈었다. 덕분에 신명수를 구출할 타이밍을 잡았다. 이번에도 시계는 작동했다.

태오는 귀를 무전기에 바짝 붙였다. 눈을 감았다. 이명이 오른쪽 귀를 두드렸으나 무시했다. 휘파람 소리의 간격과 시계의 마찰음을 대조했다. 째깍 소리 네 번마다 휘파람의 파형이 꺾였다. 정확히 0.8초의 주기. 배경에서 아주 미세한 기계음이 흘렀다. 웅— 하는 전압의 떨림. 그리고 지연 시간 0.03초의 반향음. 콘크리트 벽면이 좁게 대치하는 밀폐된 공간. 반사각은 좁고 천장은 높지 않다. 이것은 야외의 무전 신호가 아니었다. 근거리에서 송출되는 고주파 주파수 대역. 태오는 눈을 떴다.

"근접 신호다."

옆에 있던 진수가 태오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의 손길에 묵직한 압력이 실렸다. 진수의 이마에 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무슨 소리야? 서 분석관은 어떻게 된 건데?"

"연희 씨의 수신 장치 근처다. 500미터 이내."

태오는 무전기의 송신 버튼을 눌렀다. 주파수 다이얼을 시계 방향으로 꺾었다. 감도를 최대로 올리자 신호의 강도가 변했다. 서안구 폐정수장 남쪽의 고지대. 버려진 주택들이 밀집한 구릉지 방향이었다. 태오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걷기 시작했다. 수풀을 헤치며 걷는 걸음이 빨라졌다. 진수가 그 뒤를 바짝 쫓았다.

"한태오! 대기해! 지원팀이 올 때까지 움직이지 마라!"

진수의 명령은 허공에서 흩어졌다. 태오의 귀에는 오직 시계의 침묵만이 맴돌았다. 오른쪽 귀의 먹먹함이 심해졌다. 미각은 이미 한 달 전에 완전히 사라졌다. 혀끝에 닿는 침에서 쇠 냄새만 났다. 이제는 청각마저 조금씩 빛을 잃고 있었다. 능력을 쓸 때마다 자아가 부서지는 대가였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진실에 닿을 수만 있다면 뇌세포의 소멸 따위는 숫자일 뿐이었다.

축축한 흙냄새가 코를 찔렀다. 구릉지의 경사로는 가팔랐다. 오래된 기와지붕들이 무너진 채 방치되어 있었다. 황색 안개가 발목 주변을 기어 다녔다. 태오는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벽돌조 폐가 앞에 멈췄다. 깨진 창문 틈새로 불빛이 미세하게 새어 나왔다. 무전기의 지지직거리는 소리가 극대화되었다. 신호의 발신지는 이곳이었다.

태오가 문고리를 잡으려 하자 진수가 그를 밀쳐냈다. 진수는 권총을 뽑아 들고 문을 발로 찼다.

쾅!

낡은 목재 문이 안쪽으로 꺾이며 열렸다. 내부는 흙먼지와 곰팡이 냄새로 가득했다. 바닥에는 정수기용 플라스틱 통들이 뒹굴고 있었다. 방 한가운데에 쇠줄로 고정된 나무 의자가 놓여 있었다. 그 위에는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아니, 묶여 있었다.

태오는 천천히 방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바닥의 깨진 유리 조각들이 신발 밑창에 밟혀 사각거렸다. 의자에 앉은 사내의 고개는 뒤로 꺾여 있었다. 입은 기괴할 정도로 크게 벌어진 상태였다. 턱뼈가 탈구된 것처럼 아래로 늘어져 있었다. 그의 목구멍 안쪽은 검붉은 핏덩이로 막혀 있었다.

"이봐! 정신 차려!"

진수가 사내의 목에 손을 대었다. 이내 손가락을 떼며 나지막이 욕설을 뱉었다. 체온은 이미 바닥까지 떨어져 있었다. 사망한 지 최소 두 시간은 지난 상태였다.

태오는 사내의 얼굴을 관찰했다. 모방범 박철규였다. 수사본부의 추적망을 피해 다니던 자였다. 그는 카론의 수칙을 어설프게 흉내 내며 살인을 저질렀다. 정수장 지하에 신명수를 가두고 기계식 트랩을 설치한 장본인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그는 피해자가 되어 있었다.

"식도관 파열이다."

태오가 사내의 턱 아래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피부가 차고 딱딱했다. 목덜미에는 강한 압박 흔적이 남아 있었다. 동그란 모양의 압착 흔적. 일반적인 교살이 아니었다. 기계 장치나 둥근 막대 같은 도구로 목구멍 안쪽을 강제로 짓누른 형태였다.

"자신의 수칙을 지키지 못했다."

태오의 목소리는 건조했다. 사내의 죽음에 아무런 동요도 일지 않았다. 진수가 태오를 매섭게 쏘아보았다.

"그게 무슨 소리야? 이 자가 모방범 박철규라고?"

"그렇다. 카론의 모방범."

"그런데 왜 이렇게 된 거지? 누군가 입막음을 한 건가?"

"아니다. 응징이다."

태오는 박철규의 벌어진 입안을 들여다보았다. 그의 목구멍 깊은 곳에 붉은색 종이 모서리가 보였다. 식도관이 으깨진 원인이 바로 저것이었다. 무언가를 강제로 밀어 넣은 흔적. 태오는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손가락에 감았다. 그리고 주저 없이 박철규의 입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미친 짓 그만해!"

진수가 태오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그의 손길은 거칠었고 눈빛에는 혐오감이 서려 있었다. 현장을 보존해야 하는 형사로서의 분노였다. 동시에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태오의 집요함에 대한 거부감이었다.

"이 자는 인간이었다, 한태오. 범죄자이기 전에 시체라고. 최소한의 예의도 없나?"

태오는 진수의 손을 무표정하게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에는 온기가 없었다. 오직 목적지를 향한 직선적인 의지만이 가득했다.

"예의는 산 자에게나 필요한 법이다. 지금은 단서가 우선이다."

"너는..."

진수는 이빨을 갈았다. 그의 손이 태오의 손목을 놓아주었다. 진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는 주머니에서 오래된 은도금 라이터를 꺼냈다.

칙, 칙.

라이터 뚜껑이 열리며 불꽃이 튀었다. 은빛 광택이 강하게 뿜어지는 라이터 표면이 어둠 속에서 번쩍였다. 진수는 습관처럼 라이터를 튕기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눈동자에 흔들리는 불꽃이 비쳤다. 태오는 조용히 그 은빛 표면을 응시했다. 빛의 반사가 벽면에 기하학적인 무늬를 만들고 있었다. 태오는 시선을 돌려 다시 시체의 입안으로 손을 뻗었다.

서걱.

손가락 끝에 젖은 종이의 질감이 닿았다. 식도관 안쪽에 단단히 박혀 있던 물질을 천천히 끌어올렸다. 피와 침으로 범벅이 된 붉은색 봉투였다. 봉투 표면에는 기계로 인쇄된 글자가 박혀 있었다.

[규칙 제7조: 모조품은 폐기한다.]

태오는 봉투의 밀봉을 뜯었다. 안에는 두껍고 단단한 재질의 흰색 카드가 들어 있었다. 카드의 앞면은 깨끗했다. 아무런 글자도 보이지 않았다. 오직 군데군데 묻은 박철규의 혈흔만이 붉은 얼룩을 만들고 있었다.

진수가 라이터를 끄고 다가왔다. 그의 얼굴에는 깊은 넌더리가 묻어났다.

"너를 보고 있으면 소름이 돋아. 카론 그놈들과 다를 게 없어. 목적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도구로 쓰지."

"괴물을 잡으려면 심연을 들여다봐야 한다. 팀장님이 늘 하던 말 아닌가."

"들여다보는 것과 동화되는 것은 달라! 너는 지금 스스로 괴물이 되어가고 있어!"

진수의 외침은 폐가의 깨진 창문을 넘어 밤공기 속으로 흩어졌다. 태오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는 카드를 손에 쥔 채 방 안의 광원을 찾았다. 천장에 매달린 낡은 전등은 이미 수명을 다해 깜빡거리고 있었다. 태오는 코트 안주머니에서 소형 자외선 형광등을 꺼냈다. 감식반이 주로 사용하는 휴대용 장비였다.

"박철규는 카론의 규칙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태오가 자외선등의 전원을 켜며 말했다. 푸르스름한 광선이 카드의 표면을 비추기 시작했다.

"그는 신명수를 가둘 때 기계식 트랩의 시간 오차를 계산하지 않았다. 0.02초의 지연. 그것은 카론의 설계에서 있을 수 없는 결함이다. 카론은 완벽을 추구한다. 기하학적인 대칭과 무결성. 박철규의 조잡한 모방은 카론의 철학을 모독한 셈이다."

"그래서... 카론의 조직원이 이 자를 직접 처단했다는 건가?"

진수의 목소리에 긴장이 서렸다. 단순한 모방범의 단독 범행이 아니었다. 그 배후에 거대한 조직적 실체가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규칙을 더럽힌 배신자나 모방범을 쓰레기처럼 가차 없이 처단했다. 그 행위에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오직 기계적인 완전성만을 요구하는 잔혹한 교리만이 존재했다.

태오는 자외선 광선의 각도를 조절했다. 푸른빛이 혈흔이 묻은 카드 표면에 닿았다. 그 순간, 혈흔의 틈새로 숨겨져 있던 형광 물질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붉은빛의 야광 글자가 어둠 속에서 선명하게 떠올랐다.

[신성요양원 3층 격리병동 약제실]

글자는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붉게 타올랐다. 태오의 눈동자가 그 글자를 담았다. 오른쪽 귀의 이명이 다시 한번 날카롭게 대뇌를 찔렀다. 머릿속에서 무언가 툭 끊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지워져 가는 기억의 파편들이 흔들렸다. 신성요양원. 그곳은 서연희가 무전이 끊기기 직전 언급했던 장소였다. 20년 전 서안구 연쇄살인 사건의 실마리가 그곳에 있었다.

태오는 카드를 주머니에 넣었다. 그의 손끝에 닿은 회중시계가 여전히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째깍, 째깍, 째깍.

마치 다음 트랩의 제한 시간을 알리는 카운트다운처럼. 태오는 폐가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황색 안개가 진하게 깔린 서안구의 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새로운 덫이 입을 벌린 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태오가 멈췄다.

진수가 고개를 돌렸다.

"왜 그러지?"

태오는 답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이 바닥을 향했다. 문턱 바로 앞이었다.

진수가 쥔 라이터가 가볍게 흔들렸다. 특수 가공된 은도금 표면이 빛을 튕겨냈다. 그 반사광이 어두운 문틀 구석을 찔렀다. 찰나의 순간이었다. 공중에 뜬 한 줄기 은빛 선이 반짝였다.

머리카락보다 얇은 금속 단선이었다. 문틀 좌우를 가로지르는 투명한 덫. 발끝이 닿는 순간 끊어지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물러서십시오."

태오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진수의 다리가 허공에서 굳었다. 그의 이마에서 땀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바닥의 마른 흙 위로 툭,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태오는 천천히 상체를 숙였다. 오른쪽 귀의 이명이 다시 한번 뇌를 찔렀다. 시야가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동일시 시뮬레이션의 여파였다. 머릿속이 타들어 가는 감각 속에서, 그는 범인의 시선을 빌려왔다.

'완벽한 대칭.'

범인은 수사관이 시체를 확인한 뒤, 서둘러 밖으로 나갈 것을 계산했다. 문을 열 때는 작동하지 않는 트랩. 오직 안에서 밖으로 나갈 때만 인지하도록 설계된 역방향 인계철선이었다. 선을 건드리면 문틀 상단에 고정된 유리 용기가 깨진다. 그 안에는 황산이 들어 있을 것이다.

태오는 코트 주머니에서 태엽식 회중시계를 꺼냈다. 금이 간 유리 너머로 초침이 돌고 있었다.

째깍, 째깍, 째깍.

시계의 마찰음이 일정한 파동을 만들었다. 태오는 시계의 얇은 금속 체인을 풀었다. 그리고 체인의 끝을 조심스럽게 단선 아래로 밀어 넣었다. 장력을 유지해야 했다. 양끝의 무게 중심이 무너지면 유리 용기의 고정 장치가 풀린다.

손끝이 차갑게 식어갔다. 손가락의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마비 증상이 손목을 타고 올라오고 있었다. 태오는 어금니를 깨물었다. 입안에서 비린 쇠 맛이 강해졌다.

그는 체인의 무게를 이용해 단선의 중심부를 아래로 가볍게 눌렀다. 아주 미세한 움직임이었다. 체인이 단선을 누르는 순간, 문틀 상단에서 틱, 하는 금속음이 울렸다. 기어의 회전이 멈추는 소리였다.

"지금입니다. 넘어가십시오."

태오의 속삭임에 진수가 조심스럽게 발을 뻗었다. 그의 구두가 문턱 너머 축축한 흙바닥을 밟았다. 진수는 곧바로 돌아서서 태오의 팔을 잡았다. 태오는 체인을 단선에 걸어둔 채 몸을 날렸다.

스르륵.

체인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단선이 끊어졌다. 동시에 머리 위에서 유리 병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쨍그랑!

바닥에 닿은 액체가 부글거리며 연기를 뿜어냈다. 유독한 가스가 좁은 방 안을 순식간에 채웠다. 두 사람은 폐가 밖으로 뛰쳐나왔다. 차가운 새벽 공기가 얼굴을 때렸다.

진수는 무릎을 잡고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의 손에 쥔 은도금 라이터가 차갑게 빛났다. 그는 라이터를 주머니에 넣으며 태오를 보았다.

"이 모든 게... 설계된 거였어."

태오는 답하지 않았다. 그는 주머니 속의 붉은 카드를 만졌다. 손가락의 마비가 서서히 풀리고 있었다. 그러나 지워진 동생의 얼굴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때, 진수의 가슴팍에 매달린 무전기에서 다시 신호가 잡혔다. 지지직거리는 잡음이 멎었다. 그리고 맑은 기계음이 흘러나왔다.

- ...태오야. 내 말 들려?

이번에는 진짜 연희의 목소리였다. 수신 상태가 완전히 회복되어 있었다.

"송신 상태 양호하다. 서 분석관, 무슨 일이지?"

진수가 무전기를 잡고 외쳤다. 연희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 방금 신성요양원의 20년 전 기록을 복구했어. 그곳의 설립자이자 초대 원장의 이름... 알아냈어.

태오의 심장이 크게 요동쳤다. 그는 무전기 쪽으로 귀를 기울였다. 오른쪽 귀의 이명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 박민우. 20년 전 서안구 사건 당시에 의문사한 것으로 처리된 인물이야. 하지만 사망 진단서가 조작된 흔적이 있어. 그는 살아있어.

태오의 눈동자가 차갑게 굳어졌다. 박민우. 카론의 진짜 이름이자, 여동생의 죽음 뒤에 숨은 설계자.

그때였다. 태오의 주머니 속에서 미세한 진동이 느껴졌다. 그의 개인 휴대전화였다. 화면에는 발신자 제한 번호가 떠 있었다.

태오는 액정을 밀어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 너머로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오직 일정한 숨소리만이 고요한 밤공기를 채웠다.

그리고 나직하고 친근한, 마치 신부와 같은 음성이 흘러나왔다.

"첫 번째 수칙을 무사히 통과했더군, 태오야."

태오의 손가락끝이 굳어졌다. 그것은 가스라이팅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약제실의 문은 오직 네가 가진 기억의 열쇠로만 열릴 것이다. 괴물이 되어 나를 찾아오너라."

뚝.

전화가 끊겼다. 태오는 액정을 내려다보았다. 검은 화면 위로 자신의 일그러진 얼굴이 비쳤다. 그는 알고 있었다. 이미 괴물의 손아귀 안으로 깊숙이 걸어 들어왔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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