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아, 뭐야. 이준 너였냐? 이 밤중에 여기서 쥐새끼처럼 뭐 하고 자빠졌냐?”

최태오가 뱉어낸 말에는 뼈가 섞여 있었다. 녀석은 어깨에 걸친 글러브를 툭툭 치며 체력단련실 안으로 한 걸음 걸어 들어왔다. 가죽 특유의 퀴퀴하고 무거운 냄새가 먼지 자욱한 공기 사이로 스며들었다.

이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손끝에 닿는 알루미늄 배트의 까칠한 그립 테이프 감촉에 신경을 집중할 뿐이었다. 차가운 금속의 감각이 손바닥을 타고 올라와 굳어 있던 뇌세포를 깨웠다.

“말귀를 못 알아먹나? 귀가 처막혔어?”

최태오의 눈꼬리가 가늘어졌다. 녀석의 시선이 이준이 쥐고 있는 배트 끝에서부터 시작해 흙먼지가 묻은 야구화로 천천히 내려갔다.

학부모 카르텔의 황태자. 백송고의 모든 지원을 독식하며 감독의 비호 아래 마운드를 사유화했던 존재. 과거의 이준은 저 오만한 얼굴 앞에서 늘 고개를 숙여야 했다. 녀석의 완급 조절을 돕는다는 명목하에, 어깨가 닳아 없어질 때까지 배팅 볼을 치고 또 쳐야 했던 어두운 기억들이 머릿속에서 역류했다.

“여기 야간 무단 사용 금지인 거 알지? 학부모회에서 이번에 체력단련실 장비 전부 교체해 준 거라, 일반 부원들은 허락 없이 들어오면 안 되는데.”

최태오는 입꼬리를 삐딱하게 올리며 이준의 앞까지 걸어왔다. 녀석의 큰 키가 드리우는 그림자가 이준의 발목을 덮었다.

“감독님 귀에 들어가면 너 바로 출전 정지야. 안 그래도 어깨 병신 소리 듣는 놈이 연습 시간까지 박탈당하면 야구 접어야지? 안 그래?”

정량 박탈. 카르텔이 비주류 선수들을 길들이는 가장 흔하고 비열한 방식이었다. 훈련 환경을 통제하고, 기회를 빼앗아 스스로 고사하게 만드는 것. 이준의 눈동자가 깊게 가라앉았다. 과거의 나약함이 가슴속 깊은 곳에서 비명을 질렀지만, 이준은 그 비명을 냉혹하게 짓눌렀다.

지금의 이준은 32세의 실패를 딛고 돌아온 회귀자였다.

“그렇게 고발하고 싶으면 가서 해.”

이준의 목소리는 낮고 건조했다. 감정이 실리지 않은 무채색의 말투에 최태오의 눈썹이 꿈틀했다.

“뭐?”

“감독님한테 가서 일러바치라고. 쥐새끼처럼 훔쳐보고 있지 말고.”

“이 새끼가 진짜 미쳤나…….”

최태오가 글러브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녀석의 호흡이 거칠어지는 것이 좁은 단련실 안에서 그대로 느껴졌다. 늘 떠받들려 살던 녀석에게 이런 대꾸는 참기 힘든 모욕이었을 터다. 최태오는 품에서 야구공 하나를 꺼내 들었다. 실밥이 붉게 도드라진 새 공이었다.

“너 요즘 어깨 좀 쓸 만해졌다고 기어오르는 모양인데, 현실을 좀 직시해라. 어차피 넌 내 공 스치지도 못해.”

최태오가 공을 가볍게 위로 던졌다가 잡았다. 탁, 탁, 가죽과 가죽이 부딪히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울렸다.

“마침 몸도 찌뿌둥한데, 타석에 한번 서 봐. 가볍게 던져줄 테니까. 치면 야간 무단 사용은 눈감아 줄게. 못 치면 당장 네 짐 싸서 꺼지고.”

최태오의 제안은 장난을 가장한 억압이었다. 마운드가 아닌 좁고 어두운 지하실에서, 그것도 아무런 보호 장구도 없는 타석에 서라는 요구. 잘못하면 공에 맞아 뼈가 부러질 수도 있는 위험한 도발이었다.

하지만 이준은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왼발을 옆으로 넓게 벌리며 타격 자세를 취했다. 배트 끝이 최태오의 미간을 향해 고정되었다.

‘피할 이유가 없다.’

과거 최태오의 140km 속구 앞에 벌벌 떨며 배트조차 제대로 휘두르지 못했던 기억을 지워버릴 기회였다. 물리적 법칙과 신체의 조율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는 무기가 지금 이준의 머릿속에 존재하고 있었다.

스윽.

이준이 가볍게 침을 삼키며 배트박스(가상의 경계)를 밟았다. 최태오의 눈빛이 순식간에 매서워졌다. 녀석은 지하실 중앙의 기둥을 마운드 삼아 거리를 벌려 섰다. 대략 18미터. 정식 규격보다 약간 짧은 거리였기에 체감 속도는 훨씬 빠를 터였다.

‘연산 개시.’

이준이 속으로 나지막이 읊조렸다.

그 순간, 이준의 시야가 푸르스름한 격자무늬로 뒤덮이며 뇌신경망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머릿속 깊은 곳에서 잠들어 있던 [타격 회계 장부]가 전격 활성화되었다.

윙—!

이명과도 같은 기계음이 고막을 스쳤다. 눈앞의 공간이 소수점 단위의 수치들로 분해되기 시작했다. 최태오의 발끝, 무릎의 각도, 골반의 회전축이 실시간으로 계산되어 허공에 투사되었다.

`[대상: 최태오]` `[신체 정렬 상태: 중심 이동각 42.5도]` `[릴리스 포인트 예측: 지면으로부터 1.82m]` `[구종 예측 확률: 포심 패스트볼 89.2% / 고속 슬라이더 10.8%]`

최태오는 공을 등 뒤로 숨기며 그립을 쥐었다. 녀석은 이준을 완전히 무너뜨리겠다는 심산으로 손가락 끝에 힘을 모으고 있었다.

장부의 스캔 라인이 최태오의 등 뒤, 공을 쥔 손가락 끝을 정밀하게 파고들었다.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는 데이터 윈도우가 이준의 망막 우측에 붉게 떠올랐다.

`[특이사항 포착]` `[최태오 시그니처: 고속 슬라이더 회전수 2600RPM 돌파 시, 검지 손가락 끝 미세 긁힘 발생]` `[영향 분석: 검지 끝의 미세한 마찰 불균형으로 인해 궤적이 우측으로 1.2cm 미세 편향 오류 발생 가능성 존재]`

이준의 눈이 가늘어졌다.

최태오 자신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완벽한 투구의 결함. 회전수가 2600RPM을 넘어서는 극단의 상황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손가락 긁힘과 그로 인한 궤적의 뒤틀림. 이준은 이 수학적 힌트를 머릿속 장부의 특이사항 란에 깊이 각인시켰다. 훗날 녀석을 가장 높은 곳에서 무너뜨릴 완벽한 열쇠였다.

지금 최태오가 던지려는 공은 슬라이더가 아니었다. 녀석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이준의 몸쪽을 찌르는 포심 패스트볼을 준비하고 있었다.

`[예측 구속: 141.2km/h]` `[투구 궤적 연산 완료]` `[스위트스폿 도달 확률: 98.7%]` `[근섬유 최적화 모드 대기 중]`

이준의 뇌가 근육으로 신호를 보냈다. 오른발의 발가락부터 시작해 종아리, 허벅지, 그리고 척추를 타고 올라가는 근육들이 장부의 지시에 따라 강제로 재배치되었다. 단 1mm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완벽한 물리적 정렬이었다.

최태오가 오른발을 거칠게 내디뎠다.

스윽—!

녀석의 어깨가 빠르게 회전하며 손끝동작이 극대화되었다. 하얀 실밥이 어두운 체력단련실의 형광등 불빛을 받아 번뜩였다. 최태오의 손을 떠난 공이 공기를 찢으며 날아왔다.

슈우욱!

좁은 지하실 벽면에 부딪힌 파공음이 귀를 먹먹하게 만들 정도로 날카로웠다. 140km가 넘는 강속구가 이준의 가슴팍을 향해 무서운 기세로 쇄도했다. 일반적인 타자라면 몸을 움츠리거나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을 궤적이었다.

하지만 이준의 눈에는 그 공이 마치 점선 위를 느리게 흘러가는 붉은 구체처럼 보였다.

장부가 가리키는 붉은색 타겟 포인트가 정확히 공의 중심과 겹쳤다.

‘지금이다.’

이준은 다리를 내딛지 않았다. 불필요한 무게 중심의 이동을 최소화한 완벽한 노스텝 스윙.

배트가 시계 반대 방향으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허리의 회전력이 척추를 타고 오른어깨로, 그리고 배트 끝동작으로 한 치의 막힘도 없이 전달되었다.

콰아앙—!

지하실 전체가 흔들리는 듯한 굉음이 터졌다.

알루미늄 배트의 한가운데, 스위트스폿에 정확히 맞닿은 야구공이 찌그러지며 폭발적인 반발력을 뿜어냈다. 공이 짓눌리는 감각이 배트를 타고 이준의 양손에 묵직하게 전해졌다.

타구는 수평에 가까운 궤적을 그리며 무시무시한 속도로 뻗어 나갔다. 최태오의 머리 위를 스치듯 지나간 공은, 비좁은 체력단련실 천장 한가운데 매달려 있던 구식 형광등 기구를 정면으로 강타했다.

콰장창!

날카로운 유리 깨지는 소리와 함께 사방으로 불꽃이 튀었다. 천장에 매달려 있던 쇠사슬이 비명을 지르며 뒤틀렸고, 깨진 유리 파편들이 어둠 속에서 은빛 가루처럼 흘러내렸다.

단 한 구.

장외 홈런을 방불케 하는 압도적인 타구였다.

체력단련실 안은 순식간에 어둠과 침묵 속으로 가라앉았다. 오직 깨진 형광등에서 흘러나오는 미세한 스파크 소리만이 지직거리며 공간을 채웠다.

최태오는 제 자리에 굳어 있었다. 녀석의 눈은 터져버린 천장의 형광등 기구와 이준의 배트 끝을 번갈아 바라보며 미친 듯이 흔들렸다.

“너…… 너 방금…….”

최태오의 목소리가 떨렸다. 방금 전까지 보여주던 오만한 기색은 온데간데없었다. 녀석의 이마에서 식은땀 한 줄기가 턱선으로 흘러내렸다. 믿을 수 없다는 듯, 혹은 정체불명의 압박감에 짓눌린 듯 녀석은 입술을 파르르 떨다가 바닥에 침을 거칠게 뱉었다. 그러나 그 행동조차 자신의 두려움을 감추기 위한 무의미한 발악에 불과했다.

이준은 배트를 천천히 내렸다. 녀석을 향해 단 한 마디의 조롱도 던지지 않았다. 그저 차가운 침묵으로 최태오를 응시할 뿐이었다. 그 압도적인 침묵이 최태오에게는 그 어떤 비수보다 날카롭게 꽂혔다.

하지만.

승리의 쾌감은 찰나에 불과했다.

빠드득!

오른쪽 어깨 깊은 곳에서 뼈와 인대가 어긋나는 듯한 극심한 파열음이 일었다.

“윽……!”

이준은 입술을 깨물며 신음을 삼켰다. 어깨 안쪽의 섬유들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듯한 불타는 격통이 신경망을 타고 뇌로 직행했다. 등 뒤로 식은땀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렸다.

눈앞의 장부가 붉은색 경고등을 미친 듯이 깜빡이기 시작했다. 단순한 경고가 아니었다. 시야 전체가 피로 물드는 듯한 붉은 노이즈로 뒤덮였다.

`[시스템 경고: 신체 강제 조율로 인한 과부하 발생]` `[피로도 과부하 부채: 80% 누적]` `[상환 데드라인: D-7 (금일로부터 168시간 이내)]` `[미상환 시 패널티: 우측 극상근 관절막 괴사 및 영구 파열 즉시 진행]`

뇌를 찌르는 듯한 경고음이 귓가를 때렸다.

과부하 부채 80%.

단 한 번의 한계 돌파 타격만으로 육체가 붕괴 직전까지 몰린 것이다. 상환 기한은 정확히 일주일. 만약 이 부채를 0으로 만들지 못한다면, 과거 자신을 몰락시켰던 그 끔찍한 부상이 다시 돌아와 인생을 끝장낼 터였다.

허억, 허억.

이준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오른손으로 왼쪽 어깨를 움켜쥐었다. 손끝이 덜덜 떨렸다.

최태오가 멍청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보였지만, 지금 녀석의 반응 따위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이 어깨의 통증을 해결하지 못하면 모든 것이 끝장이다.

탁.

이준은 쥐고 있던 배트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알루미늄 배트가 콘크리트 바닥을 구르며 쓸쓸한 쇳소리를 냈다.

“야, 이준! 너 어디 가!”

뒤에서 최태오가 소리쳤지만, 이준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체력단련실 문을 박차고 뛰쳐나갔다.

어두운 백송고의 복도는 차가운 정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준은 벽을 짚으며 거친 숨을 내쉬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오른쪽 어깨에서 불길한 열감이 타올랐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었다.

‘살아야 한다.’

어떻게든 이 부채를 상환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이준은 떨리는 손으로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액정 화면을 켜자, 기기 자체의 인터페이스를 잠식한 듯 붉은색 숫자로 이루어진 타이머가 화면 중앙에 선명하게 떠올랐다.

`[167:59:59]` `[167:59:58]` `[167:59:57]`

소수점 아래의 밀리초 단위까지 가차 없이 깎여 나가는 붉은 타이머.

째깍거리는 시계 소리가 뇌리를 직접 타격하는 환청이 들려왔다. 이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일주일이라는 시간 동안 이 지옥 같은 부채를 상환할 방법을 찾지 못한다면, 그의 두 번째 기회는 허무하게 소멸할 것이었다.

이준은 어깨를 움켜쥔 채, 어둠이 짙게 깔린 학교 운동장을 향해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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