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202X년 10월 15일 00시 10분. 서안 화학공장 지하수조 제어실. 지리적 좌표: 37.4562° N, 126.7051° E.

바닥은 얼어붙어 있었다. 살가죽이 시멘트 바닥에 붙었다 떨어졌다. 냉각 스프레이의 기화열이 전신을 난도질했다. 체온은 이미 32도까지 떨어져 있었다. 태오는 기어서 중앙 제어실 문턱을 넘었다.

눈앞에 거대한 철창이 나타났다. 쇠창살 너머에 지상 유압식 밸브가 솟아 있었다. 그 기계 장치에 두 사람이 묶여 있었다. 차진수와 서연희였다. 그들의 몸은 거친 쇠사슬로 감겨 있었다. 입에는 가죽 재갈이 물려 있었다. 그들의 눈동자가 태오를 향해 흔들렸다. 살려달라는 비명이 재갈에 막혀 웅얼거림으로 변했다.

태오는 엎드린 채 숨을 몰아쉬었다. 입안에서 비린 맛이 턱 끝으로 흘러내렸다. 붉고 뜨거운 액체였다. 하지만 아무런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혀의 돌기는 이미 기능을 멈춘 지 오래였다. 구리 냄새만이 코끝을 찔렀다. 시뮬레이션의 대가로 지불한 미각의 영구 상실. 그 인공적인 어둠이 온몸을 지배하고 있었다.

"도착했구나."

낮고 차분한 목소리였다. 목소리는 제어실 단상 위에서 들려왔다. 태오는 고개를 들어 올렸다. 단상 위에 휠체어가 놓여 있었다. 그 위에 앉은 사내, 박민우였다. 그의 얼굴은 창백했고 눈빛은 기괴하리만치 평온했다. 박민우는 손에 쥔 얇은 지침서를 가볍게 흔들었다. 종이가 스치는 소리가 귓가에 닿았다가 사라졌다. 이명이 심해져 소리가 멀게만 느껴졌다.

"기다리고 있었다, 태오야."

박민우의 입술이 호선을 그렸다. 그의 목소리에는 나직한 온기가 섞여 있었다. 성당의 신부가 고해성사를 듣는 듯한 음조였다. 그러나 그 눈빛은 먹잇감을 응시하는 뱀의 그것이었다. 태오는 바닥을 짚고 겨우 무릎을 일으켰다. 무릎뼈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손끝은 이미 하얗게 변색되어 감각이 없었다. 오염된 광기가 전두엽을 옥죄고 있었다.

"이것이 마지막 장이다."

박민우가 지침서를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탁, 하는 소리와 함께 종이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는 휠체어 옆의 레버를 천천히 당겼다. 쿠르릉 하는 굉음이 지하를 흔들었다. 진수와 연희가 묶인 유압식 밸브 뒤편의 장치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거대한 무쇠 추가 공중으로 솟아올랐다. 그 무게는 최소 수백 킬로그램에 달해 보였다.

"수칙은 간단하다."

박민우가 손가락을 들어 두 사람을 가리켰다. "저들은 유압 균형 추의 양 끝에 연결되어 있지. 한쪽이 올라가면, 한쪽은 내려간다. 살릴 수 있는 무게는 단 한 명의 분량뿐이다."

태오의 눈동자가 정교한 도면을 그리듯 움직였다. 시선이 쇠사슬과 연결된 유압 실린더의 경로를 쫓았다. 기계는 완벽한 대칭을 이루고 있었다. "한 명을 구하기 위해 사슬을 풀면, 유압의 균형이 깨진다." 박민우의 설명은 기계적이었다. "반대편의 사슬은 즉시 고속으로 권취된다. 그 끝에 대기하는 것은 강철 분쇄기다. 다른 쪽은 뼈도 남지 않고 으깨지겠지."

이것은 단순한 살인이 아니었다. 인간의 도덕성을 시험하는 기하학적 덫이었다. 누구를 살리고 누구를 죽일 것인가. 선택을 강요하는 가스라이팅의 극치였다. 박민우는 태오가 자신과 같은 괴물이 되기를 원하고 있었다. 타인의 목숨을 도구로 삼아 저울질하는 존재. 그것이 카론이 원하는 완벽한 후계자의 모습이었다.

"태오 씨...!"

서연희의 재갈이 풀어지며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터졌다. 그녀의 얼굴은 눈물과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저를... 저를 포기하세요!" 그녀의 목소리가 좁은 제어실 벽면에 부딪혀 반사되었다. "제발요... 저 때문에 멈추지 마세요. 채영이 사건의... 그 진실을 꼭 마주하셔야 해요. 저 인간의 뜻대로 움직이지 마세요!"

연희의 외침은 절박했다. 그녀는 태오의 눈에 서린 광기를 보고 있었다. 태오가 자신을 구하기 위해 진수를 죽이거나, 혹은 그 반대의 선택을 함으로써 완전히 망가질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녀에게 태오는 구원해야 할 대상이었지, 도구가 아니었다.

하지만 태오의 머릿속은 다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감정을 배제한 채 기계의 틈새를 찾았다. 눈앞의 장치는 물리적인 중량 센서에 의해 작동하고 있었다. 그때 태오의 머릿속에 과거의 텍스트가 떠올랐다.

'요양원의 모든 감시 장치는 원장의 눈이며, 원장은 태생적으로 맹인이다.'

카론의 행동 지침서 제4조. 그 모순된 문장이 현재의 공간 위로 겹쳐졌다. 신성요양원에서 카론은 시각 카메라를 쓰지 않았다. 오직 열감지 모니터링 시스템만을 구축해 두었었다. 이곳 화학공장 지하수조 역시 마찬가지였다. 박민우는 자신의 눈으로 우리를 직접 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제어실 천장에 설치된 붉은 빛의 열감지 센서. 그리고 유압 밸브의 압력 수치 변화만을 통해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그는 맹인이다. 눈앞의 실체를 보는 것이 아니라, 기계가 전송하는 데이터만 읽고 있었다.

태오의 시선이 차진수 형사에게로 향했다. 진수는 쇠사슬에 묶인 채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그의 바지 주머니 틈새로 익숙한 물건이 보였다. 은도금 라이터. 진수가 습관처럼 손가락으로 튕기던 물건이었다. 그 라이터의 표면은 고도로 연마되어 거울처럼 빛나고 있었다. 특정 금속 재질의 반사율. 그것이 태오의 뇌리에서 불꽃을 일으켰다.

"진수 형."

태오가 낮게 읊조렸다. 목소리는 기계음처럼 건조했다. "라이터를 떨어뜨려."

진수는 태오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태오의 얼어붙은 눈빛에서 기묘한 확신을 읽었다. 진수가 몸을 비틀었다. 쇠사슬이 짤랑거리는 소리를 냈다. 바지 주머니가 벌어지며 은도금 라이터가 시멘트 바닥으로 떨어졌다. 칭, 하는 맑은 금속음이 제어실에 울렸다. 라이터는 미끄러져 태오의 발밑에 멈췄다.

태오는 허리를 굽혀 라이터를 주워 올렸다. 차가운 금속의 촉감이 손끝에 닿았다. 그는 라이터의 각도를 조절했다. 천장에서 내려오는 붉은색 열감지 레이저 포인터. 태오는 라이터의 은도금 표면으로 그 레이저를 받아냈다. 빛이 반사되어 엉뚱한 방향, 즉 제어실 구석의 차가운 철제 파이프로 굴절되었다. 열감지 센서의 초점이 흐려졌다. 기계는 태오의 위치를 순간적으로 놓쳤다.

동시에 태오는 주머니에서 다른 물건을 꺼냈다. 금이 간 태엽식 회중시계. 여동생 채영의 유품이자, 유일한 흔적이었다. 태오는 시계를 가볍게 흔들었다. 째깍, 째깍, 째깍. 내부의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는 마찰음이 시작되었다. 이 소리는 단순한 소음이 아니었다. 태오의 손가락 끝을 통해 미세한 진동으로 전달되는 기계적 규칙이었다. 소리가 들리지 않는 청각 마비의 어둠 속에서도, 이 기계적 주기는 태오의 뇌에 직접 입력되었다.

1초에 다섯 번의 진동. 정확한 물리적 시간의 측정 장치였다. 태오는 회중시계의 진동을 느끼며 지하수조의 유압 밸브 소리를 모니터링했다. 지하에서 들려오는 가압 펌프의 작동 주기. 정확히 12초 간격으로 유압의 미세한 압력 배출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 배출의 순간, 유압의 제어력이 0.7초 동안 일시적으로 약화된다. 기계적 맹점이었다.

"무슨 짓을 하려는 거지?"

박민우의 목소리에 평정이 흔들리는 기색이 섞였다. 그는 모니터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열감지 센서는 라이터의 반사 광선 때문에 태오의 정확한 열원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모니터에는 그저 노이즈 섞인 붉은 잔상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시간이 없다."

태오가 속삭였다. 그의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이 극도로 빠르게 회전했다. 뇌세포가 타들어 가는 고통이 엄습했다. 코에서 흘러내린 피가 입술을 지나 턱밑으로 뚝뚝 떨어졌다. 시각이 흐려지고 세상이 흑백으로 변해갔다. 하지만 회중시계의 진동은 명확했다. 째깍, 째깍.

물리적인 압력 바늘이 가동되었다. 치이익 하는 날카로운 파열음이 제어실을 채웠다. 공기 배출구가 열리며 방 안의 산소 압력이 급속도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진수와 연희의 목을 감은 안전줄이 위아래 반대 방향으로 서서히 조여들었다. 두 사람의 얼굴이 산소 부족과 압박감으로 붉게 달아올랐다. 사슬이 팽팽하게 당겨지며 기계의 톱니가 맞물리는 비명이 울렸다.

"선택해라, 태오야."

박민우가 휠체어에서 상체를 앞으로 숙였다. "누구를 살리고 누구를 지울 것인가. 그것이 네가 완성할 마지막 프로파일링이다. 사법은 저들을 구하지 못해. 오직 네 손만이 결정을 내릴 수 있지."

태오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왼쪽 손으로 은도금 라이터를 쥔 채 열감지 센서의 굴절각을 고정했다. 오른손으로는 회중시계를 쥐고 진동을 읽었다. 눈앞의 압력 바늘이 붉은색 위험 구역으로 진입하기 직전이었다. 앞으로 10초. 10초 뒤면 산소는 완전히 고갈되고, 유압 추는 바닥으로 떨어져 한 사람을 완전히 분쇄할 것이다.

8초. 태오는 기어의 기하학적 틈새로 손을 뻗었다. 그의 손끝이 하얗게 죽어 있었다. 감각이 없는 손가락으로 거친 쇠사슬을 움켜쥐었다.

5초. 유압 배출 주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시계의 진동이 뇌리를 때렸다. 네 번, 다섯 번, 여섯 번.

3초. 태오의 눈동자가 뒤흔들렸다. 머릿속의 전두엽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지워져 가던 유년의 기억 조각들이 불꽃처럼 튀었다. 그 기억의 틈새에서, 어두운 방 안의 노랫소리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환청이었다. 청각이 마비된 뇌가 만들어내는 마지막 방어 기제였다. 여동생 채영의 목소리였다. 슬프고 나직한 음조의 노래가 태오의 귓가를 무겁게 울렸다.

'오빠... 뒤를 봐...'

태오는 머리를 뜯으며 소리 없는 절규를 내질렀다. 환청은 더욱 뚜렷해졌고, 제어실의 철문 뒤편에서 무거운 발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이것은 카론이 설계한 가스라이팅의 덫인가, 아니면 그가 잃어버린 진실의 문을 여는 열쇠인가. 압력 바늘이 마침내 데드라인을 가리켰다.

바늘이 빨간 선을 넘었다. 밸브가 비명을 질렀다. 태오의 왼손이 움직였다. 망설임은 사치였다. 그는 은도금 라이터를 기어 틈에 박아 넣었다. 정확히 11.3초가 흐른 시점이었다.

콰득, 하는 파열음이 일었다. 강철 톱니가 라이터를 물고 늘어졌다. 은색 표면이 순식간에 찌그러졌다. 금속 마찰음이 사정없이 귓가를 찢었다. 우직한 저항이 손끝을 타고 전해졌다.

유압의 흐름이 강제로 차단되었다. 역회전하던 사슬이 제자리에서 멈췄다. 진수의 목을 조이던 줄이 느슨해졌다. 연희가 바닥으로 주저앉으며 가쁜 숨을 토했다. 그들은 쇳소리 섞인 기침을 쏟아냈다.

"태오... 너...!" 진수의 목소리가 젖어 있었다. 하지만 태오는 답하지 않았다.

단상 위의 박민우가 휠체어에서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의 창백한 얼굴이 보기 좋게 일그러졌다. 눈동자 속의 평온이 박살 났다. 모니터의 수치 변화를 응시하는 눈빛에 균열이 생겼다. 치밀한 수식의 맹점을 찔린 자의 표정이었다.

"기계를 파괴하는 물리적 개입이라니." 박민우의 목소리에서 온기가 말라붙었다. "규칙을 벗어난 발버둥은 종말을 앞당길 뿐이다."

위잉, 위잉. 적색 경고등이 제어실 벽면을 피처럼 적셨다. 압력계의 바늘이 위험 수치를 넘어 요동치기 시작했다. 과부하로 인한 내부 폭발 조짐이었다. 벽면에 매달린 강철 배관들이 팽창하며 진동했다. 바닥의 검은 화학 폐수가 소용돌이치며 사방으로 튀었다.

태오는 무릎을 꿇은 채 바닥을 짚었다. 손가락 마디마다 붉은 액체가 배어 나왔다. 기어에 라이터를 밀어 넣을 때 손톱이 완전히 뒤집힌 탓이었다. 그러나 통증은 뇌까지 도달하지 못했다. 감각의 소멸이 더 빨랐다.

그의 오른손에는 여전히 회중시계가 들려 있었다. 시계의 태엽이 마지막 한 바퀴를 돌았다. 탁. 째깍거리던 톱니의 마찰음이 완전히 멎었다.

정적이 찾아왔다. 기계음도, 매연의 냄새도, 차가운 공기도 느껴지지 않는 절대적인 정적. 감각이 마비된 뇌의 심연이었다. 그 어둠 한가운데서 낯익은 주파수가 격발했다.

귓가가 아닌 머릿속을 직접 흔드는 멜로디. 어린아이의 얇고 슬픈 노랫소리였다. 여동생 채영의 마지막 목소리.

'오빠... 뒤를 봐...'

태오가 머리를 뜯으며 소리 없는 절규를 내지르는 찰나, 그의 등 뒤를 무겁게 울리는 어린 시절 여동생 채영의 마지막 슬픈 노랫소리가 뇌리에서 깊은 환청으로 격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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