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514° N, 126.791° E | 23:45:11]
서안구 폐정수장 기계실 입구. 겨울 안개가 가득하다. 공기는 영하 4도다. 습도는 90퍼센트다. 피부로 축축한 냉기가 스민다. 기계실 철문은 녹슬어 있다. 기름과 썩은 이끼가 섞여 있다. 시큼한 냄새가 진동한다. 바닥은 축축한 진흙투성이다. 손전등 불빛이 벽을 긁는다. 콘크리트 벽면이 갈라져 있다. 틈새로 검은 물이 흐른다. 그 아래에 백색 봉투가 있다. 봉투는 젖지 않았다. 비닐로 밀봉되어 있다. 지퍼백 표면에 흙이 묻어 있다. 차진수 형사가 멈춰 선다. 그의 가죽 재킷이 바스락거린다. 진수가 손가락을 까딱인다. "태오야. 저거냐?" 한태오는 대답하지 않는다. 발걸음 소리가 조용하다. 태오의 군화 끝에 진흙이 묻는다. 그가 허리를 굽힌다. 장갑을 낀 손가락이 움직인다. 흰 봉투를 집어 올린다. 밀봉된 비닐 안에 종이가 있다. 코팅된 백색 용지다. 윗부분에 붉은 얼룩이 있다. 동결된 혈흔이다. 혈액형은 O형으로 추정된다. 양은 대략 0.5밀리리터다. 피해자의 것과 일치할 확률이 높다. 태오가 가위로 밀봉을 자른다. 서걱거리는 소리가 울린다. 봉투 안에서 종이를 꺼낸다. 종이는 빳빳하다. 인쇄된 글자는 명확하다. 행정 문서용 서체다. 서체가 차갑고 기계적이다.
[최초 진입 수칙]
글자 크기는 12포인트다. 자간은 일정하다. 오탈자는 없다. 태오의 눈동자가 고정된다. 수칙의 내용은 단 한 줄이다.
- 진입 후 최초 180초간은 어떠한 이유로든 천장을 보지 마라.
진수가 침을 뱉는다. 침이 바닥의 진흙에 섞인다. "개소리군." 진수의 목소리가 낮다. 그의 턱근육이 불끈거린다. 신입 형사 임우재가 침을 삼킨다. 우재의 울대가 크게 움직인다. "팀장님, 이거 진짜입니까?" 우재의 목손등에 땀이 맺힌다. 그의 손전등이 흔들린다. 빛줄기가 허공을 어지럽게 찢는다. 태오는 종이를 뒤집는다. 뒷면은 깨끗하다. 아무런 표시도 없다. 오직 앞면의 한 줄뿐이다. 태오가 시계를 본다. 왼손목의 가죽줄을 만진다. 그의 손가락끝이 닿는 곳. 주머니 속의 물건이 만져진다. 금이 간 태엽식 회중시계다. 태엽 감는 소리가 작게 난다. *찌르르, 찌르르.* 일정한 기계음이다. 초당 5회의 마찰음이다. 태오는 소리에 집중한다. 그의 심박수가 분당 65회로 내려간다. 체온이 조금 떨어진다. "카론의 방식이다." 태오의 목소리는 쇠가 긁히는 듯하다. 억양이 없다. 높낮이도 없다. 진수가 담배를 입에 문다. 불은 붙이지 않는다. 그가 은도금 라이터를 만지작거린다. 손가락으로 라이터 덮개를 튕긴다. *깡.* 맑은 금속음이 정적을 깬다. "장난질이야. 시간 낭비다." 진수가 문고리를 잡는다. 그의 가죽 장갑이 삐걱거린다. "안에 사람이 죽어가고 있어." 태오가 진수의 손목을 잡는다. 손아귀의 힘이 강하다. 진수의 눈썹이 꿈틀한다. "놓아라, 한태오." "180초다." 태오의 눈은 흔들림이 없다. 유리 구슬 같다. 빛을 반사할 뿐이다. "안에서 움직임이 감지되지 않는다. 생존율은 매 분마다 4퍼센트씩 떨어진다. 하지만 수칙 위반 시 사망률은 100퍼센트다." 태오의 어조는 건조하다. 수학 공식을 읽는 듯하다. 진수가 이빨을 간다. "우린 경찰이야. 미친놈 장단에 춤 안 춰." 진수가 손을 뿌리친다. 그가 녹슨 철문을 밀친다. *끼이이익.* 문이 비명을 지르며 열린다. 내부는 암흑이다. 차가운 공기가 쏟아져 나온다. 지하수 냄새가 섞여 있다. 습기가 안개처럼 피어오른다. 우재가 권총을 뽑아 든다. 그의 총구가 어둠을 겨눈다. "들어가겠습니다." 우재의 발걸음이 앞선다. 진수가 그 뒤를 따른다. 태오는 제자리에 서 있다. 그의 오른손은 주머니 속에 있다. 회중시계를 꽉 쥐고 있다. 금 간 유리면이 손가락에 감긴다. *째깍, 째깍, 째깍.* 시간이 흐른다. 현재 12초 경과. 기계실 내부는 넓다. 천장은 높다. 약 6미터 높이다. 콘크리트 보와 배관들이 얽혀 있다. 어둠 속에서 철제 구조물이 어렴풋하다. 우재의 군화가 바닥의 물을 밟는다. *찰팍.* 소리가 크게 울린다. 벽면에 반사되어 돌아온다. "아무것도 안 보입니다." 우재가 속삭인다. 그의 목소리가 떨린다. 손전등 빛이 바닥만 비춘다. 수칙 때문이다. 그들도 의식하고 있다. 천장을 보지 않으려 애쓴다. 시선이 고정되어 있다. 바닥의 깨진 타일. 버려진 공구상자. 그리고 붉은 선. 바닥에 그려진 가이드라인이다. 붉은 페인트가 길게 이어져 있다. 안쪽 깊숙한 곳으로 향한다. 진수가 그 선을 따라 걷는다. 그의 발걸음은 무겁다. "태오야, 안 들어오냐?" 진수가 뒤를 돌아보지 않고 묻는다. 태오가 문턱을 넘는다. 그의 움직임은 소리가 없다. 고양이가 걷는 듯하다. 태오의 눈은 바닥의 붉은 선을 쫓는다. 선은 일직선이 아니다. 지그재그로 꺾여 있다. 장애물을 피하는 궤적이다. 현재 45초 경과. 기계실 구석에서 소리가 난다. *뚝.*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다. 소리가 정기적이다. 대략 1.5초 간격이다. *뚝. 뚝.* 우재가 멈칫한다. 그의 어깨가 경직된다. "소리가... 위에서 납니다." "신경 쓰지 마라." 진수가 윽박지른다. 그의 목소리에도 긴장이 서려 있다. 땀방울이 진수의 턱 끝에 맺힌다. 바닥으로 떨어진다. *뚝.* 두 개의 소리가 겹친다. 태오는 주머니 안의 시계를 느낀다. 톱니바퀴의 진동이 손바닥을 타고 올라온다. 그 진동이 뇌로 전달된다. 머릿속에서 타이머가 작동한다. 72초. 아직 108초가 남았다. 공기가 점점 무거워진다. 환풍기가 멈춰 있다. 먼지가 코를 간지럽힌다. 우재가 기침을 참는다. 그의 가슴이 크게 오르내린다. "팀장님, 냄새가 심합니다. 피 냄새 같습니다." 진수가 코를 킁킁거린다. "가까워진 모양이다. 경계 늦추지 마." 그들의 발걸음이 느려진다. 바닥의 붉은 선이 끝나는 지점. 그곳에 의자가 놓여 있다. 철제 의자다. 묶여 있는 형체가 보인다. 마네킹이 아니다. 인간의 형태다. 고개가 아래로 꺾여 있다. 머리카락이 길다. 여성이다. 그녀의 옷은 젖어 있다. 물인지 피인지 분간이 안 간다. 우재가 급히 다가가려 한다. "잠깐." 태오가 나직하게 뱉는다. 그의 목소리가 기계실 벽에 부딪힌다. 우재가 발을 멈춘다. 그의 왼발이 공중에 뜬다. "왜 그러십니까?" "바닥을 봐." 태오가 손전등으로 의자 주변을 비춘다. 의자 사방에 얇은 선들이 얽혀 있다. 낚싯줄이다. 인장 와이어다. 빛을 받자 미세하게 반짝인다. 그것들은 천장으로 연결되어 있다.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투명한 선들. 우재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흐른다. 땀이 눈으로 들어간다. 그가 왼손으로 눈을 비빈다. 그때, 위에서 무언가 떨어진다. *툭.* 우재의 뺨에 닿는다. 붉은 액체다. 점성이 있다. 피다. 아직 따뜻하다. 우재의 신체 반응이 급격해진다. 호흡이 거칠어진다. "으윽..." 그가 신음한다. 뺨을 타고 흐르는 피가 차갑게 식는다. 우재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그의 본능이 요동친다. 위에서 무엇이 떨어지는지 확인해야 한다. 그것은 인간의 생리적 방어기제다. 머리 위협에 대한 무조건 반사다. 태오가 경고한다. "보지 마라." 그의 목소리는 차갑다. 감정이 배제되어 있다. "아직 120초다." 그러나 우재에게는 들리지 않는다. 그의 이성이 공포에 잠식된다. 뺨의 피가 그의 사고를 마비시킨다. 진수도 우재의 상태를 눈치챈다. "우재야! 바닥 봐! 임우재!" 진수가 소리친다. 그의 목소리가 사방으로 흩어진다. 우재의 고개가 서서히 들린다. 턱이 올라간다. 시선이 위를 향한다. 어둠 속의 천장. 그곳에 무언가 매달려 있다. 우재의 동공이 최대로 확장된다. 그의 입이 벌어진다. "어..." 비명조차 나오지 않는다. 그 순간, 기계적인 파열음이 발생한다. *탁!* 금속이 튕기는 소리다. 스프링이 풀리는 진동이 공기를 흔든다. 천장에 고정되어 있던 고압 인장 와이어가 요동친다. 도르래가 회전한다. 속도는 소리보다 빠르다. 와이어가 허공을 가른다. *쉬익!* 날카로운 바람 소리가 난다. 우재의 목덜미로 선이 지나간다. 어둠 속에서 불꽃이 미세하게 튄다. 그의 몸이 굳는다. 시간이 멈춘 듯하다. 우재의 목에 붉은 선이 그어진다. 처음에는 아주 얇은 선이다. 그리고 살이 벌어진다. 피가 뿜어져 나온다. *푸쉭!* 고압 호스가 터진 듯한 소리다. 검붉은 액체가 벽면을 적신다. 우재의 손전등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쨍그랑.*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요란하다. 빛줄기가 바닥에서 회전한다. 사방으로 피가 튄다. 진수의 가죽 재킷에도 붉은 점들이 박힌다. 우재의 몸이 뒤로 넘어간다. 그의 무릎이 꺾인다. *쿵.* 바닥의 진흙 속으로 처박힌다. 그의 손가락이 몇 번 까딱인다. 그리고 움직임이 멈춘다. 기계실 안은 순식간에 피비린내로 가득 찬다. 기온이 더 떨어진 것처럼 느껴진다. 진수의 눈이 뒤집힌다. 그의 호흡이 멈춘다. 심장이 터질 듯이 고동친다. "우재야!" 진수가 비명을 지른다. 그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그는 이성적인 판단력을 상실한다. 동료의 죽음이 그의 뇌를 마비시켰다. 진수가 우재의 시신을 향해 손을 뻗는다. 몸을 앞으로 기울인다. 그의 발이 붉은 선을 벗어난다. 바닥의 낚싯줄을 밟으려 한다. 태오의 눈이 그 움직임을 포착한다. 시계의 침이 가리키는 시간. 145초. 아직 35초가 남았다. 규칙은 아직 유효하다. 진수가 한 걸음 더 내딛는 순간. 천장의 또 다른 와이어가 팽팽해진다. 금속 마찰음이 다시 들린다. *끼리릭.* 태오의 몸이 먼저 반응한다. 그의 이성이 계산을 끝냈다. 진수가 움직이면 두 번째 트랩이 작동한다. 그렇게 되면 전멸이다. 태오가 진수의 어깨를 낚아챈다. 그의 손가락이 진수의 뼈를 파고들 듯 강하다. "이거 놓으라고! 이 새끼야!" 진수가 발버둥 친다. 그의 눈에 눈물이 고여 있다. 분노와 공포가 섞인 눈물이다. 태오는 대답 대신 진수의 다리를 건다. 그의 체중을 실어 진수를 바닥으로 내리누른다. *콰당!* 두 사람의 몸이 진흙 바닥으로 굴러떨어진다. 차가운 진흙이 태오의 뺨에 닿는다. 피 섞인 물이 입술로 스며든다. 비린 맛이 난다. 태오는 진수의 목을 팔로 감싸 안는다. 그를 완전히 제압한다. 진수가 버둥거리지만, 태오의 힘은 기계처럼 일정하다. "놔! 놓으란 말이야!" 진수의 거친 숨소리가 태오의 귀를 때린다. *째깍, 째깍, 째깍.* 주머니 속의 회중시계는 멈추지 않는다. 160초. 170초. 기계실 천장에서 다시 무언가 굴러가는 소리가 난다. 무거운 쇠구슬이 관을 타고 흐르는 소리다. *구르르르.* 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그들의 머리 위로 정확히 다가온다. 진수의 눈이 공포로 물든다. 그는 움직이지 못한다. 태오의 강한 손귀가 그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기 때문이다. 태오는 눈을 감는다. 오직 청각에만 의지한다. 시계의 톱니 소리와 쇠구슬 소리를 매칭한다. 178초. 179초. 180초. *탁.* 쇠구슬이 멈춘다. 그리고 정적이 흐른다. 기계실 안은 오직 피비린내와 거친 숨소리뿐이다. 태오가 눈을 뜬다. 그의 눈동자는 여전히 차갑다. "시간 끝났다." 태오가 나직하게 말하며 진수를 놓아준다. 진수가 흙탕물 속에서 기침을 토해낸다. 그의 손이 떨리고 있다. 우재의 시신은 불과 1미터 앞에 있다. 목에서 흘러나온 피가 바닥의 붉은 선과 섞여 구별되지 않는다. 태오가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그의 옷은 진흙과 피로 얼룩져 있다. 그가 천장을 올려다본다. 손전등 빛을 위로 비춘다. 그곳에는 날카로운 강철 날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다. 그것들은 아주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다. 마치 거대한 기계의 내부 같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작은 스피커가 매달려 있다. 스피커에서 지직거리는 소리가 난다. *치이익...* 진수가 고개를 든다. 그의 얼굴은 진흙으로 범벅이다. 스피커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변조되지 않은, 맑고 친근한 음성이다. 신부의 고해성사 같은 목소리. "환영합니다, 태오 씨." 카론의 목소리다. 진수가 주먹을 꽉 쥔다. 손톱이 살을 파고들어 피가 맺힌다. "이 살인마 자식..." 진수의 목소리가 갈라진다. 스피커의 목소리는 계속된다. "첫 번째 관문을 통과하셨군요. 복종의 대가는 달콤합니까?" 태오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다. 그의 시선은 스피커 아래에 매달린 작은 상자로 향한다. 나무로 된 작은 상자다. 그 상자 겉면에 붉은 글씨로 적혀 있다.
[두 번째 수칙]
태오의 손이 주머니 속의 회중시계를 꽉 쥔다. 그의 머릿속에서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난다. 지워졌던 기억의 아주 작은 파편 하나가 수면 위로 떠오른다. 여동생의 마지막 비명. 그리고 이 차가운 쇠 냄새. 태오의 눈빛이 미세하게 가라앉는다. "시작하지." 태오가 중얼거린다. 그의 목소리에는 그 어떤 인간적인 감정도 남아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