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X-10-15 00:06 / 서안 화학공장 지하 제어실, 북위 37.452, 동경 126.701]
태오가 머리를 뜯으며 소리 없는 절규를 내지르는 찰나, 그의 등 뒤를 무겁게 울리는 어린 시절 여동생 채영의 마지막 슬픈 노랫소리가 뇌리에서 깊은 환청으로 격발한다.
고막이 찢어질 듯한 진동이었다. 소리는 귀가 아닌 뇌의 심부에서 솟구쳤다. 태오는 바닥에 이마를 짓개겼다. 콘크리트의 거친 표면이 이마를 긁었다. 붉은 선혈이 바닥에 번졌다. 하지만 통증은 차단되어 있었다. 입안에는 오직 비릿한 구리 맛뿐이었다. 영구 상실된 미각의 잔해였다. 피비린내만이 혀끝을 무겁게 짓눌렀다.
"태오야!" 진수의 목소리가 멀게 들렸다. 물속에서 듣는 것처럼 먹먹한 소리였다. 사슬에서 풀려난 진수가 연희를 부축했다. 연희는 기침을 토하며 바닥을 기었다. 그녀의 목에 선명한 쇠사슬 자국이 남았다. 제어실의 적색 경고등이 분주하게 돌았다. 벽면의 고압 배관들이 비명을 질렀다. 증기가 뿜어져 나와 시야를 가렸다. 공기는 뜨겁고 축축했다.
단상 위의 박민우가 태오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입꼬리가 기괴하게 뒤틀렸다. "규칙을 파괴했다고 믿는가." 박민우의 목소리는 고요했다. "그것 역시 내 설계의 일부다." 그는 휠체어 바퀴를 천천히 굴렸다. 쇠바퀴가 바닥의 폐수를 밟으며 나아갔다. "너는 규칙을 어길 때 가장 완벽해진다." 가스라이팅의 족쇄가 태오의 목을 조였다.
태오는 호흡을 멈췄다. 심장 박동이 분당 140회를 넘어섰다. 뇌세포가 타들어가는 감각이 생생했다. 시뮬레이션의 한계치였다. 이대로 멈추면 진실은 영원히 매몰된다. 태오는 스스로 이성을 포기하기로 했다. 뇌세포의 99%를 오염시키더라도 상관없었다. 오직 박민우의 설계를 해킹해야 했다. 그의 머릿속으로 직접 들어가야 했다.
태오가 눈을 감았다. 손끝이 하얗게 변색되며 굳어갔다. 청각의 마지막 끈이 뚝 끊어졌다. 완벽한 암전. 그리고 강제 기동. '동일시 시뮬레이션.' 광기의 심연으로 스스로 몸을 던졌다.
***
차가운 시멘트 냄새가 코를 찔렀다. 공기는 습했고, 곰팡이 냄새가 섞여 있었다. 20년 전의 시간. 서안구 폐공업지구의 어느 지하실이었다. 사방은 어두웠다. 오직 하나의 전등만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 불빛 아래, 어린 채영이 서 있었다. 그녀의 발목에는 굵은 쇠사슬이 감겨 있었다. 쇠사슬은 천장의 도르래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끝은 거대한 철제 압착기에 닿아 있었다.
태오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작고 여린 십 대 소년의 손이었다. 그 손은 무거운 칼자루 스위치를 쥐고 있었다. 스위치에는 붉은 색 전선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공포가 온몸을 마비시켰다.
"태오야." 어둠 속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젊은 시절의 박민우였다. 그는 신부복을 입고 있었다. 그의 눈빛은 한없이 자애로워 보였다. "규칙은 간단하단다." 박민우가 태오의 어깨를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그의 손길은 따뜻했지만, 소름이 돋았다. "네가 이 스위치를 계속 누르고 있으면, 동생은 안전하단다." 그는 태오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얹었다. "하지만 네 손귀가 풀리는 순간, 사슬은 풀리고 압착기는 작동하지." 박민우가 태오의 귓가에 속삭였다. "이것은 생존의 규칙이다. 규칙에 복종하거라."
태오는 스위치를 움켜쥐었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하얗게 죽어갔다. 채영이 눈물을 흘리며 태오를 바라보았다. "오빠, 힘들어? 나 괜찮아..." 채영의 목소리가 떨렸다. 시간이 흐를수록 손귀의 힘이 빠졌다. 어린 소년의 근력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근육이 비명을 질렀다. 경련이 일어났다.
박민우는 채영을 직접 죽이지 않았다. 그는 단지 규칙을 설계했을 뿐이었다. 스위치를 누르고 버티는 잔혹한 규칙. 태오는 살아남기 위해 기계적 수칙에 매달렸다. 그러나 인간의 육체는 기계가 아니었다. 마침내 손가락의 감각이 마비되었다. 태오의 손끝이 스위치에서 미끄러졌다. 딸깍. 스위치가 올라갔다. 천장의 도르래가 요란하게 회전했다. 사슬이 풀려났다. 압착기가 거대한 굉음을 내며 낙하했다. "아악!" 채영의 비명이 지하실을 찢었다.
태오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살인자는 박민우가 아니었다. 칼자루를 쥐고 동생을 가둔 것은 자신이었다. 자신의 손끝이 스위치를 놓았기 때문에 동생이 죽었다. 박민우는 그 죄책감을 태오의 뇌리에 각인시켰다. 스스로를 괴물로 믿게 만드는 완벽한 교리. "내가... 채영이를 죽였다." 태오의 자아가 밑바닥부터 붕괴하기 시작했다. 광기가 뇌의 전두엽을 잠식해 들어왔다. 스스로 파멸하려는 충동이 일었다.
***
그 어둠의 한가운데였다. 사방이 무너져 내리는 정신의 폐허 속에서. 흔들리는 전등 빛 너머로 채영이 보였다. 그녀는 피를 흘리지 않고 있었다. 그녀의 눈망울은 맑고 투명했다. 슬프지만, 원망이 없는 눈빛이었다. 채영이 태오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녀의 입술이 천천히 움직였다.
'네 탓이 아니다 오빠.'
귓가를 울리는 목소리가 아니었다. 태오의 무의식이 만들어낸 가장 깊은 방벽이었다. 그녀의 목소리가 뇌리에 온전히 안착했다. '오빠는 날 살리려 했어. 그게 전부야.' 따뜻한 온기가 태오의 차가운 뇌 속으로 스며들었다. 죄책감의 사슬이 툭, 하고 끊어졌다.
태오의 호흡이 차분해졌다. 맥박이 정상 궤도로 돌아왔다. 지독한 가스라이팅의 실체가 선명하게 보였다. 박민우는 태오에게 죄책감을 심어 자신을 승계하게 만들려 했다. 스스로를 살인마의 완성체로 믿게 만들려는 연극이었다. 그것은 완벽한 논리가 아니었다. 그저 비열한 심리 장난감에 불과했다.
태오가 눈을 번쩍 떴다. 그의 눈가에는 눈물이 고여 있지 않았다. 오히려 눈동자는 얼음처럼 차갑고 투명했다. 정신의 오염이 씻겨 나가며, 차디찬 이성이 완전히 복구되었다. 태오는 바닥을 딛고 천천히 일어섰다.
***
현실의 제어실이었다. 태오는 박민우를 똑바로 응시했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단호했다. "네 설계는 완벽하지 않다, 박민우." 박민우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무슨 소리냐. 너는 방금 규칙을 파괴했다. 스스로 파멸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태오는 자신의 주머니에서 금이 간 태엽식 회중시계를 꺼냈다. 태엽은 멈춰 있었다. 하지만 태오는 시계를 흔들지 않았다. 대신 시계의 바늘과 톱니의 마찰음의 잔상을 머릿속으로 계산했다. "금이 간 태엽식 회중시계." 태오가 시계를 들어 보였다. "이 시계는 일정한 기계적 톱니 마찰음을 낸다. 1초에 정확히 다섯 번의 마찰음." 그는 시계를 제어 콘솔 위에 내려놓았다. "이것은 단순한 유품이 아니다. 특정한 물리적 주기 한계를 측정하는 기준점이다."
태오가 박민우를 향해 한 걸음 다가갔다. "네 행동 지침서 제4조를 기억한다." 태오의 목소리에 서리가 내렸다. "‘요양원의 모든 감시 장치는 원장의 눈이며, 원장은 태생적으로 맹인이다.’" 박민우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그것은..." "가짜 규칙이 아니었다." 태오가 말을 자르고 들어갔다. "너는 시각 카메라를 쓰지 않았다. 오직 열감지 모니터링 시스템과 특정 주파수 수신기만을 배치했지. 원장이 맹인이라는 것은, 시각 정보를 차단하고 오직 온도와 진동만을 감지한다는 뜻이었다."
태오는 제어 콘솔의 붉은 배관들을 가리켰다. "이 공장 역시 마찬가지다. 센서는 우리의 모습을 보지 않는다. 배관의 온도 변화와 진동 주파수를 감지할 뿐이다." 그는 기어 틈에 박혀 있는 은도금 라이터를 가리켰다. "차진수의 은도금 라이터. 황동에 은을 입힌 물건이지. 반사율은 정확히 95%에 달한다." 태오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그 라이터의 금속 재질과 표면 반사율이 제어 장치의 광학 위치 센서를 일시적으로 교란했다. 그리고 황동의 강도가 기어의 회전을 완벽한 타이밍에 고정시켰지."
태오는 회중시계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튕겼다. "스캔 주기는 15초였다. 열감지 센서가 제어실 내부를 한 바퀴 도는 시간." 태오는 회중시계의 마찰음을 기준으로 정확히 11.3초를 계산해 냈다. "11.3초에 라이터를 박아 넣음으로써, 센서의 스캔 궤적과 기어의 물리적 정지 시점을 완벽하게 일치시켰다. 압력계의 바늘이 빨간 선을 넘은 것은 과부하가 아니다. 센서가 피드백 루프에 빠져 스스로 오작동을 일으킨 것뿐이다."
적색 경고등의 회전 속도가 서서히 느려졌다. 배관의 진동음이 잦아들었다. 증기의 분출이 멈췄다. 폭발의 조짐은 사라지고 있었다. 완벽해 보이던 기계적 트랩이 논리적 모순에 의해 무력화된 것이다.
"말도 안 돼..." 박민우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그의 이마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그가 평생을 바쳐 구축한 '완벽한 논리 규율'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태오는 그의 가스라이팅에 굴복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트랩을 기계적으로 해독해 역으로 털어버렸다.
진수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태오를 바라보았다. "태오야... 너 정말 괜찮은 거냐?" 태오는 진수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그의 눈은 오직 박민우만을 향해 있었다. "너는 나를 괴물로 만들려 했다." 태오의 목소리는 얼음판처럼 차가웠다. "하지만 나는 인간의 방식으로 네 설계를 끝낸다."
박민우는 휠체어에 주저앉은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의 두 눈동자 속에 깃들어 있던 나르시시즘이 산산이 조각났다. 그는 완성체를 원했으나, 돌아온 것은 자신의 설계를 완벽하게 파괴한 집행자였다.
제어실 내부의 열기가 식어가며, 차가운 공기가 가라앉았다. 태오는 입안에서 느껴지는 피 맛을 묵묵히 삼켰다. 미각은 돌아오지 않았다. 청각 역시 여전히 먹먹했다. 하지만 그의 정신은 그 어느 때보다 명징했다.
그때, 제어실 한구석의 잔상 속에서 기이한 왜곡이 일어났다. 동화 시뮬레이션의 영적인 잔상이었다. 주변의 배경이 순간적으로 흐려지며, 20년 전의 지하실 풍경이 겹쳤다. 그 왜곡된 공간 속에서, 박민우가 태오를 향해 천천히 손을 뻗었다.
그의 손에는 낡은 주전자가 들려 있었다. 박민우는 주전자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뜨거운 차를 한 잔 따라 태오에게 권했다. 주전자 끝에서 맑은 찻물이 흘러내려 찻잔을 채웠다. 동시에 태오의 코끝을 강렬하게 자극하는 향이 풍겼다.
깊고 달콤한 향. 그리고 고소하고 풍부한 홍차의 향기였다. 미각과 후각을 완전히 상실한 태오의 뇌리에, 존재할 수 없는 완벽한 단맛의 감각이 격발했다.
박민우가 찻잔을 축배처럼 들어 올리며 나직하게 속삭였다.
"차 한잔하겠나, 나의 후계자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