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X년 10월 15일 00시 12분. 서안구 신성요양원 3층 약제실 복도(북위 37°28'41", 동경 126°49'15").
어둠은 질척했다. 공기는 차갑게 내려앉았다. 먼지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때, 진수가 어둠 속에서 다급하게 한 걸음 뒤로 물러서자마자 무엇인가 팽팽한 특수 나일론 선이 발가락 끝에 스치며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팽팽해진다.
"팅-"
어둠을 찢는 비명이었다. 매끄러운 마찰음이 일었다. 실이 극도로 긴장했다. 천장에서 기계가 돌았다. 도르래가 톱니를 물었다. 지직거리는 소음이 퍼졌다. 인장선이 당겨지고 있었다.
진수의 몸이 굳었다. 그의 호흡이 멈췄다.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식은땀이 뺨을 타고 흘렀다. 바닥으로 떨어지는 땀방울. 그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태오의 청각은 멀어져 갔다. 오른쪽 귀의 이명만이 솟구쳤다. 삐이- 하는 고주파의 소음. 뇌를 송곳으로 찌르는 통증. 하지만 고통은 느껴지지 않는다. 미각도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혀끝은 그저 딱딱한 가죽 같다. 아무런 맛도, 감각도 없다. 오직 시각만이 기괴하게 선명했다.
태오는 멈추지 않았다. 뇌세포가 기계적으로 회전했다. 지형지물이 머리에 그려졌다. 강윤성이 설계한 덫의 구조. 그것은 단순한 살인 도구가 아니다. 기하학적인 규칙의 산물이다. 선이 끊어지면 장치가 작동한다. 무게를 감지하는 압력 센서. 천장에 매달린 살상용 금속 추. 그것이 낙하할 궤적이 보였다. 진수의 머리 바로 위였다.
시간은 단 2초도 남지 않았다. 움직여야 했다. 하지만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인장선은 투명한 탄소강이다. 빛을 흡수하는 특수 재질. 어디를 지나가는지 알 수 없다. 잘못 건드리면 즉사였다.
태오의 손이 움직였다. 자신의 주머니가 아니었다. 옆에 굳어 있는 진수를 향했다. 손끝이 하얗게 변색되어 있었다. 촉각이 둔해진 손가락. 그럼에도 정확하게 파고들었다. 진수의 가죽 재킷 오른쪽 주머니. 그 안에 든 묵직한 금속체.
척.
태오의 손아귀에 잡혔다. 은도금 라이터였다. 진수가 습관처럼 튕기던 물건. 재질은 백동에 은을 입혔다. 표면의 반사율이 극도로 높다. 태오는 라이터를 낚아챘다. 진수가 헛숨을 들이켰다.
"태, 태오 씨……?"
태오는 대답하지 않았다. 라이터를 공중으로 던졌다. 아니, 비스듬히 치켜들었다. 그의 시선이 복도 끝을 향했다. 붉은빛이 깜빡이고 있었다. 비상구의 피난 유도등이었다. 유일한 광원이었다.
태오는 손목을 꺾었다. 라이터의 곡면이 빛을 받았다. 미세하게 깎인 은도금 표면. 그 표면이 붉은빛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굴절시켰다.
번쩍.
어둠 속에서 붉은 광선이 뻗었다. 라이터가 반사한 가늠자였다. 광선은 허공을 가로질렀다. 먼지 가득한 밤공기 속. 보이지 않던 실선이 나타났다. 붉고 투명한 궤적이었다. 실은 진수의 발목에서 시작됐다. 사선으로 올라가 천장으로 이어진다. 지름 0.2밀리미터의 탄소강 선. 그것이 붉은 형광처럼 타올랐다.
정확한 좌표가 확보되었다. 제어 장치의 위치도 드러났다. 바닥 모퉁이의 작은 상자. 붉은 반사광의 굴절 각도. 그 각도가 꺾이는 종착지. 그곳에 수신기 칩셋이 있었다.
태오는 왼손을 뻗었다. 여동생의 유품을 쥐었다. 금이 간 태엽식 회중시계. 시계는 주머니 속에서 돌았다. 째깍, 째깍, 째깍. 규칙적인 기계적 마찰음. 태오의 뇌가 소리를 세었다. 1초에 네 번의 마찰음. 현재 도르래의 회전 속도. 인장선이 완전히 당겨지기까지. 남은 시간은 정확히 1.2초.
태오는 몸을 날렸다. 진수의 어깨를 강하게 밀쳤다. 인정사정없는 힘이었다. 체중을 온전히 실은 타격.
쿡.
진수가 비명을 지르며 넘어졌다. 바닥으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동시에 태오의 오른발이 뻗었다. 구두굽이 공기를 갈랐다. 목표는 붉은 광선이 닿은 모퉁이. 회색 플라스틱 제어 상자였다.
콰직-!
둔탁한 파쇄음이 울렸다. 구두굽이 상자를 정확히 짓갰다. 내부의 웨이퍼가 바스러졌다. 구리 도선이 찢겨 나갔다. 칩셋이 박살 났다.
순간, 기계음이 멈췄다. 천장의 도르래가 헛돌았다. 팽팽하던 탄소강 선이 늘어졌다. 스르륵 하며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죽음의 덫이 힘을 잃었다.
복도에 정적이 찾아왔다. 두 사람의 거친 호흡만 남았다. 아니, 호흡하는 것은 진수뿐이었다. 태오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저 차갑게 식은 눈으로 바닥을 보았다.
진수가 바닥을 기며 일어섰다. 그는 자신의 가슴을 움켜쥐었다. 심장이 터질 듯 요동치고 있었다. 그가 태오를 올려다보았다. 경악과 공포가 뒤섞인 눈빛. 그의 시선이 태오의 손으로 향했다. 태오는 은도금 라이터를 쥔 채였다.
"너…… 미쳤어?"
진수의 목소리가 떨렸다. "방금…… 방금 무슨 짓을 한 거야?"
태오는 아무런 대꾸도 안 했다. 그저 라이터를 진수에게 던졌다. 금속체가 허공을 날았다. 진수가 본능적으로 그것을 받았다. 라이터의 표면은 차가웠다. 하지만 진수의 손바닥은 뜨거웠다. 그는 라이터를 움켜쥐었다. 그의 손끝이 잘게 떨리고 있었다.
"이게…… 보였다고?"
진수가 물었다. 어둠 속에서 반사광을 이용한 추리. 그것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었다. 기계적인 계산의 영역이었다. 진수는 침을 삼켰다. 목구멍이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그는 깨달았다. 태오가 없었다면 자신은 죽었다. 머리가 깨진 채 시신으로 남았을 것이다. 지독한 빚이었다. 법을 수호하겠다던 형사였다. 하지만 지금은 괴물의 손에 구해졌다. 그 사실이 진수를 짓눌렀다.
태오는 시계를 주머니에 넣었다. 금이 간 유리를 손끝으로 쓸었다. 마찰음은 여전히 일정했다. 시계의 소리는 심장박동 같았다. 자신의 심장은 뛰지 않는 것 같았다. 가슴속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요양원의 모든 감시 장치는 원장의 눈이며, 원장은 태생적으로 맹인이다.'
머릿속에서 카론의 수칙이 스쳤다. 7화에서 보았던 기괴한 조항. 맹인인 원장의 눈.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시각이 아닌 다른 감각. 강윤성은 이 요양원을 설계했다. 카론의 가르침을 따라서. 그렇다면 이곳의 감시 카메라는 진짜가 아니다. 시각적 감시가 아니다. 온도 혹은 다른 물리적 변화. 태오는 눈을 가늘게 떴다. 감각이 사라질수록 이성은 날카로워졌다. 미각은 완전히 소멸했다. 청각도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이것이 동일시 시뮬레이션의 대가다. 범인의 광기에 오염되는 과정. 하지만 멈출 수 없다. 끝을 봐야 했다.
"움직여야 합니다."
태오가 건조하게 뱉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높낮이가 없었다. 감정이 소거된 기계의 음성.
진수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일어섰다. 바지를 털어낼 여유도 없었다. 그의 손가락이 라이터를 꽉 쥐었다. 은도금 라이터의 감촉이 평소와 달랐다. 그것은 이제 단순한 기호품이 아니었다. 자신의 생존을 확인하는 증거였다.
두 사람은 다시 걷기 시작했다. 복도는 끝이 보이지 않았다. 사방에서 곰팡이 냄새가 풍겼다. 벽면의 페인트가 부스러져 내렸다. 바닥의 타일은 축축했다. 모든 것이 썩어가고 있었다. 이 요양원 전체가 거대한 무덤이었다. 강윤성이 준비한 사냥터.
태오의 머릿속 지도가 갱신되었다. 약제실 복도가 끝나는 지점. 그곳에는 비상대피 구역이 있다. 수직으로 연결된 세탁물 수거 통로. 그곳을 지나야 출구로 갈 수 있다.
째깍, 째깍, 째깍.
회중시계가 시간을 새겼다. 주기 한계가 다가오고 있었다. 이 공간의 생존 유효 시간. 강윤성이 설정한 타임아웃. 그것이 얼마 남지 않았다.
태오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진수도 묵묵히 그 뒤를 따랐. 그의 의구심은 깊어졌다. 태오의 신체 상태가 정상이 아니다. 움직임이 미세하게 어긋나고 있었다. 오른발을 디딜 때마다 아주 미세한 지체. 감각 마비가 운동 영역까지 침범하고 있었다. 진수는 그것을 눈치챘다. 하지만 묻지 않았다. 물어볼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모퉁이를 돌았다. 비상대피 수직 세탁 구역이 나타났다. 철제 문이 반쯤 열려 있었다. 어둠 속에서 거대한 아가리처럼 보였다. 안쪽에서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다. 지하에서 올라오는 습한 공기였다.
태오가 문 앞에 멈춰 섰다. 그의 손이 다시 시계로 향했다. 소리가 변하고 있었다. 마찰음의 주파수가 달라졌다. 기압의 변화였다.
그때였다.
철제 문 너머 깊은 어둠 속. 수직 수거 통로의 바닥 쪽이었다. 거대한 쇳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
지진이 일어난 듯 바닥이 떨렸다. 기어 배출기가 회전하는 소리였다. 날카로운 금속 마찰음이 고막을 찔렀다. 녹슨 톱니바퀴들이 서로를 맞물며 돌아갔다. 괴성이 복도를 가득 채웠다.
진수의 얼굴이 다시 굳어졌다. "이건 또 뭐야……."
수거 장치의 배출구가 열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무언가 거대한 힘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바람이 솟구쳤다. 수거구에서 강한 흡입력이 발생했다. 공기가 빨려 들어갔다. 바닥의 먼지가 휘날렸다. 태오의 옷자락이 펄럭였다. 귀가 먹먹해졌다. 이명이 고조되었다.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 진수가 벽을 잡았다.
"몸이 밀려납니다!"
그의 비명은 묻혔다. 소음이 모든 것을 삼켰다. 태오는 바닥을 보았다. 그의 오른발이 미끄러졌다. 감각이 없는 다리였다. 버틸 힘이 없었다. 몸이 통로로 끌려갔다. 진수가 태오의 팔을 잡았다.
"정신 차려요!"
진수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 역시 버티기 힘겨웠다. 태오는 통로 내부를 응시했다. 어둠 속에서 회전하는 칼날. 대형 세탁물 분쇄기였다. 빨려 들어가면 분쇄된다. 그 위에 센서가 보였다. 붉은 유도등 빛이 닿지 않는 곳. 금속 그물망으로 덮인 소자. 일반 카메라가 아니었다. 열감지 센서였다.
태오의 머리가 빠르게 돌았다.
'요양원의 모든 감시 장치는 원장의 눈이며, 원장은 태생적으로 맹인이다.'
카론의 수칙이 머릿속에서 맞춰졌다. 시각이 아닌 열을 본다. 침입자의 체온을 감지했다. 그래서 기계가 작동했다. 그렇다면 해결책도 하나다. 센서를 교란해야 한다.
태오가 진수를 보았다. 목소리를 높였다.
"라이터."
진수가 움찔했다.
"뭐라고요?"
"라이터를 켜십시오."
"이 상황에서?"
"안으로 던져야 합니다."
진수의 동공이 흔들렸다. 하지만 그는 망설이지 않았다. 은도금 라이터를 쥐었다. 부싯돌을 강하게 튕겼다.
탁.
불꽃이 가늘게 피어올랐다. 진수가 그것을 통로로 던졌다. 불꽃이 포물선을 그렸다. 빨려 들어가는 바람을 탔다. 불꽃이 센서 바로 앞으로 날아갔다.
순간, 센서가 강한 열을 인지했다. 기계의 제어 장치가 오작동했다. 소화용 비상 정지 회로. 그것이 강제로 개입했다.
덜컹-!
거대한 충격음이 울렸다. 회전하던 칼날이 멈췄다. 흡입력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바람이 잦아들었다. 사방이 고요해졌다.
천장에서 물이 쏟아졌다. 화재 진압용 스프링클러였다. 차가운 물줄기가 뺨을 때렸다. 옷이 순식간에 젖어 들었다. 태오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피부가 차갑게 굳어갔다. 온도마저 느껴지지 않았다. 몸의 붕괴가 진행 중이었다.
진수가 거칠게 숨을 쉬었다.
"하아, 하아…… 살았군."
그가 젖은 머리를 쓸어올렸다. 물이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통로 내부의 그을음이 씻겼다. 녹물과 함께 오물이 씻겨 내려갔다.
그때, 태오의 시선이 멈췄다. 통로 안쪽의 벽면이었다. 젖은 철판 너머. 이중 강화유리가 드러났다. 스프링클러 물줄기에 씻긴 창. 그 안쪽에 무언가 있었다.
좁은 밀폐용 수조였다. 물이 가득 차 있었다. 그 물속에 사람이 있었다. 벌거벗은 몸이었다. 피부는 하얗게 불어 터졌다. 두 눈은 실로 기괴하게 꿰매져 있었다. 신성요양원의 원장이었다. 그가 살아 있었다. 허파에 연결된 고무 호스. 그것으로 간신히 숨을 쉬고 있었다.
그의 머리맡에 장치가 보였다. 디지털 액정 화면이었다. 붉은 숫자가 깜빡였다.
[00:03:00]
시간이 줄어들고 있었다. 수조 아래쪽 밸브가 열렸다. 노란색 액체가 흘러들기 시작했다. 황산이었다. 원장의 피부가 녹기 시작했다.
동시에 복도 스피커가 켜졌다. 치이익 하는 기계음. 익숙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강윤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