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동반 소멸이다, 벌레 같은 놈들!"

처형 기사단의 부단장이 피를 토하며 중앙 기단의 제어반을 사정없이 내리쳤다. 그의 손가락 끝에서 흘러나온 마나가 기단 아래 매설되어 있던 수십 개의 인위적 포맷 기폭핵 장치로 사납게 흘러들었다.

삐이이이이—!

고막을 찢는 듯한 고주파 전자음이 동굴 벽면을 타고 공명했다. 반경 50미터 내의 화강암 대지가 일제히 적색 격자무늬로 발광하기 시작했다. 기폭핵 장치들이 일제히 과충전 모드에 돌입한 것이다. 던전의 물리적 공간을 구성하는 고차원 마나 데이터가 임계점을 넘어 스스로를 파괴하는 연쇄 반응이었다. 대기 중의 산소가 순식간에 연소하며 진공 상태의 충격파가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한태령과 그의 연합 길드원들이 무기를 고쳐 쥐기도 전에, 기단의 열압축 공기가 도진과 설아의 안면을 덮쳤다. 대피할 수 있는 물리적 시간은 0.42초에 불과했다. 폭발의 에너지 총량은 주위의 모든 유기체와 무기체를 분자 단위로 분해하기에 충분한 수치였다.

도진의 안경 화면 너머로 적색 경고등이 미친 듯이 점멸했다.

[경고: 인위적 포맷 기폭핵 32개 파괴적 가동.] [예상 에너지 방출량: 4.8 * 10^9 kcal.] [영향 범위 내 생명체의 생존 확률: 0.00%]

"도진 씨!"

설아가 괴사 상처를 치료한 다리로 지면을 박차며 도진의 앞을 막아서려 했다. 본능적인 방어 기제였으나, 도진의 눈에 그 행동은 지극히 비효율적인 자산 소모에 불과했다. 도진은 설아의 어깨를 붙잡아 뒤로 끌어당겼다. 그의 안광은 폭발의 붉은 화염 속에서도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움직이지 마십시오. 에너지 낭비입니다."

도진은 품 안에서 녹슨 쇠붙이 하나를 꺼내 들었다. 2화에서 수집하여 시스템 인벤토리 구석에 박아두었던, 던전 쓰레기로 치부되던 '부러진 고대 기하학 나침반'이었다.

스스스스.

나침반을 꺼내 든 순간, 부러진 청동 침이 미친 듯이 자전하기 시작했다. 고대인들이 인과율 구조의 비틀림 공간을 추적할 때 사용했다는 이 유물은, 눈앞에서 폭발하는 마나의 비틀린 궤적을 정밀하게 감지해 내고 있었다. 도진의 시야에 매설된 32개 기폭핵의 마나 유동 방향이 기하학적인 벡터 선으로 가시화되었다.

"인과율 왜곡 궤적 역연산 완료. 오프셋 조정 시작."

도진은 생각했다. 이 거대한 에너지를 물리적으로 막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규칙을 바꾸어야 한다. 상위 우주 시스템의 독점 상점이 가진 불변의 법칙, '에너지 구매력 고정 앵커' 속성을 역으로 가동할 차례였다.

'에너지 구매력 고정 앵커'는 상점 화폐의 가치를 던전 코어의 실질 칼로리 변환율에 연동시키는 제약이다. 하지만 이 규칙의 이면에는 '모든 차원의 마나 에너지를 칼로리라는 정량적 수치로 가치 환산할 수 있다'는 수학적 전제가 깔려 있었다.

"상점 시스템 라이선스 가동. 활성화된 폭발 마나를 상점 내 가치 변환 대상 물품으로 임시 포섭한다."

도진이 나침반의 중심축을 꾹 누르자, 나침반에서 흘러나온 청색 광선이 32개의 기폭핵 궤적과 완벽히 동기화되었다.

[알림: '에너지 구매력 고정 앵커' 역전위 프로세스를 시작합니다.] [지정 대상: 활성화된 포맷 기폭핵의 열압축 마력.] [환산 기준: 1등급 한우 등심 100g당 220 kcal 기준.] [총 에너지 부하: 4,800,000,000 kcal -> 약 2,181.8톤 분량의 등심 칼로리 데이터로 전환.]

"화폐 가치 동기화. 해당 칼로리 데이터를 상점 재화로 임시 매입 처리한다."

[시스템 경고: 인과율 채무가 일시적으로 임계치에 도달합니다.] [현재 채무율: 87.4% -> 99.1%] [주의! 인과율 채무 초과 시 '역전위 유령 마나'가 발생하여 주변의 모든 물질을 분자 수준으로 영구 붕괴시킵니다.]

안경 스크린에 붉은 해골 마크와 함께 엘라의 냉소적인 음성이 귓가에 울렸다.

- 아하하! 도진, 제정신이야? 채무 임계를 이렇게 아슬아슬하게 당겨 쓰다니. 그 '유령 마나'가 네 몸을 먼저 분해해 버릴지도 모른다고?

"닥쳐, 엘라. 연산 범위 내다."

도진은 가차 없이 변환 확정 버튼을 눌렀다.

그 순간, 대지를 집어삼킬 듯이 팽창하던 붉은 열 폭풍이 허공에서 딱딱하게 굳어졌다. 폭발의 화염이 기하학적인 사각형 입자로 쪼개지더니, 마치 디지털 노이즈처럼 스러지기 시작했다.

웅성웅성하며 고막을 압박하던 열압축 파동이 일순간에 진공 청소기에 빨려 들어가듯 소멸했다. 수십억 칼로리의 파괴 에너지가 상점의 시스템 인터페이스 속에서 단순한 '숫자'로 가공되어 증발해 버린 것이다.

쉬이이이익...

기단 주변에는 그 어떤 열기도, 폭풍의 잔해물도 남지 않았다. 오직 서늘한 지하의 공기와 미세한 먼지만이 가라앉았을 뿐이었다. 초대형 테러 폭발 장치들이 아군 동료들조차 감지하지 못할 만큼 정교하게 해체되어 사라진 순간이었다.

"이, 이게 무슨..."

처형 기사단의 부단장이 허공을 휘저으며 절규했다. 자신이 목숨을 바쳐 발동한 포맷 폭발이,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완벽하게 무(無)로 돌아간 현상을 그의 뇌는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도진은 차갑게 식어버린 고대 나침반을 다시 품에 집어넣었다. 그의 이마에서 땀 한 방울이 흘러내려 뺨을 타고 턱 끝으로 떨어졌다.

"에너지 변환 효율 100%. 위협 요인 제거 완료."

도진이 나지막이 읊조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은백색 중갑을 입은 거구의 사내, 연합 길드의 수장 한태령이었다. 그는 거대한 대방패의 모서리로 지면을 찍은 채, 도진의 일거수일투족을 맹수 같은 눈빛으로 주시하고 있었다. 그의 등 뒤에는 수십 명의 연합 길드원들이 무기를 든 채 긴장된 태세로 대기 중이었다.

"폭발의 징후가... 사라졌군."

한태령이 묵직한 목소리로 침묵을 깨뜨렸다. 그의 목소리에는 동료를 지키고자 하는 정통파 영웅의 강인함과 동시에, 눈앞의 도진을 향한 강한 불신이 서려 있었다.

"방금 그것은 마법이 아니다. 길드 연합의 그 어떤 마법사도 마나의 팽창을 저런 식으로 소멸시키는 수식은 쓰지 못해. 너는 누구냐? 오더의 첩자인가, 아니면 던전이 만들어 낸 또 다른 변종인가."

한태령의 양손이 대검의 손잡이를 꽉 쥐었다. 그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나의 밀도가 급격히 상승했다. 그 압박감에 설아가 직관적인 생존 본능을 느끼고 단검을 고쳐 쥐며 도진의 앞으로 한 걸음 나섰다.

"비켜, 덩치. 저 사람은 방금 우리 모두의 목숨을 구한 거야. 오더의 기사단이 자폭하려던 걸 막았다고!"

설아가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하지만 한태령은 설아를 보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오직 도진의 얼음처럼 차가운 안경 너머의 눈동자만을 향하고 있었다.

"구했다라... 과연 그럴까."

한태령이 한 걸음 앞으로 다가왔다. 그의 발걸음마다 중갑이 부딪치며 쇳소리를 냈다.

"의장 기선우가 이 강동구 하위 구역을 48시간 내에 포맷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조금 전, 오더의 기폭 장치가 동결되면서 그 시간이 12시간으로 줄어들었지. 이 모든 혼란의 중심에 네가 있다, 강도진."

도진은 피 묻은 안경을 중지로 밀어 올렸다. 그의 안경 렌즈에는 한태령의 물리적 스펙이 실시간으로 스캔되고 있었다.

[대상 이름: 한태령] [클래스: 수호자 (A급)] [근력: 89 / 민첩: 62 / 체력: 95] [마나 전도율: 78.4%] [위협도: 상(High)]

'전투력은 우수하나, 정서적 가치에 휘둘리는 전형적인 인간형 자산.'

도진은 한태령을 아군으로 포섭해야만 했다. 자신이 독점 상점에서 구매한 '엔트로피 감쇄 벽 설계도'를 실현하고 강동구 구역을 완벽한 세이프존으로 재건하기 위해서는, 한태령이 이끄는 연합 길드의 무력과 인프라가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한태령 씨."

도진이 건조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당신은 던전을 파괴 대상이나 몬스터의 소굴로만 보겠지요. 하지만 제 눈에 이 던전은 고차원 시스템이 설계한 하나의 거대한 연산 장치에 불과합니다."

"연산 장치?"

"그렇습니다. 그리고 기선우와 그의 앱솔루트 오더는 그 연산의 생존율을 높이기 위해 하위 10%의 인구를 강제로 지우려는 결벽증적 집단일 뿐입니다. 그들이 사용하는 방식은 칼이 아니라 시스템의 권한입니다."

도진은 발밑의 기단을 가리켰다.

"저는 방금 그들이 보낸 기폭핵을 해체한 것이 아닙니다. 시스템의 수식을 비틀어 폭발의 에너지 가치를 다른 데이터로 치환했을 뿐입니다. 세상을 구하는 방법은 단순히 몬스터의 목을 베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망가진 수식을 '수리'해야 하는 겁니다."

한태령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는 수많은 던전을 공략해 왔지만, 던전 자체를 '수리'한다는 개념을 제시하는 헌터는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도진이 보여준 방금 전의 기적이 단순한 초월적 마법이 아니라, 철저하게 계산된 시스템의 틈새를 찌른 공학적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이해한 것이다.

한태령의 마음속에 경외와 동시에 깊은 이질감이 싹텄다. 눈앞의 청년은 인간의 목숨을 구하는 일에 그 어떤 감정적 동요도 보이지 않았다. 오직 완벽한 효율과 수식의 일치만을 바라는 기계와 같았다.

"너는... 인간의 목숨을 숫자로만 보는군."

한태령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습니다."

도진은 망설임 없이 긍정했다.

"감정은 변수를 만듭니다. 변수는 오차를 낳고, 오차는 결국 낙오자를 발생시키지요. 저는 단 한 명의 유실자도 없는 완벽한 안전 영역을 만들 겁니다. 그러기 위해선 당신들의 힘이 필요합니다."

[시스템 알림: 인과율 채무 만료 및 강동구 포맷까지 남은 시간: 11시간 58분.]

시간이 없었다. 채무 한도에 도달한 99.1%의 수치는 도진의 영혼을 압박하고 있었다. 만약 12시간 내에 대성당 깊은 곳의 코어를 파괴하여 채무를 변제하지 못하면, 이 구역 전체가 역전위 유령 마나에 의해 분자 단위로 분해될 것이다.

한태령은 도진의 얼굴에 떠오른 기묘한 강박을 읽어냈다.

고결하던 영웅의 눈빛이 서서히 지워지고, 한태령의 눈에 차가운 결의가 깃들었다. 그는 대검을 칼집에서 반쯤 빼내었다. 검날이 스르릉 소리를 내며 차가운 화강암 바닥의 빛을 반사했다.

"의회의 불법 거래자 도진이여."

한태령이 대검의 자루를 쥔 채 선언했다.

"그 기이한 힘이 정말로 낙오자들을 구하기 위한 수식인가, 아니면 그저 우리 모두를 파멸로 몰고 갈 거대한 사기극인가. 내 방패와 검을 넘어서지 못한다면, 나는 네 그 기계 같은 수식에 나의 동료들과 강동구의 운명을 맡길 수 없다."

한태령의 마나가 대기를 짓누르며 도진을 향해 정면으로 쏘아져 왔다. 결투의 강제. 도진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의 기로에 직면했다.

다음 화 계속 보기 →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