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흑은 순식간에 시야를 삼켰다.
단순한 차단기 하강이 아니었다. 척추를 타고 올라오는 기괴한 한기와 함께, 콧속을 찌르는 비린내가 로비 전체에 진동했다.
수직 샤프트의 유리창 너머로 기어오르던 거대한 뱀 비늘들이 쇠가죽을 긁는 소리를 내며 요동쳤다.
스르륵, 스르르륵.
전력 통합 송전 기둥을 휘감은 사령의 형상이 푸르스름한 안광을 뿜어낼 때마다, 비상 발전기조차 작동을 멈추고 굳어버렸다.
"전력 제어실이 완전히 먹혔군."
강도진이 어둠 속에서 권총을 뽑아 들며 나직하게 읊조렸다. 그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지만, 총구는 흔들림 없이 허공의 어둠을 겨누고 있었다.
"오빠, 발밑이 축축해. 이거 물이 아니라…… 기름 같은데?"
소희가 준우의 소매를 꽉 쥐며 속삭였다.
준우는 대답 대신 바닥을 디딘 구두 굽을 가볍게 굴렸다. 질척이는 점액질이 발바닥을 타고 올라와 발목을 옭아매려는 듯한 불쾌한 감각이 전해졌다.
모방귀신의 사령이 전선을 타고 내려와 아파트 지하의 지맥을 완전히 오염시키고 있었다.
심박수가 가파르게 상승했다. 기온은 벌써 영하 이하로 떨어진 듯, 입을 열 때마다 하얀 김이 허공으로 흩어졌다.
시간이 없었다. 신옥주가 배치한 살수들과 지하 제단의 귀신들이 이 암흑을 틈타 숨통을 조여 올 것이 분명했다.
"도진 씨, 전에 준 구형 키 꺼내요."
준우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위기 상황일수록 그의 머릿속은 오히려 가공할 만한 속도로 회전을 시작했다.
"방출된 폐기용 마스터키 말인가? 그걸로 뭘 하려고?"
강도진이 주머니에서 낡은 구형 스마트키를 꺼내 준우에게 건넸다. 겉면이 군데군데 벗겨지고 액정마저 깨진, 쓸모없는 플라스틱 조각에 불과한 물건이었다.
하지만 준우의 눈에는 달랐다.
그는 품속에서 [계율 대장]을 꺼내 들었다.
눈앞의 어둠 속에서도 장부의 황동 모서리는 푸른빛을 흘리며 스스로의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었다. 준우는 장부의 두 번째 페이지, 아파트 동 미러 내부의 고정된 번개 모양 미세 균열 흔적을 가리키는 문양 위로 구형 스마트키를 꾹 눌렀다.
치지직!
스마트키의 회로와 장부의 봉인식이 맞닿는 순간, 거친 불꽃이 튀었다.
"이 스마트키는 고장 난 게 아닙니다."
준우의 입꼬리가 비틀리며 비죽 올라갔다.
"정확히는, 입대위 놈들이 지하 제단으로 통하는 수동 차단벽의 주파수를 외부에서 감지하지 못하도록 일부러 특정 대역을 과부하 시켜 태워버린 흔적이죠. 일종의 '비자금 계좌' 같은 열쇠랄까요."
"비자금?"
"흔적을 남기지 않고 세금을 포탈하기 위해 만든 가짜 장부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간단하죠. 국세청의 방식대로, 그 가짜 주파수를 강제로 세무조사 대역으로 오버로드하면 됩니다."
준우는 손가락 끝에 서린 푸른 검강의 기운을 스마트키의 깨진 액정 틈새로 밀어 넣었다.
동시에 동 미러 내부에서 흡수했던 번개 모양의 음양 전도 규격 균열 흔적이 장부를 매개로 스마트키의 내부 소자와 완벽하게 공명하기 시작했다. 아파트 전체를 흐르던 미세한 잔류 전하와 손각시를 영수하며 비축했던 음기가 하나의 거대한 송전선처럼 연결되었다.
웅—!
황동빛 스마트키가 이내 터질 듯한 청백색 빛을 발산했다. 준우가 그것을 지하 제어반 철문 자물쇠를 향해 던지듯 내뻗었다.
"강제 추징 및 압류 집행."
콰아아앙—!
엄청난 굉음과 함께 지하지제반의 두꺼운 강철 주물 자물쇠가 내부에서부터 폭발했다.
정전으로 인해 전자기식 잠금장치가 먹통이 되어 수동으로도 열 수 없었던 차단벽이, 고압의 전자기 펄스 오버로드로 인해 완전히 녹아내리며 뜯겨 나간 것이다. 뜯겨 나간 철문 너머로 지하 심층의 시커먼 심연이 아가리를 벌렸다.
"통과합니다. 지체할 시간 없어요."
준우가 먼저 발걸음을 옮기려는 찰나였다.
스스스스—!
어둠 속에서 바람을 가르는 날카로운 파공음이 들려왔다.
"조심해!"
강도진이 소희의 어깨를 낚아채며 자신 쪽으로 끌어당겼다.
그 직후, 소희가 서 있던 자리에 묵직한 쇠파이프와 군용 대검이 허공을 가르며 내리꽂혔다.
바닥의 대리석이 깨져 나가며 스파크가 튀었다. 어둠 속에서 검은 방한모를 눌러쓴 사내들이 소리 없이 튀어나왔다. 신옥주가 고용한 사설 청소부들이자 일족의 엘리트 살수들이었다.
"쥐새끼들이 드디어 꼬리를 드러냈군."
강도진이 차가운 눈빛으로 총구를 전방으로 고정했다.
"한 선생, 여동생은 내가 지킨다. 뒤는 걱정하지 말고 제단을 무너뜨려!"
강도진의 호령과 함께, 로비 구석의 어둠 속에서 손전등 불빛들이 일제히 켜졌다. 강도진을 따르는 용감한 보안대원들과 아파트 경비 대원들이 가스 분사기와 진압용 진봉을 든 채 전방으로 달려 나왔다.
"이 빌어먹을 괴물 숭배자 놈들! 우리 아파트에서 당장 꺼져라!"
한 경비 대원이 외치며 살수의 칼날을 진봉으로 막아섰다.
깡! 깡!
쇠와 쇠가 부딪치는 둔탁한 마찰음이 밀폐된 단지 로비에 울려 퍼졌다. 강도진은 군인 시절의 날카로운 감각을 살려, 소희의 앞을 철벽처럼 막아서며 접근하는 살수들의 관절을 정확하게 타격하고 제압해 나갔다. 그들의 수동 방호 보루는 단 한 치의 틈도 허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진짜 위협은 인간이 아니었다.
크르르르……!
살수들의 그림자 속에서, 점액질로 가득 찬 검은 형체들이 분리되어 기어 나왔다.
눈이 멀어 있고 이빨만 기괴하게 돋아난 세 마리의 어둠 사냥개 사령들이었다. 모방귀신의 사냥개들이 침을 흘리며 준우와 소희를 향해 도약했다.
"오빠, 저 댕댕이들은 예방접종도 안 했을 거 같은 비주얼인데!"
소희가 긴장 속에서도 특유의 악바리 같은 농담을 던졌지만, 그녀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걱정 마라. 무면허 불법 사육견들은 안락사가 답이니까."
준우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왼손으로 [계율 대장]을 펼치고, 오른손 손가락으로 장부의 공백을 쓸어내렸다.
머릿속에서 1화에서 보았던 엘리베이터 비공식 행동 수칙의 하단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거기에는 붉은 볼펜 자국으로 아주 미세하게 왜곡된 규칙의 흔적이 적혀 있었다. 다른 주민들은 단순한 낙서나 훼손으로 여겼겠지만, 가문의 계율을 이어받은 준우의 눈에는 그것이 귀신의 침입 경로를 합법적으로 '왜곡'하여 자신들의 사냥을 정당화하려 한 꼼수의 흔적임이 똑똑히 보였다.
붉은 볼펜 자국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규정 외의 존재가 영역 내에 진입할 경우, 소유권자는 그 존재의 영적 자산을 무조건적으로 가압류할 수 있다.'
귀신들이 인간을 사냥하기 위해 만든 불평등 조약의 허점. 역으로 세무조사의 칼날을 들이밀 수 있는 완벽한 법리적 맹점이었다.
"거울의 균열을 통해 흘러 들어온 외부의 미등록 자산들."
준우가 장부의 붉은 볼펜 흔적을 손끝으로 덧그리며 선언했다.
"행동 수칙 제4조 왜곡 조항에 의거, 귀하들의 존재 자체를 '미신고 불법 점유물'로 규정한다. 또한, 동 미러의 음양 전도 균열을 매개로 삼은 시점에서 귀하들의 모든 음기는 이 아파트 결계의 자원으로 귀속된다."
사냥개 사령들이 준우의 턱밑까지 이빨을 드러내며 달려들었다. 강도진이 경악하며 권총을 쏘려 했으나, 준우가 더 빨랐다.
"영수(領收) 처리합니다. 이의 제기는 저승에서 서면으로 하십시오."
스아아아악!
순간, 동 미러의 번개 모양 균열에서 뿜어져 나온 푸른 빛의 쇠사슬들이 허공을 가르며 뻗어 나왔다.
그 사슬들은 허공에서 도약하던 어둠 사냥개들의 목과 사지를 정확하게 옭아맸다.
깽! 깨갱!
사냥개들이 단 한 번의 저항도 하지 못한 채 허공에 묶였다. 사슬을 타고 흐르는 고압의 퇴마 전류와 계율 대장의 압류 인과율이 사냥개들의 신체 내부로 파고들었다.
"지연이자 및 무단 침입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입니다."
준우가 손가락을 튕겼다.
파아아앙!
세 마리의 사냥개 사령들이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청백색 빛의 먼지로 변해 사방으로 산산조각 나 흩어졌다.
그들이 가지고 있던 방대한 음양 전도 음기가 빛의 줄기가 되어 계율 대장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 압도적인 수치 차이와 정교한 계산 앞에, 신옥주가 보낸 살수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며 뒤로 주춤거렸다. 자신들이 부리던 사령들이 단 일 초 만에 먼지가 되어 사라질 줄은 상상도 못 했을 터였다.
"이…… 이게 무슨 괴물 같은 놈이 다 있어!"
살수 중 한 명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려 했으나, 강도진과 보안대원들이 그들의 도주로를 완벽하게 차단하며 바닥에 메치고 수갑을 채웠다.
완벽한 제압이었다. 신옥주의 치밀한 함정 전술은 준우의 오버로드 한 번과 계율 대장의 법리적 압류 앞에 모래성처럼 허무하게 무너져 내렸다.
그와 동시에, 영수한 사령들의 기운이 가득 차오르며 [계율 대장]의 결계 에너지 수치가 만선(滿線)을 가리켰다. 장부 전체가 터질 듯한 진동을 일으키며 지맥과 공명했다.
고오오오오—!
바닥 전체가 거대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단순한 지진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폐기 격리 상태에 놓여 아파트 전체의 음기를 가중시키고 암흑 화를 유도했던, 마천루 지맥 최심부의 장막이 걷히는 소리였다.
쿠구구구구궁!
지하지제반의 무너진 문 너머, 어두운 심연 속에서 진창 물이 솟구치는 듯한 질척하고 기괴한 파열음이 들려왔다. 이윽고 거대한 콘크리트 벽면이 양옆으로 갈라지며, 그동안 숨겨져 있던 고대의 거대 제사 동굴 전면부가 그 웅장하고 음산한 입구를 드러냈다.
동굴 내부에서는 수백 년 동안 썩어 문드러진 흙과 피 냄새가 섞인 악취가 뿜어져 나왔다. 마침내 신옥주와 모방귀신이 숨겨둔 심장부에 다다른 것이었다.
"해냈군……."
강도진이 이마의 땀을 닦으며 어두운 동굴 내부를 응시했다. 수많은 횃불 자국과 제단으로 쓰였을 법한 돌기둥들이 어둠 속에서 기괴한 윤곽을 드러내고 있었다.
준우는 장부를 품에 챙겨 넣으며 차갑게 식어 내린 눈빛으로 제사 동굴의 수직 난간부를 바라보았다.
"이제 마지막 장부를 정리할 때가 되었네요."
준우가 그렇게 말하며 옆을 보았을 때였다.
그의 옆에 서 있던 '소희'가 생긋 웃으며 준우의 손을 잡았다. 그녀의 손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그 순간.
저 멀리, 새로 열린 제사 동굴의 어둡고 깊은 수직 난간부 구렁텅이 밑통로 너머에서, 찢어지는 듯한 비명 소리가 실시간으로 메아리쳐 올라왔다.
"오빠아아악! 살려줘! 나 여기 있어! 옆에 있는 거 내가 아니야아아악!"
그것은 의심할 여지 없는, 진짜 소희의 찢어지는 듯한 절규였다.
준우의 목덜미가 얼어붙었다.
그렇다면, 지금 준우의 손을 잡고 생긋 웃고 있는 이 존재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소희'의 얼굴을 한 존재가, 준우의 손을 꽉 쥔 채 입을 찢어지게 벌리며 기괴하게 웃기 시작했다.