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갑 수레의 전면에 장착된 마도 포신이 회전하며 고주파의 마나 충전음을 흘려보냈다. 키잉 하는 날카로운 마찰음이 제어실 내부의 미세한 먼지 입자들을 잘게 흔들었다. 천장에서 떨어져 내리는 석회 가루가 푸른색 마나의 방전 광에 닿아 하얗게 불타올랐다.
"의회의 명령이다."
철갑 수레 위, 은색 판금 갑옷을 두른 기사가 검을 뽑아 들었다. 기사의 투구 틈새로 비치는 안광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강도진, 그리고 백설아. 인류의 존속을 저해하는 불안정 요소를 이 자리에서 즉시 처형한다."
도진의 시야 우측 상단에 붉은색 경고 마커가 일제히 점등했다.
[경고: 다중 조준선 고정(Multi-Locking) 감지.] [대상을 조준 중인 마도 정격 저격수: 24명.] [예상 총합 운동에너지: 42,000 J.] [현재 신체 사양 기준, 피격 시 생존율: 0.04%.]
도진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자신의 안경 너머, 허공에 임시 투사된 마나 흐름의 수치적 기하학 궤적에 고정되어 있었다. 적들이 전개하는 마법적 장벽과 탄도의 교차점들이 실시간으로 계산되고 있었다. 1초에 수천 번씩 진동하는 수치들이 도진의 망막을 푸르게 물들였다.
"도진 씨, 저 철갑 수레의 마도포 충전율이 이미 80%를 넘었어요."
설아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미세한 떨림이 섞여 있었지만, 그녀의 무게중심은 이미 도진의 그림자 뒤편, 가장 안전한 각도로 완벽히 이동해 있었다. 다리의 괴사 상처를 치료한 나노 바이오 활성 겔의 잔여 성분이 체온에 반응해 희미한 녹색 빛을 내뿜고 있었다. 상처가 치료되어 기동력은 확보되었으나, 상대는 정규 기사단 부대다. 정면 돌파는 기하학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웠다.
"알고 있습니다. 84.2%입니다."
도진이 낮게 소리 내어 말했다. 그의 손가락이 가볍게 튕겨졌다.
"설아 씨. 뒤로 물러나세요. 7시 방향, 무너진 3번 기둥의 잔해 뒤쪽 터널로 진입합니다."
"하지만 거기는 막혀 있잖아요! 저 수레가 포격을 시작하면 퇴로가 전부 흙더미에 묻힐 거예요!"
"막힌 것이 아니라, 일시적으로 폐쇄 연산이 적용된 격벽입니다. 정확히 12초 후, 제가 그 격벽의 연산 코드를 수정하겠습니다. 당신의 현재 최대 질주 속도인 초속 6.2미터를 유지한다면 포격의 폭풍 반경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습니다."
도진은 감정을 배제한 채 오직 물리적 수치만을 읊조렸다.
그의 왼쪽 눈에 덧씌워진 고대 분석 렌즈가 급격히 회전했다. 렌즈의 표면에 새겨진 미세한 룬 문자들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며 적들의 전면 배치 상태를 분해하기 시작했다.
[스캔율: 42%... 48%... 55%...] [앱솔루트 오더 처형 기사단 '수평의 천칭' 제3분대.] [신성 마법 전개 공식 집계 중: 가속 계수 $\alpha=1.42$, 마나 응집 밀도 1.25g/cm³.] [연산 결과: 타격 지점의 물리적 장벽 강도를 약화시키는 반사 주파수 포착.]
"저들의 마법은 단순한 충격파가 아닙니다. 타격 지점의 분자 결합력을 느슨하게 만드는 진동 마법입니다. 즉, 피격 시 물질의 강도가 제로에 수렴하게 됩니다. 정면으로 받으면 신체 조직이 젤리처럼 으깨진다는 뜻입니다."
도진은 왼손을 뻗어 설아의 어깨를 밀쳐냈다. 거친 동작이 아니었다. 정확히 그녀의 신체 무게중심을 뒤로 무너뜨려 가장 빠른 반응 속도로 후방 터널 내부로 미끄러져 들어가게 만드는 공학적인 물리력의 전달이었다.
"가세요. 낙오율을 줄이는 것이 현재 가치 투자 대비 최고의 효율입니다."
"도진 씨!"
설아의 몸이 무너진 암석 틈새로 사라지는 것과 동시에, 전면의 철갑 수레가 거대한 마찰음을 토해냈다.
콰아아앙-!
마도포의 포신에서 뿜어져 나온 백색의 마나 광선이 제어실의 대기를 일직선으로 찢어발겼다. 열팽창으로 인해 대기가 순간적으로 진공 상태에 가깝게 수축했다가 폭발했다. 충격파가 사방으로 뻗어 나가며 바닥의 대리석 타일들을 잘게 바수어 공중으로 비산시켰다.
도진은 그 폭발의 중심을 향해 오히려 한 걸음을 내딛었다.
그의 발끝이 닿은 곳은 제어실 바닥의 특정 균열 지점이었다. 아까 코어 동결의 여진으로 인해 물리적 지지력이 임계점까지 약화되어 있던 붕괴 지점.
투두두둥!
도진의 체중이 실리는 순간, 바닥의 균열이 기하급수적으로 확장되었다. 도진의 몸이 중력의 법칙에 따라 아래로 수직 하강했다. 포탄의 궤적보다 정확히 0.12초 빠른 타이밍이었다. 백색의 광선은 도진의 머리카락 끝만을 태운 채, 그가 서 있던 공간의 허공을 가르고 뒤편의 벽면에 작렬했다.
쿠구구궁!
벽면이 분자 단위로 분해되며 거대한 회색 먼지 구름을 만들어냈다. 시야가 완전히 차단되는 극적인 순간이었다.
"명중했나?"
철갑 수레 위의 기사가 검을 내리며 물었다. 먼지 구름 속에서는 아무런 생명 반응도 감지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마도 저격수들의 총구 끝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하지만 먼지 구름 너머, 지하로 무너져 내린 하부 통로의 어둠 속에서 도진은 차갑게 착지해 있었다. 무릎을 가볍게 굽혀 충격을 흡수한 그의 안경 너머로 가상 인터페이스가 잔인할 정도로 정교하게 깜빡이고 있었다.
[신성 마법 전개 공식 스캔 완료: 55%.] [약점 집계: 적들의 마나 보호막은 정면의 쐐기형 장갑에 집중되어 있음. 후방 차륜 및 조향 장치의 마나 밀도는 전체의 7.4%에 불과함.]
"간단한 연산이군요."
도진이 혼잣말을 내뱉었다. 그의 손가락 끝이 허공에 대고 무언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2화에서 수집했던, 주머니 속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던 물건이었다.
'부러진 고대 기하학 나침반.'
비록 축이 비틀어지고 한쪽 침이 부러져 쓸모없는 쓰레기처럼 보였던 유물이었지만, 도진의 눈에는 그것이 고차원의 인과율 공간을 역연산하는 훌륭한 계산 도구로 보였다. 나침반의 놋쇠 몸체에 미세한 마나를 주입하자, 부러진 바늘 끝에서 보이지 않는 은색 실선들이 뻗어 나가 기사단이 전개한 불투명 은폐 마법의 궤적을 역추적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은밀하게 숨겨둔 후방 지원 부대의 위치와 철갑 수레의 방어막 편향 공식이 고스란히 도진의 망막 위에 실시간 그래프로 그려졌다.
"도진 씨! 이쪽이에요!"
터널 안쪽, 어둠 속에서 설아가 도진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녀의 눈은 거대한 폭발 속에서 도진이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안도하면서도, 그의 차가운 눈빛에 다시금 압도당하고 있었다.
도진은 가볍게 도약하여 설아가 있는 터널 입구로 합류했다. 터널 내부의 공기는 습하고 차가웠다.
"쓸데없는 감정 소모는 에너지 낭비입니다, 설아 씨."
도진이 바지 먼지를 털어내며 냉정하게 말했다.
"전 당신을 구한 것이 아닙니다. 당신이 가진 야생적인 본능과 지형 감각은 이 던전을 빠져나가는 데 있어 자산 가치가 높기 때문입니다. 투자 가치가 있는 자산을 처분하는 투자자는 없습니다."
설아는 도진의 그 기계적인 말투를 뻔히 알면서도, 그의 옷자락을 꽉 쥔 손을 놓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번졌다.
"당신은 정말 기계처럼 말하네요."
"사실을 기반으로 한 합리적 연산일 뿐입니다."
"아니요."
설아가 도진의 눈을 똑바로 지시했다. 어둠 속에서도 그녀의 직관은 빛나고 있었다.
"당신은 자산 가치를 잃지 않으려 한다고 스스로를 속이고 있지만... 사실 우리 모두를 살리고 싶은 거잖아요. 단 한 명의 유실자도 나오지 않게 하겠다는 그 이상한 고집. 그게 당신의 본심이죠?"
도진의 눈동자가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의 정서적 효율 증후군은 타인의 호의나 감정적 접근을 일종의 '비효율적인 변수'로 분류하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하지만 설아의 직관은 언제나 컴퓨터 방화벽을 뚫고 들어오는 정체불명의 바이러스처럼 그의 핵심 연산 영역을 직접 건드렸다.
"불필요한 논쟁은 연산 자원을 낭비할 뿐입니다."
도진은 시선을 돌렸다.
"그보다 더 중요한 변수가 있습니다."
그는 품바지 주머니에서 소형 무선 통신기를 꺼냈다. 앱솔루트 오더의 군용 규격으로 제작된 장치였다. 아까 제어실로 하강하기 직전, 쓰러진 정찰병의 품에서 정밀하게 탈취한 전리품이었다.
도진의 손가락끝에서 마나가 실 가닥처럼 흘러나와 통신기 내부의 구리 도선과 마나 칩셋을 직접 자극했다.
지이이잉-!
통신기기에서 기분 나쁜 기계음과 함께 노이즈가 섞인 음성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주파수를 강제로 우회하여 변조하는 해킹 프로세스였다.
[...강동구 하위 구역의 포맷 인가 승인 대기 중...] [의장 기선우의 최종 인증 코드가 감지되었습니다...]
"이 소리는..."
설아가 숨을 죽였다.
통신기의 스피커 너머로 아주 미세한, 일정한 간격으로 진동하는 고주파의 음이온 파동 소리가 들려왔다. 일반적인 인간의 청각으로는 잡아내기 힘든, 초당 19,200Hz의 초음파 영역에 걸쳐 있는 기묘한 공명음이었다.
도진의 고대 분석 렌즈가 그 소리의 파형을 주도면밀하게 분석하여 데이터 시트로 시각화했다.
[특이 음이온 주파수 분석 완료.] [진폭: 12.4 nm.] [파동 유형: 블랙 연산장치 특유의 차원 붕괴 동조 신호.] [메모리에 주파수 파형을 완벽히 복사하여 보관합니다.]
"기선우 의장이 품에 지니고 다니는 '포맷 인가용 블랙 연산장치'의 고유 주파수입니다."
도진의 입꼬리가 아주 미세하게 올라갔다. 감정이 배제된, 오직 승리를 확신한 연산가의 미소였다.
"이 주파수 정보만 있다면, 저들이 강동구를 강제로 포맷하려는 순간 그 장치에 버그 역코드를 주입하여 역으로 폭사시키는 설계가 가능해집니다. 사전에 심어둔 정보의 가치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군요."
"그럼 저들이 우리를 쫓아오기 전에 이 장치를..."
설아가 말하는 순간, 터널 외부에서 다시 한번 웅장한 강철의 구동음이 들려왔다. 철갑 수레가 무너진 잔해들을 짓뭉개며 터널 입구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었다.
"추격을 차단해야 합니다."
도진이 나침반을 가볍게 회전시켰다. 은색의 인과율 실선들이 터널 천장의 약한 고리들을 연결하기 시작했다.
"저들은 우리를 쫓기 위해 반드시 이 일직선 통로로 진입할 것입니다. 철갑 수레의 무게는 대략 12.4톤. 그리고 기사단의 갑옷 무게를 합산하면 터널 바닥이 견딜 수 있는 최대 허용 하중인 8톤을 가볍게 초과합니다."
"설마..."
"네. 제가 직접 힘을 쓸 필요도 없습니다. 저들의 과도한 무장과 오만이 스스로의 길을 무너뜨리게 만들면 그만이니까요."
도진이 나침반의 중심 축을 꾹 눌렀다.
탁-!
미세한 소리와 함께, 터널 입구 바닥을 지탱하고 있던 마나의 흐름이 단 한순간에 끊어졌다. 그것은 도진이 아까 독점 데이터 안경을 통해 분석해 둔 '신성 마법 전개 공식'의 약점을 역이용한 결과였다. 적들이 보호막을 전개하기 위해 지면에서 끌어다 쓰던 신성 마나의 접지점을 강제로 차단한 것이다.
"진입하라! 도망치게 두지 마라!"
터널 입구로 들이닥치던 철갑 수레와 중장갑 기사들이 일제히 안쪽으로 발을 디딘 순간이었다.
쿠르르릉-!
아무런 전조도 없이, 터널 바닥의 견고한 대리석 판들이 거대한 톱니바퀴가 풀리듯 아래로 꺼져 내렸다. 하중을 견디지 못한 지반이 수직으로 붕괴하며 12톤이 넘는 철갑 수레가 균형을 잃고 측면으로 전도되었다.
콰아아앙!
"으아악!"
"바닥이... 바닥이 꺼진다! 마나 방어막이 작동하지 않아!"
기사들의 비명과 강철이 비틀리는 굉음이 사방을 가득 채웠다. 사방에 돋아 있던 회전 칼날들이 제멋대로 벽면을 긁으며 불꽃을 튀겼고, 전도된 수레의 무게에 짓눌린 기사들의 갑옷이 찌그러지는 둔탁한 소리가 이어졌다. 그들의 정교한 무장과 압도적인 파괴력은 좁고 무너지는 터널 내부에서 오히려 자신들의 사지를 옭아매는 덫으로 변모했다.
단 한 조각의 마나도 낭비하지 않고, 적들의 질량과 장비 자체를 덫으로 삼아 그들의 진격을 완벽히 마비시킨 인과 연산의 극치였다.
"퇴로 설계는 완료되었습니다."
도진은 먼지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적들을 단 한 번도 돌아보지 않은 채, 터널 안쪽의 어둠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이제 48시간 내에 강동구의 제어부 코어를 완전히 장악하고, 엔트로피 감쇄 벽의 설계를 시작합..."
그때였다.
휘이이잉-!
어둠이 깊게 가라앉은 터널의 전방에서, 비정상적으로 차갑고 고요한 바람이 불어왔다.
도진의 안경 화면에 붉은색 경고등이 미친 듯이 점멸하기 시작했다.
[위험: 초고밀도 마나 반응 감지.] [대상의 접근 속도: 초속 24미터.] [추정 위험도: 재해급(Disaster).]
"어딜 가시나, 버그 개체들."
스스스스...
어둠 속에서 은색 갑옷 위에 검은색 사제 로브를 걸친 사내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의 검 끝이 바닥을 긁으며 스산한 금속음을 냈다.
처형 기사단 부단장.
그의 눈빛은 뒤에서 허둥대던 부하들과 차원이 달랐다. 그의 한 걸음 한 걸음마다 발밑의 공기가 급격히 얼어붙으며 하얀 서리가 피어올랐다.
부단장의 시선이 도진을 스쳐, 그의 등 뒤 어둠 속에 숨겨진 백설아의 위치를 정확히 꿰뚫었다.
"숨겨둔 쥐새끼가 한 마리 더 있었군. 비밀 차단망을 쳐두었지만, 내 감각을 속이기엔 연산 밀도가 너무 낮다."
부단장의 신형이 순간적으로 흐려졌다.
스팟-!
인간의 안구로 쫓을 수 없는 속도였다. 오직 도진의 고대 분석 렌즈만이 그의 이동 궤적을 붉은 선으로 간신히 그려낼 뿐이었다.
"죽어라."
부단장이 도진의 우측 공간을 통과하는 순간, 그의 거대한 대검이 수직으로 궤적을 그리며 뻗어 나왔다. 목표는 도진이 아닌, 도진의 등 뒤에 서 있는 백설아의 정수리였다.
대검에 서린 냉기가 대기를 얼려붙이며 설아의 숨통을 조여 왔다. 도진의 반응 속도와 연산 능력으로도 이 찰나의 순간에 대검의 궤적을 물리적으로 막아내는 것은 계산상 불가능했다.
검날이 허공을 가르며 수직으로 내려찍히는 찰나, 도진의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