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너, 당장 내일부터 시합 뛰면 어깨뼈가 진짜 완벽히 조각난 채 은퇴하게 될 거야!"

차가운 기계음이 울리는 아레나 맥스의 검사실. 한소희가 초음파 모니터 화면을 가리키며 쏘아붙인 목소리는 날카로운 메스처럼 날이 서 있었다. 화면 속 이준의 오른쪽 어깨는 붉은색과 보라색 노이즈로 뒤덮여 웅크린 야수처럼 꿈틀거리고 있었다. 승모근이 극상근을 짓누르는 기형적인 압박 구조. 뼈와 인대 사이의 완충 지대가 완전히 바스러진 상태였다.

하지만 이준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상체를 천천히 일으켜 세우며 제 어깨를 가볍게 돌려 볼 뿐이었다.

투둑.

기분 나쁜 마찰음이 뼈마디 사이에서 흘러나왔다.

"알고 있어."

이준의 목소리는 지독할 정도로 평온했다. 32세의 나이에 어깨가 박살 나며 그라운드에서 쫓겨났던 기억이 뇌리에 박혀 있었다. 지금의 통증은 그때에 비하면 미풍에 불과했다.

"알고 있으면서도 이 몸으로 야구를 하겠다고? 미친놈이군."

한소희가 기가 찬다는 듯 이마를 짚었다.

"미치지 않고서 어떻게 그 지옥에서 살아 돌아옵니까."

이준은 붉은 인장이 찍힌 계약서를 눈으로 훑었다. 시야 한구석에서 푸른빛의 시스템 메시지가 점멸하고 있었다.

`[피로도 부채: 80%]` `[상환 도래일: D-5]` `[경고: 임계치 초과 시 우측 회전근개 영구 파열 돌입]`

"내일부터 당장 나노 세션을 시작하죠. 낮에는 최대한 어깨를 아끼겠습니다. 감독이나 카르텔 놈들이 눈치채지 못할 수준으로만."

"말이 쉽지, 강인수 감독 그 인간이 너를 가만히 내버려 둘 것 같아? 당장 내일부터 연습 경기 라인업에 네 이름을 올리라고 학부모회에서 압박이 들어갔을 텐데."

한소희의 경고는 정확했다. 백송고 야구부는 이미 강인수 감독과 에이스 최태오의 아버지를 필두로 한 학부모 카르텔의 사유물이었다. 그들에게 이준은 최태오의 가치를 돋보이게 해줄 잘 길들여진 사냥개, 혹은 언제든 갈아 끼울 수 있는 소모품에 불과했다.

"그들이 날 쓰려 한다면, 나 역시 그들의 판을 흔들면 됩니다."

이준은 차갑게 미소 지었다. 그의 눈동자 속에서 타격 회계 장부의 수식들이 정밀하게 궤도를 그리며 회전했다.

***

다음 날 낮, 백송고 운동장.

태양이 내리쬐는 그라운드는 후끈한 열기로 가득했다. 퍽! 퍽! 가죽 미트에 꽂히는 공 소리와 함께 거친 기합 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졌다.

"이준! 너 오늘 프리 배팅 빠진다. 뒤에서 티 배팅이나 가볍게 하고 있어!"

수석코치가 메가폰을 대고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강인수 감독은 저 멀리 본부석 그늘 아래에서 팔짱을 낀 채 이준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의 곁에는 에이스 최태오가 거만한 표정으로 어깨를 풀며 이쪽을 흘겨보았다.

'노골적이군.'

학부모 카르텔의 입김이 닿은 라인업 조율이었다. 이준을 철저히 배제해 페이스를 떨어뜨리고, 최태오의 완벽한 쇼케이스 무대를 만들겠다는 속셈이 뻔히 보였다.

하지만 이준에게는 오히려 기회였다.

`[회전근개 보호 모드 가동 중]` `[현재 승모근 긴장도: 62%]` `[피로도 부채 변동 없음]`

이준은 순순히 배트를 들고 운동장 구석의 티 배팅 네트로 향했다. 가볍게 툭, 툭 공을 건드리며 근육의 쓰임새를 소수점 단위로 조정했다. 무리한 풀스윙은 철저히 배제했다. 철저하게 힘을 비축하고, 장부의 부채가 늘어나지 않도록 몸을 사렸다.

"쳇, 쥐새끼처럼 웅크리고 있기는."

지나가던 최태오가 들으라는 듯 침을 뱉었다. 이준은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사냥꾼은 덫을 놓기 전까지 짖지 않는 법이다.

밤이 찾아왔다.

운동장의 불이 꺼지고 모두가 기숙사로 돌아간 시간. 이준은 홀로 제2체력단련실로 향했다. 어두컴컴한 복도를 지나 낡은 철문을 밀자, 찌든 땀 냄새와 녹슨 쇳가루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끼이익.

문틈 사이로 희미한 노란 조명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단련실 안쪽, 낡은 벤치프레스 옆에 누군가 쪼그려 앉아 있었다. 덩치가 산만 한 녀석이 넓은 등을 웅크린 채 어깨를 들썩이고 있었다.

만년 후보 포수, 박민우였다.

"흐윽…… 흑……."

거친 사내의 비틀린 울음소리가 좁은 단련실 안을 채웠다. 박민우의 손에는 가죽이 사정없이 찢어지고 끈피가 터져 나간 포수 미트가 들려 있었다. 백송고 카르텔의 등살에 밀려 정식 훈련 시간에도 제대로 된 장비 하나 지원받지 못하고, 늘 에이스 최태오의 배팅볼이나 받아주며 멸시받던 녀석이었다.

"미트가 울고 있군."

이준의 건조한 목소리가 정적을 깨뜨렸다.

박민우가 깜짝 놀라며 고개를 쳐들었다. 눈가에 눈물자국이 벌겋게 번진 얼굴이 가로등 불빛에 드러났다. 그는 황급히 미트를 등 뒤로 숨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준, 준아……? 네가 이 시간에 어쩐 일로……."

"네 미트, 이리 내놔 봐."

이준이 단호하게 손을 내밀었다. 박민우는 당황하며 뒤걸음질 쳤다.

"아, 아무것도 아냐! 그냥…… 가죽이 좀 닳아서 고치고 있었던 것뿐이야. 신경 쓰지 마."

"숨기지 말고 보여줘."

이준의 깊고 가라앉은 눈빛에는 거절할 수 없는 압도적인 힘이 있었다. 박민우는 주춤거리다 결국 쭈뼛거리며 찢어진 미트를 내밀었다.

이준이 미트를 받아드는 순간, 그의 망막 위에 타격 회계 장부의 푸른 레이저 스캔 라인이 빠르게 흘러내렸다.

위이잉.

`[특수 장비 분석 중……]` `[대상: 개조된 포수 미트 (웹 및 가죽 패드 부위)]` `[특이 사항: 안쪽 가죽 패드 내부에 1.2mm 두께의 벌집형 실리콘 댐퍼 강제 이식됨]` `[효과: 공의 회전 속도(Spin Rate)를 흡수하여 캐칭 순간의 미트 이음을 무음(無音)화하고, 투수의 볼 궤적을 0.05초간 고정함. 사인 훔치기 및 프레이밍 유도에 최적화된 고가 특수 장비]`

이준의 눈이 가늘어졌다.

단순히 찢어진 싸구려 미트가 아니었다. 겉보기에는 허름하고 끈피가 너덜너덜하지만, 내부 가죽을 뜯어내고 충격 흡수와 스핀 억제를 위한 벌집형 실리콘 패드를 직접 손으로 꿰매 넣은 정밀한 물건이었다.

"이거, 네가 직접 개조한 건가?"

이준이 미트 안쪽의 미세한 바느질 자국을 손가락으로 쓸며 물었다.

박민우의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렸다. 그가 침을 꿀꺽 삼키며 목소리를 떨었다.

"어…… 어떻게 알았어? 그거, 겉으로는 전혀 티가 안 날 텐데……."

"바느질 각도와 가죽의 인장 강도가 달라. 보통 포수들은 이런 무모한 짓을 안 하지. 미트 가죽을 임의로 째서 실리콘을 넣는 순간 미트의 밸런스가 완전히 무너지니까. 하지만 넌 밸런스를 무너뜨리지 않고 정확히 스위트스폿 뒤쪽에만 댐퍼를 박아 넣었어. 투수의 강속구 회전을 완벽하게 죽여서 소리 없이 포구하려고."

박민우는 멍하니 입을 벌렸다. 이준의 분석은 소름 끼치도록 정확했다.

"맞아……."

박민우가 고개를 떨구며 힘없이 자조적인 웃음을 흘렸다.

"태오 녀석 슬라이더를 받아주다 보니까, 손목이 나갈 것 같더라고. 카르텔 녀석들은 나한테 제대로 된 미트 하나 안 사주니까…… 내가 직접 헌 미트 뜯어서 만들었어. 그렇게라도 안 하면 버틸 수가 없으니까. 근데…… 감독님이 보더니 그러더라. 쓰레기 같은 장비로 야구 장난질한다고. 그딴 대가리 굴릴 시간에 몸이나 더 굴리라고."

박민우의 주먹이 하얗게 쥐어졌다. 그의 눈에서 억울함과 분노의 눈물이 다시 흘러내렸다.

"나도…… 나도 제대로 된 투수 공 받으면서 내 야구 하고 싶어. 맨날 태오 녀석 똥볼이나 받아주는 벽 취급당하는 거 지긋지긋해. 하지만 백송고에서 내 편은 아무도 없어. 난 그냥 평생 후보로 썩다가 끝날 운명인가 봐……."

스스로를 좀먹는 패배주의. 과거의 이준 역시 겪었던 지독한 고독이었다.

이준은 박민우의 어깨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단단한 근육이 느껴졌다. 비록 카르텔의 압박 속에 썩어가고 있었지만, 이 녀석의 포수로서의 피지컬과 미트를 다루는 손재주는 진짜였다.

`[전용 포수 적합도 분석 완료: 94.2%]` `[특수 능력: 포구 유도 및 프레이밍 개조 수치 극상]`

이준의 가슴속에서 뜨거운 연산 수식들이 소용돌이쳤다.

자신의 무너져가는 어깨를 감추고, 타격 장부의 완벽한 물리 계산을 그라운드 위에서 실현하기 위해서는 투수의 공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사인을 조율할 '나만의 포수'가 반드시 필요했다. 박민우는 그 완벽한 퍼즐 조각이었다.

"박민우."

이준의 목소리가 묵직하게 단련실 안을 울렸다.

"그들이 네 미트를 쓰레기라 불러도, 내 장부에는 최고의 캐칭 능력을 소유했다고 나온다."

"……어?"

박민우가 붉어진 눈을 크게 뜨며 이준을 바라보았다.

"너, 나랑 배터리 하자."

이준이 박민우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타협 없는, 지독할 정도로 오만한 확신이 서린 눈빛이었다.

"나랑 손을 잡으면, 내가 너를 전체 1순위 드래프트 포수로 만들어 주지. 어떤 스카우터도 네 프레이밍과 포구 능력을 의심하지 못하게 판을 짜 주겠다는 뜻이야."

박민우의 호흡이 멎었다. 1순위 드래프트. 만년 후보 포수에게는 감히 꿈에서도 담지 못할 단어였다.

"대신, 너는 나의 페르소나가 돼라. 내가 타석에서 보낼 무언의 신호, 내 완벽한 물리 계산 타격을 위한 심리 유도 패를 네 미트 속으로 완벽하게 숨겨라."

"이준…… 너, 진짜로……?"

"선택해. 이 찢어진 미트를 품에 안고 평생 카르텔의 똥볼이나 받다가 은퇴할 건가, 아니면 나와 함께 세계 최고의 무대로 올라갈 건가."

이준이 미트를 박민우의 가슴에 퍽 소리가 나도록 밀어붙였다.

박민우의 전신에 찌릿한 전율이 일었다. 이준의 눈빛은 거짓을 말하고 있지 않았다. 그 어떤 어른들에게서도 보지 못했던 지독한 확신과 압도적인 힘이 박민우의 심장을 사정없이 난도질했다.

그가 흘러내린 눈물을 거칠게 훔쳐냈다. 그리고 가슴에 안긴 미트를 부서져라 움켜쥐었다.

"할게. 아니, 시켜만 줘. 네가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까…… 나 좀 이 지옥에서 꺼내줘."

박민우의 목소리에 우직한 결의가 실렸다.

`[포섭 동맹 체결 완료: 박민우 (백송고 포수)]` `[타격 회계 장부 연산 시너지 활성화: 배터리 조율도 +15%]`

이준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렸다. 드디어 자신의 손발이 되어줄 첫 번째 그라운드의 아군이 손에 들어왔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쾅!!

제2체력단련실의 낡은 철문이 굉음과 함께 사정없이 걷어차이며 열렸다. 문짝이 벽에 부딪혀 거칠게 흔들렸다.

"밤늦게 쥐새끼들이 모여서 무슨 수작들을 부리고 있는 거야?"

어둠을 뚫고 들어온 거대한 그림자.

백송고 야구부의 절대 권력자, 강인수 감독이 매서운 눈빛을 번뜩이며 단련실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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