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인수 감독이 깨진 계기판 파편 옆에서 벌벌 기며 이준을 응시했다. 이준은 망가진 배트를 가볍게 털어주며 차갑게 읊조렸다.
"기계가 너무 낡았네요, 감독님. 내일부터는 더 튼튼한 무대로 올려주시죠. 이런 고철 덩어리 말고, 진짜 그라운드로."
강인수의 턱뼈가 딱딱 부딪히는 소리가 정막한 지하 단련실에 울려 퍼졌다. 뺨에 묻은 검은 그을음이 그의 비참함을 더했다. 손끝이 바르르 떨리며 깨진 제어 보드의 파편을 움켜쥐었다.
1화부터 제2체력단련실 구석에 흉물처럼 방치되어 있던 낡은 피칭 머신. 그것은 단순한 노후 장비가 아니었다. 카르텔의 입맛에 맞지 않는 유망주들의 어깨와 손목을 합법적으로 갈아 마시기 위해, 강인수가 손수 제어 보드의 한계 전압을 조작해 둔 살인 무기였다.
그 추악한 설계가 오늘 밤, 이준의 배트 한 자루에 의해 물리적으로 완파되었다. 시속 155km를 웃도는 과부하 영역의 강속구를 정밀하게 때려 쳐서 머신의 심장부를 직격하는 타격. 그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었다. 강인수의 콧등을 스쳐 지나간 타구 궤적은 완벽한 경고였다.
"너, 너 지금 감히 감독한테……."
강인수가 겨우 목소리를 쥐어짰지만, 이준은 더 이상 대꾸할 가치조차 느끼지 못했다. 망가진 배트를 어깨에 얹은 채, 이준은 바닥에 흩어진 구리선과 까맣게 타버린 콘덴서 조각을 구두 끝으로 지긋이 밟아 뭉개버렸다. 기계의 숨통은 완전히 끊어졌다. 카르텔이 숨겨둔 가장 가혹한 혹사 도구의 종말이었다.
"가자, 민우야. 먼지가 너무 많다."
"어…… 어? 아, 어!"
넋이 나간 채 찢어진 미트를 품에 안고 있던 박민우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발을 움직였다. 철문이 둔중한 쇠소리를 내며 닫히는 순간까지도, 강인수는 주저앉은 자세 그대로 단 한 걸음도 움직이지 못했다.
* * *
그 폭발적인 밤이 지나고 사흘 동안, 백송고 야구부의 공기는 기묘할 정도로 가라앉았다.
강인수 감독은 운동장에 나타날 때마다 이준과 눈이 마주치면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훈련을 빙자한 무리한 배팅 오더나 투구 수 채우기 지시는 씻은 듯이 사라졌다. 카르텔의 에이스 최태오는 멀리서 이를 갈며 이준을 노려보기만 할 뿐, 감히 먼저 다가와 시비를 걸지 못했다. 기계를 폭파해 버린 괴물에게 섣불리 이빨을 드러낼 만큼 바보는 아니었던 까닭이다.
하지만 이준에게는 숨을 돌릴 여유가 없었다.
`[피로도 부채: 88%]` `[우측 극상근 미세 손상 위험도: 경고 단계]` `[상환 기한까지 남은 시간: 21시간 15분]`
망막 위에 붉게 점멸하는 시스템 스펙트럼이 심장을 압박했다. 숨을 쉴 때마다 오른쪽 어깨 깊은 곳에서 정을 맞은 듯한 둔탁한 통증이 솟구쳤다. 아레나 맥스의 한소희가 경고했던 한계 수치가 코앞이었다. 하지만 이준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매일 밤, 제2체력단련실의 문을 걸어 잠그고 박민우와 단둘이서 지옥 같은 밀착 훈련을 개시했다.
"민우야. 받아."
이준이 두꺼운 바인더 북 하나를 민우의 가슴팍에 던졌다. 툭, 하고 무거운 소리를 내며 떨어진 노트의 표지에는 아무런 글자도 적혀 있지 않았다.
"이게 뭐야?"
"백송고 투수진 전원의 투구 패턴 파일. 특히 최태오의 데이터가 80% 이상을 차지하지."
박민우가 조심스럽게 노트를 펼쳤다. 그 안을 채운 미시적인 수치들과 수식을 본 민우의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사정없이 흔들렸다.
단순히 스트라이크와 볼의 비율을 적어놓은 수준이 아니었다. 투구 시 릴리스 포인트의 높낮이 변화(1.82m~1.85m), 슬라이더를 던질 때 검지 손가락 끝 마디와 실밥의 마찰 면적, 주자가 2루에 있을 때 셋포지션에서 발생하는 0.05초의 딜레이까지 소수점 단위로 기록되어 있었다.
"이걸…… 네가 직접 다 분석했다고? 어떻게?"
"방법은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네 머릿속에 이걸 통째로 집어넣어야 한다는 거다."
이준의 목소리에는 한 치의 타협도 없었다.
"포수는 그라운드의 사령관이다. 투수가 공을 던지기 전에, 넌 이미 상대 타자가 어떤 궤적의 스윙을 할지 연산하고 있어야 해. 그리고 우리 투수가 던질 공의 회전수와 무브먼트를 정확히 예측해서 미트를 대기시켜야 하지. 그게 안 되면 넌 평생 벤치야."
"하지만 준아, 이건 거의 수학 공식이잖아! 난 야구선수지 과학자가……."
"그럼 나가."
이준이 민우의 말을 단칼에 잘랐다. 그의 차갑고 무자비한 눈빛이 민우의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다.
"카르텔 놈들이 너한테 기회를 줄 것 같아? 최태오 똥이나 닦아주면서 고교 시절 끝나면 넌 방출이야. 대학? 프로? 꿈도 꾸지 마라. 널 증명하려면 남들이 기적이라고 부르는 걸 넌 당연한 상식으로 만들어야 해. 하기 싫으면 당장 미트 버리고 나가서 다른 운동 알아봐."
민우의 입술이 질리도록 파랗게 질렸다. 이준의 말은 뼈를 깎아내는 진실이었다. 카르텔의 그늘 아래서 후보 포수로 방치된 채 하루하루 썩어가던 자신에게, 이준은 유일하게 뻗어온 구원의 손길이자 동시에 목을 죄어오는 사신이었다.
박민우는 찢어진 미트를 쥔 손에 힘을 꽉 주었다. 가죽이 비명을 지르듯 찌르르 울렸다.
"……안 나가. 할 거야. 하면 되잖아, 이 독종 새끼야."
"좋아. 그럼 첫 번째 공식부터 시작한다."
이준은 가차 없이 칠판에 분필을 가져다 댔다.
탁! 탁! 탁!
날카로운 마찰음과 함께 칠판 위로 물리적 수식들이 나열되었다.
"최태오는 결정구로 고속 슬라이더를 던질 때, 검지 끝에 힘을 과도하게 주는 버릇이 있어. 회전수가 2600RPM을 돌파하는 순간, 검지 손가락 끝 긁힘으로 인해 미세한 역방향 궤적 결함이 발생하지. 횡 무브먼트가 평소보다 3cm 안쪽으로 꺾인다는 뜻이야. 이때 포수인 네가 미트를 어디로 가져가야 할까?"
"어…… 어? 그, 그러니까 평소보다 몸쪽으로 더……?"
"틀렸어."
이준이 분필로 민우의 가슴팍을 툭 쳤다.
"몸쪽으로 미트를 미리 움직이면 타자가 눈치채. 미트는 마지막 순간까지 바깥쪽에 고정해 두고, 투구 궤적이 꺾이는 강하 시점 0.1초 전에 손목 스냅만으로 포구 위치를 수정해야 해. 그래야 심판의 시각적 착시를 유도해 스트라이크 콜을 따낼 수 있다. 이걸 프레이밍의 극대화라고 하지."
이준은 쉴 틈을 주지 않았다. 사료를 주입하듯, 뇌신경망과 동기화된 '타격 회계 장부'의 정밀 연산 결과를 민우의 머릿속에 강제로 이식했다.
민우는 숨이 턱밑까지 차올랐다. 이준의 엄격함은 자비가 없었다. 각도 하나가 어긋나거나 수치를 제대로 답하지 못하면, 이준은 가차 없이 처음부터 다시 외우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시간이 흐를수록 민우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던 공포는 경외감과 쾌감으로 변해갔다.
이준이 짚어주는 포인트대로 미트를 움직이자, 둔탁하던 포구음이 완전히 달라졌다.
팍-!
단련실 안을 울리는 파열음이 청량하기 그지없었다.
"어……? 소리가 달라졌어."
"네 미트 안쪽 패딩이 오른쪽으로 0.3cm 쏠려 있었거든. 최태오의 슬라이더 사인을 유출하지 않으려고 네가 멋대로 덧댄 가죽이지? 그게 오히려 독이 돼서 포구 시 미세한 회전 손실을 유발하고 있었어. 내가 말한 각도로 포구하면 그 패딩의 마찰력이 극대화돼서 공이 미트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거다."
민우는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자신의 미트,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던 자신만의 비밀스러운 고민을 이준은 단 한 번의 관찰로 완벽하게 꿰뚫고 치료법을 제시해 주었다.
눈물이 핑 돌 것 같은 감격이 민우의 가슴속 깊은 곳에서 치밀어 올랐다. 이것은 단순한 지도가 아니었다. 시궁창에 처박혀 있던 자신을 그라운드의 진짜 주인공으로 끌어올려 주겠다는 구원의 의지였다.
"준아…… 너 진짜 괴물이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집중해. 다음은 최태오를 무너뜨릴 궁극의 '유도 볼' 공식이다."
이준의 눈빛이 매섭게 빛났다.
* * *
밤 11시. 제2체력단련실의 열기는 식을 줄 몰랐다.
"청백전 당일, 최태오는 무조건 네 사인을 거부하고 자기 고집대로 던지려 할 거야. 특히 내가 타석에 들어서면 흥분해서 슬라이더만 고집하겠지. 그때 네가 줘야 할 사인은 하나뿐이다."
이준은 칠판에 커다란 원을 그렸다.
"바깥쪽 낮게 꽉 찬 패스트볼. 하지만 네 미트 위치는 몸쪽 높은 곳으로 반 보 옮겨라."
"뭐? 역사인(Reverse Sign)을 쓰라고? 태오가 그걸 따를 리가 없잖아!"
"따르게 만들어야지. 최태오는 자존심이 강해. 타자가 몸쪽 높은 공을 대비하는 제스처를 취하면, 오히려 자신의 결정구인 바깥쪽 슬라이더로 비웃어주려 할 거다. 심리적 역설을 이용하는 거지. 네가 미트를 몸쪽 높은 곳에 대고 있다가, 투구 직전 바깥쪽 낮게 최적의 궤적으로 미트를 내리는 순간, 최태오는 완벽하게 내 덫에 걸려드는 거야."
이준의 손가락이 칠판을 강하게 두드렸다.
"그 순간, 놈의 슬라이더는 내가 원하는 스위트스폿으로 정확히 들어오게 되어 있어. 타격 확률 99.8%. 홈런 궤적 확정이다."
수식과 심리학이 결합한 완벽한 덫. 박민우는 전율했다. 눈앞의 이준은 단순한 고교 타자가 아니었다. 그라운드 전체를 체스판처럼 내려다보고, 상대의 심리와 물리 법칙을 지배하는 절대적인 설계자였다.
"준아, 나 진짜 소름 돋았어. 이 공식대로만 가면 최태오 그 새끼, 아무것도 못 하고 무너질 거야!"
민우가 흥분해 소리쳤다. 그동안 카르텔의 횡포에 숨죽이며 받아왔던 설움이 한 번에 씻겨 내려가는 듯한 극상의 카타르시스가 느껴졌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였다.
쿵-!
이준의 무릎이 힘없이 바닥으로 꺾였다.
"어……? 준아!"
민우가 비명을 지르며 달려갔다. 이준의 온몸은 이미 비 오듯 쏟아지는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위험! 피로도 부채: 95% 돌파]` `[우측 극상근 가동 범위 60% 이하로 급감]` `[경고: 12시간 이내에 상환하지 않을 시, 과거의 우측 회전근개 파열이 즉시 재발합니다]`
눈앞이 붉은색 경고창으로 뒤덮여 사물이 두세 개로 겹쳐 보였다. 오른쪽 어깨가 마치 뜨겁게 달군 인두로 지지는 것처럼 타들어 갔다. 근육이 강제로 꼬이고 수축하며 가동 범위가 극도로 좁아지는 것이 실시간으로 느껴졌다.
이준은 이가 부러질 정도로 악물며 신음을 참아냈다. 강박적인 완벽주의가 그의 뇌리를 지배했다.
'아직이다. 조금만 더 버티면 된다. 청백전에서 그놈들을 완전히 짓밟기 전에는 절대 무너질 수 없어.'
하지만 육체의 한계는 정신력 따위로 극복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타격 회계 장부의 강제 조율 능력을 과도하게 사용한 대가, '피로도 부채'라는 이름의 시한폭탄이 마침내 폭발하기 직전이었다.
"준아! 너 어깨가 왜 이래? 왜 이렇게 차가워? 너 지금 당장 병원 가야 해!"
민우가 이준의 오른쪽 어깨를 붙잡자마자 기겁하며 손을 뗐다. 얼음장처럼 차가우면서도 속에서는 팽팽하게 터지기 일보 직전인 철사처럼 굳어 있었다.
"병원…… 안 돼."
이준이 갈라진 목소리로 힘겹게 말을 뱉었다. 일반 병원에 갔다가는 카르텔의 귀에 들어가 즉시 선수 생명이 끝장날 터였다. 오직 한 곳, 아레나 맥스만이 이 부채를 탕감할 수 있는 유일한 성채였다.
민우는 다급하게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이준이 이전에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저장해 두었던 아레나 맥스의 한소희 번호가 화면에 떴다.
손가락이 통화 버튼을 누르려던 바로 그 순간.
지직- 지지지직-!
단련실 구석에 놓여 있던 이준의 스마트폰 무전 어플리케이션에서 찢어지는 듯한 기계음과 함께 붉은 경고음이 지지직거리며 아련하게 울려 퍼졌다.
그것은 아레나 맥스의 한소희가 보낸 긴급 신호였다. 대기 화면에 뜬 텍스트가 붉게 명멸했다.
`[긴급: 아레나 맥스 보안망 감지. 백송고 카르텔 측 인원들이 센터 주변을 에워싸고 있음. 접근 보류할 것.]`
이준의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부채 상환 시간은 단 12시간밖에 남지 않은 최악의 상황에서, 유일한 구원의 통로마저 적들의 포위망에 가로막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