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202X년 10월 14일 23시 48분 12초] [인천광역시 서안구 제3폐정수장 지하 B2 기계실 / 북위 37°31'44", 동경 126°35'02"]

목에서 피를 뿜고 고꾸라지는 임우재를 향해 차진수가 절규하며 손을 뻗는 순간, 태오가 진수의 어깨를 강제로 낚아채며 바닥으로 뒤로 강하게 쓰러뜨린다.

쿵.

두 사람의 신체가 진흙 바닥으로 처박힌다. 축축한 물비린내가 사방으로 튄다.

"이거 놓아! 놓으라고!"

진수가 몸을 비틀어 저항한다. 그의 악력이 태오의 깃덜미를 움켜쥔다. 젖은 가죽 장갑이 흙바닥을 긁어댄다.

태오는 미동도 하지 않는다. 그의 무릎이 진수의 척추 뼈 위를 강하게 내리누른다. 체중 전체를 실은 압박이다. 진수의 입에서 컥 하는 막힌 신음이 터져 나온다.

"가만히 있어."

태오의 목소리는 평탄하다. 온도가 없다.

"우재가, 우재가 저기 있잖아! 비켜!"

진수의 눈뿌리가 붉게 충혈된다. 턱관절이 부르르 떨린다. 그의 시선은 정확히 1미터 앞, 바닥에 엎어진 채 사지를 경련하는 임우재 형사에게 고정되어 있다.

우재의 목에서 울컥거리며 쏟아진 선혈이 시멘트 바닥의 배수구로 빨려 들어간다. 붉은 액체가 바닥에 그어진 경계선을 넘어 태오의 구두 앞코까지 흘러온다.

*째깍. 째깍. 째깍.*

태오의 상의 안주머니에서 미세한 기계음이 울린다. 금이 간 태엽식 회중시계의 마찰음이다. 금속 톱니가 서로를 맞물며 돌아가는 일정한 진동이 태오의 가슴뼈를 두드린다.

치이이익.

머리 위에서 이질적인 소음이 발생한다. 천장에 가로지른 회색 강철 파이프에서 증기가 뿜어 나온다.

공기가 순식간에 무거워진다. 코끝을 찌르는 시큼한 냄새가 진동한다. 황산 계열의 산성 기체다. 노즐의 미세한 구멍들이 열리며 백색의 연기가 기류를 타고 아래로 하강하기 시작한다.

"천장 압력 밸브가 개방됐다."

태오가 낮게 읊조린다. 그의 시선은 천장의 강철 파이프 라인을 쫓는다.

"2차 가스 노즐이다. 농도가 짙어지고 있어."

"우재를 꺼내야 해! 아직 숨이 붙어 있단 말이다!"

진수가 다시 한 번 팔을 뻗는다. 손가락끝이 우재의 젖은 셔츠자락에 닿을 듯 말 듯 흔들린다.

"움직이지 마."

태오의 손가락이 진수의 쇄골 안쪽 급소를 강하게 움켜쥔다. 신경을 압박하는 통증에 진수의 상체가 일시적으로 마비된다.

"지금 움직이면 기류가 흐트러진다. 가스 하강 속도가 두 배로 빨라져. 그러면 우리 셋 다 폐포가 녹아내린다."

"비겁한 새끼. 네 눈에는 동료가 죽어가는 게 안 보이지?"

진수의 이빨 사이로 침 섞인 핏물이 샌다. 분노로 가득 찬 숨결이 태오의 뺨에 닿지만, 태오의 눈동자는 얼어붙은 호수처럼 고요하다.

"안 보여."

태오가 대답한다. 거짓이 없는 사실이다. 그의 뇌는 타인의 고통을 인지하는 회로를 상실했다. 지금 그의 시야에 보이는 것은 오직 천장의 파이프 배열, 가스의 낙하 궤적, 그리고 흘러가는 초 단위의 숫자뿐이다.

*째깍. 째깍.*

회중시계의 초침이 한 칸 더 이동한다.

"180초."

태오가 선언한다.

"180초 동안 이 자리에 고정한다. 호흡은 최대한 얕게. 산성 가스의 비중은 공기보다 무겁다. 바닥에서 30센티미터 위까지만 내려앉을 거다. 우리가 엎드려 있는 한, 가스는 머리 위를 지나간다."

"우재는? 저 녀석은 어떻게 하고!"

"이미 늦었어."

태오의 건조한 어조에 진수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린다.

우재의 경련이 멈춰가고 있었다. 바닥을 긁던 우재의 손가락이 천천히 힘을 잃고 늘어졌다. 검붉은 피가 바닥의 균열을 따라 거미줄처럼 퍼져 나갔다.

"160초 남았다."

태오는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시각적 왜곡이 시작되고 있었다. 시뮬레이션의 전조 증상이다. 뇌의 연수 부위가 뜨거워지며 이마에 땀방울이 맺힌다. 머릿속의 기억 장판이 조금씩 긁혀 나가는 감각이 전해진다. 초등학교 시절의 운동장 풍경, 어머니의 목소리 같은 것들이 회색 먼지처럼 바스러져 내린다.

그 대가로 태오의 망막 위에 새로운 궤적이 그려진다.

카론이 이 기계실을 설계했을 때의 심리적 궤적이다.

'불필요한 움직임은 죽음을 부른다. 침묵하고, 복종하라.'

그것이 이 공간의 절대적인 지배 규칙이었다. 범인은 쥐덫을 놓듯 정교한 물리적 균형을 만들어 두었다. 인간의 생존 본능, 즉 동료를 구하려는 충동을 자극해 스스로 덫을 밟게 만드는 설계.

"우재야..."

진수의 목에서 젖은 울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는 더 이상 거칠게 발버둥 치지 못했다. 태오의 단단한 손아귀가 그를 완벽하게 제압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천장에서 내려앉는 안개의 기분 나쁜 열기가 피부를 자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가스는 머리 위 20센티미터 부근에서 정체되어 옆으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태오의 계산대로였다.

"120초."

태오가 숫자를 뱉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높낮이가 없었다.

기계실 내부의 온도가 급격히 상승한다. 기화된 산성 가스가 주변의 수분을 흡수하며 열을 방출하고 있었다. 셔츠 안쪽이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들었다. 목구멍이 타들어 가는 것처럼 칼칼했다.

태오는 침을 삼켰다. 혀끝에서 비릿한 금속 맛이 느껴졌다. 피 맛이 아니다. 감각 오염의 징후다. 미각이 마비되어 가고 있었다.

*째깍, 째깍, 째깍.*

시간은 기계적으로 흘러간다.

우재의 시신 뒤편, 벽면에 부착된 소형 압력계의 바늘이 서서히 녹색 구역을 벗어나 황색 구역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80초."

진수는 두 눈을 감아버렸다. 굵은 눈물이 흙먼지로 더러워진 그의 뺨을 타고 흘러내려 바닥의 핏물과 합쳐졌다.

"태오야. 네가 인간이냐."

진수가 아주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아니."

태오가 즉각 대답했다.

"난 이 사건을 끝내야 해. 그러기 위해선 네가 필요하고, 나도 살아야 한다. 우재는 이미 통제 불가능한 변수였어."

"개자식..."

"40초."

천장의 노즐에서 뿜어져 나오던 가스의 압력이 눈에 띄게 약해지기 시작했다. 기화음이 쉭- 하는 바람 빠지는 소리로 변했다. 가스의 공급원이 차단되고 있다는 신호였다.

"20초."

태오가 서서히 무릎의 힘을 풀었다. 하지만 진수의 어깨를 누른 손가락만은 떼지 않았다.

"10."

"9."

"8."

*째깍.*

"0."

천장의 소음이 완전히 멎었다.

기계실 내부에는 오직 무거운 침묵과, 가스가 바닥의 물 전해질과 반응하며 내는 미세한 기포 소리만 남았다.

태오가 진수의 어깨를 놓아주었다. 진수는 힘없이 흙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그는 우재의 시신을 향해 기어가지 않았다. 이미 우재의 신체는 어떠한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완전한 죽음이었다.

태오는 몸을 낮춘 채 바닥을 기기 시작했다.

그의 시선은 우재의 시신 아래쪽, 정확히는 그의 허리춤으로 향했다.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진수가 쉰 목소리로 물었다.

태오는 대답 대신 우재의 시신 옆으로 다가갔다. 우재의 몸뚱이는 바닥의 강철 마찰판 위에 엎어져 있었다. 마찰판 아래에는 아주 미세한 전선 두 줄이 연결되어 있었다.

압력 센서다.

우재가 쓰러지면서 그의 몸무게가 판을 누르고 있었다. 이 압력이 제거되는 순간, 기계실 안쪽의 3차 가스 밸브가 완전히 개방되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태오의 눈동자가 빠르게 회전했다.

동일시 시뮬레이션이 그의 머릿속에서 해답을 도출해 냈다.

범인은 피해자의 사체를 두 번째 덫의 스위치로 사용했다. 시신을 수습하려 들어 올리는 순간, 방 안의 모든 생명체가 몰살당하는 구조.

태오는 우재의 허리 부분을 관찰했다.

우재가 차고 있는 두꺼운 가죽 벨트가 보였다. 벨트 버클 안쪽에 기이한 금속 돌기가 튀어나와 있었다. 그것은 우재가 평소에 차던 일반적인 벨트가 아니었다. 범인이 납치 과정에서 강제로 채워 넣은 특수 장치였다.

가죽 벨트의 압력 센서 해제 버튼.

그것은 벨트 안쪽, 우재의 하복부와 밀착된 부분에 교묘하게 숨겨져 있었다.

"진수 형."

태오가 불렀다.

"우재의 몸을 고정해. 아주 미세한 흔들림도 용납 안 돼."

진수가 고개를 들어 태오를 보았다. 그의 눈에 서린 것은 깊은 증오였지만, 동시에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 태오뿐이라는 절망적인 확신이기도 했다.

진수가 기어와 우재의 어깨와 골반을 양손으로 꽉 눌렀다. 그의 팔 근육이 터질 듯이 팽창했다.

"잡았어. 움직여."

태오가 오른손을 뻗었다. 그의 손가락이 우재의 차가워진 옆구리 틈새로 파고들었다.

가죽의 질감이 느껴졌다. 축축하고 미끄러웠다. 벨트 버클 안쪽의 미세한 핀을 찾아야 했다. 손가락 끝의 감각에 극도로 집중했다.

지워져 가는 뇌세포의 통증이 관자놀이를 때렸다. 머릿속에서 회색 안개가 피어올랐다.

'여동생 채영의 얼굴이 어땠지?'

순간적인 공백.

태오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다.

*째깍.*

주머니 속 회중시계의 마찰음이 그의 이성을 다시 강제로 붙잡았다.

찾았다.

벨트 안쪽, 0.5밀리미터 크기의 황동제 해제 핀.

태오는 망설임 없이 손끝에 힘을 주어 핀을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동시에 왼손으로 벨트의 메인 버클을 정확히 타격했다.

탁.

기계적인 금속음이 나직하게 울렸다.

압력 센서의 작동을 알리는 적색 표시등이 꺼지고, 녹색 등으로 전환되었다. 우재의 몸무게가 마찰판을 누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스템이 '해제' 상태로 고정된 것이다.

태오가 천천히 손을 뺐다. 그의 손가락은 죽은 동료의 피와 진흙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해제됐다."

태오가 일어섰다. 그의 무릎에서 뚜둑 하는 뼈 소리가 났다.

진수는 우재의 시신 위에 머리를 묻었다. 그의 어깨가 소리 없이 흔들렸다.

태오는 진수를 뒤로한 채 기계실 안쪽의 제어반으로 걸어갔다. 제어반의 철제 문은 녹슬어 반쯤 열려 있었다. 그 안쪽에 백색 종이 한 장이 자석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카론이 남긴 두 번째 수칙지였다.

태오는 종이를 떼어냈다. 차가운 손가락 끝으로 종이의 질감을 느꼈다.

종이에는 타자기로 정교하게 인쇄된 문장들이 적혀 있었다.

[두 번째 수칙] 1. 통로의 끝에는 두 개의 수문 제어 밸브가 존재한다. 2. 녹슨 밸브를 돌리지 말고 오직 황동 밸브만 수직으로 세워라. 3. 규칙을 위반할 시, 수조의 물은 아래가 아닌 위로 흐를 것이다.

태오의 눈동자가 수칙지의 텍스트를 빠르게 스캔했다.

녹슨 밸브와 황동 밸브.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가동되지 않는 녹슨 밸브를 피하고 깨끗한 황동 밸브를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하지만 카론의 규칙은 언제나 상식을 비튼다.

'오직 황동 밸브만 수직으로 세워라.'

태오는 종이를 접어 코트 안주머니에 넣었다. 주머니 속의 회중시계가 그의 손가락 끝에 닿았다.

"가야 해."

태오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진수는 여전히 우재의 시신 옆에 엎드려 있었다. 그의 손에는 우재의 가슴에서 떼어낸 경찰 공무원증이 쥐어져 있었다.

"우재를 여기 두고 갈 순 없어."

진수의 목소리는 얼어붙어 있었다.

"여기 두면 가스가 다시 차오를 때 시신이 훼손될 뿐이다. 하지만 지금 시신을 들고 이동하면 통로의 다른 센서가 반응해."

태오가 차갑게 덧붙였다.

"살아서 나가고 싶다면, 내 말을 들어."

진수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의 눈빛은 이전의 우직한 형사의 것이 아니었다. 깊은 심연 속에서 벼려진 칼날처럼 날카롭고 위험한 빛이 서려 있었다.

"한태오."

진수가 이빨을 드러내며 말했다.

"이 사건이 끝나면, 난 너부터 처넣을 거다."

"마음대로 해."

태오는 등을 돌려 기계실 안쪽의 어두운 통로로 발을 내딛었다.

방 안의 공기는 아직도 산성 기체의 잔여물로 인해 매캐했다. 랜턴의 불빛이 어둠을 가르며 통로 벽면의 낡은 파이프라인들을 비추었다.

어둠은 깊었고, 사방은 기분 나쁠 정도로 고요했다.

그들의 발소리만이 슬라임 같은 진흙 바닥을 밟으며 둔탁하게 울려 퍼졌다.

통로는 미로처럼 꺾여 있었다. 벽면에는 과거 정수장으로 사용되던 시절의 흔적인 녹슨 이끼와 정체 모를 유기물들이 엉겨 붙어 있었다.

태오는 앞장서 걸으며 머릿속으로 지도를 그렸다.

동일시 시뮬레이션의 여파로 뇌가 지끈거렸다. 유년 시절의 기억 한 조각이 또다시 떨어져 나갔다. 여동생 채영의 마지막 목소리가 기억나지 않았다. 비명소리였다는 사실만 남았을 뿐, 그 음색도, 단어도 흐릿해졌다.

대신 그의 손가락은 주머니 속 회중시계를 더욱 꽉 쥐었다. 이 시계만이 자신이 '한태오'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유일한 닻이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앞서가던 태오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뒤따라오던 진수도 동시에 멈춰 섰다. 그의 손은 이미 허리춤의 권총 집으로 가 있었다.

정적만이 감도는 정수장 통로 깊은 곳이었다.

어디선가 기분 나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철 수갑이나 굵은 쇠사슬이 거칠고 단단한 시멘트 바닥을 쓸며 지나가는 소리였다.

스르륵. 스르르륵.

소리는 벽면의 환풍구 안쪽에서 들려오는 듯했다.

동시에 머리 위에 매달린 직사각형의 낡은 철제 환풍기 날개가 불규칙하게 흔들리며 마찰음을 내기 시작했다.

덜컥.

덜컥덜컥.

진수가 랜턴 불빛을 위로 올렸다. 환풍구의 틈새로 검은 그림자 같은 것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태오의 눈동자가 좁혀졌다.

쇠사슬 소리가 그들의 등 뒤, 바로 머리 위 환풍구 구멍에서 멈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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