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X년 10월 15일 00시 10분. 신성요양원 3층 격리병동 복도 (37.5665, 126.9780)
순간, 격실 램프가 급작스럽게 명멸하더니 약제실 복도 저 끝에서 휠체어를 거꾸로 밀며 기어 오는 정체불명의 거대한 그림자가 나타난다.
드르륵. 드르륵.
철제 바퀴가 바닥을 긁는다.
소름 끼치는 마찰음이다.
진수가 라이터를 쥔 손을 굳힌다.
엄지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린다.
탁. 탁.
불꽃이 명멸한다.
어둠이 방을 삼키기 시작한다.
배전반에서 불꽃이 튀는 소리가 들렸다.
지직, 지지직.
완전한 암전이 찾아온다.
비상등의 붉은빛마저 죽었다.
눈앞이 완전히 지워진다.
공기가 무겁게 내려앉는다.
습하고 차가운 냄새가 코를 찌른다.
태오는 호흡을 멈춘다.
동공이 최대한 확장된다.
하지만 빛은 존재하지 않는다.
완벽한 어둠이다.
그때, 천장의 스피커가 지지직 소리를 낸다.
기계음이 흘러나온다.
노이즈가 심하게 섞인 목소리다.
강윤성의 음성이 아니다.
미리 녹음된 기계적인 안내음이다.
[수칙 제9호.]
목소리가 복도에 울린다.
[암전 상태에서는 벽을 두 번 두드려라. 그 뒤 3걸음 전진하라. 마지막으로 시선을 바닥으로 꺾어라.]
안내가 끝난다.
스피커는 다시 침묵한다.
드르륵, 슥, 드르륵.
어둠 속에서 바퀴 소리가 다시 가까워진다.
그림자의 정체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진수의 거친 숨소리가 들린다.
그의 심장 박동이 빨라진다.
두려움이 공기를 채우고 있다.
태오는 자신의 입안을 느낀다.
아무런 맛도 나지 않는다.
침에서 오직 쇠 냄새와 구리 맛만 느껴진다.
영구적인 미각 상실이다.
그것은 뇌세포가 죽어간다는 증거다.
청각도 한쪽이 먹먹하다.
이명이 머릿속을 찌른다.
삐- 하는 높은 주파수 음이 고막을 흔든다.
손끝은 이미 감각이 없다.
마치 남의 손가락뼈를 만지는 기분이다.
감각이 지워지고 있다.
이성이 무너져 내린다.
하지만 태오는 멈추지 않는다.
오히려 지워진 감각 위로 기하학적인 연산이 선명해진다.
태오는 주머니로 손을 뻗는다.
손가락 끝에 금속의 차가움이 닿는다.
여동생 채영의 유품이다.
금이 간 태엽식 회중시계.
태오는 시계를 꺼낸다.
태엽을 끝까지 감는다.
차카칵, 차카칵.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일정한 마찰음이다.
째깍, 째깍, 째깍.
초당 정확히 5번의 마찰이 발생한다.
이 소리는 완벽하게 일정한 물리적 주기를 가진다.
태오는 눈을 감는다.
시각을 완전히 차단한다.
어둠 속에서 청각의 톱니 소리에만 집중한다.
시계의 마찰음이 뇌 속에서 파동으로 변한다.
태오는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시작한다.
범인의 시각을 복제한다.
강윤성의 질투와 광기가 뇌로 흘러든다.
머리가 깨질 듯 아프다.
눈뒤쪽에서 핏줄이 터지는 느낌이 난다.
하지만 참아야 한다.
윤성은 왜 암전 규칙을 만들었는가.
벽을 두 번 두드려라.
3걸음 전진하라.
시선을 바닥으로 꺾어라.
이것은 생존을 위한 자비가 아니다.
기만이다.
벽을 두드리는 행위는 진동을 유발한다.
진동은 소리를 낳는다.
태오는 복도의 구조를 떠올린다.
이곳은 신성요양원 3층 격리 복도다.
벽면은 얇은 석고보드로 마감되어 있다.
두드리면 소리가 크게 울린다.
초음파 센서나 진동 센서가 있을 가능성이 크다.
아니다.
포토 소자 센서다.
빛의 변화를 감지하는 센서가 숨겨져 있다.
암전 상태에서 인간은 본능적으로 빛을 찾는다.
진수의 손에 들린 은도금 라이터.
그 라이터의 금속 표면이 빛을 반사한다.
미세한 불꽃이라도 센서에 닿으면 트랩이 작동한다.
조금만 움직여도 그림자의 좌표가 어긋난다.
센서는 바닥에 깔려 있다.
지뢰형 포토 소자 센서다.
시선을 바닥으로 꺾으라는 규칙은 함정이다.
바닥을 보기 위해 고개를 숙이는 순간, 신체의 무게중심이 앞으로 쏠린다.
발바닥에 가해지는 압력이 변화한다.
압력식 지뢰가 작동하게 만드는 유도 장치다.
교묘한 왜곡이다.
태오는 회중시계의 마찰음을 기준으로 삼는다.
째깍하는 소리가 한 번 날 때마다 센서의 신호 주기를 계산한다.
포토 센서는 일정한 주기로 빛을 스캐닝한다.
그 주기는 1.2초다.
회중시계가 여섯 번 째깍거릴 때마다 한 번씩 센서의 감시망이 열린다.
그 틈을 타야 한다.
태오는 오른손을 뻗는다.
어둠 속에서 진수의 팔을 찾아낸다.
진수의 가죽 재킷이 손끝에 닿는다.
감각이 무뎌서 두꺼운 종이를 만지는 것 같다.
하지만 태오는 강하게 힘을 준다.
진수의 팔을 꽉 틀어쥐었다.
"으읍……!"
진수가 신음 소리를 삼킨다.
그의 몸이 긴장으로 단단하게 굳어 있다.
"태오야, 이거 놓아라. 지금 저기서 무언가……."
"움직이지 마십시오."
태오의 목소리는 차갑다.
온도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기계의 작동음과 같다.
"내 목소리에만 맞추십시오."
"뭐라고?"
"바닥을 보지 마십시오."
태오는 진수의 어깨를 강하게 내리누른다.
"시선을 수평으로 유지하십시오. 라이터는 주머니에 넣으십시오."
"하지만 앞이 안 보여. 불빛이 없으면……."
"빛이 있으면 죽습니다."
태오의 단호한 태도에 진수가 침을 삼킨다.
꿀꺽하는 소리가 어둠 속에 크게 울린다.
드르륵. 드르륵.
휠체어 소리가 이제 5미터 앞까지 다가왔다.
바닥을 기는 거대한 그림자의 냄새가 풍긴다.
썩은 소독약 냄새와 피비린내다.
정상적인 인간이 아니다.
윤성이 보낸 사냥개들이다.
그들은 어둠 속에서도 우리를 보고 있다.
야간 투시경을 쓰고 있거나, 소리에 반응하고 있다.
"벽을 두드리지 마십시오."
태오가 나직하게 속삭인다.
"수칙은 거짓입니다. 벽을 두드리는 순간 진동 감지기가 폭탄의 신호기를 깨웁니다."
진수의 몸이 잘게 떨린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해?"
"제가 걷는 대로만 걸으십시오."
태오는 회중시계를 귀에 바짝 가져다 댄다.
째깍, 째깍, 째깍.
톱니가 맞물린다.
지금이다.
"왼발, 40센티미터 앞으로."
태오가 먼저 발을 내딛는다.
그의 발끝이 차가운 타일 바닥을 구른다.
소리를 내지 않는다.
뒤꿈치부터 천천히 무게를 분산시킨다.
진수가 태오의 움직임을 따라 발을 움직인다.
바스락거리는 옷자락 소리가 난다.
태오는 미간을 찌푸린다.
"소리를 줄이십시오. 호흡을 멈추십시오."
"태오 너…… 미친 거냐? 이 상황에서……."
"살고 싶으면 제 명령에 복종하십시오."
태오의 목소리에는 자비가 없다.
오직 생존을 위한 프로토콜만 존재한다.
째깍, 째깍, 째깍.
회중시계의 주기가 다시 돌아온다.
포토 센서의 스캔 라인이 두 사람의 발밑을 지나간다.
태오는 센서의 붉은 광선이 바닥을 훑는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린다.
동일시 시뮬레이션이 그의 뇌 속에 가상의 격자 지도를 그린다.
격자 위로 붉은 점들이 깜빡인다.
그 점들 사이로 좁은 틈이 보인다.
폭은 정확히 15센티미터.
그 틈새만이 안전지대다.
"오른발, 대각선 오른쪽으로 20센티미터."
태오가 지시한다.
진수가 다리를 움직인다.
그의 허벅지 근육이 팽팽하게 긴장하는 것이 태오의 손끝으로 전해진다.
드르륵!
갑자기 휠체어 소리가 빨라진다.
어둠 속에서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난다.
무언가 빠른 속도로 돌진해 오고 있다.
"태오야! 온다!"
진수가 소리치며 권총을 뽑으려 한다.
"움직이지 마십시오!"
태오가 진수의 팔을 더 강하게 꺾어 누른다.
"총을 쏘는 순간 섬광이 터집니다. 센서가 반응해 천장이 무너질 겁니다."
"그럼 그냥 당하라는 거야?"
"제 지시에 따르십시오."
태오는 회중시계의 째깍거리는 주파수를 강제로 높인다.
손가락으로 시계 태엽을 미세하게 조정한다.
카카칵.
금속음이 어둠 속으로 퍼진다.
그 순간, 돌진해 오던 휠체어가 멈칫한다.
금속 마찰음이 그들의 청각을 교란한 것이다.
태오는 공기의 흐름을 읽는다.
왼쪽 45도 방향에서 공기가 압축되고 있다.
인간의 신체가 빠르게 다가올 때 발생하는 마찰이다.
강윤성의 하수인이다.
어둠 속에서 이빨을 드러낸 사냥개.
태오는 눈을 감은 채로 진수의 귀에 대고 빠르게 속삭인다.
"우측 30도 방향. 높이는 120센티미터. 발을 움직이지 말고 상체만 돌려 주먹을 지르십시오."
"뭐?"
"지금입니다!"
진수는 본능적으로 태오의 말을 따랐다.
그는 평생 현장을 누벼온 베테랑 형사다.
몸이 먼저 반응한다.
진수가 상체를 비틀며 어둠 속으로 주먹을 날린다.
퍽!
둔탁한 타격음이 복도에 울린다.
누군가의 턱뼈가 부서지는 소리다.
"커헉!"
비명과 함께 덩치 큰 사내의 신체가 바닥으로 쓰러진다.
쿠당탕!
사내가 쓰러지며 바닥의 포토 센서 영역을 덮친다.
하지만 태오는 이미 다음 좌표를 계산했다.
"왼발, 앞으로 50센티미터. 뛰십시오!"
태오가 진수의 덜미를 잡고 앞으로 밀쳤다.
두 사람이 동시에 허공을 날았다.
바닥에 쓰러진 사내의 몸이 센서를 건드린 순간이었다.
치이이익!
벽면에서 고압의 가스가 분사되는 소리가 들렸다.
황산 성분이 섞인 부식성 가스다.
조금만 늦었어도 얼굴이 녹아내렸을 것이다.
두 사람은 가스 구름이 퍼지기 직전, 안전 구역으로 착지했다.
진수가 거칠게 숨을 몰아쉰다.
"하아, 하아……."
그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려 바닥에 떨어진다.
툭.
물방울이 타일에 닿는 소리가 태오의 귀에 선명하게 꽂힌다.
청각이 일시적으로 극대화되었다가 다시 멀어진다.
오른쪽 귀에서 다시 이명이 시작된다.
태오는 입술을 깨문다.
비린 맛이 느껴지지 않는다.
피가 흐르고 있을 텐데도 아무런 맛이 없다.
감각의 상실이 가속화되고 있다.
자아의 일부가 지워지고 있다.
여동생 채영의 얼굴이 점점 더 희미해진다.
그녀의 눈망울이 안개 속으로 사라진다.
슬픔을 느껴야 한다.
하지만 가슴속은 차갑게 식어 있을 뿐이다.
오직 머릿속의 기계적 회로만이 작동한다.
태오는 시계를 다시 본다.
유리창에 금이 간 시계 바늘은 여전히 돌고 있다.
"가야 합니다."
태오가 말한다.
"윤성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진수가 어둠 속에서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느껴진다.
그는 이제 태오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다.
아니, 두려워하고 있다.
어둠 속에서 불빛 하나 없이 모든 함정을 피해 가는 태오의 모습은 인간의 그것이 아니다.
괴물이다.
괴물의 안내를 받으며 진수는 걸음을 옮긴다.
복도는 여전히 칠흑 같다.
하지만 태오의 머릿속에서는 모든 지형이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다.
그것은 광기가 만들어낸 완벽한 지도다.
두 사람은 서서히 전진한다.
한 걸음.
두 걸음.
째깍, 째깍, 째깍.
회중시계의 마찰음이 그들을 인도한다.
어둠 속의 무용은 계속된다.
윤성의 덫은 정교하지만, 기계적인 규칙에 불과하다.
태오는 그 규칙 위를 걷고 있다.
그들의 발걸음이 약제실 복도의 중간 지점을 넘어선다.
출구가 멀지 않다.
그때였다.
진수가 긴장이 풀린 탓인지, 발을 잘못 디뎠다.
바닥의 작은 타일 모서리에 구두 끝이 걸렸다.
"엇……."
진수의 몸이 휘청인다.
그가 균형을 잡기 위해 다급하게 한 걸음 뒤로 물러선다.
그의 오른발 뒤꿈치가 바닥의 틈새를 밟았다.
태오의 동공이 수축한다.
안 돼.
어둠 속에서 아주 미세한 소리가 들렸다.
무언가 팽팽한 특수 나일론 선이 발가락 끝에 스친다.
팅- 하는 날카로운 마찰음이 복도의 침묵을 깬다.
실이 팽팽해진다.
압력 센서와 연결된 인장선이다.
도르래가 돌아가는 소리가 지직거리며 천장에서 울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