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202X년 10월 15일 00시 05분. 서안구 신성요양원 3층 세탁 구역. 북위 37° 28' 11", 동경 126° 49' 05"]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하자마자 복도 끝 비상대피 수직 세탁 구역 수거 장치의 기어 배출기가 괴성을 지르며 회전하기 시작한다.

쇠와 쇠가 맞부딪쳤다. 불꽃이 어둠 속에서 튀었다. 고막을 찢는 금속음이 복도를 메웠다. 스프링클러에서 떨어진 물방울들이 회전하는 기어 위로 떨어져 수증기로 변했다. 매캐한 타르 냄새가 섞였다.

태오는 젖은 바닥을 짚었다. 손가락 끝에 감각이 없었다. 감각 마비는 손목을 타고 올라오고 있었다. 이미 혀끝은 아무런 맛도 느끼지 못했다. 입안 가득 고인 침에서 지독한 구리 냄새와 피 맛만 맴돌았다. 미각은 영구히 소실되었다. 이제 청각마저 이명에 잠식당하고 있었다. 삐- 하는 고주파 소음이 머릿속을 찔렀다.

"태오 씨! 일어나요!"

진수가 태오의 어깨를 잡아끌었다. 진수의 손바닥도 젖어 있었다. 진수의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두 사람은 복도 끝 철문을 밀었다. 세탁 기어 작동실이었다.

방 안은 거대한 용광로 같았다. 스팀 배관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가 안개를 만들었다. 방 한가운데에는 거대한 대형 세탁용 콘크리트 수로가 뚫려 있었다. 아래쪽에서 부글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위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강윤성이었다.

윤성은 젖은 이마 위로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그의 손에는 낡은 배전반에서 뜯어낸 굵은 구리 전선이 들려 있었다. 전선 끝에서 푸른 스파크가 튀었다. 그의 발밑에는 수치 조절 계기판이 놓여 있었다. 계기판의 바늘이 붉은 위험 표시 구역을 가리키고 있었다.

"결국 여기까지 왔네."

윤성이 낮게 웃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습한 광기가 묻어났다.

"카론의 규칙을 깼다고 착각하지 마. 너희는 그저 그분이 깔아놓은 레일 위를 달리는 쥐새끼일 뿐이니까."

태오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눈은 윤성의 발밑을 향했다.

콘크리트 수로 바닥. 그곳에는 짙은 황색의 액체가 가득 차 있었다. 기포가 터질 때마다 코를 찌르는 악취가 올라왔다. 고농도 염화수소였다. 수조 가장자리에는 철제 발판이 위태롭게 걸쳐 있었다. 발판은 산성 가스에 부식되어 검게 변해 있었다.

"저 안의 원장 늙은이는 이제 몇 분 안 남았어."

윤성이 벽면에 매달린 수조를 가리켰다. 이중 강화유리 너머로 원장의 얼굴이 보였다. 그의 두 눈은 굵은 검은 실로 기괴하게 꿰매져 있었다. 실 틈새로 붉은 핏물이 흘러내려 뺨에서 굳었다. 허파로 이어지는 고무 호스가 불규칙하게 들썩였다.

붉은 액정의 숫자가 변했다.

[00:02:14]

시간은 멈추지 않았다. 황산 밸브에서 떨어지는 액체가 원장의 어깨 가죽을 녹이고 있었다. 가죽이 흐물거리며 벗겨져 나갔다. 원장의 입이 비명을 지르듯 벌어졌으나, 고무 호스에 가로막혀 어떤 소리도 새어 나오지 못했다.

"카론은 나를 선택했어."

윤성이 전선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내가 그분의 유일한 후계자다. 한태오, 너는 그저 그분이 쓰다 버릴 도구에 불과해. 그런데 왜! 왜 그분은 온통 너만 바라보는 거지?"

윤성의 눈시울이 붉게 충혈되었다. 질투였다. 그것은 논리를 집어삼킨 맹목적인 감정이었다.

"요양원의 모든 감시 장치는 원장의 눈이며, 원장은 태생적으로 맹인이다."

태오가 낮게 읊조렸다. 목소리는 차가웠다. 기계의 마찰음 속에서도 명확하게 전달되었다.

"그 규칙은 가짜가 아니었다. 시각 카메라가 없었을 뿐이지. 너는 원장의 머리맡에 설치된 열감지 모니터링 시스템으로 우리를 감시했다. 온도가 변하는 곳이 곧 침입자의 위치니까. 하지만 그 센서는 빛과 열을 구분하지 못해."

태오가 손을 주머니로 가져갔다. 손가락 끝이 굳어 움직임이 둔했다. 그는 주머니 속에서 묵직한 금속 물체를 꺼냈다.

금이 간 태엽식 회중시계였다. 여동생 채영의 유품이었다.

태오가 회중시계의 용두를 돌렸다.

끼이익, 째깍.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는 마찰음이 시작되었다. 일정한 간격이었다. 태오는 이 소리를 통해 3분이라는 제한 시간의 물리적 주기를 측정했다. 머릿속 시뮬레이션 회로가 가동되었다.

'초당 4회. 1분당 240회의 진동.'

태오는 시계의 소리에 집중했다. 외부의 모든 소음이 차단되었다. 이명이 가라앉고 톱니 소리만이 뇌를 울렸다.

"차 형사님."

태오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윤성에게는 들리지 않을 크기였다.

"라이터를 저에게 넘기십시오."

진수가 주머니에서 은도금 라이터를 꺼냈다. 젖은 손으로 건네받은 라이터는 차가웠고, 묵직했다.

태오는 라이터의 표면을 살폈다. 특수 은도금 처리된 외관. 반사율이 극도로 높았다. 표면에는 미세한 흠집들이 나 있었다. 태오는 그것을 왼손가락 사이에 끼웠다.

"무슨 수작이냐!"

윤성이 소리치며 전기 차단기 레버로 손을 뻗었다.

"이걸 내리는 순간, 저 수조의 밸브가 완전히 열린다. 원장은 10초 안에 뼈만 남게 돼!"

태오가 한 걸음 내딛었다.

"내려라."

태오의 목소리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온도가 영하로 떨어진 것처럼 차가웠다.

"뭐?"

윤성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어차피 너는 카론의 설계도를 이해하지 못했다. 이 장치는 조잡해. 카론은 기하학적인 대칭을 원하지, 이런 감정적인 배설을 원하지 않는다. 너는 그저 질투에 눈이 멀어 수칙을 기웠을 뿐이다."

"입 닥쳐!"

"카론이 너에게 이 요양원을 맡긴 이유를 정말 모르는 건가?"

태오의 발걸음이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갔다. 회중시계의 째깍거리는 소리가 방 안의 스팀 소리를 뚫고 울렸다.

"너는 미끼다. 나를 이곳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소모품. 카론은 내 전두엽이 파괴되는 과정을 관찰하고 싶어 한다. 동일시 시뮬레이션을 쓸 때마다 내 기억이 지워지는 그 과정을 즐기고 있지. 너는 그 실험을 위한 사육사일 뿐이다."

"아니야! 나는 그분의 수제자다! 내가 직접 그분의 가르침을 완성했다!"

윤성이 비명을 질렀다. 그의 이마에 핏대가 솟아올랐다.

"완성? 이 조잡한 수조가?"

태오가 은도금 라이터를 가볍게 튕겼다.

탁.

라이터의 덮개가 열리며 은빛 표면이 스팀 안개 사이로 들어오는 비상구의 붉은 불빛을 반사했다. 붉은 광선이 윤성의 얼굴을 정확히 비췄다.

동시에 태오는 동일시 시뮬레이션을 발동했다.

뇌 신경이 타들어 가는 감각이 전해졌다. 머릿속에서 불꽃이 튀는 듯한 극심한 통증이 일었다. 눈앞이 순간적으로 붉게 물들었다.

'강윤성. 20대 후반. 카론의 그늘 아래서 자란 열등감. 언제나 이인자. 완벽한 논리를 흉내 내지만 본질은 폭력적인 고독감. 그는 카론의 인정을 갈구한다. 자신이 버려졌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그의 자아는 붕괴한다.'

태오는 윤성의 뇌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의 시선, 그의 떨리는 호흡, 그의 손끝에 실린 불안정함을 그대로 복제했다.

"너는 버려졌다, 강윤성."

태오가 윤성의 목소리와 닮은 톤으로 말했다. 그것은 영혼을 긁어내는 속삭임이었다.

"카론은 네가 여기서 죽기를 바란다. 그래야 진짜 계승자인 내가 완성되니까. 너는 그저 내 각성을 돕는 불쏘시개에 불과해. 네가 만든 이 장치? 이건 카론의 규칙이 아니다. 규칙의 모순을 해결할 열쇠는 이미 내 손에 있어."

"그럴 리가 없어... 그분이 나를 버렸을 리가 없다!"

윤성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그의 눈이 초점을 잃고 사방을 헤맸다.

"봐라."

태오가 오른손의 회중시계를 들어 올렸다. 시계의 유리면에 은도금 라이터의 반사광을 맞추었다. 두 개의 금속이 반사한 빛이 굴절되어 방 안의 특정 위치를 가리켰다.

그곳은 수치 조절 계기판 뒤쪽, 벽면 깊숙이 숨겨진 기계식 릴레이 스위치였다.

"카론의 진짜 규칙 제3조."

태오가 거짓 정보를 흘렸다. 카론이 작성하지 않은, 오직 윤성의 불안을 자극하기 위한 가짜 규칙이었다.

"’조력자는 빛이 사라질 때 비로소 자신의 위치를 찾는다.‘ 너는 이 릴레이 스위치가 빛에 노출되면 폭주하도록 설계된 카론의 진짜 트랩을 몰랐겠지. 너를 죽이기 위한 카론의 안전장치다."

"거짓말!"

윤성이 배전반을 붙잡은 채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시선이 태오가 비춘 붉은 반사광을 따라갔다. 실제로 그곳에는 릴레이 스위치가 존재했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전원 분배기일 뿐이었다. 광센서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극도의 압박감과 열등감에 사로잡힌 윤성의 뇌는 논리적 판단을 멈췄다. 질투심이라는 용광로가 그의 이성을 완전히 녹여버렸다.

"아니야... 그분이 나를 죽이려 할 리가 없어! 내가 증명하겠다! 내가 더 완벽하다는 것을!"

윤성이 폭주했다. 그는 배전반의 구리 전선을 쥔 채 계기판으로 달려들었다. 수치를 강제로 조작해 자신이 설계한 규칙의 우월함을 증명하려 했다.

"안 돼! 멈춰!"

진수가 소리치며 앞으로 나가려 했으나, 태오가 그의 팔을 강하게 붙잡았다. 태오의 손아귀 힘은 비정상적으로 강했다. 감각이 마비된 상태에서 근육의 제어 장치가 풀린 탓이었다.

"가만히 계십시오."

태오의 눈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윤성이 계기판의 다이얼을 움켜잡았다. 그러나 그의 손은 이미 땀과 스팀의 수분으로 젖어 있었다. 구리 전선에서 흐르던 고압 전 전류가 젖은 손을 타고 흘렀다.

치지직-!

"아아악!"

윤성의 몸이 크게 경련했다. 전신을 관통한 전류가 그의 근육을 강제로 수축시켰다.

균형을 잃은 그의 몸이 뒤로 크게 꺾였다. 발밑의 부식된 철제 발판이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찢어지는 소리를 냈다.

깡-!

철판이 휘어지며 윤성의 몸이 공중으로 떴다.

그의 아래에는 부글거리는 고농도 염화수소 수조가 기다리고 있었다.

"어... 어?"

윤성의 눈에 극도의 공포가 서렸다. 그는 허공을 향해 손을 뻗었으나, 잡히는 것은 뜨거운 스팀 안개뿐이었다.

풍덩-!

윤성의 몸이 황색 액체 속으로 처박혔다.

순간, 쉭- 하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화학 반응이 일어났다. 수조 전체에서 흰 연기가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아아아아악! 뜨거워! 살려줘! 살려줘어어!"

윤성이 수조 위로 얼굴을 내밀며 절규했다.

그의 얼굴 피부가 순식간에 붉게 변하더니, 진흙처럼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머리카락은 이미 녹아 없어졌고, 두 눈은 하얗게 변색되어 멀어버렸다. 염화수소가 그의 안구와 점막을 순식간에 태워버린 것이다.

진수가 충격으로 뒤로 물러섰다.

"태오 씨... 이건..."

태오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는 회중시계를 주머니에 넣었다. 시계의 째깍거리는 소리가 멈췄다.

수조 안의 원장을 가리키던 타이머가 멈췄다.

[00:00:12]

강윤성이 수치를 조작하려던 순간, 메인 제어 장치의 전선이 합선되면서 전체 시스템이 락(Lock) 상태로 전환된 것이었다. 황산 밸브가 닫혔고, 수조의 물이 배수되기 시작했다.

원장은 살았다. 비록 피부의 일부가 손상되었으나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태오의 시선은 오직 염화수소 수조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윤성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윤성의 비명 소리가 점점 가늘어졌다. 그의 목소리는 더 이상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뼈가 녹아내리는 극심한 고통 속에서, 그는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 수조 가장자리를 붙잡았다.

녹아내린 손가락 뼈가 콘크리트 벽을 긁으며 붉은 자국을 남겼다.

"카... 카론... 님..."

윤성이 피를 토해냈다.

그의 입에서 붉은 선혈과 함께 무언가 튀어나왔다.

툭.

그것은 둥글고 작은 금속 구슬 같았다. 피로 물든 구슬이 콘크리트 바닥을 타고 굴러왔다.

태오의 구둣발 바로 앞이었다.

태오가 몸을 숙였다. 마비된 손가락으로 그것을 집어 올렸다.

단순한 금속 구슬이 아니었다. 외피가 가공된, 초소형 마이크로 메모리 칩이었다. 윤성이 죽기 직전까지 입안에 숨겨두었던 마지막 유산이었다.

칩 표면에는 기계로 정교하게 음각된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C]

카론의 표식이었다.

태오가 칩을 쥐자, 머릿속에서 다시 한번 강한 이명이 울렸다. 지워진 유년기의 기억 한 조각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하얀 방. 냄새. 그리고... 내 손을 잡던 차가운 손가락.'

태오의 눈동자가 깊게 흔들렸다.

수조 속에서 윤성의 손이 힘없이 풀어졌다. 그의 몸이 서서히 황색 액체 속으로 가라앉았다. 기포가 몇 번 더 터지더니, 이내 사방이 고요해졌다.

진수가 거친 숨을 내쉬며 태오의 곁으로 다가왔다.

"끝... 끝난 겁니까?"

태오는 대답하지 않았다. 손바닥 안의 메모리 칩이 살을 파고들 듯 차가웠다.

그때, 작동실 구석에 방치되어 있던 구형 무전기에서 치이익 하는 송신음이 울렸다.

- ...태오야.

낮고 친근한, 신부와도 같은 온화한 목소리.

진수의 몸이 굳었다.

카론이었다.

- 첫 번째 유산을 손에 넣었구나. 축하한다.

목소리는 차가운 기계음을 타고 흘러나와, 방 안의 열기를 단숨에 얼려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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