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너머에서 밀려드는 검은 철갑 차량의 궤적이 대지를 정밀한 격자판처럼 분할하고 있었다. 집행 마도병단. 앱솔루트 오더 의회의 최고 파괴 세력이 가동하는 공성 마도포의 포구가 수평선 위로 15도 각도를 유지하며 고정되었다. 포구 내부의 초고온 마나 압축기가 분당 12,000회전의 속도로 공진을 시작하자, 밤하늘보다 어두운 푸른색 광조가 강동구 제3방어선의 공기를 진공 상태로 빨아들였다.
"포격 개시까지 남은 시간, 14초."
강도진은 망막 위에 투사된 고대 분석 렌즈의 수치적 지표를 읽어 내렸다. 맥박은 분당 62회. 극도의 위기 상황에서도 그의 생체 신호는 냉각 장치가 가동되는 서버실처럼 고요했다. 옆에 선 한태령의 거친 호흡음과 대조적이었다. 한태령은 대검을 쥔 손귀를 피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하얗게 움켜쥐고 있었다.
"강도진 씨, 장벽이 버틸 수 있겠습니까? 저 포격은 단순한 물리 질량 탄환이 아닙니다. 공간의 구조 자체를 찢어발기는 고밀도 붕괴탄입니다!"
"물리적 차단은 불가능합니다. 감쇄 벽의 현재 잔여 에너지 밀도로는 저 충격을 0.04초도 감당하지 못하고 분해될 겁니다."
도진의 대답은 얼음처럼 투명하고 무자비했다.
"그럼 어쩌겠다는 겁니까! 피난민들을 뒤로 물려야—"
"이동 효율이 12% 이하로 떨어지는 민간인들의 퇴각은 대열의 붕괴만을 초래합니다. 제자리에서 대기하는 것이 생존 확률을 1.4%포인트 더 높입니다."
도진은 품 안에서 녹슨 청동 덩어리를 꺼냈다. 2화에서 수집했던, 던전의 잔해물 중 하나였던 '부러진 고대 기하학 나침반'이었다. 톱니바퀴의 절반이 유실되고 침마저 어긋나 있어 일반적인 감정안으로는 쓰레기로 분류되던 고대 유물. 그러나 도진의 손끝이 나침반의 깨진 외곽 축을 미세하게 조정하자, 보이지 않는 인과율의 왜곡선이 붉은색 스펙트럼으로 시야에 정렬되기 시작했다.
이 도구의 본질은 방향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차원 간의 뒤틀림, 즉 인과율의 수직 기하학적 균열점을 포착하는 정밀 계측기다.
"엘라. 독점 상점 인터페이스 활성화. 채무 한도 임시 조정 프로토콜을 준비해."
망막 너머에서 기계적인 실루엣이 흔들렸다. 인공지능 엘라의 냉소적인 음성이 고막을 긁었다.
[알림: 계약자 강도진. 현재 인과율 채무 수치는 87.4%입니다. 임계 상한인 100%까지 남은 여유 용량은 단 12.6%. 여기서 추가 거래를 진행하거나 에너지를 역방향으로 인가할 경우, 시스템의 자동 포맷 방어 코드가 가동됩니다. 정말 죽고 싶어서 환장한 건가요?]
"쓸데없는 우려는 수식에 방해된다. 상점 앵커 포인트 시스템을 엔트로피 감쇄 벽의 가상 격자점과 동기화해."
도진은 나침반의 찌그러진 황동 바늘을 손톱으로 튕겼다. 틱, 하는 미세한 마찰음과 함께 나침반 중심부에서 미세한 기하학적 홀로그램이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집행 마도병단이 조준하고 있는 마도포의 공진 주파수와 정확히 일치하는 궤적을 그려냈다. 은폐 마법과 고화력 은폐 장막을 뚫고, 적들의 포격선이 가리키는 정밀 타격점이 도진의 뇌신경에 실시간 데이터로 입력되었다.
쿠우우웅—!
대지가 비명을 질렀다. 공성 마도포 세 문이 동시에 불을 뿜었다. 발사된 것은 단순한 화염이 아니었다. 공간의 엔트로피를 극대화하여 닿는 모든 물질의 분자 결합을 끊어버리는 '파쇄 불꽃'의 전하 덩어리였다. 섭씨 4,000도에 육박하는 초고온의 푸른 광선이 대기를 초음속으로 가르며 날아왔다.
"장벽 전면, 기하학적 나침반 앵커 고정. 수신 주파수 동조율 99.8%."
도진이 나침반을 허공에 던졌다. 허공에 멈춘 부러진 나침반이 강렬한 빛을 뿜으며 엔트로피 감쇄 벽의 중심부와 보이지 않는 푸른 선으로 연결되었다.
빛의 속도로 쇄도하던 파쇄 불꽃이 감쇄 벽에 충돌하는 순간, 거대한 폭발음 대신 기괴한 흡수음이 발생했다.
스으으으으—!
적들의 압도적인 포격 에너지가 장벽을 찢는 대신, 나침반이 가리키는 기하학적 비틀림 축을 따라 휘어지기 시작했다. 마치 거대한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는 광선처럼, 푸른 파쇄 불꽃의 궤적이 90도로 꺾여 도진의 전방 50미터 지면으로 유도되었다. 그곳은 다름 아닌, 독점 상점과의 거래로 인해 발생한 '인과율 채무 초과 구역'의 가상 중심점이었다.
"미쳤어! 포격을 그쪽으로 흡수하면 채무 수치가—!"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백설아가 비명을 지르듯 소리쳤다. 그녀의 야생적인 생존 본능이 눈앞의 에너지가 가진 치명적인 파괴력을 직감한 것이다.
"정확한 계산입니다, 설아 씨."
도진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계측기를 조작했다.
"포격의 에너지를 상점 시스템의 인과율 채무 역치로 다이렉트 주입합니다. 시스템은 이 과부하를 '부하 피드백'으로 인지하고 강제 배출 프로세스를 작동시킬 겁니다."
[위험: 인과율 채무 수치가 임계점을 돌파합니다.] [현재 채무 수치: 101.2%... 105.8%... 112.4%] [경고: 시스템 안정성 붕괴. 역전위 유령 마나(Reverse Phase Ghost Mana) 현상이 발동됩니다. 주변 물질의 분자 구조 보존 법칙이 해제됩니다.]
3화에서 엘라가 조롱하듯 경고했던 시스템의 최악의 페널티. 채무 한도를 초과할 때 발생하는 '역전위 유령 마나'가 마침내 현실 세계로 고개를 내밀었다.
도진의 발끝에서부터 시작된 지면이 무채색의 유령 같은 반투명한 상태로 변하기 시작했다. 돌과 콘크리트, 먼지들이 고유의 질량을 잃고 공중으로 둥둥 떠오르며 분자 수준으로 분해되는 기괴한 풍경이 펼쳐졌다.
"전원, 감쇄 벽의 중심축 뒤쪽으로 3미터 후퇴하십시오. 단 1밀리미터라도 경계를 벗어나면 신체의 결합 조직이 영구 해제됩니다."
도진의 명령은 차가웠고, 한태령은 본능적인 공포 속에서도 피난민들을 뒤로 밀어내며 방패를 세웠다.
그 순간, 집행 마도병단의 마도 마법 기사 200여 명이 철갑 차량에서 내려 검을 뽑아 들고 세이프존을 향해 돌격해 오기 시작했다. 그들의 전면에는 마법 장벽을 무력화하는 특수 합금 갑주가 빛나고 있었다. 의회 선봉대의 대장이 외쳤다.
"버그 개체들을 말살하라! 의회의 질서 아래 하위 구역의 포맷을 완수한다!"
그들의 돌격 궤적은 정확히 역전위 유령 마나가 안개처럼 깔린 구역을 향하고 있었다. 도진은 고대 분석 렌즈를 통해 그들의 갑주 성분을 분석했다. 탄소 강철과 마나 전도성 티타늄 합금. 분자 결합력이 매우 우수한 일급 장비들이었다.
"결합력 수치 8,400. 유령 마나의 분해 역치 수치 12,000."
도진이 나침반의 마지막 톱니를 완전히 고정했다.
"계산 완료. 전위 용해를 시작합니다."
스스스스스—!
유령 마나의 무채색 안개 속으로 발을 들여놓은 선두의 마도 기사가 돌연 제자리에 멈춰 섰다.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의 단단한 철갑 갑주가 마치 물에 젖은 설탕 인형처럼 스르륵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강철의 결합 구조가 파괴되며 고운 회색 가루로 분산되었고, 그 안의 육체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어, 어라...? 내 손이...?"
기사의 손가락 끝이 뼈와 살의 구분 없이 투명한 먼지가 되어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뒤따르던 기사들이 공포에 질려 발걸음을 멈추려 했으나, 돌격의 관성은 가혹했다. 수십 명의 기사들이 도진이 설계한 유령 마나의 분무 구역으로 차례차례 미끄러져 들어갔다.
물리적인 타격도, 유혈이 낭자한 참상도 없었다. 오직 지독할 정도로 고요한 분자 단위의 소멸만이 존재했다. 은색 문양이 새겨진 정예 갑옷들이 허공에서 기화하듯 사라졌고, 그 자리에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대지를 뒤흔들며 돌진하던 의회의 최고 전력이, 충돌 한 번 해보지 못한 채 자신들이 쏘아 올린 포격의 과부하 에너지에 휘말려 자멸하고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한태령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는 평생 수많은 던전을 돌파하며 강대한 괴수들과 싸워왔지만, 이토록 정교하고 기계적인 학살은 본 적이 없었다. 그것은 전투가 아니었다. 완벽하게 계산된 화학 반응식에 따라 원치 않는 불순물을 소거하는 정화 작업에 가까웠다.
설아 역시 마른침을 삼키며 도진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도진은 유령 마나의 붕괴 광선이 코앞까지 넘실거리는 극한의 상황에서도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오직 제어 패널의 수치 변화만을 쫓고 있었다.
[알림: 적대 개체의 에너지를 역전위 유령 마나로 강제 변환하여 소모 완료.] [현재 잔여 채무 수치: 92.1% (안전 기준치 이하로 하강 중)] [구역 내 물질 분해 현상이 중지됩니다.]
안개가 걷히듯 무채색의 장막이 사라지자, 전방에는 오직 깊고 매끄러운 반구형의 분지 형태 지형만이 남았다. 돌격했던 기사단도, 그들이 타고 온 장갑 차량의 전면부도 흔적 없이 지워진 상태였다.
도진은 천천히 허리를 숙여 바닥에 떨어진 고대 기하학 나침반을 주워 올렸다. 나침반의 표면은 채무 과부하의 피드백으로 인해 검게 그을려 있었지만, 미세한 기하학적 문양만은 더욱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위협 요소의 84%가 무력화되었습니다. 잔여 병력의 전투 의지는 상실된 것으로 판단됩니다."
도진이 차갑게 돌아섰다. 그의 등 뒤로, 기적을 목격한 피난민들이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지 못하고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한태령은 무릎을 꿇은 채 도진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단순한 경외를 넘어선, 일종의 두려움이 서려 있었다. 이 남자는 인간을 구하기 위해 인간의 연산 범위를 초월한 괴물이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
그러나 도진에게는 그런 감정적 동요를 수용할 여유가 없었다. 그의 정서적 효율 증후군은 오직 다음 단계의 생존율만을 계산하도록 강제하고 있었다.
그때, 하늘을 뒤덮고 있던 붉은 격자무늬 장벽이 기괴하게 비틀리며 공명하기 시작했다.
위이이이이잉—!
그것은 단순한 시스템의 경고음이 아니었다. 강동구 전체의 공간 연산을 담당하는 제어 장치가 한계를 초과하여 폭주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도진의 고대 분석 렌즈가 지평선 너머, 앱솔루트 오더의 임시 지휘소 방향을 비추었다.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특정 공진 주파수—6화에서 기선우의 품 안에서 포착했던 '포맷 인가용 블랙 연산장치'의 주파수가 비정상적으로 치솟고 있었다.
"기선우 씨."
도진이 무기질적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지휘소 텐트 내부의 모니터 너머, 기선우의 얼굴은 완전히 일그러져 있었다. 자신의 정예 마도병단이 단 한 번의 유효 타격도 주지 못하고 분자 수준으로 분해되어 사라진 광경을 목격한 그의 눈에는 더 이상 자애로운 성자의 온화함 따위는 남아있지 않았다. 극단적 공리주의의 가면 뒤에 숨겨진, 통제 상실에 대한 광적인 공포가 그의 안면 근육을 흉측하게 비틀어 놓았다.
"벌레 같은 놈들이... 감히 질서의 연산을 방해해?"
기선우가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블랙 연산장치를 꺼내 들었다. 장치 전면에 붉은색 해골 문양과 함께 고차원 우주 시스템의 다이렉트 강제 포맷 인가 코드가 활성화되었다. 그의 손가락이 최후 승인 패널 위로 올라갔다.
"강동구의 하위 10%뿐만 아니라... 이 구역 전체의 시공간 데이터를 지금 당장 영구 포맷한다."
기선우의 광기 어린 목소리가 통신망을 타고 도진의 귀에 도달한 순간, 하늘의 격자선이 피처럼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완벽한 세이프존을 향한 최후의 멸살 시퀀스가 가동되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